발칸 동맹과 오스만 제국의 1•2차 발칸 전쟁 (Balkan War, 1912 ~ 1913)
발칸 반도 (Balkan Peninsula)는 유럽 남동부, 이탈리아 동쪽의 아드리아해 건너편에 위치한 반도이다.
조밀한 산지와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유럽 남동부, 또는 남유럽 동부의 지중해 (아드리아해와 에게 해)와 흑해와 면한 사다리꼴 형태의 지역이다. 반정도는 남유럽의 한 부분이고, 나머지 반은 동유럽의 한 부분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반도라기보다 대륙의 한 귀퉁이에 가깝지만 반도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실 반도라면 반도이기도 하다. 그리스와 터키의 일부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스 문명이 탄생한 오늘날 현대문명의 요람이자, 고대 로마와 동로마 제국 시대까지는 로마 제국,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며 두 제국을 지탱해온 번영했던 땅이였다.

하지만 현재는 별로 영예롭지 못한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명으로 통한다. 서로 적대하는 작은 세력으로 분열시키다라는 뜻의 단어 발칸화(Balkanize) 또는 Balkanization의 어원이다.
‘발칸’ (Balkan)이란 명칭은 터키어로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뜻하는 발칸에서 비롯되었다. 위의 지형도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이 산악지역이다. 원래는 반도 북동부의 한 산맥을 지칭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이후 반도 전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 터키어에서 그 단어는 사어가 되었기에 오늘날에는 발칸 반도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발칸 산맥, 발칸 국가 (민족)들, 발칸 반도라고 말할 때는 Balkan dağlar, Balkanlar, Balkan Yarımadası 식으로 쓴다.
한편 발칸 전쟁은 1912년에서 1913년까지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발칸 동맹 (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세르비아)과 오스만 제국과의 제1차 발칸 전쟁 (1912년 10월 ~ 1913년 5월)과 그 전후 처리에 대한 대립으로 발생한 제2차 발칸 전쟁 (1913년 6월 ~ 1913년 8월)으로 나뉜다.
○ 제1차 발칸 전쟁
제1차 발칸 전쟁 (First Balkan War)은 1912년 10월 8일부터 1913년 5월 30일까지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등 발칸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 배경
발칸 반도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전 영역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829년에 그리스의 독립을 시작으로 발칸 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자치령으로 바뀌거나 독립하게 되었다.
1908년, 오스만 제국에서 청년 투크당이 혁명을 일으키자 발칸 국가들을 긴장에 휩싸였다. 이는 청년 튀투당이 당시 오스만 제국 헌법의 “모든 민족의 평등”대신 “튀르크의 평등”을 슬로건으로 하는 극단적 튀르크 민족주의을 내세웠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인해 발칸 반도의 영토를 잃은 오스만 제국의 재침(再侵)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909년 북쪽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해 발칸 국가들의 위기감을 더욱 부추겼다.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자, 오스만 제국의 힘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등 발칸 국가들은 1912년에 ‘발칸 동맹’을 맺고, 러시아 제국의 지원 아래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발칸 전쟁이 시작되었다. 또한,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알바니아도 독립을 위해 군사를 파견했다.
– 경과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 오스만 제국이 패한 후, 발칸 국가들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1912년 10월 오스만 제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차 발칸 전쟁이다.
– 결과
1912년 12월 16일에 런던에서 개최된 강화 회담에서는 아드리아노플 할양 문제 때문에 회의가 진전되지 않았고, 1913년 1월 23일에 오스만 제국에서 청년 튀르크당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자 휴전이 취소되고 전투가 재개되었다. 결국 그 해 5월 30일에 휴전 협정을 맺고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 주변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영토를 잃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불가리아 왕국은 마케도니아 지방 일부를 제외한 루멜리아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대부분을, 그리스 왕국은 크레타 섬과 남부 마케도니아 지방 일부 · 남부 이피로스를, 세르비아 왕국은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일부를 합병하거나 세력권 내에 넣었고, 알바니아가 독립하였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토 배분을 둘러싸고 불가리아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 · 그리스 왕국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어 결국 1913년 6월 29일 제2차 발칸 전쟁이 일어났다.
○ 제2차 발칸 전쟁
제2차 발칸 전쟁 (Second Balkan Wars)은 1913년 6월 29일 ~ 7월 29일에 제1차 발칸 전쟁으로 획득한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토 배분을 두고 불가리아 왕국과 다른 발칸 동맹국 사이에 벌어진 발칸 반도에서의 두 번째 전쟁이다.
– 배경
발칸 동맹국들은 1912년 12월 이미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한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었다. 1912년 11월 알바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이슬람 공국의 성립을 선포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가 아드리아 해로 세력을 넓히는 걸 견제하기 위해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했다.

북쪽으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한 세르비아 왕국은 제1차 발칸 전쟁의 결과로 맺은 강화 조약과 함께 얻는 영토 배분을 놓고 동맹국인 불가리아 왕국과 강경하게 대립하였다.
– 전쟁 과정
불화의 시작은 불가리아 왕국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세르비아 왕국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차지하면서 시작되었다. 세르비아 왕국은 이에 불만을 품고 그리스 왕국, 루마니아 왕국과 함께 동맹을 맺어 불가리아 왕국에 맞섰다.
결국, 1913년 6월 29일에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지방 전부를 차지할 목적으로 세르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에 선전 포고를 하여 제2차 발칸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2차 발칸 전쟁이 일어나자, 루마니아 왕국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 몬테네그로 왕국도 세르비아와 그리스 동맹에 가담해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불가리아 왕국군은 아드리아노플 (에디르네) 등을 맹폭하며 맞섰으나 외교전과 군사전에서 밀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오스만 제국이 동트라키아 지역을 회복했다. 결국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발칸 국가들과 전쟁을 해야 했던 불가리아 왕국은 끝내 항복을 선언한다.
– 결과 및 영향
불가리아의 패전으로 7월 30일부터 루마니아 왕국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강화 회의가 개최되었다. 8월 10일에 체결된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불가리아 왕국은 도브루자를 루마니아 왕국에, 마케도니아 지방대부분을 세르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에, 동트라키아를 오스만 제국에 내주었다.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얻은 영토를 이 전쟁에서 대부분 잃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크게 원망했고, 러시아와도 사이가 멀어졌다. 이 전쟁으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의 패전은 불가리아 왕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편에 서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