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년 2월 9일, 제논 (Flavius Zeno, 425 ~ 491)이 아들 레오 2세 (Flavius Leo II)와 함께 비잔틴 제국의 공동 황제로 즉위
레오 2세 (라: Flavius Leo, 467년 ~ 474년 11월 17일)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 474년 1월부터 11월 17일 죽을 때까지 약 10달 동안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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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2세 (Flavius Leo II)
.출생: 467년
.사망: 474년 11월 17일
.배우자: 베리나
*지위: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 황제
.제호: 레오 2세
.휘: 플라비우스 레오 유니오르 아우구스투스 (Flavius Leo Iunior Augustus)
.재위: 474년 1월 18일 ~ 474년 11월 17일
.전임: 레오 1세 / 후임: 제논
그는 레오 1세의 외손자로 아버지는 제논이었다. 레오 1세는 죽기 다섯달 전에 사위인 제논 대신 레오 2세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였고 할아버지가 죽자 레오 2세는 7살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 자리에서 아버지 제논을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레오는 제위에 있은 지 약 10달 만에 죽었고 제논이 단독으로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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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및 활동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본명은 플라비우스 레오 유니오르 아우구스투스 (Flavius Leo Iunior Augustus). 레오 1세의 외손자이자 제노의 아들이다. 레오 1세는 사위인 제노가 아닌 외손자 레오 2세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그러나 레오 2세는 7살에 불과했으므로, 아버지 제노가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레오 2세는 제위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병으로 죽었는데, 어머니 아리아드네에게 독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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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제논’ (Flavius zeno, 425 ~ 491)의 삶
제논 (Flavius zeno, 425년경 ~ 491년 4월 9일)은 로마 제국의 황제로 474년 2월부터 491년 죽을 때까지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원래 이름은 타라시코디사이며, 도중에 장인 레오 1세의 처남인 바실리스쿠스가 그의 제위를 찬탈하여 약 1년간 궐위상태에 있었으나 곧 다시 제위를 되찾고 죽을 때까지 황제로 통치했다.
야만족 출신 최초의 로마 제국 황제, 정확하게는 소아시아의 이사우리아인 출신으로, 이사우리아인은 제국 영내의 로마인이지만 그리스•로마적인 의미에서의 비문명적 산악민족으로서 게르만족 등과 다를 바 없는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이사우리아 족장으로 본명은 ‘타라시코디사 루숨블라데오테스’였다. 레오 1세의 딸 아리아드네와 결혼한 이후, 동로마식의 이름인 ‘제논’으로 바꿨다. 레오 1세는 사위 외국인가 내란을 일으키자 제노는 이사우리아로 도피하였고, 바실리스쿠스가 일시적으로 제위에 오른다. 내란 당시 제노는 경마장에서 전차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군대가 오고있으니 당장 도망가는 게 좋을 거라는 쪽지를 받았다. 제노는 그것을 읽자마자 저항도 하지 않고 뒤도 보지 않으며 도피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위에 오른 바실리스쿠스는 베리나의 애인을 암살하여 베리나의 지지를 잃었고, 수도에 남아있던 이사우리아 군인들을 학살하였으며, 과세 정책으로 인해 민심도 잃었다.
바실리스쿠스는 쿠데타를 도운 일루스라는 이사우리아인 장군에게 제노를 잡아 올 것을 명령한다. 일루스는 제노의 동생을 인질로 잡아 제노를 조종하려 했지만 바실리스쿠스가 이사우리아인들을 학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노의 편이 되었다. 제노는 또 바실리스쿠스의 조카 하르마티우스를 구슬려서 20개월 만에 제위를 되찾는다. 제위를 되찾은 후 제노는 하르마티우스를 제거한다. 또 제노는 교회로 피난처를 찾은 바실리스쿠스에게 너그럽게도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을 약속해 밖으로 유인한 다음 그와 그의 가족들을 굶겨 죽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키아누스가 연이어 일으킨 반란 (479년)을 제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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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가 복위한 476년 서로마 제국은 오도아케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제노는 제국 영토 내 거주하던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와 동고트족이 오도아케르를 타도하면 그 영토를 동고트족에게 주겠다는 협약을 맺었다. 로마로서는 통제하기 힘들어진 고트족을 서방으로 보내버릴 수 있었고, 동고트족으로서는 안정된 영토를 얻을 수 있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탈리아 반도에 동고트 왕국이 성립되었다.
네 차례의 공의회를 통해 칼케돈 교리 (삼위일체론)가 정통 교리로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세계, 즉히 로마 제국 동부에서는 단성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484년 제노 황제와 아카키우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헤노티콘’이라는 문서를 통해 양측을 절충하려 하였으나 이 조치는 교황를 격노케 하였고,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양대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는 아카키우스 분열 사건이 일어났다. 이 분열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에 이르러서야 봉합되었다.
제노의 황권 강화에 큰 공을 세운 일루스는 승진하여 권력을 잡게되었지만 베리나의 미움을 받았다. 베리나와 그녀의 딸이자 제노의 아내인 아리아드네는 차례대로 일루스의 암살을 시도하지만 그의 귀를 자르는 것만 성공했다. 황후의 암살 작전 뒤에 제노도 가담했으리라고 생각한 일루스는 484년 레온티우스의 반란에 참여했다. 또한 일루스는 유배지로 간 베리나로 하여금 레온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하게 만들었는데 제노는 4년간의 내전 끝에 겨우 이들을 제압하고 일루스와 레온티우스는 처형당했다. 재위 중 일어난 반란만 3번이나 되었다.
491년 제노는 사망하였다. 제노가 생전 인기가 없었던 만큼 시민들은 로마인이자 정통파 황제를 요구하였고 황후 아리아드네와 원로원은 그 후임으로 디라키온 출신의 재무관 아나스타시우스 1세를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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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