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감정이란?
감정이란 참 우습다. 좀 전에 다정한 눈빛을 보냈는데 한 마디 던진 말에 감정이 상해버린다. 감정이 상하면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수동적이 되거나 공격적이 된다. 아주 예민한 고양이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금방 또 풀어주는 친절한 시도가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져서 다시 대화를 이어가고 관계가 회복된다. 이렇게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울다가 웃다가 우리를 맘대로 조종해 버리는 난폭한 장난꾸러기같다.
그렇지만 감정은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생존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건 사고가 생겨났을 때 감정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빨리 반응을 해서 위기를 대처하게 한다. 그래서 감정은 이성이 발달되기 이전 먼저 발달이 되어 소통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아기들은 생각을 잘 하지 못하지만 감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알아차린 부모들은 ‘말로 하지, 왜 울어!’ 라고 반응하지 않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준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인간은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여전히 언어를 다양한 의미로 전달하게 하며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의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감정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보고 감탄하며 탄성을 지를 수 있는 것,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창조활동을 하게 되는 것도 감정이 하는 일이다. 감정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면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표현하고 친밀감을 쌓아가게 되는데 이것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쌓여가면서 나타나는 일들이다. 최근 지인들이 한국의 봄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는데 그 꽃들의 향연을 시각적으로 보기만 하는데 시, 공간을 초월한 어린 시절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 꽃들의 사진은 더 이상 화면상의 그림이 아니라 후각적으로 시각적으로 공간적으로 재경험되는 지금 순간이 되었다. 이렇게 감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윤활유와 같다.
그러므로, 감정이 주는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감정은 잘 길들여져야 하는 면이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가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감정은 쉽게 상처를 주고받게 하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분노로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와 불안을 사람들에게 쏟아내게 할 때 그것은 자신에게 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을 종종 보아왔을 것이다. 최근에 호주 시드니의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은 분노가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앗아갈 수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극명한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난봉꾼, 감정을 잘 길들여서 훌륭한 일식 요리사의 칼처럼 사용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안전감과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또 자라면서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감정을 잘 길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으로 소통했을 때 그 감정이 적절하게 받아들여지거나 반응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어려울 때 어떻게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하는 지 배우지 못하고 성장했기에 감정을 조절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이 된다.
이런 경우, 몸은 어른이나 관계에서 감정이 표현되어지는 것이 미숙하고 감정적으로 지속적인 상함을 경험하여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발생한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자극으로 반복되거나 더 강하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을 할 때는 너무나 멋진 분이셨는데 동료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한 분의 농담에 갑자기 발끈하며 화를 엄청내는 일이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냥 웃자고 한말인데 왜 그러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분의 내면에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필요로 인해 생겨난 미성숙한 감정이 건드려졌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감정을 잘 길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나의 감정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일부터 멈추어야 한다. ‘내가 화가난 것은 부모 때문이고, 내가 화가 난 것은 배우자 때문이고, 내가 화가 난 것은 부당한 세상의 사람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멈추고 나의 감정적 패턴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에 채워지지 않은 사랑과 유대감의 필요, 자기 가치와 중요성의 필요가 어떻게 충족되어졌는 지를 살펴 보고 그것이 현재의 감정 생활에 어떻 영향을 주는 지를 살펴 보는 것이 나의 감정을 잘 훈련하고 성숙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감정에 대한 자기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감정을 잘 길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신호등처럼 생각해야 한다. 내 안에 강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인식하고 내 안에 무엇인가 다루어야 할 이슈가 건드려진 것으로 여기며 그 감정을 다룰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어느 집사님이 아무 생각없이 “왜 그렇게 해요! 바보 같은 짓이네!” 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수치심이 확 올라왔다면 빨리 그 자리를 뜨는 행동 또는 머릿 속으로 집사님이 한 말을 대뇌이며 억울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럴 때 그 집사님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의 패턴과 그것이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또는 어떤 이유로 나는 그 말에 수치심을 느꼈는 지를 생각해 보고 나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아, 집사님이 그 말을 했을 때 인정받고자 하는 나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 수치심을 느낀 것이 구나. 그리고 내 안에 있었던 내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그것으로 인해 드러난 것처럼 생각되어서 더 속상했구나 !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말에 취약하구나‘ 라고 나를 이해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나의 감정을 잘 길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이 적절한 감정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감정 패턴은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 생겨난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과하게 때로는 너무 작게 표현되어질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유형을 잘 파악하는 것이 좋다. 감정 중심 치료의 저자 레스 그린버그 (Les Greenberg)는 감정에는 일차적 적응적 감정, 이차적 적응적 감정 그리고 이차적 감정과 도구적 감정이 있다고 분류한다. 지면에서 유형을 다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요약하면, 나의 감정을 잘 길들이기 위해서는 일차적이고 적응적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감정을 속이기 위해 또 다른 감정으로 표현하는 법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불안한 마음을 분노로 표현하는 것, 슬픈 마음을 분노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것을 버리고 불안을 불안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정을 잘 사용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개인이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그 선물의 가치를 결정한다. 감정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잘 활용하여서 인생이 빛이 나도록 지금이라도 감정을 잘 훈련해 보자. 난봉꾼이 순한 강아지가 되도록 말이다.
비난의 대화 습관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왜 ! 이 로션을 여기에다가 넣었어? 없어서 아이들이 찾고 있었는데.. 여기에 넣어두면 날짜가 지나서 아무도 사용을 못하게 되잖아!” 그러자 아내가 변명하듯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쓸 게 많아서 욕실에 둘 수 없었는데 다른 곳에도 자리가 없어서 거기에 넣어 두었어!” 아내는 그렇게 답변을 하면서도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는 평소에는 아침에 토스트를 구우면 같이 먹자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먹고는 얼른 자리를 뜬다.
사람은 감정이 상하면 상한 감정으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감정은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존 가트만 박사님은 부부 문제는 갈등의 내용에 있기 보다는 갈등을 담는 형식 즉 상호 작용의 패턴에 있다고 본다. 갈등을 잘 풀어나가지 못하는 부부는 파괴적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대화의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하나의 유형이 ‘비난’이다. ‘비폭력 대화’의 저자, 마셀 로젠버그는 평화로운 대화법을 연구하여 전세계의 분쟁이나 작은 갈등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인 대화법을 개발하여 그것을 다양한 환경에 적용을 하는데 부부 관계에도 그것을 적용한다. 그런데 평화를 깨뜨리며 폭력을 일으키는 의사소통의 여러가지 유형을 설명하면서 거기에 비난을 포함시키고 있다.
‘비난’ 게임은 많은 가정에서 부부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하기도 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 비난을 받는 사람은 존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 억울함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비난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 비난을 받으면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맞짱을 뜨게 된다. 비난한 사람이 잘못한 것도 같이 찾아서 잘못을 지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위의 예에서 공격적인 아내는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당신은 맨날 로션을 아무 때나 늘어 놓는 거야!” 라고 말이다. 수동 공격적인 사람은 사람은 비난을 한 사람에게 겉으로 표현은 안해도 “너는 잘하니? 너나 잘해!” 라는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위의 경우 처럼 수동적인 사람은 변명을 늘어 놓게 된다. 이 모든 반응은 건강하지 않은 반응인데 비난이라고 하는 것이 감정이 섞여있는 공격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난의 말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방어’를 사용하게 만든다. 공격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격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방어의 방식이 나타나고 그 방식은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용하는 건강하지 않은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표현되어진다. 비난을 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나는 괜찮고 (I am okay) 너는 잘못되었어 (You are not Okay)” 라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나는 안 괜찮지만 ( I am not okay) “그런데 너도 한참이나 잘못되었어 (You are not okay)” 라고 하는 태도를 가진 경우가 많다. 비난은 오래된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왔던 부분이다. 지금도 비난은 많은 조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진다. 조직에서는 잘못이 발생했을 때 비난받을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으로 하여금 책임을 지게 함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조직의 기능을 유지시켜 나간다. 예를 들어, 어떤 비리 사건이 발생할 경우 모두를 처벌하기 보다는 몇 몇에게 책임을 돌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이 그런 경우다.
한 사람에게 비난을 돌림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가정에 적용하는 부모가 있다고 할 때 자칫 한 대상을 희생양으로 삼게 된다. 동생이 맞아서 울고 있을 때 동생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부모가 하고 언니를 무조건 야단을 치는 부모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되는데 이 경우에 언니는 희생자가 된다. 언니를 희생자로 삼아 비난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모와 그 희생을 당하는 언니가 있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비난을 받은 언니는 부모가 없을 때 동생을 학대하는 진짜 가해자가 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정에서 누군가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게 하는 비난이라고 하는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은 ‘역기능 가정(dysfunctional family)’을 산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비난 대신에 우리는 어떤 방법의 의사표현을 사용해야 할까? 코칭 리더십에서는 가장 중요한 코칭의 기술로 “질문, 경청, 피드백”을 이야기하는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왜! 라고 하는 비난의 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좋은 피드백은 인정, 교정과 지지의 말, 칭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실수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비난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를 먼저 인정해주고 나서 고쳐야 하는 부분을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다시 칭찬으로 마무리를 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위의 사례에서 남편은 비난 대신에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코칭의 피드백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면 “여보, 당신은 정리를 참 잘 하는 것 같아. 집이 깨끗해져서 좋지.. 이 로션들은 아이들 화장실에 갔다 놓을래? 아이들이 찾던 것 같아. 그러면 유통기한 내에 쓸 수 있어서 좋을 거야. 아이들도 이 로션이 있어서 좋아할 것 같네. 잘 보관해서 좋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인정, 교정요청, 칭찬의 공식을 사용한 것이다.
아니면 비폭력의 대화 방법으로는 이렇게 할 수 있다. “여보, 여기 찬장을 열어 보니 로션이 많이 있네. 아이들이 로션을 찾았는 데….. 이 속에 있다가 유통기한이 끝나서 못쓰게 될까봐 염려가 되네. 아이들이 제 때 필요한 것을 잘 쓸 수 있는 것이 나의 바램이야. 아이들이 잘 쓸 수 있게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 “ 이것은 관찰, 감정, 필요, 부탁의 공식을 사용한 것이다.
만약 남편이 이렇게 말을 하면 아내는 변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존감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오히려 존중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아내는 변명 대신 “그래, 알았어~ 욕실에 둘 자리가 있는 지 확인해 봐야 겠네. 유통기한이 되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네. 잘했네” 그리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토스트를 구워서 남편에게도 함께 먹자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난’ 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존중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를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좋은 의사소통을 통해서 관계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비난’ 대신에 건설적인 피드백을 표현해 주거나 비폭력대화의 방식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요청을 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비난’의 습관은 역사와 그 뿌리가 깊을 수 있으나 반드시 변화가 필요한 나쁜 대화 방식인 것을 잊어버리지 말자.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