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건강한 가정 만들기
큰 아이가 속상해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부엌을 정리하면 옆의 사람 것까지 함께 해주곤 하는데 동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동생이 쓰레기를 버리고 있길래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치워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언니가 왜 하면 안돼?” 라고 말했다고 한다. 큰 아이의 설명만 들으면 큰 아이는 이타적인 사람이고 동생은 이기적인 사람처럼 여겨진다. 큰 아이가 속상해 하길래 일단은 공감을 해주었고 큰 아이는 마음이 좀 정리가 된 듯 보였다. 그러다, 며칠 후 그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작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작은 아이는 말하길 “언니랑, 나랑 똑같은 거리에 있었는데 언니가 하질 않고 나를 시켰어! 그래서 언니에게 그렇게 말한 거야!”
똑같은 상황이지만 서로의 입장이 이렇게 다르다. 이렇게 다른 입장과 다른 견해로 인해서 가족들 간에는 갈등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서로는 다른 입장이 있고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 아 !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가 되네 ! “ 라고 서로를 이해하면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는데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 갈등이 깊어진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부부는 아주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을 바라볼 때 이해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며 나의 방식을 모두 따라와야 한다라고 주장을 하게 될 때 져주는 사람은 자신이 사라지기에 힘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기쁘게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상대방으로 인해서 불만족스럽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소통하는데 수동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커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성격이 강하고 자기 주장적이다. 그에 비해 다른 한 사람은 희생적이고 상대방을 잘 맞추어 주는 사람이다. 성격이 강하고 자기 주장적인 사람이 자꾸 변화를 요구하다 보니 다른 한 사람이 자신을 내려 놓고 강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맞추어 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강한 사람은 고유한 매력이 사라져 버린 자신에게 맞추어주는 여성은 매력이 없다고 더 이상 사귀고 싶지 않다고 하며 헤어지자고 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요구에 다 맞추어준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리기까지 희생적이었으나 그것이 건강한 관계를 이루어가지 못한 것이다.
가족 안에서도 그렇고 커플 관계에서도 그렇고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 너무 한 쪽에게 힘이 실려지거나 하는 것은 처음에는 평화가 있기에 좋을 것 같으나 구성원들의 일부는 건강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갈등이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다 들리도록 해야 하고 모두가 건강한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모두가 그 가운데서 협력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의 규칙과 역할이 융통성 있게 설정되어야 한다.
어느 가정에 아주 강한 엄마가 있는데 그 강함에 못 견딘 남편은 집을 예전에 떠났고 강한 엄마를 닮은 딸은 어릴 때 부터 반항을 하면서 성인이 되자 집을 떠나 버렸다. 그런데 그 집의 아들은 엄마를 이해하면서 착한 아들로 엄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아들은 심리 검사 결과들을 보면 엄마를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엄마에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는 무기력함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아들은 엄마를 무서운 사자로 표현을 했고 여동생은 전갈로 표현을 했다. 자신은 그에 비해서 아버지는 체구가 작은 펭귄을 선택했고 자신은 작은 고래를 선택했다. 이 아들은 엄마와 여동생이 싸우면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곤 했고 결혼도 하지 않고 엄마와 살고 있기에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그 집의 아들은 착한 아들, 그 집의 딸은 반항아이고 문제아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엄마의 강한 통제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아들이 심리적으로는 더 건강하지 못한 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정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힘을 빼앗겨 버렸고 그 아들도 그 딸도 세대를 이어서 건강하게 자신의 견해나 목소리를 내는 독립된 자아를 가진 자녀들로 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순종적인 아들은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또는 커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힘의 균형을 골고루 가지면서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질서를 세워나갈 때 진정으로 그 관계는 건강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들이 건강해 질 수 있을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건강한 가정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든다거나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상호작용 가운데 갈등이 있을 때 그것을 건강한 의사소통으로 해소해 나가며 모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족 전체가 건강한 체계가 될 수 있도록 전체와 구성원 모두를 부모님이 주축이 되어서 돌보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다. 그것을 위해서 부모님은 편애하는 자녀가 없어야 한다. 비록 마음에 조금 더 정이가고 좋아하는 자녀가 있더라도 가능한 공평하게 모두에게 상과 벌을 공평하게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가족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고 바로 세워질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부부부터 소통을 잘 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부부는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갈등을 힘들어하는 정서적으로 연약한 자녀가 부모 대신 아픈 사람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녀는 무의식적으로 희생양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부가 갈등이 심하다가 아이가 아프게 되니 싸우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건강한 가정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아니다. 문제는 표현을 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표현을 하면 그것을 존중해 주지 않는 부모들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은 가정을 건강하게 할 수 없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게 하고 그것을 잘 들어주며 실제 가정에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방종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표현하게 하고 경청하면서도 들어줄 것은 들어주고 안되는 것은 왜 안되는 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부모가 건강한 부모다. 다른 말로 하면 일관성 있는 규칙을 잘 지키되 거기에는 융통성과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캠프에 가서 너무 피곤해 할 때는 하루 정도 해야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쉬게해 주는 것도 하나의 융통성일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부부를 통해서 힘의 균형과 좋은 일관성 있는 규칙과 건강한 소통을 통한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다. 그것을 위해서 부모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힘든 일이지만 너무나 가치있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은 또 다른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독립된 자아로 성장해 갈 수 있고 인류의 미래는 그 아이들로 인해서 밝을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정
남편에게 “행복한 가정은 어떤 가정인 것 같아?” 라고 물었더니 “같이 많이 있고 같이 놀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재미있게 웃는 가정이지! “ 라고 답을 하였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나의 남편은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성에 행복의 비중을 많이 두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지, 행복한 가정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맞지!’ 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한 친구가 생기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화장실도 함께 가고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함께 쇼핑센타에 놀러가고 집에 돌아와서는 화상 채팅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렇게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그것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비단 학교 다닐 때 친구뿐 아니라 애인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면 자녀들이 집에 많이 없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사귀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된다.
미국의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행복한 가정의 특성을 연구한 팀은 20년간 수천 가정을 연구하면서 행복한 가정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하나의 특성으로 분석을 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이가 좋은 가정은 구성원끼리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좋아서 그 시간을 더 가지고 싶어할 것이고 그것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으면 계속해서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이가 좋지 않은 가정의 구성원은 가정에만 있으면 마음이 가시방석같고 또는 불안하고 평안이 없어서 가능한 밖에서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집의 갈등을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한 커플이 있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무척이나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남편은 그 소리가 듣기가 싫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집에 늦게 들어오게 되고 그런 남편이 미워서 아내는 남편을 더 많이 비난하게 되고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꼭 사이가 좋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서만은 아닌 경우도 있긴하다. 부모가 이혼을 했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는 경우 또는 일 때문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들이 마음으로는 자녀를 너무 사랑하고 돌보고 싶지만 현실의 상황이 그것을 도와주지 않는 경우다. 또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부모가 오랫동안 떨어져서 살아 기러기 엄마,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함께 있어야 하는 가족이 함께하지 못할 때 그것은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온다. 우선 가족이 함께하지 못할 때 친밀함의 깊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아이가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할머니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딸인 엄마에게 자신이 아이를 다 돌봐줄테니 너는 열심히 일을 해서 자립을 해라고 딸을 도왔지만 그 결과로 아이의 엄마는 거의 아이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결과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자녀와 함께하지 못한 엄마는 그것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이가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할머니를 돌보지만 막상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남들을 대하는 것처럼 예의를 지키면서 대하고 살갑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한 할머니에게 부모에게 갖는 애착을 갖게 되고 엄마와는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 큰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나의 안전한 기지’가 되어준다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1세 미만의 아이들은 ‘대상 영속성’의 개념이 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 대상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큰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가까이하며 안아주는 것이 많은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불안할 때 손을 잡아 준다던가 포옹을 해준다던가 하는 것이 불안감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데 바로 누군가 옆에서 함께 가까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된다. 필자의 경우 언니와 동생은 한국에 있고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다 보니 아무래도 부모님은 한국에 있는 손주들과 더 함께할 시간이 많고 손주들과 친밀감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더 많은 일상 생활의 일들을 공유하게 되고 또 더 많은 정서적 교류도 결국 하게 되다 보니 더 사랑하는 마음도 많이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가끔 한국의 손주들과는 아주 친밀하신데 호주에 있는 우리집 아이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간단한 인사만 나누는 것을 볼 때 조금 속상한 부분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결과가 있기에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면 가정에 우선 순위를 두고 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 기독교 사역자는 너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것을 보고 일년에 반 년 이상은 이제 집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또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사역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다고 물리적인 시간만 의미하진 않는다. 함께 있어도 온 가족이 소통하지 않고 각자 개별 생활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하지만 아이들과 개별적인 시간을 가질 때 아이들이 느끼는 만족감의 수준이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양뿐 아니라 질을 적절히 조절하며 행복한 가정을 위한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함께하면서 그동안 소통하지 못했던 주제들을 다룰 수도 있고 함께하면서 상대방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불편한 사람이 있어 자꾸 피하기만 하지말고 반대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서 갈등을 풀고 성장하는 계기로 삼자.
가까운 실례로 코비드 때 억지로 함께해야 하는 가족들이 그것을 계기로 많은 친밀감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곤 했다. 반대로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슈들이 드러나 상담실까지 찾게 되는 가족들도 많았다. 함께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거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늦추지 말고 오늘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한 걸음의 노력을 시도해 보자.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