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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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고
예전에 한국에서는 과묵하고 조용한 스타일이 인기가 많았다. 모범생 스타일의 사람들이다. 왠지 그런 이들이 생각이 깊을 것 같고 실수를 잘 안 할 것 같고 공격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부장적이고 수직 구조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스타일이 더 많이 수용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발견한 사실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게 과묵하고 조용한 스타일은 인정을 잘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며 자신의 의견을 잘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곳에서 든 인정을 받게 되고 존중을 받는 반면 조용하고 침묵하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시를 당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호주만 해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내성적인 사람들보다 더 많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인생의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기질은 유전적, 문화적,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받으면서 격려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는 데 아이의 경우에 부모가 어떤 기질을 잘 이해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기질을 잘 수용하느냐 에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의 기질의 강점을 잘 발휘하여 성장하게도 되고 자신의 기질을 싫어하게도 된다.
부모와 환경에 의해서 자신의 기질이 어떻게 장려 되었느냐 에 따라서 아이들은 네 가지 방식으로 자신과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데 이것을 네 가지로 쉽게 설명을 하자면 ‘나는 괜찮고 타인도 괜찮다 ‘, ‘나는 괜찮지 않으나 타인은 괜찮다’, ‘ 나는 괜찮은 데 타인이 괜찮지 않아 ‘ ‘ 나는 괜찮지 않고 타인도 괜찮지 않아 ‘ 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괜찮고 타인은 괜찮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보다는 타인과 환경으로 종종 원인을 돌린다. 그래서 매사에 세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잘못했다고 말을 잘 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기 보다 합리화 하기를 잘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이러 이러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시키며 자신의 잘못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괜찮지 않으나 타인은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나면 그것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에게 의존을 하거나 타인에게 삶의 결정권을 맡기는 경우가 많고 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고 우울해하고 무기력해지는 경험들을 종종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피해의식을 경험하면서 깊은 자기 연민 가운데 빠지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가 쉽다.
똑 같이 상처를 받았는 데 외향적인 사람들은 상처에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은 ‘분노’의 문제를 가지고 타인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내성적 사람들은 ‘우울’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을 탓하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고, 너도 괜찮다 “라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지나치게 남 탓을 하거나 지나치게 내 탓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기질이 존중 받지 못하고 건강하게 자신을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을 굴복시켜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다. 이런 사람들이 갖게 되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있는 왜곡된 생각들이다. 그 중에 하나가 ‘흑백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계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100% 한 쪽의 잘못만 있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오류에 빠져서 상대방 때문에 관계가 이렇게 나빠졌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여성 분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서 자기 확신이 별로 없었고 자존감이 낮았다. 그에 비해서 이 여성 분의 남편은 너무나도 자신감이 있고 밝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그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결혼을 했는 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않고 축소시키면서 상대방의 잘못은 지적하고 탓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여성은 모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잘못으로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평소에 자기 확신이 없었던 터라 점점 더 소심해지고 자기연민 가운데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 사례의 주인공과 남편은 흑백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의 원인이 타인 아니면 나에게 100%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이 되고 아내는 책임감과 죄책감의 무게에 살 맛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담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 외로 이런 흑백 논리의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남편은 잘못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모든 것의 잘못은 아내에게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해본다면 위의 사례의 남편과 아내는 큰 오류에 빠져 있음을 금방 보게 될 것이다.
건강하게 사고하고 건강하게 관계하기 위해서는 ‘나도 괜찮고 타인도 괜찮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타인에게 또는 내 자신에게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해도 조금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100% 괜찮아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흑과 백이 아닌 회색 지대 안에서 장, 단점을 가지고 살아가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남편이 건강 해지려면 아내도 나 만큼이나 괜찮은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만큼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을 찾아내고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수용하고 누구나 강점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흑백 논리가 아닌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점점 공동체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타인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너 때문이야, 또는 나 때문이야” 라는 비난을 버리고 “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지 “ 라고 하는 열린 태도로 서로의 연약함을 수용하는 일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가족 시스템
엄마는 유달리 약 드시길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약을 안 먹어도 건강하다” 고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인지 실제로 엄마는 여든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약을 먹고 있는 것이 없으시고 건강하신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입버릇처럼 엄마가 하시던 말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필자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약을 먹고 나면 건강해지고 회복이 될 거야 라는 믿음이 필요한데 약을 먹을 때마다 왠지 불쾌감이 있고 긍정적 기대감을 많이 갖지 않게 되면서 의무감으로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건강 식품 조차도 인상을 찌푸리며 먹게 되는 나를 보면서 부모가 준 영향이 얼마나 오래가고 또 자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 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 많은 배우자들은 상대 배우자를 바꾸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할 경우 결혼을 했으니까 이제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경우 어떻게 든 주말이 되면 바깥에 나가기를 요청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많은 배우자들은 자신이 노력을 해서 배우자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도전을 주면 배우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변하지 않는 배우자로 인해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내 배우자는 변하지 않을까요?’ 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 변화시키기를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배우자를 맞추어 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의 혼자의 삶에서 나의 문제를 고치려고 할 때 내가 노력하면 바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지만 결혼을 한 후 상대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내가 노력해서 바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공식처럼 되어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 내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룰 때는 그냥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살고 있었던 다른 가정에서 형성되어온 가치, 삶의 습관, 태도, 대인관계 양상 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경우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가정의 대표와 한 가정의 대표가 만난 두 가지 시스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 치료에서는 가정은 단순한 가족 구성원의 합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그 가정 안에 형성되는 독특한 상호 작용 패턴이나 규칙이나 의사소통 방식과 같은 것들이 자리를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건강한 것이든 건강하지 않은 것이든 그 가정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작용해서 배우자의 변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문제는 나의 배우자야. 또는 문제를 일으키는 나의 아이야 라고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 전체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보아야 하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 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을 때 가정의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인 남편이 컴퓨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 때 무조건 컴퓨터를 많이 하는 것은 나쁘니까 그것을 하지 말아라 말하고 고치려고 하기 전에 그 문제가 어디로부터 왔고 지금 현재 가정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큰 그림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의 갈등을 많이 경험해야 했는데 어떤 때는 부모님 사이에 오가는 폭력까지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몰입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도피 수단으로 또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컴퓨터 게임을 사용하였고 그 컴퓨터 게임이 삶의 즐거움을 주었던 위로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남편이 다시 컴퓨터에 몰입하게 된 것은 아내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였다고 합니다. 그 남편은 어린 시절 자신이 사용한 고통의 회피 방식을 그대로 현재의 결혼 관계에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남편의 컴퓨터 중독의 문제를 고치라고 말하기 전에 어쩌면 남편과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것이 그 가정의 문제를 고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는 많은 가정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문제아’ 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가정 안에 있는 역 기능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그 문제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의 문제를 바라볼 때, 문제 자체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기 보다 우리 가정 안에 있는 상호 작용 간에 나타나는 역 기능적인 문제를 볼 수 있으면 문제의 답을 훨씬 더 잘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내가 태어난 원가정에서 형성된 규칙이라던가 삶의 습관이라던가 또는 대인관계 패턴을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으면서 은근히 그것을 내 자신과 내 배우자, 또는 자녀에게 요구하면서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를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 전체가 명문 대학 출신이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우리 자녀에게도 그것을 기대하면서 암묵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진 않은 지 그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지 않은 지 또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서 완벽해야 해’ 하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던 엄마의 교육으로 인해 집안일을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잘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닦달하면서 가족들까지도 완벽한 집안 생활을 요구하고 있진 않은 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적절한 규칙과 적절한 융통성을 가지고 유기체로서 성장해 가는 가정입니다. 규칙을 세우지만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고 가족이 발달하면서 바꾸어질 수 있는 규칙을 적용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엄마로서 아빠로서 기본적인 역할들을 수행하지만 필요하다면 그 역할들을 조정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아직도 내가 태어난 가정에서 배웠던 방식대로 내 삶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배우자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고 새롭고 건강한 그리고 융통성 있는 우리 가정에 맞는 시스템을 세워 나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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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교수,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