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김새론의 죽음
최근 김새론의 죽음을 통해 김수현의 민 낯이 드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 동안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어필한 김수현은 좋은 광고를 통해서 수십억을 벌여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실제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좋은 이미지를 산산 조각나게 했다. 무엇보다 미성년인 취약한 배우들을 성적으로 추행하고 당시 15세였던 김 새론과 몇 년간이나 사귀었고, 자신의 소속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김 새론을 도와 주기는커녕 위협하고 유투버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서 공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확한 결론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드러난 것을 통해 본다면 그것이 김 새론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좋은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가면을 쓰게 된다. 적절한 가면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사회적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한다. 몇 일전 여행 중에 만난 한 분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최근에 은퇴를 하신 분이다. 그 분이 보이는 이미지는 아주 점잖은 선비 같았고 말씀을 하실 때도 조용 조용히 하셨다. 그런데, 그 분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역할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가면을 적절히 사용했기 때문에 은퇴까지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면이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많이 해치거나 가면과 가면의 차이가 너무 크면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도 갈등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할에 맞는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되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반영한 가면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수현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고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양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 거기에다 도덕성이 높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그의 실제 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가면과 보여지는 가면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차이를 극복하는 삶을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를 나타내는 인형을 골라 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주 예쁜 옷을 입은 직업 여성의 인형과 앞치마를 두른 인형 두 가지를 골랐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때와 엄마의 모습과 일할 때의 엄마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일할 때의 모습과 집에서의 엄마의 모습이 달랐다고 느꼈기에 다른 인형을 골랐던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아이들에게 큰 혼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가면을 쓰는 것은 융통성이 있으며 동시에 그 기능을 잘 감당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 오히려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더 훌륭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럴 때 사회에서 기능하는 다양한 모습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가면이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부모와 동시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성학대를 하는 것과 같은 완전히 상반되는 가면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그럴 때 아동들은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때로는 잠시 자신의 자아를 몸과 분리시켜 고통을 이겨내려 하는 ‘해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다중 인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배우 김수현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주는 모습도 혼란이다. 그 동안 보여주었던 배우의 가면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뛰어난 모습 또는 바보같이 선한 모습이었기에 그가 총, 칼을 들고 누군가를 학대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이 대중이 가지고 있던 그의 일관성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가면들 사이의 차이를 줄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척하면서 살지 말고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나의 모습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동시에 타인에게도 그것을 적당하게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어느 날, 돈이 들어 있지 않은 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넣었다는 고백을 했던 적이 있다. 큰 교회 목사님께서 성도들 앞에서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는 목사님이 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거룩한 가면을 쓰고 있는 목사님도 일반 성도처럼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면을 벗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순 기능이 있음을 기억하고, 숨기거나 열등감을 가지기 보다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며 용납할 때 나의 가면들은 통합이 되어 나 큰 하나의 자아로 성숙해 갈 수 있게 된다. 바라기는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우 김수현도 결핍이 많은 자신을 화려한 가면으로만 가리지 말고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Complex PTSD)
많은 사람들이 자연 재해나 교통 사고 후에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이고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 즈음 누구나 들었을 것이다. 이런 재난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지만 일회적인 재난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기도 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때 효과가 좋은 편이다. 필자는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는 EMDR 전문 훈련 과정을 받은 후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적용을 해 본 결과 일회적인 외상을 경험한 경우는 정말 효과가 극명하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외상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치료법을 적용해도 변화가 적고 회복이 어려운 것을 보게 되었다. 실제로 아동기에 학대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일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사람들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가 어린 시절에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에서 방임이나 학대가 반복적이며 장기간 진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따로 분류하여 이것을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것이 아동의 발달과 연관되어져 있기에 ‘발달성 외상 장애’ 라고 부르기도 한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특성이 있으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 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정 하고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지속적인 방임이나 신체적 학대, 언어적 학대, 성적 학대 와 같은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다. 또는 치료가 안되어 활성화되어 있는 정신 질환 (예, 조현병, 조울증) 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경우다. 여기에는 알코올과 마약과 같은 중독을 가진 부모도 포함이 된다. 그 외 장기적으로 발달 시기에 왕따를 당한 다거나 지속적인 사회적 스트레스에 노출을 받는 것도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었지만 옹호해 주는 보호자가 없어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가정에서 차별을 받을 때도 해당될 수가 있다. 어떤 한 분은 북한에서 탈출을 하고 호주에까지 오는 삶에 있어서 장기적인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었고 그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겪어서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셨다.
이 장애는 얼핏 보면 다른 장애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장기간 학습을 통해서 형성된 장애이기에 다른 장애와 같이 공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양극성 장애나 불안 장애 또는 주요 우울 장애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만난 한 분은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MMPI검사를 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해 보니 오랫 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계셨고 정신과에서도 우울증 진단을 받아 계속 약을 처방받고 계셨다. 그런데 가족 분은 그 분이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고 하시고 또 나중에 나타나는 특성들을 살펴보니 경계성 성격 장애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다. 시간이 지나서 살펴보니, 정말로 이 분의 증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되는데 어린 시절의 장기적인 외부로 부터의 학대로 기인한 것도 있지만 유전적인 부분도 역할을 한다. 한국에 아동 학대로 신고한 케이스를 보면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말썽을 부렸는데 부모가 심하게 그것에 반응한 경우들이 많이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학대를 했다는 것이다. 변명할 여지가 없이 부모는 아동 학대죄에 속하고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더 충동적인 행동을 잘하고 주의력이 없는 ADHD 아동이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학습 장애가 있는 아동들은 안타깝게도 아동 학대에 노출될 확률이 일반 아동에 비해서 훨씬 높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재 왜곡의 문제가 많아서 자기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 부정확한 신념을 가지고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세상은 가해자의 세상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심한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수치감, 무력감, 불안, 압도, 자포자기, 자살 충동, 우울감을 느낀다. 그리고 심리적 괴로움이 신체 감각에 대해서도 불편감을 느낀다. 그것이 신체화 증상으로 이어져 신체 질환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정신의 혼미를 경험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위험에 대해서 과잉 경계를 하여 타인의 표정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외 대인 관계 문제, 중독 문제 등이 있고 가까운 사람을 지나치게 밀어내거나 비난하고 책망한다.
이런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성격적인 약점이 아니라 학습된 스트레스 장애 이기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건강을 증진시키는 행동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인 소식이다. 한 여성분은 처음에는 무망감과 절망감이 혼재된 큰 불안을 경험하고 신체적으로는 불면증과 편두통에 시달렸지만 치료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다시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을 돌볼 줄 알게 되었고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이 나를 방임했고 나는 지금 어른이 되었음에도 몸을 돌보지 않아서 내 자신에게 소홀했어요. 그 분들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내 자신을 멋지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안정감과 안전을 발전시켜 나가고, 정서를 조절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우고, 수치심과 무력감을 이겨나감으로 긍정적 자아상과 긍정적 자아 감각을 되찾아가는 회복의 여정은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의 아픔으로 인해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어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은 여전히 희망적이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