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진 박사의 특별기고
융통성
어디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2층 세탁실에서 아래층 화장실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벌써 바닥은 흥건히 젖어 문밖 복도로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무장갑과 양동이를 들고 부엌을 나오면서 혼자 청소를 하러 내려가려고 했다.
일이 터지면 늘 혼자서 해결하는 습관이 있다보니 이번에도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큰 딸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엄마는 왜 혼자서 일을 다하고 힘들어 해? 다른 가족들을 시키면 되지…” 복도를 지나는데 그 말을 했던 큰 딸을 만났다. 그래서 큰 딸에게 “ 아랫 층이 물바다가 되어 버렸어.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같이 청소하자!” 큰 딸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다 이야기를 해!” 그 말을 듣고 아이들 방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내려가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있자 수건을 들고 양동이를 들고 아이들이 모두 나타났다. 더러운 물을 닦아내고 걸레질을 하는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하니 빨리 마무리가 되었고 혼자한 일과는 비교가 안되게 필자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이 일을 통해서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은 늘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때로는 그것이 효과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문제 해결 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다른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 과정 접근’이라는 책에는 다른 사람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똑 같은 대인 관계 패턴은 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난다고 언급한다. 즉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데 있어서 경험하는 문제 패턴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주제를 상담자들과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그 문제 패턴을 아내고 문제 패턴의 대인 관계 패턴을 깨뜨리고 상담자와 새롭고 건강한 관계 패턴을 익혀가는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상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울 수 있게 된다.
한 번은 어떤 내담자 분을 만난 후에 두 주간 사정이 있어서 만남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
후에 그 분을 다시 만났을 때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싫어하게 된 줄 알았어요.” 라고 말을 했다. 그 분은 누군가가 부정적 표정을 짓거나 또는 평소와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자신과 연관을 지어서 해석을 하여서 마음의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인해서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게 되기도 하고 오해를 해서 갈등을 겪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면서 형성된 나의 건강하지 않은 관계 패턴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을 야기시키는 지를 잘 발견하는 것이 현재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다루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건강하지 못한 관계 패턴을 이해한 후에는 변화를 위한 의도적인 시도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도가 긍정적이며 유익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면 그 때 사람의 대인 관계 패턴은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담사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이 표정이나 상황에서 해석한 생각들이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게 될 수 있고 다음에는 그런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대체된 생각들도 함께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과 타인을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는 여유가 생겨난다.
필자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만의 부정적 관계 패턴을 다시 한번 탐색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말다툼을 많이 하셨는데 소심한 필자에게는 그것이 힘든 경험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또한 학교 생활에서는 몇 번 친구들과의 갈등에서도 성숙하게 처리하지 못한 반응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러한 경험들이 사람들과의 갈등의 상황은 회피하는 것으로 극복하도록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만 겨우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소위 ‘수동적 또는 회피적 대인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일을 처리할 때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고 해내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도 가족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혼자서 해결을 많이 하곤 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수동적 회피적 대인 관계 패턴이 필자를 지켜주는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시대와 상황이 변했음으로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대인관계 패턴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가끔 여전히 그 방식대로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려움이 생기자 가능한 부탁을 많이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거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럴 때 무의식적 내적 반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더 나은 방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시도하는 것이 더 융통성 있고 건강한 대인 관계 패턴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중년의 나이로 신체적인 일에 있어서는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혼자서 힘들게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식적이고 바람직한 것이기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필자에게는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중요영역이다.
수동적이며 회피적인 대인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공격적인 대인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필자와 반대로 타인을 시키거나 통제하는 일을 즐겨하고 그것이 시간을 지나면서 주위의 가족들이나 관계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한 분은 회사의 CEO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시키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고 말투가 지시적이며 공격적인데, 결혼 초에는 그것이 적극적이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기에 가족들에게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의 지시적이며 공격적인 대인 관계 패턴이 온 가족을 힘들게 하고 가족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가족들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제일 바람직한 대인 관계 패턴은 융통성 있는 대인 관계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어린
아이로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거쳐서 발달해 가기 때문에 늘 같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들은 통제를 더 해야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 조금씩 자율권을 더 주어야 아이들이 행복하게 크는 것처럼 사람을 대할 때도 나의 경험으로 인한 고착된 대인 관계 패턴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에 따라 그리고 환경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진실한 대인 관계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방식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가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잘 전달하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아니요’ 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자발적으로 희생할 줄 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며 예의를 지키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가 믿는 가치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이 훌륭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대인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대인관계의 장애물 역할을 하는 수동적, 공격적, 회피적 대인 관계의 패턴이 내 안에는 어떤 형태로 역할을 하는 지를 잘 생각해 보고 관찰하고 인식함으로 그것을 용기내어 바꾸어보는 시도를 하자. 그래서 고착된 대인 관계 패턴이 아닌 융통성 있는 대인 관계 패턴을 삶에 적용해 보자. 그럴 때 더 좋은 관계들 속에서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와 무료나눔
4번의 이사와 9미터 쓰레기 통을 6개를 채우고 세 개의 4개의 냉장고와 수십개의 책꽂이 및 여러가지 가구들을 무료 나눔으로 교민들에게 주고 나서야 이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25년의 시간을 캔버라에서 살았고 마지막에 살았던 곳은 10년을 살았는데 장소가 넓다 보니 이것 저것 가지고 있던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많이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사를 오고 나니 여전히 짐이 많아서 매일 같이 정리를 하면서 조금씩 추가로 짐을 버리는 작업을 하면서 최근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는다. 많은 소유물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고 삶의 질을 낮추며 물건 사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50대 이후의 사람들은 물건이 무척이나 귀하고 쉽게 구입을 하지 못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에 샤프가 처음 나와서 신기해 했던 것을 기억하고 해외에 아버지들이 드물게 여행을 다녀오면 학용품을 선물로 사왔고 쉽게 누구나 먹는 바나나 조차 아주 귀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 지 어르신들 중에 물건에 집착을 하며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한 노인분은 연세가 80세 중반 이신데 자녀들을 잘 키워서 자녀들이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깨끗한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고 매달 용돈을 보내주는 것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분은 밤만 되면 집 밖에 나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나서 물건들을 주워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사를 간 후 한 달만 되면 집 안에 이상한 물건으로 가득차 버린다고 한다. 자녀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몇 년 후에는 새 아파트로 옮기고 몰래 물건을 버리는 것을 시도했는데 물건 모으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는 엄청 화를 내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물건을 집에만 두지 않고 아파트 계단에까지 두어서 어느 날은 불붙은 담배 꽁초의 불똥이 튀어 화재 사고까지 날 뻔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는 물건을 모아두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비드로 인해서 바깥에 나갈 수가 없고 락다운을 해야 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하면 살 수가 없었던 때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전쟁이나 갑작스런 어려움이 닥칠 때 사람들에게는 불안감이 엄습을 하고 그 불안감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 물건을 사서 모으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불안하고 어려운 시절이니 미리 물건을 구입해 놓자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안전하고 조금만 나가면 언제든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데 미리 구입해서 많은 것을 쌓아두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 갖다 버리면 되지! 뭘 그래?”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물건을 버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 하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 물건을 버리는 것이 어려워 진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엄마, 이 그릇 버려. 오래 되고 잘 안 쓰잖아!” 라고 말할 때 엄마는 “이 그릇은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남기신 유품이야 !” 라고 말하면서 버리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사진이나 아이들의 어린 시절 물건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렇게 ‘나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다’라고 하는 생각, ‘불안하니 물건을 챙겨야해’ 라는 생각, 그리고 ‘알뜰하게 경제적으로 구입한 것이야’ 라고 하면서 싼 물건을 자꾸 사는 생각,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다 필요할 거야’ 라는 생각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으게 되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물건이 없어서 힘들었던 경험을 해본 사람, 그리고 물건을 저렴하게 많이 사서 유익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경험, 불안할 때 물건을 사서 마음에 안정감을 누렸던 경험과 관련되어 있고 그 경험과 관련된 생각은 반복성을 더하면서 하나의 신념으로 깊이 뇌에 박히게 된다. 결국, 그 강한 신념은 행동으로 이어져서 쓸모없는 물건을 자꾸 모으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주위에는 물건을 잘 처분하고 버리기를 잘하는 몇 몇 사람들이 있다. 필자의 엄마는 필자의 집을 방문할 때 마다 버릴 물건들을 정리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싫어서 왜 버리냐고 했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엄마가 7년 전에 짐을 정리하면서 창고에 넣어둔 물건이 이번에 이사갈 때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그 물건을 찾았던 적이 없고 그 물건을 필요로 한 적도 없었던 것을 보게 된다. 실제로 그 물건들은 그다지 필요가 없었던 물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왜 버리냐고 할 것이 아니라 필요없는 물건을 창고에 잔뜩 쌓아두었던 필자가 더 변화가 필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건을 잘 처분하고 버리기를 잘하는 분들의 집을 방문하면 물건들이 많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 냉장고가 여유가 있고 창고에 여유가 있고 집 안 구석 구석에 여백이 있다. 그에 비해서 필자의 집은 아이가 많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거기에 무엇인가로 채우느라 바쁜 삶을 살았고 항상 집이 좁고 옷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소박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해서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처럼 이불 하나 숟가락하나만 가지고 살아가는 극단적인 심플함이 아닌 적당한 여유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내 안에 갇힌 생각들은 어떤 것이 있는 지를 돌아보고 그 생각을 바꾸고 물건이 상태가 좋을 때 그 때 그 때 타인과 나눔을 하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한 번 하게 된다.
저희에겐 필요없는 물건들을 무료 나눔으로 할 때 보았던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며 사람들과 자주 자주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중요성을 두며 비움으로 행복해지는 환경과 마음을 지켜나가야 겠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