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가톨릭 교회
한스 큉 / 을유문화사 / 2003.4.15
– 가톨릭 신부 한스 큉의 천주교의 공로와 과오에 대한 예리한 진단과 확실한 처방
이 책을 ‘기독교 죄악사’식의 극단적인 가톨릭 비판서로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평생을 가톨릭 사제로 살아온 저자의 뿌리 깊은 신앙심이 깔려 있는 이 책의 배경은 ‘애정’이며, 관통하는 주제는 가톨릭 교회 역사에 대한 자기 반성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예리한 진단과 확실한 처방을 함께 내리고 있다는 점. 교회의 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2천년 역사 속 교회의 공로와 과오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제1장 <교회의 기원들>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교회의 성립 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유대인과 그리스도 교인과의 단절에 대해 말한다. 제2장 <초기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교회를 세우고 차츰 교회 내의 위계질서가 잡히기 시작하는 데 주목했다. 제3장 <제국적 가톨릭 교회>는 중세 국가 교회의 역사상을, 제4장 <교황의 교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교황 탄생과 잘못되 교황들의 오류를 비판하고 있다. 제5장 <교회의 분열>과 제6장 <개혁, 종교개혁, 반종교개혁?>은 내부에서 활발히 진행된 개혁의 움직임들에 대해 조망한다. 계속해서 산업혁명과 눈비신 과학적 발전이 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그리고 저자 자신이 겪은 가톨릭의 오류에 대한 비판과 앞으로 가톨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 목차
옮긴이의 말
서론 : 갈등 속의 가톨릭 교회
Chapter 1 : 교회의 기원들
예수가 설립한 교회?
‘교회’의 의미
예수는 가톨릭 신자였을까?
최초의 교회
베드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공동체
유대인과 기독교인과의 단절
Chapter 2 : 초기 가톨릭 교회
바울로
바울로가 세운 교회들
가톨릭 위계 질서의 탄생
박해받는 소수의 인내
Chapter 3 : 제국적 가톨릭 교회
통일제국을 위한 통일 종교
국가 교회
로마 감독의 지상권 주장
서구 신학의 아버지
삼위일체의 재해석
신이 나라
Chapter 4 : 교황의 교회
최초의 진정한 교황
잘못된 교황들, 교황의 위조 문서와 교황 재판들
독일계 부족들과 기독교
중세의 신앙심
이슬람
교황을 위한 국가
서방의 공식 : 기독교=가톨릭=로마
가톨릭의 도덕성
미래의 로마화를 위한 법적인 기초
Chapter 5 : 교회의 분열
위에서부터의 혁명
로마화된 가톨릭 교회
이단과 종교재판
위대한 신학적 종합
기독교인들의 계속되는 삶
Chapter 6 : 개혁, 종교개혁, 반종교 개혁?
교황 통치의 종말
좌절된 개혁
르네상스와 교회의 문제
종교 개혁
종교 개혁의 계획은 가톨릭적이었나?
교회 분열의 책임
로마 가톨릭 반종교 개혁
Chapter 7 : 가톨릭 교회와 근대
새로운 시대
과학과 철학의 혁명 : 이성
교회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문화와 신학의 혁명 : 진보
교회에 미친 계몽주의의 결과
정치적 혁명: 국가
교회와 혁명
테크놀로지와 산업 혁명 : 산업
근대에 대한 전면적 비난 : 반계몽주의 공의회
Chapter 8 : 가톨릭 교회 : 현재와 미래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침묵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황
개혁 대신에 복고
공의회에 대한 배신
일반 신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
요한네스 24세의 제3차 바티칸 공의회?
결론 : 어떤 교회가 미래가 있는가?
연표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한스 큉 (Hans Kung)
현존하는 종교계의 최고 지성이라 불리는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54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와 가톨릭 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957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59년까지 스위스 루체른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1960년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가톨릭 신학 교수가 되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79년 가톨릭교회의 전통 교리에 대한 비판이 파문을 일으켜 바티칸으로부터 신학 교수직을 박탈당했으며 이 일은 국제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튀빙겐 대학교는 그를 신학 교수직이 아닌 개인적인 교회일치 신학 교수직에 임명하였다. 세계종교인평화회의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1996년 대학에서 퇴임한 후 세계윤리재단 회장으로 선출되어 여전히 충실한 가톨릭 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의 저술과 강연은 가톨릭 신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 신학계 전반에 큰 도전이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저서로는 『그리스도교』 『왜 그리스도인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문학과 종교』 『중국 종교와 그리스도교』 『세속 안에서의 자유』 『세계 윤리 구상』 『믿나이다』 『한스 큉, 과학을 말하다』 『그리스도교 여성사』등이 있다.
– 역자 : 배국원
연세대 철학과와 미국 남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디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이며 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침례교 종교 철학자인 그가 가톨릭의 신학자인 한스 큉의 저서를 번역한 이번 작업은 얼핏 부자연스러운 듯 보이지만, 구교와 신교를 뛰어넘는 근원적 일체감이 돋보이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저서로는 <현대 종교철학의 이해>< Homo Fidei > 등과 <신의 역사><현대 종교학담론>(공역) 등의 역사가 있다.

○ 책 속으로
서 론 : 갈등 속의 가톨릭교회
이 책의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점은 그 동안 로마 가톨릭제도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내 자신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와 그 신앙공동체는 오늘날까지 나의 영적인 고향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이 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교회사에 관련되지 않은 종교학자 혹은 역사가들에 의한 ‘객관적’ 서술이 가능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해’를 추구하는 ‘해석학적’ 철학자나 신학자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용서한다는 관점의 서술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톨릭교회의 역사에 직접 관계된 사람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였다. 나 역시 지성의 탄압, 종교재판, 마녀사냥과 화형, 유대인 핍박, 여성차별과 같은 현상들을 그 역사적 문맥에서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런 일들에 대해 ‘용서’할 수는 없다. 나는 희생당한 자들의 입장 또는 그들 시대에 이미 비기독교적이라고 금지된 교회행습을 지지하는 태도에 서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보다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말해서 나는 스위스의 작은 가톨릭 마을인 수르세의 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가톨릭 도시인 루체른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후 로마에서 7년 동안 살면서 교황청 소속 엘리트 학교인 ‘콜레지움 게르마니쿰 훈가리쿰’에서 수학하였고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사제 서품을 받고 나서 첫 번째 성찬식을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집전했던 나는 교황청 근위대에게 처음 설교할 기회를 가졌다.
파리의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한 후 루체른에서 2년간 목회 활동을 했고 32살이 되던 해인 1960년 튀빙겐 대학의 가톨릭 신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교황 요한네스 (Johannes) 23세에 의해 임명된 전문가 자격으로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Second Vatican Council)에 참가했고, 튀빙겐 대학에서 20년간 가르쳤으며, ‘교회일치연구소 (Institute for Ecumenical Research)’를 설립하여 그곳의 소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나는 새로운 교황으로부터 종교재판을 경험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학을 가르칠 수 있는 면허가 교회에 의해 취소되었음에도 나는 교수직과 연구소를 유지하였고, 그 결과 연구소는 가톨릭 신학부에서 분리되었다. 그 후 20년 동안 비판적 충성심을 유지하면서 가톨릭교회에 확고하게 충실했고, 지금까지도 범교회 교수직 및, ‘정상적인’ 가톨릭 신부직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제도를 찬성하지만 동시에 복음의 기준에 합당하게 교황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할 것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역사와 가톨릭 배경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이 과연 가톨릭교회에 관한 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식으로 교회와 관계된 내부자에게 가톨릭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욱 흥미롭다고 판명될지도 모른다. 물론 종교적 문제에 관해서 정말 ‘중립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나 자신도 그처럼 객관적이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나라의 역사를 기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역사를 서술하는 문제에서도 개인적인 참여와 엄정한 객관성이 잘 소화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제 나는 간략한 교회사에 대해 교회 문제를 많이 경험하고 그에 따라 많은 훈련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제공하려고 한다. 물론 이 책이 내가 도움을 받았던 여러 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교회사 저작들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럴 의도도 전혀 없다 (A. Fliche와 V. Martin, H. Jedin, L. J. Rogier, R. Aubert와 M. D. Knowles, M. Mollart du Jourdin 등이 편찬한 교회사 저서들을 참조할 것). 그러나 내 평생 가톨릭 교회사를 연구해 왔으며 또 내 자신이 그 한 부분을 살았던 까닭에 나의 이 저서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이전에 출판했던 저서들에서 가톨릭 교회사를 다룬 적이 있다. 《공의회와 재결합 : The Council, Reform and Reunion》(1960, 영역 1961),《교회의 구조 : Structures of the Church》(1962, 영역 1965),《교회 : The Church》(1967, 영역 1961) 등의 초기 저서들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 on Being a Christian》(1974, 영역 1977), 《하느님은 존재하는가? 현대를 위한 답변 : Does God Exist? An Answer for Today》(1978, 영역 1980),《제3천년을 위한 신학 – 범교회적 견해 : Theology for the Third Millennium : An Ecumenical View》(1984, 영역 1988),《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 : Great Christian Thinkers》 (1993, 영역, 1988) 등의 후기 저서들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최근에 출판한 《기독교 – 그 본질과 역사 그리고 미래 : Christianity – Essence, History and Future》(1984, 영역 1995)에서 기독교 전체 역사에 대한 분석적 종합을 시도한 바 있다. 그 책에서 나는 다양한 시대를 형성했던 패러다임들, 가령 로마 가톨릭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초기의 유대-기독교적 패러다임, 헬라-비잔틴 슬라브 패러다임, 개신교 종교개혁 패러다임, 계몽주의와 근대의 패러다임 등을 설명했다. 그 책을 읽는 독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사에 관한 풍성한 참고문헌 목록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내가 지금 이 책에서 다시 새롭게 언급하고 있는 많은 관념과 전망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이 책에서 나는 아주 간단하게 중요 발전, 구조, 인물 등에 초점을 맞추고 각주, 참고문헌 등 학자적인 현학은 모두 생략하기로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톨릭교회와 그 역사에 관한 견해가 교회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예민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가톨릭교회야 말로 조경과 반잘 양극단의 반응을 일으킨 논란이 많은 교회일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성공의 역사이다. 즉 가톨릭교회는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교인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2천년 역사를 가진 교회의 역동성은 많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세계화’ 담론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세계적이었으며 동시에 지역적으로 효과적인 교회조직, 철저한 계급 조직과 교리적 유대감, 웅장하고 화려하며 전통을 자랑하는 예배, 서구사회를 건설하고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부인할 수 없는 문화적 업적들이 그것이다.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교회사가들과 신학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역사, 교리, 조직, 교회법, 전례, 신앙심을 보면서 일종의 유기적 발전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톨릭교회가 마치 오래된 큰 나무와 같아서 계속 썩은 열매와 죽은 가지를 배출하면서도 영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성장과 전개라는 유기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심지어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조차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 유기적 발전을 인정한다고 해도 가톨릭교회의 역사에는 교회의 공식적 대표자 자신들이 책임져야만 하는 비유기적, 비정상적, 완전히 비상식적인 잘못된 사건들도 있지 않았던가? 진보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끔찍한 실수 또한 많지 않았던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1962~1965)에 가톨릭교회는 전체적으로 높은 사회적 인지도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제3천년의 시대가 시작되는 지금 가톨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면에서 공격받고 있다. 최근에 로마 교황청이 과거에 저질렀던 흉악한 잘못과 잔인함에 대한 ‘용서’를 구했던 사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시각에 현 교회 행정부와 종교 재판소는 아직도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민주적인 대표 기관들 가운데 가톨릭교회만큼 자기 고위층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혹은 비판가들을 이처럼 한심한 방법으로 다루는 기관은 없을 것이다. 또 피임 금지, 성직자 결혼 금지, 여자 사제 서품 금지 등의 방법으로 여성을 이처럼 차별하는 기관도 없을 것이다. 유산, 동성애, 안락사의 문제에 대한 비타협적 입장, 마치 하느님 자신의 의지라도 되는 양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 무류성 (papal infallibility)의 후광으로 감싼 그와 같은 태도 때문에 이처럼 세계적으로 사회와 정치를 양극단으로 분열시키는 단체는 가톨릭교회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가톨릭교회 스스로가 교정하고 개혁할 능력이 없음을 감안한다면 50년 전에 교회에 보여주었던 일반인들의 우호적 무관심이 기독교 제3천년이 시작되는 지금 증오와 공개적인 적의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비우호적인 교회사가들과 비판가들은 가톨릭교회의 2천년 역사 속에서 그 어떤 성장을 향한 유기적 과정을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일종의 ‘범죄의 역사’를 발견할 따름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한 때 가톨릭 신자였던 카를하인츠 데쉬너 (K. Deschner)는 그러한 역사를 밝히기 위해 자기 일생을 헌신하여 이미 6권의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그는 교회 외교 정책, 무역과 재정 및 교육에 관한 정책, 무지와 미신의 조장, 성도덕과 결혼법, 사법 정의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등 가톨릭교회의 모든 가능한 ‘범죄성’을 수백 쪽에 걸쳐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가톨릭 신학자들은 승리주의의 기분에서 교회사를 쓰기 바쁜 반면 추문들을 밝히려는 반가톨릭 ‘범죄학자’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톨릭교회를 폄하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라도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잘못, 오류, 범죄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요약하고 수집한다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어느 나라에 관해서도 나름대로 ‘범죄적’ 역사를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여신, 국가, 민족, 정당 등의 구호 아래 근대 무신론자들이 저질렀던 흉악한 범죄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것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혹은 가톨릭교회 역사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데쉬너의《기독교 범죄사 : Criminal History of Christianity》같은 여러 저서들을 읽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맥 빠지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아마 나 혼자만은 아닌 듯싶다. 도로의 모든 웅덩이에 일부러 발을 담가보는 사람이라면 도로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큰 소리로 불평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다른 기관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의 역사도 파란만장하다. 가톨릭교회는 고도의 세속적인 수단을 통해 권력과 재정 기구를 운영하는 방대하고 효율적인 조직이다. 위압적인 통계와 미사의 엄숙한 예배의식 이면에는 본질이 결여된 피상적인 전통 기독교가 숨어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잘 조직된 가톨릭계급 사회에서 언제나 한 눈은 로마를 응시하면서 상급자에게 굽실거리고 하급자에게는 교만한 일군의 관료 성직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이 답답할 정도로 분명하다. 폐쇄적인 교리교육 체계는 뿌리 깊은 진부한 권위주의와 성서적이지 못한 딱딱한 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서구 문화에 미친 공헌은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세상사와 교회의 영적 임무의 일탈과 얽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범주와 개념만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가톨릭교회와 그 정신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 가톨릭교회는 영적인 세력으로, 즉 국가사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쩌뚱주의가 파괴할 수 없는 위대한 세력으로 전 세계에 존재한다.
나아가 그 거대한 조직과 별도로 이 세계의 모든 곳에서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양의 봉사를 행하고 있는 공동체, 병원, 학교, 사회 기관 등 가톨릭교회만의 광범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동료인 남녀 목회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며 수많은 남녀들이 젊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늙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과 헌신한 사람들의 세계적 공동체인 것이다. 우리가 교회 내의 애매한 역사와 애매한 현재 상황 속에서 악으로부터 선을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판단의 근본적 기준이 필요하다. 교회사 저서에서 아무리 학문적 가치 ‘중립성’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발전, 인물, 제도들은 계속해서 은연중에 평가에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 저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그 당시와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관점에서 어떤 신학이나 공의회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기독교 신학과 기독교 공의회라고 주장하는 한 궁극적으로 무엇이 기독교적인가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과연 기독교적이라는 기준은 -공의회와 교황들의 견해도 마찬가지인데- 초창기 기독교 메시지인 복음, 즉 기독교의 본래적 모습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 메시아가 되는 구체적이고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 곧 어떤 기독교 교회의 경우에라도 그 존재의 근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물론 이런 견해는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적어도 나의 이 책이 그런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책에서 펼칠 가톨릭역사의 특징은 잠정적으로,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노골적으로 타협이나 망설임 없이 기독교의 본래적 메시지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바로 대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어떤 기독교 교회라도 그 정체성이나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모든 가톨릭 제도, 교리, 법적 판결, 의식과 전례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들이 ‘기독교적’인지 아니면 적어도 ‘반기독교적’이 아닌지의 기준, 즉 그것들이 복음과 일치하는지의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가톨릭 신학자가 쓴 이 책이 동시에 복음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복음의 기준에 합당하기 원한다는 사실에서도 이 점이 분명해 진다. 따라서 이 책은 ‘가톨릭적’인 동시에 ‘복음적’이려고 노력하며 그 가장 깊은 의미에서 에큐메니컬 곧 범주교회적이 되기를 추구한다.
이 정보화 시대에 방송 매체는 기독교의 역사와 현대 기독교에 관해 계속 증가하는 정보의 홍수에 우리를 노출시키고 있으며, 인터넷은 줄기차게 유용한 정보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정보들도 우리에게 산더미처럼 토해내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구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각 있는 선택이 요구된다.
물론 이 짧은 가톨릭 교회사 저서도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려고 시도하지만, 이 책의 주안점은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면에서 기본 방향성을 제공하려는 데 있다.
첫째, 가톨릭교회의 엄청나게 극적이고 복잡한 역사 전개 과정에 대한 기본 정보의 제공이다. 즉 여러 시대와 영토에서 일어나 모든 사건들과 모든 중요 인물들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전개 과정, 주요 구조와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 관한 중요 골자를 말하고자 한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지난 20세기 역사에 대한 비판적, 역사적, 실적 평가이다. 물론 사소한 시비나 힐난을 일삼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대기적 서술에 있어 어떻게 그리고 왜 가톨릭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한 객관적 분석과 비판을 거듭 시도할 것이다.
셋째, 가톨릭교회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개혁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구체적 도전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섣부른 설정이나 예측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확신하기에 만약 교회가 복음과 현시대에 동시에 충실하면서 근본적으로 스스로를 갱신하기만 한다면 제3천년 기에도 희망찬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를 위한 희망을 제공하는 현실적 제안들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서론을 마치면서 역사에 대해 비교적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 특히 가톨릭 독자들에게 경고성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역사의 사실과 심각하게 대면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간혹 도처에서 사태의 진전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던가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교회의 많은 제도와 헌법들, 특히 로마 가톨릭의 중심적인 교황제도가 얼마나 인위적인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은 특히 교황제도를 포함한 여러 교회제도와 헌법들이 변화되고 개혁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시도하는 비판적 ‘해체’는 ‘건설’, 즉 개혁과 갱신을 위한 목적을 지니 것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제3천년 시대에도 생명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에 대한 나의 모든 급진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고무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미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드러났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믿음은 제도로써의 교회, 즉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는 교회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대신 이 믿음은 교회의 전통, 전례, 신학의 주된 동기로써 존속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인격과 사상에 대한 신앙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모든 부패와 방종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마치 교회사라는 직물 (tapestry) 속에 빛나는 ‘금실 (golden thread)’과도 같다. 비록 가끔 이 직물이 낡고 더러워질 때가 있을지라도 금실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만이 가톨릭교회, 또 기독교 전체에 새로운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우리가 기독교의 기원, 그 출발점을 되돌아보는 바로 그 순간 교회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이 등장하게 된다. 과연 나사렛 예수는 정말 교회를 창시했던 것일까?

결 론 : 어떤 교회가 미래가 있는가?
제3천년 기에 교회가 미래를 가지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교회는 과거로 등을 돌려 중세, 종교개혁, 혹은 계몽주의 시대와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고 그 대신 기독교 기원에 뿌리 내리고 현대의 임무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교회는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배타적인 남성적 언어, 남녀 역할에 관한 편견 등으로 고착된 가부장주의를 타파하고 교회 직책과 봉사 활동의 모든 면에서 여성을 받아들이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교회는 편협한 신앙고백에 빠져 배타적 신앙고백, 관료주의의 뻔뻔함, 성만찬의 거부 등에 굴복하지 말것이며, 내부적으로 교회일치 운동을 실천하고 모든 파문 조치의 폐지, 교파 간의 성만찬 교제, 다양한 목회 활동인정 등을 추구하는 법교회적으로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
- 교회는 더 이상 배타적 기독교 진리 주장을 내세우는 유럽 중심적 로마 제국주의 교회가 아니라 언제나 더 큰 진리에 존경을 나타내는 포용적이고 포괄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타종교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각 국가, 지역, 지방, 교회들에게 적절한 자율적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1989년 공산주의의 몰락은 세계가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진입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1918년과 1945년 이후에 이제 더욱 평화롭고 정의로운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한 제3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복지 국가와 반사회적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책임감 있는 새로운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또한 비도덕적인 현실정치론과 역시 비도덕적인 이상정치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책임정치론이 가능할 것인가?
여기서 교회와 종교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종교 간의 평화 없이 국가 간의 평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는 위대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조건을 긴급하게 만족시켜야만 된다는 사실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전적으로 교회만의 관심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더 광범위한 문제를 생각하는 일이다. 여기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세계 교회로부터 세계 윤리’로 나가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교회와 종교가 지지하고, 심지어 모든 불신자까지도 포함하는 인류를 위한 참된 공동윤리를 추구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후원해야 한다.
• 사회적 세계 질서: 인간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타인과 협동해 생활하며, 부자와 가난한 자와의 계속 벌어지는 간극을 중재하는 사회
• 다원적 세계 질서: 유럽의 다양한 문화, 전통, 인종들이 화해를 이루고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사상이 근절된 사회
• 협동적 세계 질서: 모든 단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책임을 감당하며 여성의 재능, 통찰력, 가치, 경험을 자유롭게 공헌할 수 있는 교회 및 사회 내의 갱신된 남녀 공동체로 구성된 사회
• 평화를 증진하는 세계 질서: 평화의 수림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후원하는 사회, 그리고 타인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협동하여 공헌하는 공동체 사회
• 자연 친화적 세계 질서: 모든 생명체의 권리와 정체성이 보존되며 인간과 친교를 이루는 사회
• 범교회적 세계 질서: 신앙고백의 일치와 종교 간의 평화를 통해 국가 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을 창출하는 공동체 사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새롭게 거듭난 이와 같은 가톨릭교회의 이상이 과연 언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예언할 수 없다. 그러나 신학자로서 나는 나의 삶 전체를 통하여 지치지 않고 이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과 과연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지에 관하여 저술해 왔다. 현재 교회일치에 대한 고나심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독교가 마침내 근대와 후기 근대 사이의 현재 위기 상황에서 교회일치 패러다임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신앙고백의 시대는 이제 과거가 되고 말았다. 물론 ‘신앙고백적 패러다임’의 잔재는 당분간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획일적인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파문이 페지된 후에 서로의 신앙고백들도 폐지되어야 마땅하고 새로운 의사전달, 정말로 범교회적 친교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범교회적 친교는 일차적으로 성만찬 친교를 의미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기독교인들의 친교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일치적 패러다임은 더 이상 정교회, 가톨릭, 복음주의라는 세 가지 호전적 신앙 고백으로 푸현되지 않고 대신 세 가지 질문을 던지도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과연 누가 정교회 신자 (orthodox)인가? ‘올바른 가르침’에 관련된 이가 곧 정통이며 정교회 신자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것이 하느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신자, 주교, 교회 등 개인들에게 함부로 전할 수 없고, 대신 언제나 창조적으로 새로운 세대에게 전승해야 하며, 전 교회의 충성스러운 전통으로 실천해야 하는 진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곧 정교회 신자이다. 만약 이것이 결정적으로 ‘정교회 신자’의 기준이라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거나 가톨릭 기독교인도 모두 이와 같은 ‘올바른 가르침’의 의미에서 정교회 신자일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 과연 누가 가톨릭 신자 (catholic)인가? 특별히 전체적, 보편적, 포괄적 교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곧 가톨릭 신자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모든 단절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지속성과 보편성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가톨릭 신자인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결정적 단서라면 정교회 신자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도 모두 이같이 넓은 의미에서 가톨릭 신자라고 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과연 누가 복음주의 개신교 (evangelical) 신자인가? 특별히 모든 교회 전통, 가르침, 실천에서 끊임없이 복음에 의지하려는 관심을 가진 사람이 곧 복음주의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성경에 맞추어 반성하며 복음의 기준에 맞추어 줄기차게 실행을 개선하는 사람이다. 만약 이것이 ‘복음주의 신자’가 되는 결정적 단서라면 마침내 정교회 교왼이나 가톨릭 교인도 복음에 감동된 복음주의 신자일 것이다.

○ 언론소개
한스 큉 ‘가톨릭 교회’
3천년대에 교회의 미래는 있는가? _ 정병진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전체와 연관된’ 혹은 ‘보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ikos)에서 유래한다. 이 용어는 보통 오늘날 천주교회를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는 말 그대로 전체적, 보편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생존해 있는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인 <가톨릭 교회>의 저자 한스 큉은 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조차 자신들의 교회를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른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하는 ‘로마’라는 수식어가 가톨릭(보편적)이라는 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모순어법에 지나지 않음을 꼬집는다.
저자가 보기에 지금의 가톨릭 교회는 피임 금지, 성직자 결혼 금지, 여자 사제 서품 금지 등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유산, 동성애, 안락사의 문제에 대한 비타협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은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 무류성의 태도로 인해 보편과 포괄은커녕 세계적으로 사회 정치적 분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태도는 과거에 저지른 지성의 탄압, 종교 재판, 마녀 사냥과 화형, 유대인 핍박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지난날 범죄들에 대해 큉은 이 책의 서문에서 역사적 문맥에서 이해할 수는 있으나 용서할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는 가톨릭 신학자이면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 대해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던 탓에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79년 가톨릭 교수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러한 바티칸의 감시와 탄압이 끊이지 않았지만, 큉은 자신을 키운 교회를 떠나지 않고 가톨릭 신부직을 유지하면서 칠십 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누구보다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교회 비판은 교회의 잘못만을 들추어 무분별하게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고언 (苦言)이다. 진정으로 보편적인 교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성서의 복음 정신에 충실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무려 1070쪽(국판)에 달하는 그의 방대한 저서 <그리스도교-본질과 역사>를 보다 대중적으로 간명하게 요약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가톨릭 교회의 복잡다단하고 기나긴 역사 전개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지난 20세기 역사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비판, 그리고 가톨릭 교회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네 가지 개혁의 큰 틀을 제시한다. 비록 교회사가는 아니지만, 오랜 신학 연구를 통해 얻은 해박한 신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대가다운 자신의 독특한 통찰력으로 교회의 과거를 속도감 있게 정리하고 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교회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꼬였는지,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와 노력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비록 이 책이 가톨릭 교회를 말하고 있지만 유대교, 정교회, 개신교까지 분열의 역사를 극복하고 하나될 수 있는 방향을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기독교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있는 교양서로 추천할 만하다.
결말에 이르러 큉은 3천 년대에 교회에 미래가 있으려면 다음의 네 가지를 충족해야한다고 말한다.
- 기독교의 기원에 뿌리를 내리고 현대의 임무에 집중하는 교회
- 고착된 가부장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면에서 여성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교회
- 배타적 신앙 고백,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교회일치운동 실천
- 유럽 중심적 로마 제국주의 교회가 아니라 언제나 더 큰 진리에 존경을 나타내는 포용적이고 포괄적인 교회
○ 독자의 평 1
20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교황사 = 가톨릭사 = 교회 분열의 역사>를 자세히, 그리고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이다. 그런데, 알기 쉽게 서술했다는 것은 물론 유럽적인 소양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서양인들에게나 해당될 이야기이고, 필자에게는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짧은 분량에, 웬만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설명없이 술술 넘어가니, 서양사를 전공하는 필자로서도 “이게 뭐여-_-“하게 되는 대목이 몇군데 있었다. 대체적으로 무리는 없었지만, 서양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 “교황 – 도시에서 세계로” 정도의 책을 참고한다면 더욱 쉽게 읽힐 것이다.(필자는 마침 친구에게 빌려준 터라 이 책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읽어놨기에 망정이지–;) 아무튼. 바티칸으로부터 문제아 취급받고 있는, 그러나 신실한 가톨릭교도임에 틀림없는 한스 큉의 이 저작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가톨릭의 민감한 부분인 “교황무오설”교리라던가, “성모 무염시태론” 등에 대해 논리적이고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그것도 착실한 신앙과 복음의 굴레 안에서) 모습은 개신교도인 필자에게도 놀라울 정도였으니… (교황청이 그를 눈엣가시로 보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러나 저자는 가톨릭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편 교회”로서, 프로테스탄트, 정교회 등과 함께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의 “가톨릭”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깊은 신앙심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가톨릭과 바티칸, 교황들의 수많은 잘못과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결코 비관론에 빠지지 않고 보편 교회로서의 가톨릭이 어떻게 신교, 정교와 손을 잡고 화해하며 “한 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을지에 대해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외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치열한 자기반성과 자신의 믿음에 대한 철저한 사유,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지닌 진짜 성직자가 어떤 것인지… 신자들을 이끈는 사목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주제와는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그만큼 저자의 신념에 감명받았다고 할까.) 참으로 의미있는 독서였다. 가톨릭 교회, 교회사를 보는데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을 뿐 아니라, 개신교도로서 나의 종교인 “개신교”에 대해서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톨릭은 이렇게 성직자, 평신도, 신학자들에게서 끊임없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교단의 분열이라던가, 통일된 조직의 결여 등의 문제인지 이합집산이 잦고, 특히나 근본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멍청하게도 “그것이 신의 뜻인양”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참 씁쓸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어쨌든, 가톨릭교도, 개신교도, 정교회교도, 그 이외의 다른 종교인이라도- 모든 독자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종교”에 대해 배우는 것은 “삶”에 대해 배우는 것이며, “타인에 대한 관용”과 “신에 대한 사랑”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고.
○ 독자의 평 2
한스 큉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장 구입했다. 겉으로 보면 ‘카톨릭교회 비판’서라고 파악되는데… 막상 읽어보면 카톨릭교회에서 파문당한 신부의 카톨릭교회에 대한 구구절절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엉뚱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버린 카톨릭교회사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외롭게 투쟁하는 한스 큉의 마음이 드러난다. 카톨릭교회는 그를 버렸지만, 그는 카톨릭교회를 버리지 않았다. 이 책은 이미 분도에서 출간된 ‘기독교 : 그 본질과 역사 그리고 미래’라는 책의 요약판이다. 분도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심도 깊은 분석이 꼼꼼하게 실려있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한스 큉은 이 딜레마를 ‘카톨릭교회’라는 200페이지 짜라 도서로 현학적은 부분은 걷어내고, 교회사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만을 갖추려서 핵심만 설명하고 있다. 책 제목만 보고 카톨릭교회에 대한 설명서라고 예단하지 말라. 개신교와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를 아우르는 2000년 교회사를 꿰뚫는 놀라운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