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개성의 탄생 :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한 나인가
주디스 리치 해리스 / 동녘사이언스 / 2007.6.15
성격 이론이나 성격발달 이론은 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는가, 혹은 왜 그렇게 특정한 방식으로 다른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한집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마저 성격과 행동이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동일하므로, 그들의 이러한 차이는 유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많은 논쟁을 일으킨 책 <양육 가설>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이 책에서 심리학의 핵심 질문에 도전한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개성과 행동이 다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본성이냐, 양육이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즉,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같은 부모에게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심리학자들이 일란성 쌍둥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왜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모든 인간이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탐정이 된 저자는 과학의 샛길을 다니면서 단서를 찾는다. 사회심리학의 고전적 실험에서부터 최근의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쌍둥이와 자폐아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침팬지와 새와 개미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전 방향에서 접근한다. 저자가 찾은 해답은 프로이트 이후 개성에 대한 가장 독창적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기반하여 저자는 한편으로 우리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차이의 인식
2장. 그 빌어먹을 직사각형
3장. 원숭이 소동
4장. 출생 순서와 가족 내 환경의 차이
5장. 사람인가, 환경인가
6장. 모듈 형태의 마음
7장. 관계 체계
8장. 사회화 체계
9장. 지위 체계
10장. 대단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한/영 인명 대조표
○ 저자소개 : 주디스 리치 해리스 (Judith Rich Harris)
주디 해리스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면서 발전해온 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녀의 첫번째 시련은 하버드 박사과정의 입학거부였다. 그녀는 그녀의 연구가 하버드 기준에 미달되었다는 이유로 박사과정에 입학하지 못했으나 그 후에도 그녀의 연구는 계속되었고 많은 논문들이 심리학 관련 학술지들에 오른 끝에 자신을 거부했던 하버드대 심리학과장 조지 A. 밀러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면서 그녀의 능력을 증명해보였다. 두번째 역경은 그녀의 신체였다. 저자는 20대 초부터 전신성 경화증을 앓았는데 이로 인해 연구는 집안에서만 가능했다. 남편의 도움없이는 멀리 이동할 수 도 없었기에 인터넷, 이메일, 책과 학술지등을 자신의 연구 재료로 『개성의 탄생』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양육 가설 The Nurture Assumption』을 탄생키셨다.
1998년 출판된,『양육 가설』은 퓰리처상 논픽션 부분 최종후보에 오를 만큼 센세이셔널했다. 양육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던 기존의 견해를 반박하며 오히려 또래집단과 유전이 아이의 성격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2006년 출판된,『개성의 탄생』은 인간의 독립성과 개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녀는 개성이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관계, 사회화, 지위라는 3가지 체계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해리스의 특징은 기존 심리학의 반박이나 새로운 주장을 전개함에 있어 다양하고 깊이 있는 학문의 스펙트럼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인지과학, 역사학, 범죄학은 물론 곤충학까지 넘나드는 그녀의 연구는 그녀가 출판했던 2가지 책 모두에서 그녀의 주장을 견고히 만들어주고 있다.
– 역자 : 곽미경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미 국가안보국 NSA》(공역) 《바디블루스》 《데카르트의 아기》 《개성의 탄생》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가? 유전자가 달라서? 그렇다면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논쟁을 일으킨 책 《양육 가설 The Nurture Assumption》의 저자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개성의 탄생》에서 심리학의 핵심 질문에 도전한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개성과 행동이 다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본성이냐, 양육이냐에 관한 것이 아니다. 결국 심리학자들이 일란성 쌍둥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왜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모든 인간이 다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탐정이 된 저자는 다섯 개의 이론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검토한다. 이 용의자들은 환경의 차이, 본성과 양육의 결합,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 가족 내에서의 환경 차이, 유전자-환경의 상관관계다. 이 이론들은 정통 심리학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저자가 보기에는 그 어느 것도 개성의 차이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저자는 학계가 놓치고 있던 범인을 잡기 위해 과학의 샛길을 다니면서 단서를 찾는다. 사회심리학의 고전적 실험에서부터 최근의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쌍둥이와 자폐아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침팬지와 새와 개미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전 방향에서 접근한다.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최근 연구 성과를 기초로 삼아 저자는 모듈 형태의 마음 이론을 전제로 삼는다. 모듈 형태의 마음 이론이란 스티븐 핑커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밝혔듯이, “마음은 단일한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으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로, 각 기관은 심리적 기능 또는 마음 모듈”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이론을 발판 삼아 저자가 찾은 범인은 셋이다.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즉,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관계 체계, 집단의 성원이 되려고 하는 사회화 체계, 경쟁자를 앞지르려고 하는 지위 체계가 우리들을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
진화는 인간에게 사회에 적합한 성향을 부여했다. 이러한 성향 덕분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사회적 파트너에게 적합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장기적인 행동 수정을 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더욱 비슷해진다. 반면 사람들은 경쟁자들과 경쟁하는 갖가지 방법을 강구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사람들은 서로 달라진다. 그 결과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똑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 우리는 150명으로 구성된 마을에 산다
몇 년 전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우리는 60억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는 ‘나’라는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지만, 100명 속에서는 분명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60억을 100으로 줄인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뇌 크기를 기준으로 집단의 적절한 크기를 조사한 결과, 150명으로 구성된 집단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지내며, 각 개인의 성격과 인생 역정을 알고 있다고 한다. 한 인류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어느 에스키모 부족민은 구제 불능의 사고뭉치들을 얼음 밑으로 조용히 밀쳐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구제 불능의 사고뭉치라는 견해는 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를 제지하지 않으면 계속 사고를 칠거라고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60억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 누가 사고뭉치인지를 알긴 어렵지만, 150명 중에서는 고를 수 있다. 우리는 150명이 사는 마을에 살고 있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원시 인류의 진화에서 사회적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려는 필요 때문에 뇌가 점점 커졌다고 믿고 있다. 대부분의 원숭이와 유인원 종은 사회성이 높은 동물로서 무리지어 생활한다. 영장류의 동물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완력이라는 면에서 애처로울 정도이지만, 무리 생활을 한 덕분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서로 떨어지는 법이 절대 없었다. 무리 생활에 능하지 못한 종은 인간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무리가 클수록 살펴야 할 개인과 인간관계도 많아진다. 던바는 영장류의 무리의 크기, 다시 말해 특정한 종의 전형적인 무리의 규모와 그 종의 신피질의 크기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개골 바로 아래의 뇌세포 층을 일컫는 신피질은 던바의 말을 빌리면, “뇌에서 ‘사고’에 관여하는 부분”이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신피질이 큰 영장류가 큰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던바는 인간의 신피질의 평균적인 크기에 근거하여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무리의 크기를 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얻은 답은 150명이었다.
수렵채집인과 부족사회는 층층으로 조직되어 있다. 하층부에는 일시적으로 함께 이동하는 30~35명의 ‘일회성’ 무리가 있고, 같은 언어나 방언을 쓰는 언어 집단 부족이 상층부를 차지하는데 그 수는 보통 1500~2000명에 이른다. 그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씨족으로, 평균 150명 정도의 규모다. 던바는 이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런 무리의 규모라고 믿고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예시들을 발견했다. 초창기의 농촌 마을이 이렇고, 기업 조직이나 교회 집회 혹은 군대의 전투부대의 최적의 규모가 이렇고, 후터파 공동체의 최대 규모가 이러하다. 집단농장을 꾸리는 종교 분파인 후터파는 규모가 150명을 초과하면 공동체를 둘로 나눈다. 던바에 따르면, 그들은 공동체의 정원이 이 수를 초과하면 종파의 계율을 따르게 만들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본문 30~32쪽)
- 개성의 차이를 만드는 다섯 명의 용의자
기존의 심리학계에서는 사람들의 개성을 모두 제각각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중 하나를 들었다. ① 환경의 차이, ② 유전자와 가정환경의 복합적인 원인, 즉 본성과 양육의 문제, ③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 ④ 출생 순서와 가족 내 환경의 차이, ⑤ 유전자-환경의 상관관계 (이것은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이 아니다). 물론 저자는 이 다섯 용의자들을 하나씩 검토해 가면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시켜 나간다. 용의 선상에서 제외시켜 나가는 가장 명확한 예는 일란성 쌍둥이다. 저자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두 사람이 유전자도 똑같고 똑같이 길러졌는데, 어째서 개성이 다른가를 질문하면서, 이 다섯 용의자들이 모두 범인이 될 수 없음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몸이 붙어서 살아야 했던 접착쌍생아조차도 개성이 달랐다.
“이란의 랄레흐 비자니와 라단 비자니 자매는 스물아홉의 일란성 접착쌍생아였는데, 2003년 두 사람은 분리 수술 도중 사망했다. 그들은 따로따로 땅에 묻혔는데, 살아생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이 죽어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했던 스물아홉 해 동안 랄레흐와 라단은 같은 세대의 이란 여성들에 비해 많은 것을 이뤄냈다. 두 사람 모두 법대를 졸업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어서 앉거나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은 거울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랄레흐와 라단이 수술의 위험을 모른 것은 아니었다. 수술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이미 의사가 알려 주었다.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 살기 위해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 “우리는 붙어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라단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세계관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고, 여러 가지 사안을 생각하는 방식도 판이합니다.” 랄레흐는 테헤란으로 건너가 기자가 되고 싶어했지만, 라단은 고향인 시라즈에 남아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다. 두 사람 중 라단이 더 조잘대기 좋아하는 편으로, 가까운 어느 지인은 “그녀는 아주 사근사근하고 언제나 농담을 즐겼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원하는 직업을 둘러싼 갈등이 수술을 택한 이유가 되기는 했지만, 거울 없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픈 바람도 있었다. 기자들에게는 밝히지 않은 다른 속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결혼도 하고 싶고 어쩌면 아이를 갖고픈 욕망도 있었을 법하다. 자매가 어디든 따라붙는다는 사실은 가끔은 곤란할 때가 있다. 과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나머지 쌍둥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자연의 자기복제 기술이지만, 그들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쌍둥이는 각각 유일무이한 존재다. 랄레흐와 라단은 동일한 유전자와 동일한 성장 환경을 지녔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늘 함께했고,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둘은 성격과 선택, 그리고 인생의 목표가 서로 달랐다. 그들이 죽은 것도 바로 이런 개성을 위해서였다. 물론 일란성 쌍둥이의 대부분은 몸이 붙어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접착쌍생아의 대부분이 성인이 되어 분리수술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언제나 성격이 딴판이다. 그 이유는 여태껏 과학도 풀지 못했으며, 쌍둥이 본인들도 당혹스러워하는 미스터리다.“ (본문 11~12쪽)
- 개성의 차이를 만드는 세 가지 메커니즘 :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
.관계 체계 – ‘나’와 ‘너‘가 만나는 마음
저자가 찾은 세 범인은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다. 먼저 관계 체계는 일반화를 목적으로 하는 장치가 아니라, 차별화를 목적으로 하는 장치다. 즉, 개인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서 각자에게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한 장치다. 신세는 갚아야 하고, 표리부동은 기억해야 하고, 뜻이 맞는 친구는 찾되 미운 사람은 피해야 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개인에 대해 수집한 정보는 그들을 다루는 데 사용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집단이 손위 형제에게 다르고 손아래 형제에게 다르다. 그 때문에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아버지와의 관계와 다르다. 그 때문에 여자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도 그의 일란성 쌍둥이에게는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
“스티븐 핑커는 단어를 “화자와 청자가 마음의 사전에서 동일한 표제어를 불러낼 수 있기에 작용하는” 자의적인 기호라고 말했다. 즉, 단어가 지닌 덕목은 어떤 단어를 말하면 의미가 제멋대로 연상되면서 대화 상대자들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름의 덕목은 어떤 이름을 대면 인물이 제멋대로 연상되어 그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 전달이 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일단 이렇게 되면 남의 뒷말은 일용품, 즉 교환의 매체가 된다. 우리는 B와 C가 무엇을 하는지 A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 D를 조심해. 보기보다 센 놈이야. E를 믿지 마. 거짓말쟁이야. F는 G를 경계하는 눈치야. J의 심기를 건드리면 K하고도 껄끄러워질 거야. 이런 가십이 경멸적인 용어가 된 이유는 이런 경로로 전파되는 정보의 상당수가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할 때마다 뭔가 께름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물사전의 진화 목적은 일대일 유대의 진화 목적만큼이나 분명하다.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 각자에게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맺고 있는 각 관계의 본질에 맞게 행동을 재단할 수 있다. 아기는 엄마한테 양팔을 들어 올려 안기려고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설사, 엄마와 같은 성별에 같은 나이의 여자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아이는 괴롭히는 사람을 피하는 법을 배우지만, 동네의 다른 아이들을 찾아내는 법도 배운다. 사람들은 가까운 친척이라면 또 모를까, 은혜를 갚지 않는 사람한테는 더 이상 애쓰지 않는다.
이렇듯 관계 체계는 복잡하게 얽힌 숱한 분야를 담고 있다. 인물사전을 만들고 저장하고 정보 수집의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 정보 습득 장치가 있고, 각기 다른 사회생활 영역에서 사전에 저장된 정보를 이용하여 행동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자체의 동기를 부여하는 규제 메커니즘도 있다. 상대를 도와주든, 짝을 짓든, 교역을 하든, 싸움을 하든, 상대방과 무엇을 하려는 심산이건 간에,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의중을 파악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얻은 정보는 특정인 특유의 것이며 인물사전의 해당 페이지에 저장된다. 결국 관계 체계는 특정한 개인을 향한 우리 행동의 길잡이가 목적이다.“ (본문 261~263쪽)
.사회화 체계 –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마음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 대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부분 애국자가 된다. 평소에는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그 날 만큼은 ‘대~한민국’을 외친다. 결국 이러한 집단소속감과 자기사회화에 따라 우리의 개성이 결정된다. 사회화 체계를 잘 대변해 주는 예가 바로 언어다. 현지의 언어와 억양을 습득하는 것은 사회화의 일환이며, 일단 습득되고 나면 그것들은 맥락에 민감한 사회활동이 된다. 또한 어떤 언어와 억양을 사용하는가는 전적으로 환경의 결과이며, 유전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간 가족을 살펴보면, 부모들은 모국어의 영향이 남아있는 현지어를 구사하는 반면, 아이들은 금방 현지의 억양과 표현을 습득한다.
“사회화 체계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그러면서 가장 추잡한 감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미의 전쟁이나 침팬지의 전쟁에서처럼, 인간의 전쟁에서도 승자가 패자에게 어떠한 자비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기본 관행이다. 패자는 철저하게 ‘그들’이며 그에 따라 대접을 받는다. 단지 자신이 과대평가자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다른 과대평가자들을 우호적으로 느끼고, 과소평가자들은 다소 적대적으로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졌지만, 이후 다시는 되풀이된 적이 없는 두 차례의 사회심리학 실험은 사회 범주화가 얼마나 손쉽게 적대감으로, 그리고 뒤이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시사해 준다. 로버스 동굴 여름 캠프에 참가한 열한 살배기 소년으로 구성된 두 집단 간에 싸움이 번졌다. 아이들은 주먹다짐을 하고 서로의 오두막을 습격하여 상대방의 소지품을 훔치거나 파손하고, 양말에 돌을 넣어 보복전을 꾀하기도 했다. 두 번째 연구에 참가한 피험자들은 사전 검사를 통해 선별한, 정신 상태가 양호한 남자 대학생들로 ‘죄수’와 ‘교도관’의 두 집단으로 무작위로 나뉘어졌다. 며칠이 지나자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혐오스런 방식으로 모욕하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예정된 종료일 이전에 서둘러 중단되었다.
진화의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든 성원들이 서로를 알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혈연지간으로 연결된 실질적인 조직이었다. 집단소속감과 관련된 강렬한 감정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런 감정은 벌이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벌집을 지키게 만든 본능과 동일한 목적을 갖고, 동일한 방식으로 대물림되어 왔다.“ (본문 309~310쪽)
.지위 체계 – ‘내’가 ‘너’를 이기려는 마음
인간은 어느 상황에서나 지위를 추구한다. 지위가 높을수록 세상의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위 다툼은 복잡한 문제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일관된 기법도 없고, 단일한 전략도 없다. 지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덩치가 큰가, 작은가? 힘이 센가, 약한가? 똑똑한가, 멍청한가? 예쁜가, 평범한가?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타인을 지배할지 그냥 싸우지 않고 굴복할지, 제안을 할지 아니면 타인의 제안을 따를지,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리며 다가온 배우자감을 거절할지 아니면 오는 대로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어디에서 얻을까? 한 예로 사람들에게서 받는 시선의 정도를 판단 기준으로 할 수 있다. 시선을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높은 지위에 있으며, 더 자신감이 넘치며, 결정권을 지닌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유아기, 유년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나은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부모, 교사, 또래, 고용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즉, 어떻게 생겨야 잘생기고 어떻게 생겨야 못생긴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도출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책의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경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공평하진 않지만, 진화는 공평함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잘생긴 사람들은 자기주장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한 편이다. 어느 실험에서는 참가한 여성 피험자들에게 무례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이고, 가짜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연구원이 방을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매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다가 평균 9분이 지나서야 불만을 제기했다. 반면 매력적인 여성들은 3분 20초 만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강한 자기주장을 초래한 것은 잘생긴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가 갖는 사회적 영향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예쁜 여자아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사실, 여자아이가 예쁘다는 것은 남자아이가 키가 크고 힘이 세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위가 단순히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알까? 어린이든 어른이든, 인간이든 유인원이든,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성원들은 지위가 낮은 성원보다 자주 시선을 받는다. 남의 시선을 많이 받는 사람은 더욱 자신만만해지고 집단 내에서 큰 목소리를 낼 공산이 크다. 캐나다의 어느 미디어연구소 과학자들은 집단토론에 참여한 각 참가자들에게 다른 참가자들의 영상을 보여 주는 화상회의 장비를 테스트했다. 과학자들은 영상을 조작해 간혹 특정한 참가자, 즉 실험의 피험자를 정면으로 화면에 잡았다. 화면에 더 많이 잡히는 피험자일수록 토론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응시의 타이밍도 문제가 아니었고, 어떤 매체를 이용하느냐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피험자가 받는 응시의 횟수였다. 의식의 밑바닥에서 작용하는 단순 셈 장치가 회의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을지,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를 말이라도 무심코 내뱉고 말지를 결정한다.
셈 장치는 지위 체계에 속하는 요소다. 투표 기계가 득표수를 계산하듯 응시 횟수를 센다. 그리고 이유 또한 상당 부분 동일하다. 이 장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평균 계산처럼 득표수 계산은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도 관찰되어 왔다. 두 명의 영국 생물학자가 최근 ‘동물의 집단 의사 결정’이라고 이름 붙인 행위의 증거를 제시했다. 두 사람은 동물 집단은 대개 우두머리를 따르기보다 민주적인 기반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추론했다. 집단 전체는 그에 속한 하나의 개체보다 많고 나은 정보를 지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움직이고 어느 길로 갈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득표수를 계산하여 결정되기도 한다. 일례로 아프리카물소는 시선이 향하는 곳을 집계한다. 물소 떼는 대다수의 어른 물소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본문 335~336쪽)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