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격몽요결 : 율곡친필
율곡 이이 / 학자원 / 2021.2.20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은 율곡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에 관직을 떠나 황해도 해주 석담에 있으면서,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입문서로 사용하기 위해 저술하였다.
본 자료는 율곡의 친필을 바탕으로, 시중에 나 와 있는 수많은 번역서에 잘못 실린 다수의 문장과 글자들을 바로 잡았다.
원본은 강릉시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으며, 1976년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다.
○ 목차
《격몽요결》을 내면서 5
제율곡수초격몽요결(題栗谷手草擊蒙要訣) 15
격몽요결서(擊蒙要訣序) 21
입지장(立志章) 제1(第一) 25
혁구습장(革舊習章) 제2(第二) 31
지신장(持身章) 제3(第三) 37
독서장(讀書章) 제4(第四) 53
사친장(事親章) 제5(第五) 61
상제장(喪制章) 제6(第六) 69
제례장(祭禮章) 제7(第七) 85
거가장(居家章) 제8(第八) 93
접인장(接人章) 제9(第九) 107
처세장(處世章) 제10(第十) 117
부록_율곡연보(栗谷年譜) 125
영인본
○ 저자소개 : 율곡 이이 (珥, 석담, 숙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 (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 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 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 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 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 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 (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 역자 : 박상수
박상수 (朴相水)는 민족문화추진회 (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사편찬위원회, 온지서당, 중국 어언문화대학교 등에서 한문과 고문서, 초서와 중국어를 공부했고, 단국대학교 한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단국대학교 강사, 한국한문학회 출판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전통문화연구회, 고전번역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문 번역과 탈초·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서와 탈초 자료로, ≪고시문집 (古詩文集)≫, ≪다천유고 (茶泉遺稿)≫, ≪붓 끝에 담긴 향기 (香氣)≫, ≪동작금석문집 (銅雀金石文集)≫, ≪사상세고 (沙上世稿)≫, ≪미국 와이즈만 미술관 한국 문화재 도록≫, ≪초간독 (草簡牘)≫, ≪간찰 (簡札), 선비의 일상≫, ≪동국명현유묵 (東國名賢遺墨)≫, ≪사문수간 (師門手簡)≫, ≪항전척독 (杭傳尺牘)≫, ≪습재집 (習齋集)≫, ≪주자, 스승 이통과 학문을 논하다≫, ≪서포일기 (西浦日記)≫, ≪오가보첩 (吾家寶帖)≫, ≪퇴계 편지 백 편≫, ≪율곡 친필 격몽요결 (擊蒙要訣)≫, ≪구소수간 (歐蘇手簡)≫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율곡이 42세 때인 선조 10년 (1577)에 관직을 떠나 황해도 해주 (海州) 석담 (石潭)에 있으면서,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입문서로 사용하기 위해 저술하였다.
본 자료는 율곡의 친필을 바탕으로, 시중에 나 와 있는 수많은 번역서에 잘못 실린 다수의 문장과 글자들을 바로 잡았다.
원본은 강릉시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으며, 1976년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다.
正 뜻 세우기, 옛 버릇 고치기, 몸가짐, 책읽기, 부모 섬기기, 상례, 제사, 집안에서의 생활, 대인관계, 세상살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 참 교육론의 집대성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독 인성 교과서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