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경계선 위에서 : 폴 틸리히 자전적 사상 탐구
폴 틸리히 / 동연출판사 / 2018.3.9
- 폴 틸리히의 자전적 사상서를 내면서
20세기 3대 조직신학자의 한 명으로 꼽히는 폴 틸리히. 그는 혼란과 방황 한가운데 숱한 시련을 당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은 휴머니스트로서, 행동하는 지식인, 독창적 사상가로서 그의 삶을 통해 신학의 발전에 족적을 남겼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틸리히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나 존 스미스가 말한 대로 “당신은 틸리히를 찬성하면서 사유할 수도 있고, 반대하면서 사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틸리히 없이는 사
유할 수 없다” (You can think with him or against him, but not without him)라는 것을 그의 저서를 한번이라도 접한 사람이면 이해하게 된다. 틸리히는 그의 삶에서 어떤 사상이 우러나와 발전해왔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경계선 개념이 그의 지성 발전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사유의 근간이 되어 온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살펴봄으로써 틸리히의 사유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보자.
- 경계선 신학자 폴 틸리히
틸리히의 사유와 삶은 그가 즐겨 쓴 상징 개념 ‘경계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양극단 어느 한쪽으로 빠져들지 않고 양쪽의 긴장을 다 살리며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는 쉽지 않은 노력을 그는 일생 동안 중단하지 않았다. 이것과 저것, 신학교와 교회, 머리와 가슴, 이성과 계시, 철학과 신학, 관념주의와 현실주의, 아테네와 예루살렘, 존재와 비존재, 무한자와 유한자, 본질과 실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삶과 죽음, 가톨릭 (보편성) 실체와 개신교 원리, 신앙과 의심, 유럽과 미국, 틸리히는 이 양쪽을 다 붙들려고 했다. 양극단의 긴장을 변증법적으로 넘어서 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틸리히가 채택한 상관방법론 (method of correlation)으로 나타났다.
○ 목차
폴 틸리히 연보(年譜)
옮긴이 해제 _ 틸리히, 그는 누구인가?
머리글
두 기질 사이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사회 계층 사이에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루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본국과 타국 사이에서
회고: 경계와 한계
미주
[붙임 글]
경계선 신학자 폴 틸리히 – 임성모
○ 저자소개 :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1886 ~ 1965)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1886년 8월 20일 ~ 1965년 10월 22일)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에서 출생해 베를린, 할레, 브레슬라우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11년에 신학전문직학위를 취득해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4년간 군목으로 참전하면서 ‘터전의 흔들림’으로 표현될 만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 1924년에 필립대학의 부교수, 1929년에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정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독일에서 학자로서의 그의 삶은 나치의 등장으로 인해 끝났다. 나치는 그가 유대인 학생들을 도운 것을 문제 삼아 그의 교수직을 박탈했다. 위기에 처한 틸리히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것은 미국의 유니온신학교였다.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틸리히는 낯선 땅에서 영어를 익히면서 강의를 했다. 어설픈 영어와 독일식의 딱딱한 악센트 때문에 듣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강의에는 그에게 주어진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라는 칭호에 걸맞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유니온신학교에서 퇴임한 후 그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하버드대학의 특별교수로 초빙되어 신학부 박사과정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하버드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다시 시카고대학으로 초빙되어 강의를 했다. 틸리히는 1965년 10월 11일 시카고 대학 신학부가 주관한 강연회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친 후 심장에 고통을 느껴 입원했고, 10월 22일 아내와 함께 짧은 독일어 시를 낭송한 후 자리에 누워 숨을 거뒀다. 신학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과 역사에 정통했던 그가 남긴 저서로는 ‘조직신학 1, 2, 3권’ (Systematic Theology), ‘그리스도교 사상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존재의 용기’ (The Courage to Be), ‘믿음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 등 다수가 있다.
.폴 요하네스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
.출생: 1886년 8월 20일, Province of Brandenburg
.사망: 1965년 10월 22일,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영향을 준 인물: 쇠렌 키르케고르, 마르틴 하이데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마르틴 부버 등
.영향 받은 인물: 코넬 웨스트, 로버트 벨라, 리처드 니부어, 도날드 A. 크로스비, 칼 E. 피터스 등
.배우자: Hannah Werner-Gottschow (1924~1965년)
.저서: 주저 ‘조직신학 1, 2, 3권’ (Systematic Theology) 외 ‘그리스도교 사상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존재의 용기’ (The Courage to Be), ‘믿음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 등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교회에는 칼 바르트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한 명의 대 신학자다. 바르트와 같은 해인 1886년에 태어난 폴 틸리히는 여러 가지 점에서 바르트와 대조되는 신학자이다.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그 온전한 계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면, 틸리히는 이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구체적인 상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바르트처럼 하나님의 계시에서부터 신학을 시작하지 않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인 다음, 거기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신학을 전개하였다. 즉, 바르트가 하나님 중심, 계시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했다면, 틸리히는 인간 상황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 중심 혹은 경험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바르트와 같은 신학의 강점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과 궁극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인간 현실에 부적합해질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틸리히와 같은 변증 신학은 기독교 복음의 상황적 적실성 (contextual relevance)을 가질 수는 있으나 자칫 복음을 왜곡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틸리히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언어로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의미 있게 소개할 길이 없다고 보았기에 부적합의 위험보다는 왜곡의 위험을 무릅쓰는 길을 택했으며, 그 가운데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하고 창조적인 신학의 하나를 남기게 되었다.
– 역자 : 김흥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SMU에서 조직신학으로 Ph.D.를 취득했다. 내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며, 연세대 연신원의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로마서 강해 1: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2017), 『로마서 강해 2: 약한 자 VS. 강한 자』(2019) 등의 저서와 『일상목회와 신학적 성찰』(2012)과 『경계선 위에서』(2018) 등의 역서가 있다.
○ 책 속으로
‘종교실현’ 서문에서 저는 “경계선이야말로 지식을 습득하기에 최적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삶에서 어
떤 사상이 우러나와 발전해왔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저는 경계선 개념이 제 지성 발전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의 거의 모든 지점마다 두 가지 가능성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두 가지 모두에 완전히 만족할 수도 없었고, 한쪽을 위해서 다른 한쪽을 강경하게 반대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유를 하려면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해야만 하기에, 경계선 위에 설 때 사고하기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이 실제로는 고달프고 위험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끝없이 결단을 내려야하고 다른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 운명과 제 일은 경계선 위에 서려는 성향과 이 성향의 긴장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저는 심각한 투쟁을 겪은 후 비로소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율에 도달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인격적이며 지성적인 권위였는데, 교회 안에서 아버지의 직위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권위를 계시의 종교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종교적으로 대드는 행위로 간주했으며, 권위를 비판할 때 저절로 죄책감이 생겨나게 했습니다. 하나의 금기를 깨부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죄책감이 수반된다는 인류의 해묵은 경험담은 제 자신의 근본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신학적, 윤리적, 정치적 비판은 내적으로 장애물을
만났는데, 이 장애물은 오랜 투쟁을 겪은 후에만 극복되었습니다. —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중에서
제 삶과 사상을 경계상황 개념으로 가장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은 신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선입니다. 중학교 막바지 무렵 제 꿈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가한 시간 내내 우연히 제 수중에 들어온 철학 서적을 읽었습니다. 한 시골목사의 먼지투성이 책장구석에서 슈베글러의 ‘역사철학’ (Geschichte der Philosophie)을 발견했고, 베를린 거리의 책을 잔뜩 실은 수레 꼭대기에서 피히테의 ‘학문론’ (Wissenschaftslehre)을 구했습니다. 소년처럼 흥분해서 그 당시만 해도 제게 거금이었던 50센트를 치르고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The Critique of Pure Reason)을 책방에서 샀습니다. 이런 책들, 특히 피히테의 책 덕분에 저는 독일철학의 가장 난해한 면모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 제가 신약성서에 관한 역사적 식견을 얻게 된 것은 주로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탐구’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와 불트만의 ‘공관복음 전승사’ (The Synoptic Tradition) 덕분이었습니다. 에른스트 트뢸취의 저술을 읽고 나서 중재신학과 이 중재신학의 변증론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졌던 잔재를 말끔히 씻어냈고, 마침내 교회사와 역사비평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 신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양자의 논리적 관계성에 대한 명징한 개념부터 모색해야만 합니다. 제 ‘학문체계’가 이 작업을 했습니다. 이 책의 궁극적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학이 과학성 (Wissenschaft)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신학의 여러 분과목들이 다른 학문과 연결되는가?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신학 특유의 방법은 무엇인가? —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중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의 관계는 종교와 문화 경계 양측면 모두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만 합니다. 종교는 절
대적인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신(神)개념에 나타난 보편적 주장 역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문화 내부의 한 특수영역이 될 수 없으며, 문화 옆에서 하나의 부수적(附隨的)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습니다. 자유주의는 이 둘 중에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종교를 해석해 왔던 경향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해석을 하든지 간에 종교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종교 없이도 문화구조가 완전하고 자기충족적인 것이 되기에 종교는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화가 종교를 좌지우지할 권리를 갖기 때문에 문화 자신의 자율성이 (결국 문화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포기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진리입니다. 문화는 형식을 결정지어야만 하는데, 이 문화형식으로 종교의 ‘절대성’ 내용을 비롯한 모든 내용이 표현됩니다. 문화는 종교적 절대
자의 이름으로 진리와 정의가 희생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종교가 문화의 내용이듯이, 문화는 종교
의 형식입니다. 양자의 차이점을 굳이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종교는 내용지향적이라는 사실에 있는데, 종교의 내용지향성이야말로 의미의 무조건적 (무제약적) 원천이자 심연입니다. 그리고 문화형식은 이 종교내용의 상징구실을 합니다. 문화는 형식지향적인데, 조건적 (제약적) 의미를 표현합니다. 무조건적 의미를 표현하는 종교 내용은 문화가 부여하는 자율형식이라는 매체로 간접적으로만 간파될 수 있습니다. 인간실존이 완전하고 자율적 형식체계(틀)로 자신의 유한성 안에서 무한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곳에서 문화는 극치에 이릅니다. —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중에서
인간 행위에는 하나의 경계가 남아 있는데, 이 경계는 더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의 경계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초월하는 영원성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유한한 것에 부과된 한계로 남아있습니다. 영원이 현존할 때 우리 존재의 중심조차도 하나의 한계에 불과하며, 우리가 이룬 최고 수준의 성취조차도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회고: 경계와 한계」 중에서
○ 추천평
틸리히는 셸링, 하이데거, 니체 등에게서 배운 철학 개념과 성서를 연결합니다.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는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을 거부한 채 다른 한 쪽으로 쏠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세상, 철학, 정치, 문화 등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자신이 속한 전통, 경험, 사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든지 간에 양자는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론’이 남긴 중요한 유산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부터 시작하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복음으로 연결하는 틸리히의 방법론은
복음 없이 사회적 관심사만 말하는 그룹이나, 사회와 관계없이 고립되어 복음을 말하는 그룹 둘 다에게 소
중한 교훈을 줍니다. _ 임성모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 독자의 평
폴 틸리히가 본인의 입장을 디팬스하기 위해 쓴 것처럼 보여지는 책..틸리히가 추구하는 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맵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것으로 보인다.
틸리히는 “경계선” 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균형”을 잘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틸리히는 자전적인 서술을 통해 다양한 경계선을 제시한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계선, 교수와 목사의 경계선, 신학자와 철학자의 경계선, 교회와 사회의 경계선 등등 이다.
물론 경계선이라는 개념은 잘못하면 [회색분자]라는 비판을 받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틸리히는 그런 비판을 받지 않도록 절묘하게 잘 변증했다. 그리고 상당부분 나는 동의하고 동감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최근 계속 고민하고 있는 [도피]라는 주제를 사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진정한 신앙이란 [종교로의 도피]와 [세상으로의 도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종종 요한계시록의 “더웁든지 차갑든지 하라”는 말씀을 오용해서, 어느 한쪽의 극단적인 사상을 옹호하는 것이 신앙인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가? 그 속에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렵고 힘든 일이다.
- 인싸이트를 주는 내용 스크랩
“두 가지 상반되는 원리의 대립 투쟁이 역사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생각, 플라톤이 가르쳤듯이 진리가 저 너머 영원한 ‘피안’에 있지 않고 투쟁과 운명 한가운데 있다는 역동적 진리론 등의 전제입니다.” 37p
“제가 여덟 살 무렵부터 해마다 바닷가에서 보낸 수주일과 나중의 수개월은 제 삶과 일에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무한이 유한에 맞닿는 순간을 체험한 것은 한계상황에 빠져드는 제 성향과 맞아떨어졌고, 제 감정에 내용을 채워주고 사상에 창조력을 불어넣는 상징의 날개를 제 상상력에 달아주었습니다.” 40p
“예술이야말로 최고의 놀이형태며, 상상력으로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창조해내는 영역입니다.” 50p
“종교진리는 한 사람의 실존 자체가 송두리째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물음이 걸려 있습니다. 종교진리는 실존진리인데, 실존진리인 만큼 실천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이 말씀하듯이 종교진리는 행하여진(acted) 진리입니다. 55p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죄책감이 수반된다는 인류의 해묵음 경험담은 제 자신의 근본체험이기도 했습니다.” 61p
“성스럽기 이를 데 없는 권위가 강요하는 금기사항을 일단 깨부순 사람은 종교적 타율이든 정치적 타율이든 간에 또 다른 형태의 타율에 쉽사리 굴종할 수 없습니다.” 63p
“극도로 편협한 바르트주의 입장이 혹 독일 개선교회를 위기에서 구해낼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거부함이 틀림없는 또 하나의 새로운 타율, 즉 반자율적이고 반인본주의적 태도를 만들어냅니다.” 66p
“프로테스탄트 저항정신은 흔히 합리주의와 인본주의 형태로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자율이 아니라 신율입니다. 자율과 타율 사이의 모순은 신율적이고 예언자적인 말씀으로 극복됩니다.” 66p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성례전적인 것과 예언자적인 것 사이, 그리고 구성적인 것과 교정적인 것 사이의 긴장 한가운데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만일 이런 요소들이 따로따로 분리된다면, 전자(성례전적인 것과 구성적인 것)는 타율적인 것이, 후자(예언자적인 것과 교정적인 것)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제가 보기에는 상징과 실재로서의 이 양자의 통합은 신약성서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상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67p
“저는 칭의론과 급진적 역사비평을 그럭저럭 화해시켰습니다. 저는 칭의론을 인간사유 영역에 적용했습니다. 인간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사유까지도 하나님의 “아니요(no)”라는 심판 아래 서 있습니다. 아무도 사랑을 독점했다고 자부할 수 없듯이, 그 누구도 – 심지어 기독교 신자나 교회까지도 – 진리를 독점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통주의는 지적 바리새주의에 다름 아닙니다. 의심하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나 죄인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계시는 죄의 용서만큼이나 역설적입니다.” 77p
“신학은 모든 지식의 암묵적 전제가 되는 것을 자신의 명시적 대상으로 삼습니다.” 82p
“인류는 종교적으로 원형의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원형언어는 우리가 사유를 객관화시키고 세계를 과학적으로 개념화하기 떄문에 그 원초적 힘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원형언어의 의미 앞에서 합리적 비판은 무기력합니다. 그런데도 무신론은 문자주의 사고 속에 갇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수정할 수 있는 하나의 대응책이 됩니다. 어떤 화자가 어떤 종교를 그 본래의 상징의미로 쓰고 있음에도 청자가 그 말을 현대의 과학의미로 받아들일 때 상황은 절망스럽습니다.” 93p
“조직화된 교단이나 전통 신조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교회에 들지 않은 사람들”로 지칭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저는 한 세대의 절반 동안 이런 부류에 섞여 살면서 이들 가운데 잠복한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들도 인간실존의 유한성을 체험하고,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것을 추구하고, 정의와 사랑을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하며, 여하한 유토피아도 넘어서 있는 희망을 간직하고, 기독교 가치를 존중하며, 교회와 국가를 해석할 때 기독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발견했던 것을 지칭한 ‘잠재적 교회’가 -이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진리를 독점했다고 우쭐대지만 않는다면-조직화된 교단에 속한 교회보다 외러 더 참다운 교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95-96p
“어떤 사람이 라벤나의 모자이크나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혹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초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자신의 체험이 종교체험인지 문화체험인지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할 것입니다. 자신의 체험이 형식은 문화적이고, 내용은 종교적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 체험은 어떤 특수한 제의 행위에 결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화적입니다. 하지만 절대자에 관해서 묻고 인간실존의 한계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는 종교적입니다.” 97p
“종교가 문화의 내용이듯이, 문화는 종교의 형식입니다. 양자의 차이점을 굳이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종교는 내용지향적이라는 사실에 있는데, 종교의 내용지향성이야말로 의미의 무조건적(무제약적) 원천이자 심연입니다.” 99p
“그 어떤 사람도, 성서도, 공동체도, 제도도, 행위도 그 자체가 스스로 거룩하지 않으며 속되지도 않습니다. 세속적인 것도 거룩성을 주장할 수 있으며, 거룩한 것도 여전히 속된 것이기도 합니다. 성직자는 한 사람의 평신도이며, 평신도 역시 어느 때나 성직자가 될 수 있습니다.” 101p
“하나님 나라는 절대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모든 유토피아주의는 형이상학적으로 실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인간본성이 제 아무리 변화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도덕 교정만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습니다. 교육이나 환경을 개선해서 사람들의 일반적 도덕수준이 높아지고, 투박한 본성을 세련되게 연마할 수는 있지만, 인간인 이상 그런 개선책이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에까지 근본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인류는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더 높은 수준으로 선악이 고양될 뿐입니다.” 107p
“순수본질에 대한 지식은 인간실존 내부의 모순을 인식하고 극복해내는 정도만큼만 가능합니다.” 117-118p
“인간이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가장 심각하게 소외된 상태에서 가장 처절한 절망으로 가장 극심한 무의미성의 지점에 처할 때, 비이데올로기적 진리를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알게 됩니다. 저는 이 사상을 프로테스트탄트 원리와 인간의 한계상황에 관한 개신교 교리에 연결 지었습니다.” 117-118
“사람들이 그토록 격력하게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배격했던 이유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을 파멸시킬 것으로 믿는 가면 벗기기의 폭로를 모면하려는 시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고통스러운 가면 벗기기의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기독교 복음의 궁극적 의미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인간실존의 모호성을 덮어 적당히 얼버무리는 관념론을 선전하기보다는, 인간의 진정한 조건을 드러내주는 가면 벗기기 수단을 가능한 한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학자는 경계선 위의 위치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121p
“제가 논한 각각의 가능성은 다른 가능성과의 연관성 속에서 어떨 때는 상호대립하는 방식으로, 또 어떨때는 상호연결되는 식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각각의 삶의 가능성이 경계선에 일치해서, 이 가능성이 이 가능성을 제한하는 가능성을 만나는 경계선을 넘어서,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질주해 나가는 실존 변증법입니다. 수많은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불안하고, 위태롭고, 다양한 형태로 내적 실존이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런 사람은 평정과 안전, 완전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것은 사고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131-132p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