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고려태조 왕건 세트 전5권
김성한 / 산천재 / 2016.2.12
『고려태조 왕건 세트』은 김성한의 세 번째 장편 역사소설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운명이 엇갈렸던 또 다른 영웅들 선종 (궁예)과 견훤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세 인물의 삶과 부딪침을 통해 작가는 왜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 선종이나 견훤이 아닌 왕건이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간다.
○ 목차
- 1권
남으로, 북으로
서남해
세달사
조상의 당에서
아버지와 아들
진성여왕
기병 사령관
영웅의 등장
작가 메모
- 2권
후백제
옥에 티
역사에 없는 일
전주곡
운명
갈림길
먹구름
둥근 성품
- 3권
목포의 여인
세상은 물 흐르듯이
몽둥이 사연
인간의 길
임금은 병들고
왕후 설리
흔들리는 왕국
개선장군
구출작전
꿈은 넓은 바다로
- 4권
은밀한 계획
진격
시중 왕건
폭풍 전야
혁명
극락왕생
제왕의 길
송도
노한 백제 왕
- 5권
일은 순리대로
옛 친구들
전쟁
휴전
구사일생
불운
반란
천년사직
모든 강물은 바다로
○ 저자소개 : 김성한
저자 김성한 지난 2010년 타계한 작가 김성한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56년 《바비도》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58년 《오분간》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56년 《사상계》 주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81년 같은 신문사를 퇴임하기 까지 언론인으로 산 시간이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왕건》,《임진왜란》,《진시황제》 등 장편 역사소설을 잇달아 내놓는 시기가 그 세 번째다.
이른바 순문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생산한 후, 언론인으로서 정년까지 일하고, 다시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대작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김성한인 셈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언론계 투신 후에도 김성한이 문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장편《이성계》와 《이마》를 썼으며,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오랜 언론계 생활은 철저한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특징인 김성한 역사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적이고 반항적인 경향의 초기 단편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 입장에 섰던 언론계의 경험이 버무려져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성한 역사소설이 태어난 것이다.
김성한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나 함남중과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60년대 초 영국 맨체스터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서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글을 쓰는 금욕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암야행》, 《오분간》, 《개구리》, 《바비도》 (이상 단편집), 《요하》, 《왕건》, 《이성계》, 《7년전쟁》, 《이마》, 《진시황제》, 《시인과 사무라이》 (이상 장편 역사소설),《길 따라 발 따라》, 《거인들의 시대》 (이상 역사 에세이)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불통의 시대에 통합의 리더십을 읽다 : 역사소설의 거장 김성한이 흠모한 군주 왕건 일대기
김성한의 《왕건》은 한고조 유방을 능가하는 덕 (德)의 인물, 고려태조 왕건을 복원해 낸 최고의 작품이다.
당대의 경세가 선종과 걸출한 용장 견훤을 넘어
덕장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한 창업군주가 되기까지
세 영웅이 펼치는 서사극이다.
- 왕건이라는 위대한 덕인의 복원
때는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춘추전국시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건국 초기의 격동기, 80여 명 장수들이 전국에 할거하여 저마다 천하를 노리고 싸우던 난세였다. 무려 만 47년에 이르는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를 가져온 인물이 이 작품의 주인공 왕건이다.
김성한의 세 번째 장편 역사소설인 이 작품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운명이 엇갈렸던 또 다른 영웅들 선종 (궁예)과 견훤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세 인물의 삶과 부딪침을 통해 작가는 왜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 선종이나 견훤이 아닌 왕건이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간다.
당시 천하대세는 선종이냐 견훤이냐의 양자대결로 압축되고 있었다. 그런데 선종의 일개 부하였던 왕건이 그 주군을 넘고 견훤을 뛰어넘어 마지막 승자가 된다.
작가에 따르면 왕건은 천재성에 있어 선종에 미치지 못했고 야전사령관으로서는 견훤에 비교할 바가 못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선종과 견훤에게 부족한 덕 (德)이 있었다.
왕건은 천하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헐고 서로 통하게 하는 천하 통일의 사리를 몸소 실천한 덕인 (德人)이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머리를 숙였던 까닭에 평생의 적수였던 견훤마저 마지막엔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 통일전쟁에 협력했다.
작가는 이처럼 만인을 포용하는 왕건의 위대한 덕성, 즉 항상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남의 어려운 사정에 동정하며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면모를 작품 전편을 통해 잘 드러내 보여준다.
중국사에서 덕망 높은 창업군주로 손꼽는 한고조나 송태조보다 뛰어난 인물이며, 그러므로 우리 역사에서 훨씬 더 크게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고려태조 왕건에 대한 작가의 평가다.
-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
선종과 견훤도 작가의 붓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작품이 처음 선보였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선종과 견훤은 폭군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지만 작가는 이들 불운한 영웅에게도 남다른 애정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선종은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무장세력을 육성한 출중한 지도자로 되살아났다. 그는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 북반을 점령하여 독립왕국을 개창했으며 건국 직후 해군을 건설하여 견훤의 배후 나주를 틀어쥐는 전략가로 그려진다. 선종은 정신이상으로 자신이 건설한 것을 고스란히 왕건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선종의 기반 없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견훤도 기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당대의 용장이며 건실하게 나라를 경영하는 창업군주로 묘사된다. 왕건이 특유의 유연성으로 능소능대하다면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우직한 무장이었다. 특히 왕건과 견훤이 부딪치는 전투 장면들은 무장 견훤의 타고난 감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보여주었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 덕에 흥미가 배가되는 대목들이다.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 선악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낳은 산물이며 역사적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 확 트인 시대, 거인들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
김성한 역사소설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다. 역사소설 데뷔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인 작가는 《왕건》 연재시 (동아일보) 옛날 여자들은 성 (姓)만 남아 있고 이름이 없기에 소설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름을 창작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로 사실(史實)을 골격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건》 역시 자료 수집에 4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즉위 초기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던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무려 스물아홉 명에 이르는 아내를 두게 되었던 사정의 이해라든지, 비록 망해가는 나라이지만 천년사직의 정통성을 지닌 신라를 포섭하여 민심 잡기에 성공한 왕건의 2 (고려+신라) 대 1 (후백제) 전략 묘사 등은 사실 (史實)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성한표 역사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난맥상과 겹쳐 혼란기로만 여겨지기 일쑤인 후삼국 시대를 이렇게 말했다.
“모함으로 지새우던 조선왕조의 답답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라 말기에 등장한 선종, 왕건, 견훤 세 사람이 엮어낸 후삼국 시대의 확 트인 풍경은 어느 다른 세계의 일같이 속 시원한 느낌을 준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 이런 시대가 있었다. 천 년 전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대결하여 역사를 창조하던 이들 거인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는 고려는 유불선을 마음대로 믿고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연애하며 과부도 개가도 자유로운 (《고려도경》) 열린 사회였다며 이렇게 열린 사회에서 개인의 재능이 발휘되고 세계적 명품인 고려청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통합의 지도자 왕건 일대기를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생각하는 동시에 고려시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각 권 줄거리
- 1권
신라 진성여왕 등극 초, 세 인물의 청년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은에서 상경한 핫바지 병정 견훤은 서해안에 출몰하는 해적을 토벌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부패한 신라 군을 떠나 당시 전국에 할거하던 군웅의 하나가 된다. 궁예는 홀어머니와 떠돌면서 밑바닥 삶을 살던 중 신라 왕실의 핏줄이라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세달사에 들어가 학문과 무예를 익힌다. 선종으로 개명한 그는 큰 꿈을 품고 북원의 양길 장군 아래서 자신의 세력을 정병으로 키워낸다. 아버지와 함께 해상무역에 종사하던 바닷가 소년 왕건은 선종의 세달사 시절 인연을 맺게 되고, 이후 선종이 한반도 북반의 맹주로 떠오르면서 그 휘하에 들어가 무장으로 입신양명하지만 장래를 약속했던 설리를 선종에게 뺏기는 아픔도 겪게 된다.
- 2권
서남해에서 일어선 견훤은 900년 완산성(전주)을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한다. 견훤보다 일 년 늦게 나라를 연 선종은 선정을 베풀어 명군 소리를 듣지만 연호를 수시로 바꾸고 신라에 대한 지나친 증오심을 보인다. 왕건은 선종의 명에 따라 해군대장군이 되어 나주 정벌에 나서 대승을 거두고 시중이 되어 쇠둘레로 돌아온다. 하지만 외로운 선종은 은부라는 간신에게 휘둘리고 설상가상 사냥 길에 머리를 다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데 왕건은 견훤이 수복을 노리는 나주를 방어하기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나주장군이 된 왕건이 능산, 금언 등 선종의 신하였던 명장들의 보필을 받으며 야전의 명수 견훤과 팽팽하게 대적하고 있는 동안 쇠둘레는 선종의 병증과 더불어 점점 더 어둠으로 빠져든다.
- 3권
왕건이 처음 살림을 차린 여인 오씨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행동으로 왕건을 곤혹스럽게 하고, 쇠둘레로 진격할 것을 주장했던 죽마고우 종희는 임금의 경호실장격인 내군장군이 되어 상황을 통제해보려 하지만 다시 선종의 신임을 얻은 은부가 내군장군 자리를 꿰찬다. 은부 일당이 선종의 옛 신하들을 축출하는 가운데 비룡성룡으로 있던 종희도 연금상태에 처해지는데 왕후이자 사촌누이인 설리가 찾아와 선종과 태자가 은부 일당에게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한편 은부는 왕건에게 시중을 제수하여 무장해제시킨 뒤 쇠둘레로 유인하려는 계책을 꾸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종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정주까지 올라온 왕건에게 알린다. 수적으로 열세인 왕건측은 궁리 끝에 능산이 나서 상황 파악차 쇠둘레로 먼저 떠난다.
- 4권
선종의 신하였던 능산의 옛 동지들에게 실상을 알려 협조를 얻은 왕건 일행은 드디어 쇠둘레로 진격하고 궁성에 갇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선종과 그 가족을 구해낸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왕후 설리는 종희와 함께 마지막 고향길을 떠나고 정신이 잠깐 든 선종은 양위를 결심하며 은부의 처리는 그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하는데 결국 은부는 양위식 전날 선종을 추동하여 설리와 왕자들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원로들의 추대를 받아 42세의 왕건은 대위에 오른다. 등극 초기 기반이 미약했던 왕건은 껍데기뿐인 신라에도 칭신을 마다치 않으며 평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보인다. 항복해 오는 장군들은 그대로 머물게 하고 각 지방 호족들의 딸을 비로 맞아들이는 등 통합을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한편 견훤은 고려에 붙은 신라를 징치함으로써 왕건을 유인하는 전략을 구상한다.
- 5권
왕건은 독립왕국 명주의 존재 등 천하통일을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로 머리가 아프다. 그 와중에도 북방을 회복하기 위해 서경을 건설하는 등 긴 안목으로 정사를 꾸려나가는데 견훤과의 길고 긴 전쟁이 마침내 시작된다. 견훤과 같은 전법을 써서는 당할 수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새기지 못한 왕건은 몇 차례 크게 패한 끝에 견훤을 상보(아버지)로 모시고 서로 인질을 내어 화의를 맺는다. 그러나 견훤측 인질의 변사로 두 나라 간 화평은 깨지고 견훤이 신라 금성을 쳐서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를 경순왕으로 앉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신숭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정에 나선 왕건은 결국 부하들을 잃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데 뜻밖에도 견훤의 후백제는 왕위 계승 갈등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난다. 아들들에게 내쫓긴 견훤은 왕건에게 몸을 의탁하고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왕건의 통일전쟁에 협력한다. 후백제 멸망 직전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바치니 만 47년에 이르는 난세는 고려태조 왕건에 의해 끝나고 왕건은 발해의 멸망으로 북방 개척의 꿈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며 67년의 생을 마감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