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광신의 무덤
볼테르 / 바오 / 2018.7.16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될 것이다.”
– 볼테르,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를 고발하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볼테르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볼테르만큼 미움을 산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적그리스도로 간주되었다. 그는 서양의 사상가 중에서 그리스도교에 가장 비판적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저작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가 넘쳐난다.
볼테르는 평생 종교적 광신에 맞서 싸웠다. 광신은 악을 생성시킬 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통해, 신앙의 뿌리인 성경의 반역사성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순교와 박해, 기적 같은 교회의 기록과 전승은 과장되거나 조작,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고발한다. 따라서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는 ‘허구와 조작으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이며, “양식과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결론 내린다.
당연히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출간 후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를 이성적,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고전적 전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 목차
머리말/5
I
1장 모세서·19/2장 모세라는 인물·22/3장 유대서에 부여된 신성·28/4장 모세오경의 저자는 누구인가?·30/5장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빌려왔을까?·35/6장 창세기·38/7장 유대인의 풍습·41/8장 유대인의 풍습: 왕정 시대 및 판관 시대, 그리고 로마인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46/9장 예언자들·52
II
10장 예수라는 인물·61/11장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74/12장 그리스도교의 성립-특히 바울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77/13장 복음서·86/14장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인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시빌라의 예언(탁선)을 위조해냈을까?·95/15장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교도를 어떻게 대했을까? 예언자들에 대한 황당무계한 설명·101/16장 복음서에 내재된 잘못된 인용과 잘못된 예언·105/17장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예루살렘·108/18장 알레고리(비유, 예표)·112/19장 위조와 위서·114
III
20장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주요 기만행위·121/21장 그리스도교 초기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의 교리와 형이상학-유스티누스·129/22장 테르툴리아누스·133/23장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40/24장 이레네우스·145/25장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148/26장 순교자들·155/27장 기적·169
IV
28장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서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177/29장 콘스탄티누스·186/30장 콘스탄티누스 이전 및 그의 치하에서 그리스도교인의 분쟁·190/31장 아리우스주의와 아타나시우스주의·194/32장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 그리스도교인들이 “배교자”라는 별명을 붙인 철학자 율리아누스·201/33장 율리아누스에 대한 고찰·210/34장 테오도시우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214/35장 이슬람교의 성립까지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와 그리스도교인의 불행·219/36장 교황들의 횡포에 대한 간략한 서술·223/37장 그리스도교 박해의 잔혹성·226/38장 로마 가톨릭교회의 폐해·232
결론/236
편지: 볼링브룩 경이 콘즈버리 경에게·243/콘즈버리 경이 볼링브룩 경에게/252
이 책에 대한 간략한 해설: 광신과 불관용에 맞선 지적 투쟁/256
찾아보기/263
○ 저자소개 : 볼테르 (Voltaire,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 (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 (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 (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 (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 (Sceaux)성 (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 (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 (L’Ingenu)』 (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 (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 역자 : 고선일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학생들을 가르쳤다.
옮긴 책으로는 《마음으로 보는 하느님의 얼굴》, 《예수님 궁금증 62가지》, 《우리 시대의 성인 마더 데레사》, 《베르나데트》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각 종파를 이끄는 우두머리들의 목표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힘을 다해 부를 쌓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일본 천황에서 로마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백성들의 빈곤 위에 세워졌을 뿐 아니라 그들의 피가 엉겨 붙은 권좌에 오르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교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진다. – 머리말 중에서
뱀이 하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하느님은 뱀에게 말씀하시고, 하느님께서 날마다 정오가 되면 면 에덴동산을 거닐고. 하느님께서 친히 아담에게는 짧은 팬츠를, 그리고 그의 아내 하와에게는 치부를 가릴 천 조각을 건네셨다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 6장 창세기 중에서
하느님의 성육화, 하느님의 죽음, 하느님의 부활, 삼위일체의 하느님, 가루로 만든 빵이 하느님이 된다는 성변화 교리, 그리스도교인들을 야만인보다도 저급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그 지긋지긋한 교리들을 믿었던 교황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물론 그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함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그들은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추악한 범죄 행위로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혔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리스도교 교리들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함이 무신론자들을 양산한다는 것을! – 38장 로마 가톨릭교회의 폐해 중에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맹목적이고 한심한 존재들이다. 그리스도교인들 스스로가 고백하기를 … 단순하고 보편적인 종교보다, 형리들이 떠받치고 화형대들로 둘러싸인 부조리하고 잔혹한 종교, 그 종교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자들만이 인정하는 종교, 세계의 일부분에서만 인정받는 특수한 종교를 선호하니 말이다. – 결론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예수인가 맘몬인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길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많은 잘못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지적한 것처럼 성경의 예수보다는 현실의 맘몬을 섬기는 것 같다. 다른 종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볼테르 당대에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한 분인 신을 열정적으로 섬기는데, 그 신은 다름 아닌 돈이다. … 각 종파를 이끄는 우두머리들의 목표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부를 쌓는 것이며, 그들 모두가 백성들의 빈곤 위에 세워진 피가 엉겨 붙은 권좌에 오르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
또 같은 신을 섬기더라도 뜻이 다르면 쉽게 이단 딱지를 붙인다. 게다가 패를 갈라 싸우기도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그 신의 이름으로 다른 의견을 단죄한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종파가 생겨나 저마다의 진리를 주장한다.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 미움과 파괴의 종교가 되고 있다.
– 그리스도교는 조작과 과장, 허구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
볼테르에게 당대의 종교 권력, 즉 가톨릭교회는 전제정치와 더불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구체제의 상징이었다. 종교 권력의 성채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전반에 대한 검토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는 모두 38장에 걸쳐 성경의 성립 과정에서부터 유대교, 예언자, 초대 교회, 예수와 그 제자들,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교회의 탄생, 교황, 교리, 기적, 탄압, 박해, 순교 등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검토한다.
일방적인 주장과 비판이 아니라 백과사전파답게 방대한 전적과 사료 비판이라는 실증의 토대 위에서 상식과 이성에 따라 독자들을 설득한다. 유대민족의 신화와 역사가 상당 부분 허구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서 성경 기록의 신뢰성을 뿌리째 뒤흔들고, 신앙의 역사에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순교와 탄압, 기적 등의 전승과 기록이 실제 사실과 달리 조작, 과장,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폭로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성경부터 조작과 오류투성이의 기록일 뿐더러 후대의 귀감이 되는 신앙의 전범들도 사실과 크게 다른, ‘허구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 광신은 불관용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범죄와 학살은 광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가장 선하고 정직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조작과 은폐를 서슴지 않았다. 볼테르는 이렇게 질문한다. “고귀한 생명을 얼마나 죽여야 광신의 수레바퀴를 멈출까? 순교자를 얼마나 더 만들어야 역사를 조작하는 짓을 그만둘까!” 일단 광신에 물들면,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닌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단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불신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수많았던 화형과 마녀사냥, 교리 논쟁을 통한 파문과 단죄는 이런 배경 하에 일어났다.
그래서 볼테르는 “광신이라는 정신의 질병은 이성의 빛을 쬐는 것, 즉 관용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광신은 불관용에서 태어난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관용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던 교회 권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했던 것이다. 그가 세상에 고발하여 알려지게 된 칼라스 사건과 그 과정에서 집필한 『관용론』(1763)은 종교적 광신에 맞서 관용을 부르짖은 저항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볼테르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어떤가. 볼테르가 검토하고 지적했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을 억압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불관용을 선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낮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고 껴안기보다는 그들을 멸시하거나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맘몬의 길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인의 교회가 아닌 나만의, 내 가족만의 교회를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왜 교회는 커져야 하고, 울타리는 높이 쌓아올려야 하며, 돈과 신자는 점점 많아져야만 하는가.
볼테르가 맞서 싸워야 했던 18세기의 교회 권력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21세기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실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볼테르가 겨냥한 과녁들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 독자의 평
‘광신의 무덤’ – 볼테르 (고선일 역, 바오출판사)
1736년 원작인 이 책의 원제는 ‘블링브룩 경의 중요한 검토 혹은 광신의 무덤’이며, 앤 여왕 당시 토리당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다가 휘그당 정부에서 프랑스로 망명하여 볼테르와 친분이 있던 블링브룩 경의 이름을 빌려 저술한 볼테르의 작품이다. 볼테르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볼테르는 자신의 이름을 숨길 의도로 그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리스도교로부터 ‘적 그리스도’로 간주될 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볼테르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의 거의 모든 것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볼테르가 볼 때의 종교 권력, 즉 가톨릭교회는 전제정치와 함께 구체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허물어버리는 것이 그의 평생 소신이었다. 성경의 성립 과정, 유대교, 예언자, 초대교회, 예수와 제자들,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교회의 탄생, 교황, 교리, 기적, 탄압, 박해, 순교와 순교자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검증대에 올려놓고 검토하는 볼테르, 방대한 전적과 사료를 바탕으로 실증의 토대 위에서 상식과 이성에 따라 독자를 설득한다.
유대 민족의 신화와 역사는 상당 부분 허구에 기초를 하여 성립되었고, 성경 기록의 신뢰성을 뿌리째 흔들며, 순교와 억압 및 기적 등의 조작과 과장, 왜곡된 사실을 날카롭게 폭로하는 볼테르의 행동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범죄와 학살이 그리스도교라는 광신에 의해서 비롯된 사실을 온 천하에 공개하는 작업이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발간과 같은 해에 불테르는 ‘광신 또는 예언자 무함마드’라는 희곡도 집필하여 이슬람교의 광신도 마찬가지로 비난했으며, 1763년에 집필한 ‘관용론’은 종교적 광신에 맞서 관용을 부르짖는 저항을 보여준다. 귀족과의 신분 차이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종교적 문제는 더욱더 볼테르 자신을 옥죄었을 텐데,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계몽주의의 대표적 인물이 된 걸 보면 역시 볼테르의 위대함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광신이라는 정신의 질병은 이성의 빛을 쬐는 것, 즉 관용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 광신은 불관용에서 태어난 괴물이라는 결론에 이른 볼테르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비이성적이며 광신적인 것은 물론, 그래서 불쾌하며 혐오와 경멸을 부른다고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는다. “고귀한 생명을 얼마나 죽여야 광신의 수레바퀴를 멈출까? 순교자를 얼마나 더 만들어야 역사를 조작하는 짓을 그만둘까?” “광신은 사람의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다. 일단 한번 광신에 물들면, 자신이 잘못된 것인 줄 모르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닌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단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불신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총 38장의 소제목과 더불어 ‘결론’과 두 편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장마다 확실한 주제를 선정하여 배경지식과 함께 잘못된 내용을 곧바로 지적한다. 이집트와 그리스 역사에서 모세의 기적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으며, 모세 탄생 훨씬 이전인 고대 아라비아인들의 바쿠스 이야기에서의 바쿠스는 자신의 계율을 석판 2장에 기록하였고 ‘미셈’으로 불렸는데 그 의미는 ‘물에서 건져낸 이’란다. 지팡이로 이적을 일으킨 그의 존재와 행동 전부는 모세를 많이 닮았다.
페니키아 종교는 유대교보다 1천 년 이상 이전에 있었고, 내세의 교리가 없는 모세오경 같은 유대서는 바빌론 문자와 시리아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전하는 순수한 히브리 문자가 없는 까닭이다. 유대교의 ‘야훼’는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뜻의 페니키아와 이집트 신의 이름이며, 뱀의 형상을 비롯해 붉은 암송아지 예식, 세례식, 단식, 돼지고기 등 식용 금지, 할례, 희생양 등 역시 이집트에서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검토는 우리는 의무이며, 아무런 검토 없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자는 쟁기를 매단 소와 다를 바가 없다.”
기원전 5세기 중엽의 그리스 연대기 작가 페레키데스의 저서에 보면, 페니키아 신 ‘야호’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을 창조한 후에 그들을 아덴 혹은 에덴동산에 살게 하고 오피오네라는 뱀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한다. 창세기는 이런 설화에 덧붙여 온갖 부조리한 요소를 섞은 셈이다. 라합, 입다, 에훗, 야엘, 삼손 등 야만적인 살육과 강간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상식과 덕성이나 자연과 신성함 등을 모독하는 이야기다. 이사야, 에제키엘, 요나 등의 선지자 이야기도 황당무계하고 외설적인 내용에 다름 아니다.
4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예수의 생애’라는 조잡한 책을 보면, 예수는 오카남과 마리아의 아들이며 유대인 유다와 마찰로 인하여 사형당하는 등의 야바위꾼들의 야설 같은 이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수의 제자들은 물론 바울로의 성경 속의 이야기는 횡성수설하고 오만불손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가 로마인이었다는 것도 역시 거짓이다. 54개 이상이 존재하는 복음서도 오류로 가득하며, 당시의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거의 그런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100년 동안 로마 하층민을 파고든 그리스도교는 놀라운 포교와 전도에 성공한다. 유대인들에게 멸시만 당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 전도에 몰두한 결과다.
볼테르는 유스티누스, 테르툴리아누스, 클레멘스,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등의 교부들의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수많은 조작과 위조와 더불어 삼위일체론과 같은 황당한 것을 만들어 유행시킨 과정을 설명한다. 아리우스주의와 아타나시우스주의의 반목을 비롯해 교황들의 횡포와 종교재판 및 마녀사냥, 종교전쟁 같은 수 세기 동안의 학살도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벌어진다. 부와 권력을 소지한 채, 온갖 학살, 음란행위, 남색, 첩질 등으로 인한 무신론자를 양산한 범죄 행위도 소상하게 나온다.
우리가 읽어야 할 유일한 복음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손수 쓰시고 그분의 인장으로 봉인한 ‘자연’이라고 볼테르는 결론으로 제시한다. 그리스도교의 광신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모태신앙을 유지한 채 이제까지의 수차례의 성경 통독으로 인한 감동의 시간들을 되새겨 본다. 사랑과 평화의 기독교가 대한민국에서는 돈만을 좇고,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며, 권력을 추구하느라 불의와 손잡고 가진 자들의 편이 된 상황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하나 상가 2층 및 자기 집에서 조그마한 규모로 예수의 사랑을 전하려 애쓰는 가난한 목사나 전도사를 제외한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우선 화살을 돌리고 싶다. 올바른 신앙 및 믿음과 마주한 광신의 경계에서 오늘 나는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단 한 분인 신을 섬긴다. 그리스도교인, 유대인, 그외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열정으로 그 신을 섬기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