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교육의 목적 : The Aime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소망 / 2009.2.28
교육의 지적 측면을 고찰한 책으로, 각 장마다 교육과 관련된 주요 개념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은 단편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전문적 지식을 갖춘 교양인을 길러내는 일이다. 주로 저자가 교육 단체나 협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었으며, 교육의 목적 및 리듬, 고전의 위치, 대학의 역할, 사고와 교육의 관계 등이 논의된다. 교육 제도는 영국의 것을 참고로 하였으나 교육 전반의 일반적 원리들은 어느 나라에나 적용될 수 있다.
○ 목차
옮긴이 머리말
머리말
1장 교육의 목적
2장 교육의 리듬
3장 자유와 훈육의 리듬적 요청
4장 기술교육과 과학 및 문학의 관계
5장 교육에서 차지하는 고전의 위치
6장 수학의 교육과정
7장 대학과 그 역할
8장 사고의 유기화
9장 일부 과학 개념들의 분석
10장 공간, 시간 그리고 상대성
○ 저자소개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 ~ 1947)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 (Fellow)과 수석 강사 (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 (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 (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 (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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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에 대하여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Fellow)과 수석 강사(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1924~1937)를 역임했다.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 역자 : 유재덕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독교교육학 분야 이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깊은 관심을 두어 다양한 글쓰기와 번역에 힘쓴다. 전공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는 인간의 두뇌와 학습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하으며,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을 누구나 재미있고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저서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 밖 성경이야기』,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5시간만에 읽는 재미있는 교회사』, 『성경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외 다수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조지 뮬러의 기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예수님을 닮아가는 기도』 등 다수가 있다. 2008년 현재 연세대학교와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한다.
○ 책 속으로
나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한가지의 원리를 교육의 리듬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내가 영국의 지도적인 일부 교육학자들의 모임에 초대되었음을 감안할 때 어떤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원리가 실제 적용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온갖 요인을 고려하면서 적절히 논의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교육의 리듬을 빌어서 나의 의도를 가장 간략하게 진술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 강연의 요지를 아주 명료하게 보여줄 정도로 간단하다. 원리는 바로 이렇다. 즉, 학생들에게는 정당한 지적 발달의 단계에 도달한 바로 그 시기에 맞추어서 각기 다른 학습 주제와 형태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의심한 적이 없고 또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라고 하는 주장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화이트헤드의 『The Aime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를 우리 말로 옮긴 것으로, 교육의 지적 측면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 주요 개념은 각 장마다 드러나 있으며 여러 관점에서 설명된다. 저자는 영국의 교육제도를 참고하여 설명한다. 쓸모 없는 지식, 즉 수동적인 지식을 배격하고 실제 경험의 결과이거나 교육의 실천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 그들의 자기 발전을 자극하고 인도하는 것이어야 하며, 교사 역시 생생한 사고를 통해서 활동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독자의 평 – ‘내용요약’ 포함
교육의 목적은 그 책이 쓰인지 1929년에 나온 책으로 약 7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현재 한국 교육문제에 시사점이 많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교육의 목적에 있어서 그리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주장했던 ‘너무 많은 과목을 가르치지 말라.’, ‘가르치는 바를 철저히 가르쳐라.’라는 부분에서 한국 중, 고등학교의 시간표가 획일성과 세분화에 의한 지루함을 낳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고 책만을 때우기 위한 수업에 대한 경고를 줄 수 있음에 그 점을 높이 평가 한다. 또한 교양을 강조하는 점에서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도 느끼지만 상식적인 교양도 많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것은 나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교육과정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신하게 다가오는 교육의 리듬은 낭만, 정밀, 일반화의 단계를 다루어 아동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과정을 바라볼 수 있었고 수학과 일반 고전 교육에 대한 독특한 접근으로 일반 교육에서의 수학 교육과 고전 교육의 중요성과 나아갈 방향을 정리 해 볼 수 이었다.
교육을 유기체적 사상을 바탕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것이라고 보는 시각과 생동감 있는 교육을 해야한다는 의견에 적극 동의하면서 그 언어적 표현력에 의해 감탄하였다. 우리의 교육환경도 상상력 있는 신선한 교육을 제공하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접촉하면서 서로 성장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 교사 중심의 교수방법이 아닌 교사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인도자의 역할을 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의 배경이 되는 것이 1920년도의 영국의 교육 환경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교육에 전혀 관계기 없을 것 같은 내용 또한 존재하였다. 특히 5장의 교육에서 차지하는 고전의 위치에서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언어의 변환을 통해 분석적 사고를 키우고 언어학습을 통한 논리학, 철학, 역사, 그리고 문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이해의 영역을 계발한다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교육환경에는 적용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 내용요약 >
교육의 목적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의 저서 중 하나로 그의 연설문을 묶어서 만든 책이다. 그러므로 장변 유기적 관계는 부족하지만 화이트 헤드의 유기체적 사상이 교육론의 근간이 되어 ‘흐름을 중심으로 보면 과정이 되고, 관계를 중심으로 보면 유기체가 된다.’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이 주제는 교육의 지적측면에 관한 것이다. 그의 교육의 목적은 머리말에 밝히고 있듯이 ‘그들의(학생들의) 자기 발전을 자극하고 인도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내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총 열 가지의 소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이트 헤드의 자세한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자기 발전을 자극하고 인도하는 것으로 본 서는 쓸모없는 지식, 즉 수동적인 지식을 배격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은 방법은 무엇일까? ‘너무 많은 과목을 가르치지 말라’, ‘가르치는 바는 철저히 가르쳐라.’ 또한 최근에 교육과정의 생동감을 말살하는 과목들의 치명적인 단절성을 근절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장기판 전체나, 다른 것에 대한 일단의 개념들이 유지하고 있는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문명의 형성기 이후로 늘 받아들여진 교육적 이상의 오래된 요약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본질이란 종교적이 되는 것이다. 종교교육은 의무와 외경을 거듭해서 가르치는 교육이다. 즉 영원한 시간의 전체적인 범위를 자체 내에 우지하고 있다는 이 인식이다.
교육의 리듬은 삶은 본질적으로 주기적이라고 간주하는 화이트헤드는 아동과 교과 간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는 낭만, 정밀, 일반화의 단계를 제시하였다. 낭만의 단계는 일차적 이해의 단계로 그대로의 사물들로의 사실들로부터 그것들의 탐구되지 않은 의미의 일차적 파악으로 이행하는데 따른 동요이다. 정밀의 단계는 역시 지식의 추가를 상징한다. 낭만기의 사실들은 넓은 의미의 가능성을 지닌 개념들을 노출시켰고 정밀의 단계는 체계적인 순서로 다른 사실들을 획득하기 때문에 낭만의 단계의 일반 주체에 대한 노출과 분석 모두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일반화의 단계는 헤겔이 말한 합니다. 정밀한 훈련의 성과로 분류된 개념들과 적당한 기술이라는 부가된 이점 덕분에 낭만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 세 가지 단계들이 지속적으로 반복이 되어 주기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낭만의 단계는 최초 12년간이며, 정밀의 단계는 전체 중등 교육을 학령기를 포괄하고, 또 일반화의 단계는 성인으로의 입문기이다. 형식적으로 교육이 학령기 이후까지도 계속되는 이들에게 있어서 대학 과정 및 그에 준하는 것은 중요한 일반화의 시기이다. 학생들은 학령기에는 지적으로 책상을 지향했지만, 대학에서는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에서는 일반적인 개념들에서 출발해서 구체적인 사례에 그것들을 적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대학의 이상은 능력만큼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할 일은 꼬맹이의 지식을 성인의 능력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자유와 훈육에 있어서도 리듬적인 교육이 요청된다. 학습자의 정신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자유와 훈육이라는 두 가지 원리는 반목이 아니라 발달하고 있는 성품의 앞뒤로 움직이는 자연스런 진동에 상응할 정도로 아동의 삶 속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저자가 교육의 리듬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자유와 훈육을 발달의 자연스런 진동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최초의 각성, 훈육 그리고 보다 높은 수준에서의 결실을 구체화시키는 보다 높은 인생 단계의 리듬적 진보의 일반 법칙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화이트 헤드가 주장하는 것은 진보의 원리가 내부로부터 나오는데, 그 분석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지고, 훈육은 자발적이며, 또 그 결실은 우리 자신이 소유한 창의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 교육을 비중 있게 다룬다. ‘그 나라는 일이 놀이고 놀이가 생활인 국가이다.’ 이것은 기술 교육의 이상이다. 국가가 당면한 필요는 숙련된 노동자, 창조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개념들의 개발에 민감한 고용주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고용주나 노동자 모두가 국민의 실제적 옥구를 충족시키는 기회를 어떻게든 제공해야 하는 기술이나 기술공학적 교육을 원리의 실천이나 봉사의 제공에 관할 진정한 지적 계몽과 같은 교양 있는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교육과 교양 교육을 대조하는 것은 오류이다. 교양적이지 않은 적절한 교육이란 있을 수 없고, 기술적이 아닌 교양 교육은 있을 수 없다. 전국적인 교육 제도에서 요청되는 세 가지의 주요 방법들이 있는데 문학 교육과정, 과학 교육과정, 기술 교육과정이 그것들이다. 이 교육과정은 각기 다른 두 가지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고전을 배우면서 철저한 언어 학습을 통한 논리학, 철학, 역사 그리고 문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이해의 연역 안에서 정신을 계발하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동들이 논리학을 배우기를 원하면서도 가르치지 않을까? 교육은 반드시 개인의 이해를 위해서 구체적이면서 명확한 특정 사실에서 점차 일반적인 개념을 지향하면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인 진술을 주입하는 행위는 피해야할 악한 짓이다. 아동들이 사고하고 진술할 경우에 명석하게 만들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친숙한 영어 문장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아동에 의해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는 언어를 배우고 점차 늘려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라틴어를 접하고 문화를 접하면서 학생이 체험으로 고전을 접해야 한다. 어떤 예술 작품에 접근하든지 우리는 스스로 두 가지 요인들, 즉 규모와 속도를 적절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를 배우고 여과과정 없이 고전을 체험하면서 정확, 명료 그리고 독창적인 분석력은 무엇보다도 공부한 후 주어지는 보상이다.
일반 교육에서 난해 주제들을 활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수학은 대체로 난해하다. 이 난해한 경향은 교양 교육에서 수학의 유용성을 쉽게 파괴하는 특유의 폐해이다. 이것은 일반 교육에서 치명적이기 때문에 수학의 교육적 활용에서 난해함을 제거해야 한다. 수학의 바탕에 자리한 주요 개념이 완전히 난해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추상적이다. 그러나 교양 교육이 수학을 포함하는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두 가지 주체, 즉 양과 자연법칙의 일반 개념들을 지적했는데, 그것은 교양 교육에 속한 수학 교육과정의 학습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수학에는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논리적 방법을 훈련하기에 적합한 대표적인 수단이다. 논리적 방법은 타당한 추론의 우형들과 그것들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정신의 집중력을 훈련하는 것 그 이상이다. 수학의 여러 요소를 공부하는 것은 우주에 대한 과학 및 철학적 연구의 기제에 자리한 정요한 개념의 획득과 더불어서 논리적인 방법의 훈련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단독의 노력으로는 어렵지만 실제로 교사들의 마음속에 이상이 있다면 결국에는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하는 곳이다. 대학의 정당성은 상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젊은이와 늙은이를 결합시킴으로써 지식과 삶의 향기간의 연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정보를 제공하되 상상력을 통해 제공한다. 인생의 모험은 현대의 복잡한 사회 유기체 내에서의 지적 모험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업의 복잡한 구조에서는 분석이나 상상적 재구성이라는 지적 모험이 어떤 성공적 재조직이든지 성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들은 우리 문명의 개척자들을 훈련시켜 왔다. 대학들의 매개로 인해 행위의 모험이 사고의 모험과 접촉하였다. 대학은 상상력이 살아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전혀 쓸모가 없다. 적어도 유용성 면에서는 말이다. 상상력은 일종의 전염병이다. 교수진들에 의해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대학을 조직하는 방법은 상상력에 의해서 학문을 조명하는 교수진을 갖추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상상력과 학문의 결합은 당연히 약간의 여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괴로운 고민으로 부터의 해방, 어느 정도 다양한 경험 그리고 상이한 의견이나 지식과 다른 정신의 자극이 필요하다. 교육과 연구라는 두 가지 기능이 대학에서 서로 만나는 것은 효율적인 교수진이 이런 조건들의 구성하고 활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육이란 생활의 모험을 위한 훈육이며 연구는 지적 모험이기 때문에 대학들은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모험의 본산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성공을 거두려면 취급하는 지식에 어느 정도 신선함이 을 유지되어야 한다.
과학이란 사고의 유기화이다. 과학이란 두 가지의 원천, 즉 실천의 원천과 이론의 원천에서 비롯된 하나의 상물이다. 실천의 원천은 선결된 목적들을 성취하도록 우리의 행동을 익는 욕구이고 이론의 원천은 이해의 욕구이다. 그러면 이 사고의 유기화란 무엇일까? 사려 깊은 관찰자들을 사로잡은 근대 과학의 일차 측면은 그것이 지닌 귀납적 특성이다. 화이트 헤드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는 과학은 내가 상식적 사고의 전체 장치라고 부른 바에 뿌리를 박고 있다. 둘째, 상식이든 과학이든 간에 경험상 실재하는 바를 어느 정도 고려하면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고의 유기화라는 과제를 진전시킬 수 없다. 과학은 본래 논리적이다. 우리는 논리 이론의 분야를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유비를 빌려서 이런 분냐 혹은 영역을 산수영역, 대수영역, 일방 함수 이론, 해석 영역이라고 한다. 논리적 연구 방법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정교한 연역법의 분야가 아니라 과학의 주요 개면들의 정식화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관찰 없는 논리학, 논리학 없는 관찰은 과학의 정식화를 향해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 한다. 논리학이은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젊은이들에게로 이어지는 올리브 나무이며, 청소년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지팡이는 과학을 창조해내는 마술적 속성을 갖고 있다.
과학의 한 가지 목표는 사고의 조화, 즉 논리적으로 상반된 판단들이 의식의 사고-표현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또 다른 목적은 조화로운 그런 사고의 연장이다. 직접 지각된 대상들은 자연계에서의 일련의 사건들, 즉 연속적 시간 동안 연장된 사건들과 상응한다. 감각-대상들은 시간-관계들과 공간-관계들에 의해서 상호 연관된다. 우리는 가치 판단과 존재론적 판단을 배제하면서 출발하였다. 가치 판단은 물리 과학의 구성의 일부가 아니라, 그 살출을 가능하게 하는 동기의 일부이다. 인류는 과학의 체계를 구성해왔다.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재론적 판단들이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배제 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실 삶의 행위 속에 예외 없이 전제 되어 있다. 과학만이 형이상학적 요청을 보다 긴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과학이론의 특별한 형식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과학은 형이상학자들이 자신들의 결론을 연역하는 전체 증거의 일부에 대한 엄격한 검토를 포함한다.
우리는 관계적 공간의 이론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관점에서 사물들 간의 관계들로부터 얻어지는 논리적 구도들인 근본적인 공간-존재들에 대한 관념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점에 다시 한번 주목한다. 저자는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유일하게 정확한 자료는 우리의 감각적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자신들이 소여된 세계를 그것에 대한 소여된 인식들과 대조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오류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의 문제는 세계를 우리의 인식에 맞추는 것이지 우리의 인식을 세계에 맞추는 게 아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