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상•하
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 2005.12.5
-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고발한 현대의 고전! 「21세기 총서 우리 공동의 미래」 3 번째 시리즈 『구별짓기』
이 책에서는 학력자본, 상징 자본, 사회관계 자본으로 구분해 각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차별적으로 소비되는 현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문화를 통한 실천 특히 예술작품의 수용형태가 취향의 차별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상권에서는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실천의 경제’에서는 방법론적 비판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으로 이루어졌다.
하권에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에서는 계급마다의 실제 적용을 다루고 있다. 부록에는 조사방법과 보충자료를 넣어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 목차
- 상권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문
제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제1장 문화귀족의 칭호와 혈통
제2부 실천의 경제
제2장 사회공간과 그 변형
제3장 아비투스와 생활양식 공간
제4장 장(場)의 역학(力學)
- 하권
제3부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
제5장 차별화의 감각 – 지배계급
제6장 문화적 선의(善意) – 중간계급
제7장 필요한 것의 선택 – 민중계급
제8장 문화와 정치
결론: 계급과 분류
후기: ‘순수’비평에 대한 ‘통속적’비판을 위하여
부록
옮긴이 후기
사진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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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피에르 부르디외
저자 삐에르 부르디외는 1930년 프랑스 남부 딩겐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하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1958년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었으며, 전후에는 알제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였다. 그 뒤 파리 대학에서 레몽 아롱의 조교 생활을 했고, 릴 대학 강사를 거쳐 1964년 30대 초반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교수이자 연구주임으로 취임한 뒤 교육문화사회센터 (1969년에 유럽사회학센터로 개칭)를 창설해 소장 연구자들과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1975년 학술연구 잡지인 『사회과학 연구 논집』을 창간,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예술, 문학, 민족, 언어, 취향,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198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강좌교수에 임명되었고, 2002년 타계하였다.
– 역자: 최종철
역자 최종철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동 대학원 사회학과, 파리-소르본대학 사회학과, 서울 대학교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 역임. 역서로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협소하고도 규범적인 의미의 ‘교양 culture’을 문화인류학적 의미의 ‘문화’ culture의 포괄적인 맥락으로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극히 세련된 대상에 대한 미려한 취향을 음식 맛에 대한 기본적인 취향과 연결하지 않는다면 문화적 실천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21쪽
때로 전형적인 ‘현학적’용어로 예술작품에 대한 ‘독해’라고 불리는 행위의 논리가 위와 같은 대립의 객관적인 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경우 소비는 의사소통과정의 한 단계 즉 판독 또는 해독 행위로서, 이를 위해서는 암호나 약호에 실천적으로 통달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은 지식 또는 개념 즉 단어들에 의해 측정되며, 지식이나 개념들은 보이는 것들을 명명하며, 따라서 지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오직 문화적 능력, 즉 해독의 기준이 되는 약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고 오직 그런 사람의 관심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23쪽
회화나 사진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칸트 미학과는 대극에 놓여 있는 ‘미학’ (이것은 실제로는 에토스이다) 에서 유래한다. 미학적 판단의 특수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칸트는 기쁨을 주는 요소와 희열을 가져다주는 요소, 더 일반적으론느 대상을 주시하는 말 그대로의 미학적 특징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요소인 무사무욕과 선을 규정하는 이성의 이해관심을 구분하려고 노력한 반면 민중계급은 모든 이미지가 분명하게 하나의 기능을 하기를 (단지 기호로서만 가능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바라며, 도덕규범이나 기꺼움 등을 참조로 하여 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흔히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난하건 칭찬하건 이들의 음미는 항상 윤리적 토대를 갖고 있다.-28쪽
취향과 문화 소비를 연구하는 과학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침범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시작된다. 즉, 음악이나 음식, 회화, 스포츠, 문학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선호도처럼 얼핏 보기에는 전혀 같은 잣대로 잴 수 없어 보이는 ‘선택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는 관계를 이해가능한 형태로 드러내려면 정통 문화를 고립무원의 독립된 우주로 분리시키고 있는 성스러운 경계선을 없애버려야 한다. -30쪽
제1장 문화귀족의 칭호와 혈통 中 – 측정된 능력이 학교 교육제도에 의해 공인될수록, 그리고 측정기술 (39)이 ‘학교적일수록’ 수행 능력 performance과 학력자격 titre scolaire간의 관계는 밀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햇수를 표시하는 지표로 기능하는 이 학력자격은 가족으로부터 상속되는가 아니면 학교에서 획득되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문화자본을 완벽하게 보증해주며, 이 문화자본의 지표가 된다.-39쪽
학력 귀족이 보기에 ‘교양인’의 본질에 스스로의 삶을 일치시킨다는 이야기는 곧 교양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 교양인이라는 말 속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가 되는데,각 칭호의 위광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조건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학교 교육체계가 정통적인 독학을 목표로 제시하고 그에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은 전혀 역설적인 일이 아니다.-58쪽
‘일반 교양’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이러한 정통적인 독학은 (각 부문, 과목, 전공 또는 등급간에 존재하는) 교육의 위계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그만큼 강력하게 요구된다. ‘정통적 독학’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는 모순적인 표현인데,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높이 평가되는 학력자격증 소지자의 ‘자유 교양’과 독학자의 비정통적인 자유 교양 간의 종적인 차이를 가리키 위해서다.-58쪽
비정통적 자유 교양의 사회적 부가가치는 오직 기술적 효율성의 정도만큼만 가치화되며, 따라서 사적 공간이나 가정이라는 우주를 벗어나 공인된 능력과 경합을 벌일 때마다 (무자격 의사에 대한 제재처럼) 법적인 제재에 노출된다. 그러한 교양이 독학에 의해 축적된 지식이건, 아니면 요리법이나 식물재배법, 공예가의 기술 또는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 (58)할 수 없는 전문지식처럼 실천 속에서 또 실천을 통해 그리고 특히 특정한 실천을 주입하고 그러한 실천의 획득여부를 공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의 통제 밖에서 획득하는 ‘경험’이건 상관이 없다.따라서 이것은 공식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보장하는 학위증 (고급기술자 자격증을 예로 들 수 있다)의 암묵적인 규정 속에 명기되는데, 이러한 자격증은 그 소유자가 ‘일반 교양’을 즉 자격증의 권위가 보장해주는 만큼 폭넓은 일반 교양을 소유하고 있음을 실제로 보증해준다.-58, 59쪽
학력이나 등급 구분에 의한 공식적 차이는 분류되는 각 개인들에게 누구나 그러한 차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음으로써 실제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또는 재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해 실제적인 존재를 공인된 존재와 일치시키려는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일기를 쓰거나, 진한 화장을 하는 일, 극장에 가는 일, 또는 댄스홀에 가는 일, 시를 쓰거나 럭비를 하는 일 등 제도의 명확한 요구사항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들도 다양한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는 암묵적인 요구로서 교육기관 안에 할당된 위치 안에 각인될 수 있다. -60쪽
이러한 매개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교사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대와 동료집단의 압력을 꼽을 수 있는데, 다시 이들의 윤리적 성향 자체는 교육기관에 의해 도입되고 재강화되는 집단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할당효과와 이 안에 담겨있는 신분배분 효과는 분명 학교 안에서는 가르치지도 않고 심지어는 명확하게 요구하지도 않지만, 신분 (60)이 가리키는 위치에 부여되는 속성과 그러한 위치가 부여해주는 각종 자격증이나 또는 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 등으로 구성된 문화적 실천을 성공적으로 강제하는 데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60, 61쪽
의문의 여지없이 이러한 논리는 특수한 부류의 작품들, 즉 학교의 기본도서목록에 의해 공인된 문학작품이나 철학저서와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획득한 정통적 성향이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 문학처럼 그보다는 덜 정통적인 작품이나 또는 영화처럼 그보다는 학교의 공인을 적게받는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중략) 영화감독의 이름처럼 ‘쓸데없는’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적성이나 능력이, 수입이나 주거장소 그리고 나이에 따라 크게 빈도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영화관람보다는 학력자본과 밀접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61쪽
영화감독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영화관람보다는 문화자본고 한층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략) 영화관람도 학력자본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하지만 박물관 관람이나 연주회에 가는 일만큼 그렇게 크게 (62) 달라지지는 않는다. 소비형태의 차이만으로는 다양한 학력자격증 소지자간에 나타나는 영화감독에 대한 지식의 차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결론은 재즈, 만화, 추리소설 또는 공상과학 (sf) 소설처럼 이제 막 문화적으로 성별되기 시작한 장르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62, 63쪽
이러한 능력은 본질적으로는 일부 ‘영화광’이나 ‘재즈 팬들’이 몰두하고 있는 ‘아카데믹한’ 노력 (예를 들어 영화의 판권 안에 언급되는 내용을 카드식 상자에 일일이 베껴놓는 일을 들 수 있다)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다. 이런 능력은 흔히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통 문화를 몸에 익히거나 주입받으면서 획득한 성향을 바탕으로 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무의식적 학습을 통해 습득된다. 결국 이러한 성향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지각도식과 평가도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도 이항가능하며, 따라서 이러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다른 문화적 경험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대하도록 하며, 각 경험을 상이하게 지각 (64)-64쪽
하고, 분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똑같은 영화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버트 랭커스터가 나오는 서부 영화’라고만 이야기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존 스터게즈 감독의 초기작품’또는 ‘샘 펙킨파의 최신작’이라고 말한다. 이때 어떤 부분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따라서 제대로 영화를 보는 올바른 방식을 정할 때, 각자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계급 전체 (‘그 영화 봤니?’나 ‘그 영화는 꼭 봐야 돼’하는 식의 말을 통해 지침을 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그리고 각 집단에 의해 정통적인 분류 방법과 거명할 만한 예술적 향유에는 반드시 따라다니게 되는 담론을 생산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비평가 집단의 협력을 통해 지침을 얻는다. 따라서 학교에허 가르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도 않는 문화적 실천들이 학력자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변화하는 이유 또한 이런 식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65쪽
극히 헌신적인 ‘영화광’은 문화자본을 물려받은 쁘띠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감독이나 영화배우에 대한 이들의 지식은 해당 영화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훨씬 넘어선다. 공무원의 약 31%가 보지도 않은 영화배우의 이름을 거명했으며, ‘의료보건 서비스직 종사자’의 약 32%가 보지도 않은 영화감독의 이름을 거명했다. -64쪽
작품이해와 평가는 분명히 소유자의 의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지지만, 이 의도 자체는 이미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상황에서 예술 작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실천적 규범과 이러한 규범에 적응할 수 있는 소유자의 능력 즉 예술적 훈련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예술작품을 ‘순수하게’예술 작품 자체로 지각한다는 이상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예술 영역에 자리잡게 되는 진정 미학적인 정통성을 구성하는 원리들이 공표되고 체계화된 결과란 점을 간파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오늘날 미적 지각 양식은 ‘순수한’형식을 획득했지만 이 형식 자체가 이미 예술 생산양식의 특정한 상태에 조응하고 있다. 기능에 대한 형식의 절대적 우위.-68쪽
‘교양 있는’ 관람객들의 구별 distinction에 관심을 갖는 것은 외적인 요구 (이것은 수수료라는 형태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에 맞서 자신의 자율성을 고수하고, 기능보다 자신이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고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을 통해 순수한 형태의 예술로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형식을 우선시하려는 예술가의 관심 (생산의 장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이것도 증가하게 된다)과 비견될 수 있다.-72쪽
대중 ‘미학’中 – 문화자본이 전혀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분파들이 모든 종류의 형식 실험 recherche formelle에 대해 갖게 되는 적대감은 연극과 회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 두 부분보다 훨씬 더 정통성이 없는 사진과 영화에서는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73쪽
사진의 가치는 각 사진이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관심과 이러한 정보전달 기능을 명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도, 간단히 말해 정보의 가독성에 의해 측정되는데, 이 가독성은 그 자체가 정보의 의도나 기능의 가독성에 따라 변화하며, 따라서 각 정보에 대한 평가는 시니피에에 대한 시니피앙의 표현상의 적합성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사진에는 제목이 붙어있으리라고 기대되며,또는 실제로 사진에는 표제가 붙어있어 사진으로 찍힌 내용이 의미하려는 내용을 제대로 드러내고 전달해주는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90쪽
예술적 의도를 생활양식의 토대로 간주하는 유미주의는 일종의 도덕적 불가지론, 즉 예술을 생활양식의 가치에 종속시키는 윤리적 성향에 대한 완벽한 반ㅡ명제를 함취하고 있다.-97쪽
‘통달한 사람’ connaisseur의 능력은 문화획득 도구를 무의식적으로 완숙하게 다루는 데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대상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획득하며, 바로 이것이 작품과 친숙해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 능력이 바로 기예로 이것은 사유방식이나 생활양식처럼 결코 지침이나 처방으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실제적인 숙련을 의미한다.-132쪽
모든 제도화된 학습은 어느 정도의 합리화를 전제하는데, 이것은 소비되는 재화와의 관계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유미주의자의 지고지순한 쾌락은 얼마든지 개념규정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초심자’의 아무 생각 없는 쾌락 (이것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이라는 신화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찬미된다)만큼이나 쁘띠 부르주아와 ‘벼락부자’ parvenu의 소위 무쾌락적인 사유와도 대립된다. 이들은, 막상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정말 시시콜콜히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영화광처럼 항상 경험보다는 지식을 우위에 놓으며, 작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작품감상을, 다시 말해 훈련 askesis을 위해 감각 aisthesis을 희생하는 금욕주의적 타락의 형태에 노출되어 있다. -133쪽
획득양식의 효과는 가구, 의복, 요리처럼 일상생활에서 진행되는 통상적인 선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것들이 옛날부터의 뿌리 깊은 성향을 특히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이유는 교육체계가 개입할 수 있는 장의 바깥에 놓여 있는 이것들이 실제로 노골적인 취향에 직면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취향에서는 주간여성지나 ‘이상적인 가정’을 단골 주제로 다루는 잡지처럼 정통적이지 않으면서도 정통성을 실현하기 위한 심급들 instances 말고는 취향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나 요구를 찾아볼 수 없다.-155쪽
문화적 자기투자 (예를 들어 독학)-163쪽
구식 독학자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문화에 대한 경외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실제로 이 경외감은 어릴 적에 급격하게 정통적인 학교교육으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항상 문화에 대해 열렬한, 하지만 터무니없는 숭배의식을 갖고 있지만, 정통 문화의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숭배를 기이한 충성서약으로 생각하게 된다.-165쪽
자신의 창의적인 노력에 의한 철저한 사숙이나 독학을 통해 너무 이른 시기에 야만적으로 단절되어버린 궤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려는 독학자들이 정통 문화와 그 문화의 담당자인 교육기관 당국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는, 배제된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줄 수 있는 체계의 낙인이 찍혀 있다. 이와 반대로 신식 독학자들은 흔히 교육체계에서 상당히 놓은 수준에까지 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오랜 기간 고생만 하지 제대로 대가를 돌려받지 못하는 재학기간을 통해 정통 문화로부터 ‘해방되는’ 동시에 서서히 미몽에서 깨어나, 이 문화와 친밀한 동시에 환상에서 깨어나는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멀리서 경외감을 감추지 못하는 구식 독학자들의 태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물론 구식 독학자들처럼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자기 투자를 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 즉 학교 교육체계에 의해 외면당하고 무시되는 영역에 투자한다.-166쪽
고전음악이나 재즈, 연극 또는 영화 등에 대한 특수한 능력은 상이한 시장 즉 가정, 학교 또는 직업시장이 그 능력을 축적하고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에 따라, 다시 말해 각 시장이 이러한 능력의 획득을 강화하고, 새로운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이윤을 약속하고 보증해줌으로써 그러한 능력을 획득하도록 촉진시킬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170쪽
영화나 재즈, 더욱이 만화나 SF 소설 또는 추리소설과 같은 ‘중간수준’의 예술은 문화자본을 학력자본으로 전환하는데 완벽하게 성공했거나 정통적인 방식으로 (즉 어릴 적부터 익숙해짐으로써) 정통 문화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두 면에서 모두 정통 문화와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172쪽
분석도구에 대한 성찰적 분석은 인식론에 특유한 섬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것이다. 실증주의적인 태만함에 몸을 맡기면 확인된 관게의 측정조건 자체를 문제시하는 대신 그러한 관계의 강도를 소극적으로 검증해보려는 노력으로 그치고 말게 된다. 측정 조건 자체를 문제시하는 경우에만 다양한 관계들의 상대적 강도를 설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184쪽
문화 능력은 각 능력의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인 사회적 시장에서 획득되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되며, 따라서 문화를 둘러싼 모든 투쟁의 목표는 행동양식을 통해 획득조건의 몇몇 특수한 요인들 쪽으로, 즉 특수한 시장의 특징이 뚜렷이 새겨져있는 생산물에 가장 유리한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쪽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오늘날 ‘대항문화’라고 불리는 것은 학교시장의 제약요소 (신식 독학자들만큼은 자신감이 없는 구식 독학자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의 특징을 미리 규정짓는 이러한 제약요소에 그대로 복종하고 만다)로부터 벗어나려는 새로운 유형의 독학자들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187쪽
이들은 전혀 다른 시장을 창조함으로써 그렇게 하려고 한다. 사교계나 지식시장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독특한 서열화와 성별을 행하는 기관과 행위자들을 갖고 있는 이 시장은 문화상품 시장을 완벽하게 통일함으로써 학교시장이나 또는 최소한 극히 ‘학교적인’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능력과 행동 방식의 평가원리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체계의 의도에 도전할 수 있다.-187쪽
경제자본과 문화자본,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문화자본의 보증된 형태인 학력자본과 경제자본과의 괴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교수층이 사회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향을 이루는 기초들 중 하나인데, 그 사회 질서는 교수들의 존재를 승인했던 학력체계의 원리들과는 다른 분류원리를 승인하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을 완전히 승인하지 못한다.- 479쪽
○ 출판사 서평
문화-자본-계급이 물고 물리며 순환적으로 규정하고 규정당하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마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그려 보이는 현대의 고전이다. 자본이 주도하는 정치의 핵심적인 장이 문화임을 실증하고 각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의 특성, 문화와 정치의 관계, 계급과 분류에 관해 살피고 있다.
서구의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보이는 과도한 담론 중심주의나 구조주의의 한계를 멀찍이 벗어나, 부르디외는 이론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권력이나 사회계 층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지를 이론내재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분석해낸다. 이 책 전체를 통해 항상 정치는 문화이며 문화는 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방대한 자료 분석을 동원해가며 입증해 보인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만큼 계급에 따라 철저하게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문화만큼 만인이 향수할 수 있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소위 “문화적 공산주의”의 환상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 부분도 없다. 매우 난해한 고전음악이나 소위 ‘뽕짝’을 틀어놓고 몇 사람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출신 계급과 사회적 궤적 전체를 추적할 수 있다.
원래 한 권으로 된 두꺼운 책이지만 편의상 1, 2부가 상권, 3, 4부가 하권으로 분리되어 출간되었다. 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2부 ‘실천의 경제’에서는 방법론적 비판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3부 ‘계급과 분류’에서는 실제 적용을 다루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