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군주론 / 만드라골라 /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 연암서가 / 2017.11.20
– 인간 본성과 권력의 이면을 고발하는 통렬한 비유! 탁월한 문학적 심미안으로 재해석한 ‘군주론’, ‘군주론’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희극 작품 ‘만드라골라’, ‘군주론’의 속편 격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한 권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파격적인 통치의 기술과 권모술수를 더 강조하기 때문에 1531년 첫 출간된 이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같이 정치(사실)와 윤리(가치)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거울 책자라고 했는데, 이 책은 우리 독자에게도 하나의 거울이 된다. 『군주론』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욕망의 거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기존에 『군주론』을 읽어온 독자들 중에는 나폴레옹, 레닌, 무솔리니 같은 통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그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매혹 혹은 반감을 느껴왔다. 이 책을 읽고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독자의 자아의식과 아이덴티티가 은연중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군주론』을 거듭 읽으면, 우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은 정치학 책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서양의 문학적 전통이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문학 작품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학적 텍스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마키아벨리는 한 정체 (政體)가 끝나고 다른 정체가 시작되려는 시대에 살았기에 일단 이탈리아 내에 통일된 군주국가가 창립되면 그 통치자들을 설득하여 공화정부에 권력을 이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최초의 근대 군주국을 이탈리아 중심부에 수립, 유지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필요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1513년 봄 『로마사론』을 처음 쓰기 시작하다가 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그 해 후반에 『군주론』을 집필했다. 이 때문에 『군주론』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왜곡하기가 쉽다. 그는 군주국과 공화국의 두 정부 형태가 서로 다른 역할에서 장점이 있다고 보았다. 『군주론』 이외에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배경을 좀 더 명확히 알려면 『로마사론』, 『만드라골라』,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같은 마키아벨리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읽어서 그의 진의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기존의 번역본들이 마키아벨리의 도덕 혹은 부도덕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로 파악하면서, 이 책의 주인공으로 체사레 보르자를 내세우고 그를 통해서 포르투나, 비르투, 네체시타의 3각 관계를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 목차
*군주론
*만드라골라
프롤로그
제1막
제1장 칼리마코, 시로
제2장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제2막
제1장 리구리오, 니차 씨, 시로
제2장 칼리마코,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니차 씨, 시로
제4장 시로 혼자서
제5장 니차 씨, 시로
제6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니차 씨
제3막
제1장 소스트라타, 니차 씨, 리구리오
제2장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티모테오 신부, 한 여인
제4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5장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제6장 리구리오,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제7장 니차 씨 혼자서
제8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9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10장 소스트라타, 루크레치아
제11장 티모테오 신부, 루크레치아, 소스트라타
제12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4막
제1장 칼리마코 혼자서
제2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제3장 칼리마코, 시로
제4장 칼리마코 혼자서
제5장 시로, 리구리오, 변장한 신부, 칼리마코
제6장 변장한 신부 혼자서
제7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시로
제8장 변장한 니차 씨
제9장 리구리오, 니차 씨, 변장한 신부, 시로
제10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5막
제1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2장 니차 씨, 칼리마코, 리구리오, 시로
제3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4장 칼리마코, 리구리오
제5장 니차 씨, 루크레치아, 소스트라타
제6장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루크레치아, 칼리마코, 리구리오, 소스트라타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연보
용어·인명 풀이
작품 해설:『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거울

○ 저자소개 :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 Niccolo di Bernardo dei Machiavelli)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 음악가, 시인 그리고 희곡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운동이 최고봉에 달했던 15세기 중반, 1469년 5월 3일. 마키아벨리는 ‘유럽의 꽃밭’이라 불린 피렌체에서 법학자인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와 바르트로메아 데 네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98년 약관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00년 7월에 처음으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던 그는 3년 뒤에 로마로 파견되어 체사레 보르자의 도움으로 교황에 선출된 율리우스 2세가 무모할 정도의 단호한 행동으로 세력을 직접 확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512년 스페인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해 메디치 정부를 몰아내려다 실패로 끝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고 투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메디치 가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에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것은 실제 정치 이론을 반영 묘사한 그의 단편 The Prince [군주론]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그의 사후인 1530년대 초반에 인쇄되었는데,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친구들에게 작품을 돌렸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6세기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을 받는 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책, 군주론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후대에 냉혹한 정치, 술수 그리고 권력 추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며, 군사전략가이자 사상가이며, 저술가이자 문학가였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명성은『군주론』을 통해 형성되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프랑스의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교황 율리우스 2세,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를 직접 만난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군주가 이탈리아의 내부 분열을 종식시키고 조국의 안정을 찾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기대를『군주론』이라는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탄생시켰다. 무릇 정치사상이란 그 사상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는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살던 피렌체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그가『군주론』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즉 혼란했던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군소 국가들 간의 대립, 외세의 침략 등 어지러운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이 강력한 군주로 등장해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 피렌체를 구해 줄 것을 염원하는 바람이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는 담겨 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문예의 토양을 바탕으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희곡 『만드라골라』를 통해 부패한 지도층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는 이탈리아 연극 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내 영혼보다 조국 피렌체를 더 사랑했다.”고 고백한 그는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정직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성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마키아벨리는 1520년 『피렌체사』집필을 시작하여, 1527년 메디치 군주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으나 6월 21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를 개탄, 강력한 군주 아래 통일되기를 열망하며 『군주론』, 『전술론』, 『로마사론』등의 명저를 남겼다.
– 역자: 이종인
역자 이종인은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전쟁터로 간 책들』, 『신의 사람들』, 『로마사론』, 『호모 루덴스』, 『중세의 가을』, 『평생독서계획』,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신의 용광로』, 『게리』, 『정상회담』,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고전 읽기의 즐거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성서의 역사』, 『축복받은 집』, 『만약에』, 『영어의 탄생』, 『그리스인 조르바』 등이 있고, 편역서로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 『번역은 글쓰기다』, 『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지하철 헌화가』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군주의 은혜를 구하려는 자들은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나, 혹은 군주를 가장 흡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바치는 게 관례입니다. 따라서 그런 이들은 보통 말, 무기, 황금 옷, 보석, 그 외에 존귀한 분께 적합한 유사한 수준의 장신구 등의 물품을 헌상합니다. 저 역시 위대한 로렌초 님께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언제든지 기꺼이 섬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를 바치고자 합니다. 제게 귀중한 물품이 있나 고심하며 살펴보았지만, 오늘날의 정세에 관한 오랜 경험,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고대사에 관한 독서를 통한 위인의 행적에 관한 지식 외에는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이런 일들에 관해 세심하게 고찰하고 정밀하게 검토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런 제 생각을 압축한 작은 책을 위대하신 분께 바치고자 합니다. 비록 이 책이 로렌초 님의 위광에 멀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비롭게 이 책을 받아주시고 흡족히 여겨 주시길 기원합니다.-29쪽
신분이 낮은 자가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군주에게 유익한 조언을 제시하는 것을 주제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기원합니다. 화가는 풍경을 그릴 때 산과 언덕의 진정한 경관을 보기 위해 일단 낮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계곡 일대를 굽어보기 위해서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 아래에 있는 백성을 잘 알려면 저 높은 곳에 있는 군주의 입장이 되어야 하고, 반대로 군주를 잘 알려면 저 아래에 있는 백성의 관점으로 올려다보아야 합니다.-30쪽
과거나 현재에 백성을 지배한 모든 국가와 정부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공화국과 군주국이 그것이다. 군주국 역시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군주의 가문이 오랫동안 통치를 해온 세습 군주국이고 다른 하나는 신생 군주국이다. 신생 군주국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밀라노 같은 완전히 새로운 국가이거나, 아니면 스페인 왕국이 나폴리 왕국을 병합했던 것처럼 기존의 세습 군주국이 새롭게 획득한 영토를 자신의 왕국에 병합한 국가이다. 새롭게 획득된 이런 부류의 국가들은 군주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것에 익숙하거나, 아니면 자유롭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 새 영토의 획득은 남의 무력이나 자기 자신의 무력으로 얻은 것 혹은 포르투나나 비르투에 의한 것이 있다.-31쪽
로마는 지역을 점령할 때마다 위와 같은 방침을 따랐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식민지를 건설하고, 약자들의 욕구를 채워주면서도 힘을 갖지 못하게 했고, 강자를 무너뜨리고 다른 강력한 외부 세력이 로마가 획득한 땅에서 추종자를 만들 수 없게 예방했다. 나는 이 점에 관해선 로마 인들이 그리스 지역의 점령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몇 가지 사례만 보여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카이아 인들과 아이톨리아 인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마케도니아 왕국을 꺾고 안티오코스를 그리스에서 몰아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카이아 인들과 아이톨리아 인들이 그리스 지역에서 어떠한 권위도 갖지 못하게 했으며, 필리포스 5세의 영향력을 꺾어놓기 전까지는 우방이 되고 싶다는 필리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안티오코스가 로마의 점령 지역 내에서 그 어떤 거점도 얻지 못하게 했다. 이런 각각의 사례에서 로마 인들은 현명한 통치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들은 현재에 발생하는 문제뿐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문제도 주시하면서 장래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미리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견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문제가 완전히 상황을 장악하면 해결책은 없게 되어 일종의 불치병에 걸리는 것이다. 의사들이 폐병에 관해 말하는 바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폐병은 초기엔 발견하기 어려우나 일단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면에,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병만 키워서 말기가 되면 증세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치료하기는 어렵다. 나랏일도 마찬가지이다.-39쪽
군주와 정체(政體)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논함에 있어서, 나는 아주 위대한 정복자들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사람은 거의 항상 남들이 지나갔던 길을 따르고, 모방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형성하길 좋아한다.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의 진로를 그대로 따라갈 수가 없고 또 모방하려는 위인의 비르투를 백 퍼센트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신중한 사람은 늘 위인의 발걸음을 따르고 탁월한 자를 모방하려고 한다. 그의 비르투는 역할 모델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에 육박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중한 사람은 능숙한 궁수와 공통점이 있다. 능숙한 궁수는 목표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하고 활의 비르투를 고려하여 실제 목표보다 훨씬 높게 겨냥한다. – 본문 중에서
단순히 포르투나 덕분에 일개 시민에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그 과정에서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막상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군주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그 어떤 문제도 겪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그들이 군주의 자리에 앉은 뒤부터 발생한다. 이런 이들은 돈으로 국가를 사들이거나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받은 국가를 통치하게 된다. 이런 일은 그리스의 이오니아와 헬레스폰트에서 자주 발생했는데, 다리우스가 제국의 안전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곳에 아주 많은 현지 군주를 두었기 때문이다. 일부 로마 황제는 일개 시민이었으나 자신이 소속된 군대를 돈으로 타락시켜 황제의 지위에까지 올라갔다. 이런 부류의 군주는 그들을 그 자리에 밀어올린 사람들의 선의와 포르투나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선의와 포르투나)는 아주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것이다.-57쪽
시민 군주국은 보통 절대 군주정으로 변모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위험을 겪는다. 그런 상황에서 군주는 직접, 혹은 행정관을 통해 명령을 내리는데, 후자의 경우 군주의 자리가 더욱 허약해지고 위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행정관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난국에 빠지게 되면 행정관들은 직접 군주에게 맞서거나 복종을 거부함으로써 군주를 내쫓을 수 있다. 군주는 일단 자신의 통치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면 절대적인 명령권을 장악할 기회가 없게 된다. 위기가 닥쳤을 때 행정관에게 복종하는 것에 익숙한 백성들은 군주에게서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군주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뢰할 사람이 늘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군주는 평화 시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운 시기에 사람들은 국가가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또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모두가 앞에 나서서 기꺼이 군주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창하게 약속을 내건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다가와 국가가 정말로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오로지 소수만이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려 할 뿐이다. 이런 부류의 위기는 특히 위험한데, 군주는 목숨을 잃어 그런 위기를 또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모든 부류의 백성이 어떤 상황에서든 국가와 자신을 의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늘 그들을 신뢰할 수 있다.-76쪽
승리할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면 외세의 지원군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그들은 용병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하면 파멸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복종하도록 훈련받은 치밀한 조직이다. 승리한 용병은 고용주를 공격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과 좋은 기회를 필요로 한다. 용병 부대는 통일된 조직이 아니라 대장이 고용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병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자를 용병 대장에 임명하면 그는 고용주에게 큰 피해를 입힐 정도의 권위를 즉각 확립하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용병을 데리고 있을 때 그들의 비겁함은 당신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외세의 지원군을 데리고 있을 때 그들을 불러들인 군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비르투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늘 이런 군대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군대를 활용하며, 다른 세력의 지원군으로 승리하느니 자신의 정규군으로 패배하는 걸 선호한다. 외세의 군대로 승리하더라도 진정한 승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93쪽

전쟁과 그에 관한 원칙 및 훈련 이외에 군주가 다른 목표, 다른 생각, 다른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명령하는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기술이자, 무척 중요한 비르투이기도 하다. 이것은 군주의 지위를 세습한 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종종 일개 시민을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군주가 전쟁을 중시하지 않고 고상한 삶에 더 몰두하면 그 지위를 잃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국가를 잃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쟁의 기술을 소홀히 하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다. 군사 지도자였기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일개 시민에서 밀라노 공작이 될 수 있었다. 그를 계승한 자들은 전쟁의 고단함을 피하려고 했으므로 공작 자리에서 일개 시민으로 전락했다. 국가의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여러 해악이 생기는데, 그중 하나는 경멸받게 된다는 것이다. 뒤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은 군주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모욕 중 하나이다. 무장을 한 자와 무장을 하지 않은 자 사이엔 균형이 있을 수 없다. 무장한 자가 무장하지 않은 자에게 복종한다거나, 무장한 부하들 사이에서 무장하지 않은 지도자가 안전한 경우는 있을 수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97쪽
군주가 대신을 판단하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대신이 군주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고, 매사에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 하면 그자는 절대 훌륭한 대신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자는 신뢰해서는 안 된다. 군주의 정부를 운영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군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의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한편 계속하여 대신의 충성을 받고자 하는 군주는 반드시 그 대신이 번영하고 명예롭게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군주는 대신을 부유하게 하고, 많은 책임을 주는 등 특별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대신은 군주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이미 많은 명예를 받아 더 명예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이미 많은 부를 쌓아 더 부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이미 많은 책임을 지녔기에 현 상황의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다. 군주와 대신이 이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그들은 서로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은 늘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141쪽
군주가 지극히 신중하거나 무척 현명한 조언자를 곁에 두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실수가 하나 있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여기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자 한다. 궁정엔 늘 아첨꾼이 가득하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를 중시하여 그 관심사에 대하여 쉽게 자기 자신을 속이므로, 아첨이라는 전염병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게다가 아첨을 멀리하려고 하다가 경멸을 불러오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아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말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점을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군주는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신중한 군주는 제3의 방책을 써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현인들을 자문 위원회에 영입하여 그들만 진실을 말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직언은 오로지 군주가 물어보는 것에만 한정하도록 해야 한다.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고, 끝까지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숙고한 뒤에 자신의 방식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문 위원회와 그곳에 속한 현인들을 대할 때 군주는 자문 위원들이 더 자유롭게 그들의 생각을 제시하면 더욱 흡족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자문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말도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군주는 논의 중인 문제의 핵심을 짚어야 하며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와 다르게 처신하는 군주는 아첨꾼들에게 성가시게 시달리거나 서로 다른 주장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주는 거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142쪽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통제되어 있고,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그런 일에 효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실제로도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왔고, 또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무슨 일이든 땀 흘릴 필요가 없으며, 만사를 운수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의견은 우리 시대에 널리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동안 경험한 공적인 일에서 엄청난 변화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때로는 나조차도 그런 의견에 마음이 솔깃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 나는 포르투나가 우리 행동의 절반을 통제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통제력에 맡긴다는 주장을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포르투나를 파괴적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하겠다. 노호하는 강물이 흘러넘치면 평원이 잠기고, 나무가 뜯겨 나가고, 건물이 무너지며, 땅이 여기서 쓸려나가 저기에 가서 쌓인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맞서지 못하고 격류가 닥치기 전에 도망치거나 그 맹렬한 공격에 굴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날씨가 좋을 때 홍수에 관한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제방과 댐을 강화하여 범람이 일어났을 때 물길을 돌리거나 물을 가두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조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포르투나는 자신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은, 즉 아무런 비르투도 없는 곳에서는 자신의 위력을 백 퍼센트 행사한다. 또한 제방과 댐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지 흘러들어가 마구 다 부수어 버린다. 이 모든 거대한 변화의 근원이자 그런 모든 변화가 시작된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그곳이 제방이나 댐이 없는 탁 트인 평야 지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처럼 적절한 비르투의 힘으로 보호되었다면 절대 그런 홍수가 이탈리아를 그토록 심하게 파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아예 그런 홍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포르투나에 저항하는 일반적 원론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148쪽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관객 분들께 은총이 깃드시길! 이런 호의는 우리가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려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지금처럼 계속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이 도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에 관해 말씀드릴 겁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세요. 이곳은 여러분이 계신 피렌체이지만, 다른 때엔 로마나 피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될 거예요.
제 오른편에 있는 이 문은 부에티우스에게서 많은 법률 지식을 습득한 법관님의 집으로 통하죠. 저 모서리로 이어지는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곳이죠. 다음에 여러분은 한 신부님을 보게 될 건데, 여길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으신다면 반대편에 있는 교회에 사는 그분이 어떤 부류의 수도원장인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칼리마코 과다니는 파리에서 막 도착한 청년인데, 왼쪽 문이 있는 곳에 살고 있어요. 그는 다른 어떤 영리한 청년들보다도 명예와 예의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한 분별 있는 젊은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는데, 여러분도 앞으로 보시게 될 것이지만, 그녀를 속였죠. 그런데 저는 여기 계신 숙녀 분들도 그녀처럼 속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164쪽
역사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고 당대에 탁월했던 사람들 전부, 혹은 대다수가 그 태생이 미천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포르투나에 무참히 시달렸다는 점을 알고 경탄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야수들에게 노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보잘것없는 혈통을 지녀 스스로 제우스나 그 외의 다른 신들의 혈통이라고 둘러대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많은 이들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도 용납하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프로투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포르투나는 위인을 만드는 건 당사자의 신중함이 아니라, 포르투나 자신이라는 점을 세상에 보이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신중함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때 힘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모든 위업은 그녀의 공로가 된다. 루카(Lucca)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도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시기와 그가 태어난 도시의 기준에 따른다면 말이다. 앞으로 그의 생애를 서술해 나가면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다른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행복하거나 이름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시 회상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측면 모두에서 아주 빼어난 점을 그의 생애에서 많이 찾아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것을 전하려고 한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 당신들이 그가 비르투를 발휘한 행위를 크게 기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257쪽
카스트루초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변해 갔고, 매사에 유능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고, 안토니오의 지도 아래 나이에 비해 빠르게 많은 일을 배웠다. 안토니오가 그를 지도했던 건 장차 신부로 만들어 때가 되면 자신의 참사회원 자리와 그 외의 다른 성직을 맡기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카스트루초가 신부의 재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열네 살이 되자 안토니오에게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대했고 디아노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 서적은 제쳐놓고 무기를 다루느라 분주했다. 카스트루초는 무기를 다룰 때나 친구들과 함께 달리고, 뛰어오르고, 씨름이나 그와 비슷한 운동을 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했다. 또한 힘이 장사여서 또래의 그 어떤 아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완력이 강했다.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이나 위인들의 업적을 다룬 책들 말고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아버지 안토니오는 엄청난 고통과 번민을 느꼈다.-259쪽
카스트루초는 감옥에서 풀려났고 거의 루카의 군주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하지만 그는 신중하게 생각했고, 곧 친구들의 도움과 시민들의 새로운 지지 덕분에 1년간 루카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쟁으로 명성을 드높이고자 했던 카스트루초는 총사령관이 되자 우구초네가 떠난 뒤 반란을 일으킨 루카의 많은 도시를 무력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동맹을 맺은 피사 인들의 지원으로 그는 사르자나 (Sarzana)를 포위했다. 그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카스트루초는 도시 근처에 요새를 세웠다. 이 요새는 나중에 피렌체 인들이 강화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엔 사르자넬로라고 부른다. 그는 사르자나를 포위한 지 두 달 만에 함락시켰다. 그런 신속한 승리가 가져다준 명성 덕분에 그는 계속하여 마사, 카라라, 라벤자를 정복하여 아주 빠르게 루니지아나 전역을 석권했다. 그는 롬바르디아와 루니지아나를 잇는 길에 접근하기 위해 폰트레몰리를 점령한 뒤 그곳의 통치자인 아나스타지오 팔라비시니를 쫓아냈다. 그가 이런 놀라운 전공을 올리고 루카로 돌아오자 모든 시민이 그를 환영했다. 더는 루카의 군주가 되는 걸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카스트루초는 파지노 달 포지오, 푸치넬로 달 포르티코, 프란체스코 보칸사치, 세코 귀니지 같은 루카의 명사들을 지지 세력으로 매수하여 도시의 통치자로 올라섰고, 시민들의 엄숙한 선언에 의해 도시의 군주로 선출되었다.-267쪽
카스트루초의 승전 소식을 듣게 된 피스토이아 인들은 곧장 교황당원과 우호적으로 지낸 자들을 몰아내고 카스트루초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카스트루초는 아르노 강 북쪽에 있는 프라토 (Prato)와 평원의 모든 마을을 점령했고, 이어 피렌체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페레톨라의 평원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여러 날 동안 카스트루초는 그곳에서 전리품을 나누고 승전을 기뻐했다. 또한 피렌체 인들을 조롱하기 위해 기념 메달을 찍어내고 경마, 경주, 매춘부 경주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카스트루초는 일부 피렌체 귀족들을 매수하여 밤중에 피렌체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음모가 발각되어 토마소 루파치와 람베르투초 프레스코발디는 피렌체 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되었다.-277쪽
한번은 카스트루초가 나폴리 국왕의 사절을 상대로 추방자들의 재산에 관해 논의 중이었다. 그런데 약간 화가 난 사절은 카스트루초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국왕 폐하가 두렵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다시 물었다. “국왕께선 선한 분인가, 악한 분인가?” 사절은 당연히 선한 분이라고 대답했고, 카스트루초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자, 그렇다면 자네는 왜 내가 선한 분을 두려워하길 바라는가?”
기지와 위엄을 보여주는 카스트루초에 관한 다른 많은 일화를 더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위대한 자질을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는 44년을 살았고 운수가 좋았든 나빴든 모든 점에서 군주였다. 그의 행운을 증거하는 기념물이 많이 있지만, 그는 불운에 관해서도 기념물을 남기고 싶어 했다. 이런 이유로 그가 과거에 수감되었을 때 찼던 수갑은 오늘날에도 그의 저택의 탑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스트루초는 자기에게도 역경의 시기가 있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곳에 수갑을 걸어두었던 것이다. 그는 생전에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나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었고 또 두 위인과 비슷한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고국이 루카가 아니라 마케도니아나 로마였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두 위인을 능가하는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293쪽

○ 출판사 서평
탁월한 문학적 심미안으로 재해석한 『군주론』, 『군주론』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희극 작품 『만드라골라』, 『군주론』의 속편 격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한 권에!
- 인간 본성과 권력의 이면을 고발하는 통렬한 비유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파격적인 통치의 기술과 권모술수를 더 강조하기 때문에 1531년 첫 출간된 이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같이 정치 (사실)와 윤리 (가치)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거울 책자라고 했는데, 이 책은 우리 독자에게도 하나의 거울이 된다. 『군주론』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욕망의 거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기존에 『군주론』을 읽어온 독자들 중에는 나폴레옹, 레닌, 무솔리니 같은 통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그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매혹 혹은 반감을 느껴왔다. 이 책을 읽고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독자의 자아의식과 아이덴티티가 은연중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군주론』을 거듭 읽으면, 우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은 정치학 책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서양의 문학적 전통이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문학 작품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학적 텍스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살아있는 고전
마키아벨리는 한 정체 (政體)가 끝나고 다른 정체가 시작되려는 시대에 살았기에 일단 이탈리아 내에 통일된 군주국가가 창립되면 그 통치자들을 설득하여 공화정부에 권력을 이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최초의 근대 군주국을 이탈리아 중심부에 수립, 유지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필요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1513년 봄 『로마사론』을 처음 쓰기 시작하다가 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그 해 후반에 『군주론』을 집필했다. 이 때문에 『군주론』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왜곡하기가 쉽다. 그는 군주국과 공화국의 두 정부 형태가 서로 다른 역할에서 장점이 있다고 보았다. 『군주론』 이외에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배경을 좀 더 명확히 알려면 『로마사론』, 『만드라골라』,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같은 마키아벨리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읽어서 그의 진의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기존의 번역본들이 마키아벨리의 도덕 혹은 부도덕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로 파악하면서, 이 책의 주인공으로 체사레 보르자를 내세우고 그를 통해서 포르투나, 비르투, 네체시타의 3각 관계를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