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귄터 그라스 세계문학전집 : 양철북 • 넙치 • 텔크테에서의 만남
귄터 그라스 / 민음사 / 1999 ~ 2005
귄터 그라스 (독: Günter Grass, 1927년 10월 16일 ~ 2015년 4월 13일)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1927년 10월 16일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 교외 랑푸우르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가톨릭계 카슈바이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했고, 공군보조병, 전차병 등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1954년 서정시 대회에 입상함으로써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적 집단인 ’47그룹’에 가입했다.
1958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대작 <양철북>의 미완성 초고를 47그룹에서 강독하여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음해인 1959년에 <양철북>을 출간했다. 이후 <양철북>으로 게오르그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3년 <개들의 시절>을 출간으로 <양철북>, <고양이와 쥐> (1961)와 함께 ‘단치히 삼부작’을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미국,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강독했으며, <국부마취> (1969), <넙치> (1977), <텔그테에서의 만남> (1979) 같은 대작들을 출간했다. 1986년 인도의 캘커타를 여행했다. 1992년 소설 <무당개구리 울음>을 출간했다.

- 양철북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
정신병원에 갇힌 화자 오스카의 회상을 통해 전쟁, 종교, 섹스 등 인간의 온갖 모습들을 서술로 풀어낸 작품이다.
1959년 발표된 이 책은 강렬한 언어구사, 반어와 풍자, 외설적인 성 묘사, 신성 모독 등의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독일의 권위적인 문학상을 모두 휩쓸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 경위에서 “<양철북>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남을 것이며, 그라스가 이 책을 통해 인간들이 떨쳐버리고 싶었던 거짓말, 피해자와 패자 같은 잊혀진 역사의 얼굴을 장난스러운 블랙 유머 가득한 동화로 잘 그려냈다”고 평했다.

- 넙치
1984년 학원사에서 펴낸 바 있는 <넙치>가 고려대 독문과 교수 김재혁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민음사에서는 귄터 그라스의 방한을 기념해 그가 직접 그린 삽화로 표지를 꾸몄다. 또한 작품 첫 페이지에 ‘헬레네 그라스에게’란 헌사가 달아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밝혔다.
첫째 달부터 아홉째 달까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고있는 ‘내’가 임신한 아내 ‘일제빌’에게 11명의 여자 요리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익셀 강의 늪지대를 배경으로 신석기부터 철기, 중세, 바로크, 절대 왕정기, 20세기에 이르는 대서사가 시간 순으로 펼쳐진다.
여성 요리사들은 민족 대이동 시절에 순무를 재배하고, 7년 전쟁기에 감자를 찾아내며, 공산주의 혁명기에는 양배추를 양식으로 삼는 등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요리사와 함께 등장하는 ‘말하는 넙치’는 사회적 억압기제로 활용되는 이성과 논리(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넙치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주도권은 뒤바뀐다. 여자에서 남성으로 다시 여성에게로 되잡힌 넙치는 남성 중심 역사의 해악을 언급하며 앞으로는 여성을 위한 조언자가 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우위는 원치 않는 듯 작가는 제3의 대안을 향해 작품을 열어놓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리 재료와 조리법 등이 거대한 성찬에 초대받은 듯한 인상을 준다. ‘옛날, 옛날에…’를 연상시키는 동화적 서술방식도 이 책의 특징. 실제로 귄터 그라스는 그림 형제의 동화 ‘어부와 그의 아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77년 발표 당시, 45만 부가 팔린 바 있다.

- 텔크테에서의 만남
인간의 탐욕 앞에 무너지는 허울 좋은 이상을 통렬하게 풍자한 소설.
신.구교 세력 간의 갈등에서 비롯 되어,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30년전쟁의 막바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귄터 그라스 특유의 아이러니와 해학으로 그려낸 비열한 군인들, 그리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버린 시인들의 모습이 실소와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1647년, 일군이 시인들이 독일 전국 각지로부터 시골의 조그만 마을 텔크테로 몰려든다. 이 시인들의 목적은 산산조각으로 분열된 조국을 마지막 남은 수단인 ‘언어와 문학’으로 다시 한번 결합하는 것.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이 집필해 온 시 낭독회를 가지는 한편, 군주들에게 보내는 평화 호소문을 작성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와 평화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려 했던 시인들은 뜻하지 않는 사건에 말려들면서 자신들의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즉 인간의 운명은 현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텔크테에서의 만남>에 등장하는 이 1647년도의 모임은 1947년의 ’47그룹’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47그룹이란 1947년에 미군 측 전쟁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독일 작가들이 무너진 독일 문학의 전통을 재확립시키기 위해 발족한 모임으로,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문학적 명성과 재정적 지원을 안겨주었다.
○ 목차

- 양철북
.1권
- 제1부
폭 넓은 치마
뗏목 아래에서
나방과 친구
앨범
유리, 유리, 유리 쪼가리
시간표
라스푸틴과 ABC
슈토크 탑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연단
쇼윈도
기적은 없다
성 금요일의 식사
발끝으로 갈수록 좁게 만든 관
헤어베르트 트루친스키의 등
목각의 니오베
믿음, 소망, 사랑 - 제2부(상)
고철더미
폴란드 우체국
트럼프 카드로 만든 집
자스페에 잠들다
마리아
비등산
임시 뉴스
그 무기력함을 그레프 부인에게로 가져가다
.2권
- 제2부(하)
75킬로그램
벱라의 전선 극장
콘크리트 견학, 혹은 신비적 야만적 권태
그리스도 승계
먼지떨이들
예수 탄생극
개미떼의 도로
자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독제
화물 열차 안에서의 성장 - 제3부
부싯돌과 묘석
포르투나 노르트
마돈나49
고슴도치
옷장 속에서
클레프
야자섬유 양탄자 위에서
에서
대서양의 요새에서 혹은 벙커는 콘ㅋ리트를 벗어날 수 없다
무명지
마지막 전차 혹은 보존 유리병 숭배
30세
- 넙치

.1권
첫째 달
둘째 달
셋째 달
넷째 달
.2권
다섯째 달
여섯째 달
일곱째 달
여덟째 달
아홉째 달
작품 해설
셋째 유방 | 제3의 길을 찾아서 (김재혁)
- 텔크테에서의 만남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귄터 그라스
1927년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열일곱의 나이로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에 징집되어 복무한 적이 있고,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와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농장 노동자, 조각가, 재즈 음악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54년 서정시 경연 대회에 입상하면서 등단했다.
1958년 첫 소설 『양철북』 초고를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 집단인 47그룹 모임에서 낭독해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1년부터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에 『고양이와 생쥐』(1961), 『개들의 세월』(1963)을 발표해 『양철북』의 뒤를 잇는 ‘단치히 3부작’을 완성했다.
1976년 하인리히 뵐과 함께 문학잡지 《L’76》을 창간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넙치』(1977), 『텔크테에서의 만남』(1979), 『암쥐』(1986), 『무당개구리 울음』(1992), 『나의 세기』(1999) 등을 발표했고, 1995년에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 『또 하나의 다른 주제』를 내놓았다.
1999년에 독일 소설가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에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었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 『게걸음으로 가다』를, 2003년에 시화집 『라스트 댄스』를 발표했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친위대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에는 그 후속편으로 여겨지는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4월 1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 역자: 장희창
정석조의 아들. 동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독일 고전문학 연구와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장희창의 고전 다시 읽기』, 『고전잡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괴테의 『파우스트』, 『색채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게걸음으로』, 『양파 껍질을 벗기며』, 『암실 이야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 역자: 김재혁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릴케의 시적 방랑과 유럽여행』, 『릴케전집 1, 2』, 『서정시의 미학』,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등이 있고, 시집 『딴생각』, 『아버지의 도장』,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등을 지었다. 역서로 릴케의 『기도시집』, 『두이노의 비가』, 하이네의 『노래의 책』, 횔덜린의 『히페리온』, 그라스의 『넙치』, 노발리스의 『푸른 꽃』,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와 『올가』, 괴테의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의 『말테의 수기』, 뮐러의 『겨울 나그네』, 카프카의 『소송』, 헤세의 『싯다르타』, 니체의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 트라클의 『푸른 순간, 검은 예감』 등이 있다. 오규원의 시집 『사랑의 감옥』을 독일어로 옮겼고, 세계릴케학회 정회원으로서 『Rilkes Welt』(공저)를 출간했다. - 역자: 안삼환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및 서울대 독문과 교수, 한국괴테학회장, 한국토마스만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한국비교문학회장, 한국훔볼트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인문대 독문과 명예교수이다. 엮은 책으로는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과 《전설의 스토리텔러 토마스 만》이 있으며, 저서로는 《괴테, 토마스 만 그리고 이청준》, 《한국 교양인을 위한 새 독일문학사》가 있고, 역서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토니오 크뢰거》, 《텔크테에서의 만남》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양철북
.20세기를 대표하는 최대 문제작!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나치스 치하에서 성장하여 전쟁에서 살아남은 독일 전후세대를 대변하는 탁월한 작품이다. 1959년 이 소설이 발간되자 현대 독일문단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영원할 것”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 뒤 “밝고도 어두운 우화로 역사의 잃어버린 한 단면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아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79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은 칸국제영화제 그랑프리와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하였다.
「양철북」은 단치히를 무대로 독일전쟁 이전 바이마르시대와 나치스시대, 그리고 2차대전의 격동기를 거쳐 전후시대를 오스카라는 난쟁이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이 소설에 대해 그라스는 “어느 시대 좁은 소시민계급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차원을 초월한 범죄까지 포함하여 한 시대 전체를 문학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게다가 그는 “작품의 원료로 쓰이는 사실성은 분할되어선 안 되며, 그것을 전체로서 파악해 그늘진 부분도 간과하지 않는 사람만이 작가라 불릴 만하다”고 주장하면서, “성(性)의 영역까지도 이 사실성 안에 포함된다”고 못박았다.
.북치는 소년 오스카는 누구인가?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 때 어른들의 세계로 대표되는 기존체제에 대한 반항과 거부로 지하실에 떨어져 스스로 성장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양철북을 두드리면서 괴성을 지르면 유리창이 깨어지는 초능력으로 그의 반항의식을 드러낸다. 나치스 독재정권의 지배, 2차대전의 발발로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떠돌아다니다가 독일의 패배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사건에 관련되어 미쳐버린 나머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양철북을 두드리는 오스카. 그는 일상에서 태어나는 역사를 보았다.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대로 현대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독특하고 남다른 재능을 지닌 한 소년이 체험한다. 장난감 양철북을 두드리는 어린이. 어른들에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반항적이고도 고집스런 이 모습이 우직하다 싶을 만큼 순진한 독자적 시점을 전후 독일문학에 가져다 주게 된다.
.정치에 무관심한 독일국민에게 울리는 경종!
동서분열 이후 서독은 기적의 경제부흥을 이루었고, 재군비와 더불어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 주위의 소소한 행복으로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그런 독일의 ‘유아성’은 전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난쟁이 오스카는 그런 시대적 유아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들이민 것이다.
현실을 한쪽 면만 보는 게 아니라 다각적이고 복합적으로 보는 관점은 지금까지 없었던 시야, 주인공 오스카의 키 94㎝ 눈높이에서 나치스 시대부터 전쟁 이후까지를 바라보는 시야를 펼쳐 보여준다. 거기서는 그를 둘러싼 선량하지만 약아빠지기도 한 소시민의 생활 속에 나치즘이 자연스럽게 침투해 가는 광경이, 북의 리듬에 맞춰 기억 밑바닥에서 솟아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점은 그것을 외부에서 오는 악이 아니라 일상 안에 있는 기괴함, 잔혹함, 난잡함으로 보는 그런 관점이다.
말 대가리를 이용한 부두 노동자의 뱀장어잡이, 유대인 상점 파괴가 일어났던 밤에 장난감에 둘러싸여 죽은 마르쿠스, 해수욕하기 좋은 나른한 날 일어난 2차대전의 서막 폴란드 우체국 공방전 등등. 그것은 일상 속에 갑자기 나타난 폭력과 난잡함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반어적인 보고체, 일상적인 구어체, 사투리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정치감각이 결여된 독일 소시민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유형을 드러내며, 바로 이러한 것들이 나치스 독재정권을 가능하게 했음을 보여준다.
.살아가는 것은 곧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귄터 그라스(G?nter Grass, 1927~)는 2차대전 중 16세 나이로 징집되어 부상을 입고 포로생활을 하였다. 소년병으로 나치스 치하에서 살아남은 그는 전후 서독으로 건너가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전후에 서독으로 건너간 그라스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강요받으며, ‘화상 입은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그는 이윽고 ‘회의적 세대’의 작가로서, 독일의 표면적인 사회 및 정치동향에 대해 매우 비판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신진 작가모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참여 작가로도 유명했던 그라스. 그는 흘러가는 시대의 단편을 희생자나 학대받은 자들의 시점에서 과거 및 미래와 관련지어 넓고 풍부한 구성 속에 표현하여, 현대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야기하는 한 살아갈 수 있다.” (‘개들의 시절’에서)
이러한 문학신조 아래 그라스는 말 그대로 문학과 실생활을 살아나가면서, 현대에서의 ‘반항’이 과연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
귄터 그라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은 첫 소설「양철북」(1959)으로 전후 독일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아 1965년 뷔히너상을 수상하였다. 그라스는 그 뒤에도 「개들의 시절」(1963), 「넙치」(1977), 「무당개구리 울음」(1992), 「광야」(1995) 등의 장편을 발표했는데,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와 위트가 넘치며 직설적인 현실폭로로써 속세와 시대를 비평하는 것이 특징이다.

- 넙치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 중세, 바로크 시대, 절대 왕정기, 혁명의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움직여온 넙치와 열한 명의 여자 요리사들이 엮어낸 또 하나의 역사.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작품. <율리시스>에 비견되는 <양철북> 이후 최대의 문제작으로 性과 요리, 신화와 문명에 대한 성대한 만찬이 펼쳐진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대작 『넙치』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977년에 발표되어, 귄터 그라스만의 독창성이 뛰어나게 발휘된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넙치』는 발표 후 2년 동안에만 45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당시 그라스는 수익금의 일부로 베를린 예술원의 후원 하에 알프레드 되블린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라스는 그의 쉰번째 생일을 맞기 5년 전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로서 대작을 쓰기로 결심하고 시, 스케치, 짧은 에피소드 등을 통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뒤셀도르프 및 베를린 예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이기도 한 그라스는 『넙치』와 관련하여 상당량의 삽화를 직접 그렸는데(이번에 출간된 『넙치』의 표지도 그라스 자신의 작품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얼마만큼인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독일 슈타이들 출판사와의 정식 계약으로 출간되는 이번 판본은, 시인이자 고려대 독문과 교수인 김재혁 선생이 번역을 맡았으며, 원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과 아울러 현대적인 감각의 언어 구사로, 다양한 내용이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자칫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작품을 한층 가독성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식량과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인류 문화사
작품의 첫 페이지에는 <헬레네 그라스에게>라는 헌사가 붙어 있는데 헬레네는 귄터 그라스의 딸로, 작가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1973년 10월에 잉태되었다고 한다. 시기적인 측면과 엇물려, 이 작품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째 달부터 아홉째 달까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해 온 인물인 <내>가 임신한 아내 <일제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을 바탕으로 한다. 바익셀 강 어귀의 늪지대를 배경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 중세, 바로크 시대, 절대 왕정기, 혁명의 19세기와 20세기, 제3제국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났던 열한 명의 여자 요리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 순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1977년 9월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그때 나는 우리의 역사 서술에서 빠진 부분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역사 형성에서 이름없이 이루어낸 몫을 말합니다. 요리사로서, 가정주부로서, 식량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선할 때, 즉 기장을 감자로 대체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서 말입니다. > 이렇게 작품 속의 여성들은 민족 대이동 시절에는 순무를 재배했고, 7년 전쟁 시기에는 감자를 도입했으며, 공산주의 혁명 시기에는 양배추를 들여오는 등, 식량 문제 해결을 통해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역할을 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리의 재료 및 방법 또한 놀라우리만치 다양하여 작품을 읽는 동안 마치 성대한 만찬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진정한 페미니즘을 향한 모색
여자 요리사들의 이야기와 엇물려, <나>와 마찬가지로 약 40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존재해 왔던 <말하는 넙치>, 그리고 그가 역사상 남성 편만 들어왔다는 죄목으로 여성 배심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도 작품의 또 한 축이 된다.
여기에서 <넙치>는 헤겔의 세계 정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이성과 논리성의 상징이다. 약 4000년 전 세 개의 유방이 달려 있는 아우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모권 사회에서 남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시절, <넙치>는 <나>에게 잡혀 남자들을 위한 조언자 역할을 맡기로 하고 그 이후로 역사의 주도권은 남성에게 넘어간다. 넙치는 모든 시대적 변동과 유행의 변화, 모든 혁명, 최신의 진리와 진보를 앞서서 예견하고 남자들이 그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다가 현대에 이르러 <넙치>는 다시 여자들에게 잡히는데, 넙치는 남성 중심의 역사가 초래한 파멸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는 여성들을 위한 조언자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그 또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작품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화자는 어느 한 쪽의 우위가 아닌, 제3의 것을 통해 대립 구도를 허물고 진정한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동화적 서술방식을 통해 재구성한 또 하나의 역사
그라스는 동화적 서술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양철북』때부터 ‘옛날, 옛날에’라는 동화적 서술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특한 독일적 서술형식이 우리 문학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심리 소설보다 이 동화 형식 속에 더 많은 현실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
실제로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은 그림 형제의 동화 「어부와 그의 아내」이다. 이 동화에서 어부는 어느 날 말하는 넙치를 잡게 되는데, 마음씨 착한 어부는 넙치가 살려달라고 하소연하자 넙치를 그냥 풀어주고 만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부의 아내는 넙치에게 가서 소원을 빌라고 어부에게 강요하고, 점점 큰 욕심에 사로잡힌 아내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후로 어부의 아내는 무한한 소유욕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여인의 전형이 된다. 그러나 작중 화자는 그 동화를 가부장제를 지키려는 남자들의 음모라고 말하며, 원래 「어부와 그의 아내」는 두 가지 판본이 있었는데, 남성들의 욕구가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 판본은 남자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말한다. 그 불타버린 판본을 토대로 한 작품이 바로 『넙치』이며,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 <백과사전과도 같은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찬사에 걸맞게 인류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상세하고 진실된 또 하나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 텔크테에서의 만남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텔크테에서의 만남』은 자신이 회원이었던 1947년의 ’47그룹’ 모임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1947년을 1647년도로 바꾸어 17세기에 실존했던 시인들인 그뤼피우스, 게르하르트, 질레지우스 등을 등장시켰다.
신, 구교 세력 간의 갈등이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30년전쟁(1618~1648)이 막바지를 향하던 때 일군의 시인들이 독일 전국 각지로부터 시골 마을 텔크테로 몰려든다. 이때는 . 이 시인들의 목적은 산산조각으로 분열된 조국을 마지막 남은 수단인 ‘언어와 문학’으로 다시 한번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와 평화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려 했던 시인들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말려들면서 자신들의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처음 의도와 달리 시 낭독회에서 서로를 헐뜯고, 고지 독어 파와 저지 독어 파로 나뉘어 반목과 대립을 거듭한다. 이는 1,500개 이상으로 분열된 당시 독일의 모습과 닮아있다. 게다가 군인들이 약탈해온 음식을 의심도 없이 먹은 사실을 알게 되지만 반성하지 않고 서로 비난할 구실만을 찾게 된다.
작품의 화자 ‘나’는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즉 인간의 운명은 현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칫 끔찍한 비극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가 그라스 특유의 해학과 아이러니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