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 모방적 욕망과 르네 지라르 철학
원제 : CELUI PAR QUI LE SCANDALE ARRIVE
르네 지라르 / 문학과지성사 / 2007.4.20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메커니즘’ 등의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에 난무해 있는 폭력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르네 지라르의 책. ‘모방적 욕망과 르네 지라르 철학’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모방이론 전반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자 완결판의 성격을 띤다.
우리의 욕망은 대상에서만 나오는 자연 발생적인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대한 모방에서 생겨나는 ‘모방적 욕망’이라는 것이 르네 지라르의 출발점이다. 그의 이 모방이론은 ‘있는 것을 있는 대로 파악하는 리얼리즘’에 기초해 있는데, 이는 인간 욕망의 모방성과 폭력에 내재된 성스러움 혹은 성스러움에 내재된 폭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이어서 신화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신화 해석에 이르렀던 지라르의 기존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모방이론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실례로 하여 훨씬 명료하고 공고화되어 있다.
○ 목차
머리말
제1부 상대주의의 극복
제1장 폭력과 상호성
제2장 선량한 원시인과 타인
제3장 모방이론과 신학
제2부 신화의 이면
제4장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와의 대담
옮긴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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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르네 지라르 (Rene Girard)
1923년 프랑스 아비뇽 출생. 1947년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디애나 대학, 브린모 대학, 존스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1974년부터 현재까지 스탠퍼드 대학에서 현대 사상과 프랑스 어문학,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2005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종신회원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지라르는 첫번째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manesque』(1961)에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을 시작하여, 연구 범위와 폭을 꾸준히 넓혀왔다. 『폭력과 성스러움 La violence et le sacre』(1972), 『희생양 Le bouc emissaire』 (1982) 등의 저서부터는 인류학, 신화, 종교학 쪽으로 관심으로 돌려 ‘희생양’과 구원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 주력한다. 또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Je vois Satan tomber comme l’eclair』 (1999)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오다 Celui par qui le scandale arrive』(2001)는 신화와 성경 등의 폭력 양상을 비교하면서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메커니즘’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 밖에도 지라르는 『지하실의 비평』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온 것들』 『이중규제』 『옛 사람들이 걸어간 사악한 길』 『문화의 기원』 등 많은 저서를 발표하였으며, 『폭력과 성스러움』으로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 역자: 김진식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알베르 카뮈의 통일성의 향수와 그 미학』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비판』이 있으며, 역서로는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공역) 『희생양』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문화의 기원』과 올리비에 토드의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전 2권)이 있다. 현재 울산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책 속으로
우리가 언제나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폭력이 우리를 악으로 밀어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최악의 폭력인,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이 집단적인 구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폭력에 대한 우리의 저항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르치는 이런 행동만이 폭력의 상승 작용을 그 싹부터 막을 수 있다. 한 순간만 지나면 때는 이미 늦다. – p42 중에서
…제 생각은 항상 묵시록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의 폭로가 있고 난 뒤 우리가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범한 묵시록적인 과오라고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고 보았던 그들의 믿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시각은 이처럼 묵시록적입니다. – p113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우리 주변에는 왜 이다지도 폭력이 난무하는가?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메커니즘’ 등의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에 난무해 있는 폭력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르네 지라르 Rene Girard의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Celui par qui le scandale arrive』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모방적 욕망과 르네 지라르 철학’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모방이론 전반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자 완결판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3년 전 국내에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04)와 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며, 머리말을 통해 언급되고 있듯이 지라르의 “4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작업의 중간보고서”이기도 하다. 특히 그간 지라르의 견해들에 대해 제기되어온 이의들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담고 있는 제1부의 세 편의 글과 지라르에 정통한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 (이탈리아 메시나 대학 정치학과)와의 대담을 담고 있는 제2부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 이론에 대한 이해를 확고하게 한다.
우리의 욕망은 대상에서만 나오는 자연발생적인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대한 모방에서 생겨나는 ‘모방적 욕망’이라는 것이 르네 지라르의 출발점이다. 그의 이 모방이론은 ‘있는 것을 있는 대로 파악하는 리얼리즘’에 기초해 있는데, 이는 인간 욕망의 모방성과 폭력에 내재된 성스러움 혹은 성스러움에 내재된 폭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이어서 신화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신화 해석에 이르렀던 지라르의 기존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번에 출간된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서는 이러한 모방이론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실례로 하여 훨씬 명료하고 공고화되어 있다.
- 폭력, 모방적 욕망, 그리고 희생양 메커니즘
르네 지라르는 “갈등과 폭력의 진짜 비밀은 바로 욕망하는 모방, 모방적 욕망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맹렬한 경쟁 관계라고 단언한다.” 2007년 4월 현재, 전 세계는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던 한국인 유학생 조승희씨의 대량 살상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우리 주위에는 왜 이다지도 폭력이 많은 것일까?”로 시작되는 제1장 「폭력과 상호성」을 보면 폭력과 모방적 욕망이론에 대한 르네 지라르의 선견지명을 짚어볼 수 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 역시 우발적인 범행이라기보다는 모방에 의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모든 위험 중에서 가장 무서운 위험은 알다시피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매일매일 우리들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 사실은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종식과 함께 엄청난 재앙을 갖고 오는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면서 평화주의자들은 즐거워했겠지만, 그러나 파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사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테러리즘이 전쟁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테러가 마치 강대국들의 핵전쟁만큼이나 끔찍하게 될 것이란 것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미처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야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폭력은 지금 불길이 번져나가거나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과정과 흡사한 확대 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 폭력이 마치 아주 오래되고 또 약간은 신비스러운 형태를 되찾은 양, 위대한 신화의 이미지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강렬한 폭력들이 그 안에서 서로 만나서 한데 섞이는 커다란 회오리바람과 같다. 이제는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도 생겨났고, 미국에서는 학교 안에서 한 학생이 동급생을 대량 학살하는 그런 폭력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세계 전체에 걸쳐서 눈에 드러나는 폭력들이 있고, 테러는 끝도 경계도 없다. 특히 테러리즘은 민간인에 대해 진짜 살인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광경은 마치 지구의 모든 인류가 스스로 폭력과 만나기 위해 총진군하고 있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본문 15~16쪽)
르네 지라르는 이러한 폭력과 테러리즘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써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한 구절, 즉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5:38~40)를 예로 들며, 마치 예수가 ‘희생양’이 되었듯이 폭력의 상승 작용을 그 싹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리가 언제나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폭력이 우리를 악으로 밀어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최악의 폭력인,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이 집단적인 구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폭력에 대한 우리의 저항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르치는 이런 행동만이 폭력의 상승 작용을 그 싹부터 막을 수 있다. 한 순간만 지나면 때는 이미 늦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굴복했을 때 다시 말해 한 번 더 모방을 따랐을 때의 결과인 엄청난 위기에 비하면, 분쟁의 대상물은 그것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제한된 것이고 또 유한한 것이다. 그래서 그 대상물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복수를 포기하는 것이 상대방의 머리에 ‘타고 있는 숯불’을 쌓아놓는 것, 즉 상대방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말과 비교해보면 앞의 「마태복음」 구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42쪽)
-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vs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이 책의 전작인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누가복음」의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0:18)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지라르는 이 표현을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탄이 창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또한 이번 책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는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가 르네 지라르를 지칭한 표현인 ‘Celui par qui le scadale arrive,’ 즉 ‘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 자’에서 ‘예전에는 스캔들인 줄 몰랐는데 르네 지라르를 통해서 그것이 비로소 스캔들인 줄을 알게 되었다’는 바르베리 교수의 원뜻을 살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로 의역한 것이다.
두 책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많아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의 본문에는 이른바 ‘사탄’과 ‘스캔들’론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등장한다.
지금의 인간이 되었을 초기의 미래 인간 피조물이 모방의 어느 단계를 지남으로써 동물적으로 폭력을 피하던 메커니즘이 붕괴되는 순간부터 인간 사회에 모방 갈등이 분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희생양 메커니즘, 신, 희생 제의 등을 만들어내어 인간 사회의 폭력을 진정시키고 그 폭력에게 문명화라는 긍정적인 방향의 길을 터줌으로써 재빨리 그 해독제를 만들어내었다.
우리 욕망은 모방적이기 때문에 서로 닮아서, 함께 만나면 서로에게 전염도 잘 되고 서로에게 피해만 주는 대결 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우리 욕망은 스캔들이 된다. 증폭되고 집중된 스캔들은 그 사회를 위기에 빠뜨리는데 이 위기가 점점 더 격화되어서 절정에 이르면 집단 전체의 폭력이 한 사람의 희생양에게로 집중되는 ‘고정농양’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폭력은 진정되고, 와해되었던 집단의 질서는 되살아난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124쪽)
사탄은 당연히 소멸하지 않습니다. 그는 떨어져서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전의 사탄은 초월적인 천상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지금은 이제 더 이상 질서의 원천이 아니고 대신 무질서의 원천일 뿐입니다. 사탄이 죽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반대로, 땅에 추락했기 때문에 사탄은 인간과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
바울이 의미하는 것이 아마 그런 것일 겁니다. 그리스도는 사탄의 벽을 건너뛴 유일한 인간입니다. 그는 희생양 시스템, 즉 사탄의 원칙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습니다. 예수의 부활 이후로 그전에는 없던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다리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한발을 딛고 있다는 것과 함께 사탄의 성벽을 없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러므로 이 세상에 뿌리박고서 인간이 지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사탄의 질서 속에다가 무질서를 놓아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88~90쪽)
르네 지라르는 “예수를 모방하는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오래전부터 모방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우리 스스로가 독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이웃에 대한 모방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에 대해 ‘개종(改宗)’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김진식 교수(울산대 프랑스학과)는 「옮긴이 해설」을 통해 “상투적인 통념 속에서는 나는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도 타인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나와 타인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은 사람들간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을 깨닫게 하여 상호 소통을 열어줄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런데 인류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폭력을 막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모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처럼 나쁜 폭력을 덜 나쁜 폭력으로 막는 것을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 부른다. 요컨대 우리는 언제나 ‘폭력’과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그리고 ‘희생양 메커니즘’이 혼재되어 있는 현재의 역사를 살고 있는 셈인데, 지라르가 전제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메커니즘이 폭력이라는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본질적 폭력과는 다른 양태를 띠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스러움’이라는 차별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차이는 미량의 병원균을 주사하는 것이 큰 병을 이겨낼 항체를 형성해주듯이, 차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김진식 교수의 설명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지나친 것을 꺼리는 태도가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적어도 인류의 선조들은 이분법적인 판단이 아닌 관계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가변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르네 지라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모방은 나쁘고, 희생양 메커니즘도 나쁘다’는 그야말로 선험적이고 이분법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올바른 지향점은 모든 것은 양분되어 있다는 이원론적인 사유체계가 아니라, 모든 개체는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이고 단지 겉으로만 또는 일시적으로만 여럿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보는 다원론(같은 말이지만 일원론)의 태도를 견지할 때에만 진정으로 유효한 대안과 해법과 유효한 설명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해설: 리얼리즘과 일원론을 통한 르네 지라르의 이해」, 206~07쪽)
- 르네 지라르의 독창적인 이론의 궤적
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욕망 구조의 분석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성서의 새로운 해석에 이르기까지 르네 지라르 사상의 궤적은 보기 드물게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문학 텍스트에서 단순한 문학성을 찾는 문학 연구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얻은 결론을 이용하여 인간의 또 다른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 결국 인문학이 걸어가야 할 행로까지 보여주었다.
인간 욕망의 발생 원인을 단순히 그 대상물에서만 찾는 대부분의 기존 사상에 비해 인간들 사이의 모방에서 찾는 지라르의 이론은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 것이다. 하여 서구 인문학계에서는 지라르가 ‘기본적 인류학’이라 부르는 것에 기초하여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 지 오래이다. 또한 지라르 특유의 관점을 신화나 민담 등의 구비 문학에 적용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하여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영화 「Passion of Christ」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이제 성서의 기록과 기독교적인 전통이 단지 기독교도들이나 신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암시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다양한 사상의 궤적을 밟아온 르네 지라르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서 시도한 신화 및 성서 해석의 방법도 성서의 새로 읽기, 다시 읽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 지라르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독교 기록에 대한 연구는 많은 종교학자들과 성직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희생양』과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 나타나 있듯이 기독교의 기록을 폭력이 등장하는 다른 기록과 같은 위상에 두고 접근하는 지라르의 입장을 살펴보건대, 그가 ‘기독교를 인문학에 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기독교는 인문학의 옆이나 위나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있다. 지라르의 이런 사상은 지금껏 여러 사상들이 귀중하게 취급하던 모든 인위적인 절충안들을 무산시켜버리는 ‘거대 담론’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는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 실린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추후 연구 방향에 대해 “(1)근원적 역사의 시각에서 모든 연구 결과를 한데 집대성하고, (2)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 보며, (3)생물학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의 관계를 해명하고 싶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182쪽 참조)고 밝힌 바 있다.
○ 독자의 평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 르네 지라르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르네 지라르의 책이다. 인류학자이면서 독창적인 모방이론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기독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그래서 많은 데에서 기독교 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듯하다.
솔직히 좀 어렵고 책이 불친절하게 씌여졌다. 저자가 전에 쓴 책(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을 읽었다는 전제를 두고 내용이 진행되다 보니 이해가 어려웠다. 저 책도 집에 있는데, 먼저 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이어서 어쩔수 없이 이 책을 좀 힘들게 읽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모임에서 듣고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는 것으로 보충하였다.
저자는 모방을 통해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어떠한 대상을 갖고 있을때, 또는 추구할 때 나는 그의 욕망을 모방한다. 그리고 그는 나의 모방을 다시 다시 모방한다. 그렇게 같은 대상을 경쟁적으로 욕망하게 되고 이는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나선형 구조로 서로 모방과 경쟁이 커지게 되며 이렇게 경쟁적으로 갈등이 심화되면 욕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갈등만이 남아 결국에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런 폭력이 계속되면 인류는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지속되어 오는 것은 희생양 메커니즘에 의해 그 폭력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모방으로 인해 증폭된 폭력성은 어느순간 하나의 희생양을 향하게 된다. 그 희생양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 희생양을 공동의 적으로 규명하고 하나로 뭉쳐서 희생양을 물리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참여하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폭력성은 해소되고 다시 시작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모방이론과 희생양 메커니즘에 의해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희생양의 결정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라 이야기한다. 흠 없는 희생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희생양 메커니즘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 나오고 희생양 메커니즘이 폭로된다. 그리고, 희생양 메커니즘을 깨닫고 자신도 그 희생양 메커니즘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개종이라 한다. 즉 우리는 자기 내면의 욕망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인정함으로써 개종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개종을 통해 희생양 메커니즘을 깨뜨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럼으로써 더이상 희생양 메커니즘은 동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리스도로 인해 희생양 메커니즘이 폭로되어 더이상 동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여전히 희생양들이 보인다. 보수기독교에게는 진화론이, 성소수자가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로 보면 오랜시간동안 소위 빨갱이라 불린 대상들이 희생양이었다. 또한 최근의 코로나 사태에는 코로나를 전염시킨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어 사회의 분노를 받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또한 모방이론은 매우 신선했다. 서로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된 욕망으로 인해 폭력이 계속 커지고 욕망의 대상은 잊혀진다는 직관은 새롭고 설득력도 있었다. 우리는 차이를 추구하는것 같지만 그 깊숙한 곳에는 모방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 속에도 그런 마음이 있음을 살펴본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나마 4부의 대담과 마지막의 역자 해설이 이해에 큰 도움을 준것 같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자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이 자료의 바다이고 보고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