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기나긴 혁명
레이먼드 윌리엄스 / 문학동네 / 2007.10.31
‘기나긴 혁명’은 영국의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를 대표하는 ‘원조’로 일컬어진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저작으로 문화 연구를 하나의 학문으로서 새롭게 정립하고자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책이다.
문화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 한 역작 ‘문화와 사회'(1958)의 속편격인 이 책은 1961년에 영국에서 초판 발간 이후 지금까지도 문화 비평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윌리엄스는 이 책에서 문화가 어떻게 정의되고 분석되는 것인지에 대해 독창적 논리를 펼침으로써 이전까지 예술을 중심으로 한 고급문화에 가려져 있던 대중문화의 가치를 탐색하고 있다. 윌리엄스는 정치적, 경제적 혁명을 섭렵한 제3의, 훨씬 더 점진적이고 광범위한 ‘문화 혁명’을 일컫기 위해 ‘기나긴 혁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영국사회를 모델로 한 사회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진 문화적 변화와 그 실질적인 패턴을 서술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문화와 창조성의 개념, 개인과 사회를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문화 연구의 기초를 제공하고, 2부에서는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역사서를 비롯한 학문에서 소외되었던 교육 제도, 출판, 대중언론, 연극, 표준어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포괄적인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3부에서는 저자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문화적, 정치적 지평을 분석하면서 문화에 대한 어떠한 시각과 실천이 참여 민주주의를 향한 과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영미권의 문화 연구에 그 기초적인 개념들과 방법론을 온전하게 갖추도록 하며, 90년대 한국의 문화계와 학계에도 ‘문화 연구’, 혹은 ‘문화 비평’의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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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서문
펠리컨 판의 서문
서론
1부.
1. 창조적 정신
2. 문화의 분석
3. 개인과 사회
4. 사회의 이미지
2부.
1. 교육과 영국사회
2. 독서 대중의 성장
3. 대중 언론의 성장
4. ‘표준 영어’의 성장
5. 영국 작가의 사회사
6. 극 형식의 사회사
7. 리얼리즘과 현대소설
3부. 1960년대의 영국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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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년에 태어나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극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8년 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문화 연구에 끼친 윌리엄스의 영향은 엄청나다. 그는 문화 이론, 문화사, 텔레비전, 언론, 라디오와 광고에 대한 이해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앨런 오코너(Alan O’Connor)의 책의 참고문헌에 나오는 인쇄된 윌리엄스의 저작 목록만도 39쪽에 이른다.
그의 기여는 그가 웨일스 노동계급 출신(그의 아버지는 철도 신호수였다)이라는 것과 또 학자로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극과 교수였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더욱 놀랍다.
저서로는 『드라마와 공연 (Drama in Performance)』(1954), 『문화와 사회 (Culture and Society) 1780 ∼ 1950』 (1958), 『장구한 혁명 (The Long Revolution)』(1961), 『입센에서 브레히트까지의 희곡 (Drama from Ibsen to Brecht)』 (1968), 『시골과 도시 (Country and City)』( 1973), 『주요 어휘들 (Key Words)』 (1976),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Marxism and Literature)』 (1977) 등이 있다.
– 역자 : 성은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영국소설 명장면 모음집』 『동서양문학 고전산책』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더블린 사람들』 『위안부』 『세상의 이치』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기나긴 혁명’이 출간된 지 근 반세기가 다 되어가고, 저자가 사망한 지도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그간 한국사회가 보여준 문화 이론의 활황을 생각하면 이 고전적인 저서가 너무나 뒤늦게 번역되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 주변에 난무하는 수많은 ‘문화적 담론’들이 과연 어떤 종류의 ‘혁명’을 위한 어떤 ‘실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판단해보는 하나의 준거점으로서는 여전히 빛바래지 않았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이는 아마도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혁명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 혁명이다. 우리는 분명히 글을 읽는 능력이나 다른 발달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과 더불어 배움의 적극적인 과정을 제한된 집단이 아닌 전 민중에게 확대하려는 열망이 민주주의의 성장이나 과학적 산업의 발흥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열망은 과거에도 지금도, 때로는 공공연히, 때로는 은밀하게 저지되고 있으나, 거의 보편적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목표이다. 물론 이 혁명은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아직도 수억 인구가 겨우 글을 깨치는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반면, 선진국에서는 교육을 확대하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개발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수정되고 확대되는 중이다. 민주주의나 산업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가 이제까지 해온 일은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할 일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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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문화와 대중의 관계를 밝히는 문화 비평, 고급예술의 속박에서 ‘문화’를 구출하라!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기나긴 혁명’에서 문화의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일반적 범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 문화는 어떤 절대적 또는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인간의 완벽함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나 그 상태라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문서화’된 기록들, 즉 기록된 텍스트와 실천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정의에서 문화는 인간의 생각과 경험들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기록된 지적, 상상적 작업의 유기체이다. 셋째, 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로, 이때의 문화는 특정한 삶의 방식에 대한 묘사를 말한다. 이 세번째 정의야말로 문화 연구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문화를 생각해보는 새로운 방식을 열어주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좌파 학자인 리처드 호가트, 이피 톰슨 등과 함께 ‘대중의 삶’을 ‘문화’로 정의하고 그것은 결코 귀족들의 것과 비교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과거 예술 중심의 문화관을 철폐하고 대중들의 삶의 의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를 상류계급의 특별한 예술 활동이나 또는 단순히 피지배계급에 강요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고정된 사고체계로 보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문화는 ‘일상의 삶’이며 사람들이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사고하고, 행위하고,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재생산하고 재구성해가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자신들의 의미를 생산해내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확대하는 것이다.
‘기나긴 혁명’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감정의 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s)이다. 한 세대의 독특한 문화는 그 시기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경험과 가치 및 정서들의 총합체인 특수한 ‘감정의 구조’에 근거한다. 이 용어는 집단적 무의식과 표면화된 이데올로기의 중간에 형성된 특정한 집단과 계급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들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문화 분석의 목적은 광범위한 기록 자료를 통해 한 세대의 문화를 결정하는 ‘감정의 구조’를 읽어내는 것이다.
– 민주주의 혁명과 산업혁명은 기나긴 혁명의 첫발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기나긴 혁명’을 인간뿐만 아니라 사회 · 경제 · 정치 제도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혁명으로 정의한다. 문화 혁명은 수백만의 활동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심화되는 혁명이며, 공공연한 반발, 관습과 헤게모니에 의해 지속적으로 저지되는 혁명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민주주의 혁명, 산업혁명, 문화 혁명을 별개의 과정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변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의 형태에서 교육의 조직 및 내용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구조에서 예술과 오락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는 민주주의와 산업 진보의 상호작용에 의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심오한 문화 혁명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우리 삶의 경험을 이루는 대부분이며, 또한 예술과 사상의 세계에서 매우 복잡한 방법으로 해석되고, 실로 쟁취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변화를 정치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 등의 학문 분야로 포괄되는 변화들과 상호 연관시키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가장 난해하고도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질문들의 일부나마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 인문학의 지도 위에 ‘대중’을 새기다
‘기나긴 혁명’에 이르러서야 영미권의 문화 연구는 그 기초적인 개념들과 방법론을 온전하게 갖추게 되었고, 이러한 영미권의 문화 연구는 그와는 좀 다른 의미의 사회적-문화적 변화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문화계와 학계에도 ‘문화 연구’, 혹은 ‘문화 비평’의 바람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윌리엄스에 의해서 본격화된 문화 연구는 한국사회 내에서 문학 텍스트의 문화적 권위가 흔들리고 인문학과 현실 간의 괴리가 좀더 뚜렷하게 의식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여파에 힘입어 그동안 국내 대학에서 교양강좌 형태를 빌려 파편적으로 진행했던 비판적 문화 연구 수업이 최근 한 대학에서 대학원 정식 학문과정으로 격상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80년대 후반 몇몇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수업이 등장했던 것과 비견될 만하다. 이는 학문으로서의 문화 연구가 한국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근대 이후 수백 년간 이루어져왔으며 지금도 진행중인 기나긴 문화 혁명은 개개인이 기존의 제약과 압박을 뚫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제도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산업의 팽창과 기술의 진보가 더이상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개개인은 그저 ‘대중’의 일원이 될 뿐이라는 미국 좌파들의 비관주의나, ‘혁명’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그 체제의 일원이 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소련의 낙관주의(물론 이는 60년대의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를 모두 경계하고, 문화 연구라는 지적 작업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가 제시한 문화 연구의 핵심은 대중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참여와 자유, 그리고 책임감 있는 문화를 생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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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