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꽃중의 꽃 : 필리핀 민족시인 호세 리살 번역시
호세 리살 / 동안 / 2017.11.24
- 필리핀 민족시인 호세리살의 번역시집
소설가이면서 조각가, 의사, 시인인 필리핀의 건국 영웅 호세 리살 (1861~1896)의 시집이다. 편역자는 주제별 또는 시기별로 호세 리살의 작품을 7부로 나누어 총 29편의 시를 유려한 한국어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수록 시편 중 ‘나의 뮤즈에게’와 ‘꽃 중의 꽃’, ‘종교와 교육의 친밀한 동맹’ 그리고 “에스파냐 속의 필리핀” 편에 소개된 ‘콜럼버스와 후안 2세’와 ‘그라나다 정복’ 등 제3부 수록 전편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시인 호세 리살이 왜 시를 점차 포기하고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편역자는 리살이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에 의해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와 『훼방꾼』 중의 일부 내용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5부 “날개를 접은 시인”에 수록된 ‘엘리아 이야기’와 ‘카베스 탈레스 이야기’).
부록에는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설과 호세 리살의 삶과 예술을 요약, 소개한 글이 실렸다. 머리말과 권말 부록 ‘식민지 시대를 산 필리핀과 조선의 시인들’을 통해 백석 연구자인 역자가 필리핀을 총 네 차례 여행한 후 어떻게 이 시집을 발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한국 독자에게 적지 않은 재미와 기대를 안겨줄 것이다.
○ 목차
머리말 4
제1부 : 꽃의 노래
꽃 중의 꽃 14
하이델베르크의 꽃들에게 16
사람들은 내게 시를 청하지만 21
제2부 : 어린 시절의 꿈과 행복
나의 첫 영감 28
고향을 추억하며 31
종교와 교육의 친밀한 동맹 35
축사 39
파블로 라몬 학장 생신에 부쳐 41
제3부 : 에스파냐 속의 필리핀 ― 정복과 지배, 저항의 역사
출항 ― 페르디난드 마젤란 선단 찬가 46
그리고 그는 서반아인이었네 ―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엘카노 49
콜럼버스의 영웅 기질 53
콜럼버스와 후안 2세 58
커다란 불행 속에 크나큰 위안 61
압드엘아지스와 마호메트 73
유수(幽囚)와 승리 ― 루세나 전투와 보압딜의 투옥 82
그라나다 승리 87
제4부 : 폭풍 전야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102
노동의 찬가 106
쿤디만 ― 필리핀 세레나데 110
제 5 부 : 날개를 접은 시인 ― 소설가 호세 리살
엘리아 이야기 113
카베상 탈레스 이야기 135
제 6 부 : 유배지에서
나그네의 노래 148
탈리사이 찬가 151
나의 외진 시골집 156
제 7 부 : 비애(悲愛)
안녕, 레오노르 172
조세피나에게 173
마리아 클라라의 노래 174
C에게 176
나의 뮤즈에게 179
호세 리살 시 주해 187
호세 리살의 삶과 예술 202
작품 해설 : 식민지 시대를 산 필리핀과 조선의 시인들 229
○ 저자소개 : 호세 리살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안과의사, 필리핀의 민족주의 혁명가이다. 1861년 6월 19일에 필리핀 라구나 Laguna 주 칼람바 Calamba의 부유한 집안에서 2남9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리살은 두 살 때에 알파벳을 배우고 다섯 살에는 이미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일찌감치 형 파시아노 Paciano와 함께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정치사상에 눈을 떴다. 그는 스페인어를 비롯해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고, 시작詩作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후에 저항과 독립의 대명사가 될 리살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리살은 수도로 옮겨 학업을 이어나가 예수회 신부들이 세운 아테네오대학 Ateneo Municipal de Manila을 다니는 한편 산토토마스대학교 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눈이 멀자 바로 안과학 ophthalmology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물한 살이 되던 1882년엔 부모 몰래 스페인으로 건너가 마드리드국립대학교 Universidad Central de Madrid에서 공부하여 의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때부터 그는 스페인 신부와 지배자 들이 필리핀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곧 스페인 식민지배 체제의 비판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이어나갔으며, 유명한 병리학자 루돌프 비르초프 Rudolf Virchow의 지원으로 베를린 인류학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887년 4월에는 협회에서 타갈로그어 구조와 철자법에 관한 연설을 한다.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그는 독일어와 의학뿐만 아니라 과학, 미술, 조각, 시, 소설, 연극, 인류학, 역사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였다. 스페인 당국은 몹시 분노해서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는 필리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1887년 8월 5일에 필리핀으로 돌아온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 신부들이 소작농을 착취하고 내쫓음으로써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고, 리살은 농부들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한편 리살은 이 소설에서 마리아 클라라의 모델이 된 인물로 알려진 레오노어 리베라 Leonor Rivera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있던 그는 아버지와 주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서른 셋이 되던 1895년 2월에 리살은 홍콩 출신의 아일랜드 여성 조세핀 브라킨 Josephine Bracken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담당 신부는 그의 문학적 명성과 정치적 입장 때문에 세부 Cebu 주교의 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가톨릭 교회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성사가 아닌 세속혼 civil marriage을 감행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1892년에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 개혁을 이루려는 온건 시민운동 라리가필리피나 La Liga Filipina를 조직했지만 곧 해산당하고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지목된다. 같은 해 7월, 그는 폭동에 연루되어 필리핀 남단의 민다나오 섬 잠보앙가 Zamboanga주 다피탄 Dapitan으로 추방된다. 그곳에서 그는 학교와 병원, 급수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농업에 종사했다. 4년에 이르는 추방기간 동안 예수회 신부들의 구명 운동과 유럽 각지에서 동료 학자들이 보낸 지지 편지가 끊이질 않았으며,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폭발하기 직전까지 혁명의 배후자로 여겨졌다. 그는 봉기에 반대했지만, 비밀 혁명그룹인 카띠푸난 Katipunan은 그를 명예 대통령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전쟁, 통합, 자유와 동일시했다. 실상 그는 혁명보다는 인내와 희생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며, 평화적인 방법이야말로 필리핀 민중을 더 큰 고통에서 구해내는 것이라 믿었다.
카띠푸난의 주도 하에 일어난 혁명이 전국을 휩쓸며 들끓은 1896년에 리살은 황열병 의료 자원봉사를 하기 위하여 쿠바로 향하던 중 경유지였던 바르셀로나에서 카띠푸난과의 연계 혐의로 체포되어 곧바로 마닐라로 압송된다. 마닐라의 산티아고 요새 Fort Santiago 감옥에 갇힌 그는 교육과 민족 정체성의 확립만이 자유의 전제조건임을 확신하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는 반란, 선동, 음모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1896년 12월 30일에 처형되었다. 그는 마닐라의 파코 Paco 묘원에 아무런 표식 없이 비밀리에 매장되었지만, 새로 생긴 무덤들을 살핀 그의 누이 나르시사 Narcisa의 노력으로 간신히 찾아내었다. 리살은 오로지 그의 문학 작품으로 인해 사형을 당하고 스페인 지배를 도덕적으로 붕괴시킨 첫 필리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가 처형된 12월 30일은 “리살의 날”로 지정된 한편, 그가 처형당한 마닐라의 로하스 거리에는 리살 공원을, 수감되었던 산티아고 요새 근처에는 리살 기념관을 세워 스페인 압제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의 평화주의적 혁명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는 필리핀의 국가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간디, 타고르, 손문 등과 더불어 아시아 전역에 평화주의적 혁명 정신을 널리 퍼뜨린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와 후편인 『폭로자 El Filibusterismo』를 비롯하여 수많은 소설, 에세이, 시, 희곡, 미술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생애와 작품은 끊임없이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재생되고 있다.
– 역자: 김달진
본명은 김준섭 (金俊燮). 서울대 인문대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이근삼과 함께 백석시의 음악적 비밀을 푸는 시 연구모임 ‘백석과 노흘다’를 2011년 2월 처음 시작하여 2017년 10월까지 총 76회의 모임을 이끌었다. 역서로는 『에이프릴의 고양이』가 있고, 근간 예정 도서로 『백석 시 해설』과 『못 다 부른 노래 : 영랑 시 100편』, 『기타로 연주하는 헨리 퍼셀 명곡 33편』이 있다.
– 그림/만화: 김은수
○ 출판사 서평
- 저자 호세 리살 (Jose Rizal)
스페인 치하의 필리핀 독립 운동가이자 소설가, 시인, 의사. 1861년 필리핀 칼람바 태생으로, 사탕수수 농장을 크게 하는 부모에게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마닐라와 유럽의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 문학을 공부했다. 예수회가 설립한 마닐라 아테네오 학원에서 프란시스코 산체스 신부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시 창작을 시작했다. 1896년 12월 스페인 통치자들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된 이후 전광석화로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대표 작품에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와 『훼방꾼 (El Filibusterismo)』, 시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마지막 인사’가 있다.
- 편역자 김달진 (金達眞)
백석 시인 연구자. 본명은 김준섭 (金俊燮). 서울대 인문대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이근삼과 함께 백석시의 음악적 비밀을 푸는 시 연구모임 ‘백석과 노흘다’를 2011년 2월 처음 시작하여 2017년 10월까지 총 76회의 모임을 이끌었다. 역서로는 『에이프릴의 고양이』가 있고, 근간 예정 도서로 『백석 시 해설』과 『못 다 부른 노래 : 영랑 시 100편』, 『기타로 연주하는 헨리 퍼셀 명곡 33편』이 있다.
○ 독자의 평
호세 리살을 처음으로 주목한 한국인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변영로였다. ‘논개’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주(樹州) 선생은 1930년대 후반 ‘순국사세시(殉國辭世詩)’라는 제하(題下)에 오늘날 ‘마지막 인사’로 알려진 호세 리살의 시 13연을 번역해 잡지에 발표했는데 이를 시작으로 그의 여러 글과 시편이 차츰 총독부의 눈엣가시가 되어 일제 검경의 여러 윽박 속에 일제말 절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수주 다음으로 이 필리핀의 첫 민족시인에 주목한 학자는 6.25 동란기에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영문학자 김도성이다. 1911년 평안도 정주 태생으로, 그 자신이 시인이기도 한 김도성은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과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가 1956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그가 6.25 동란 중에 그가 일본에 건너가서 출간한 시집 『갈대』는 희귀본이 되어, 한 고서점에는 3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기도 하다.
김도성 시인이 1953년 『사상계』 7월호에 번역한 호세 리살의 ‘임종(臨終)의 노래’는 원문인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지만 원시의 분위기와 절절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래에 그 전문을 옮겨본다.
잘 있거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비추는
동녘 바다 진주의 터전, 빼앗긴 에덴!
내 좋이 그대에게 나의 눈물에 젖은 생명을 바치오리
나의 생명이 보다 빛나고 행복하고 장미인 양 붉다 해도 내 기쁘게 그대 위해 바치오리.
남들은 치열한 싸움터에서 그들의 생명을
서슴지 않고 아낌없이 던지거늘 죽는 자릴랑은 묻지 말라!
관을 짜는 젓나무나, 월계수와 나리꽃이거나, 교수대(絞首臺)와 벌판이거나
전투와 참혹한 순교(殉敎)이거나, 모두 마찬가지,
오로지 우리들의 조국과 고향을 위함이라면.
붉은 하늘이 검은 막을 뚫고 새날을
알리는 무렵 내 죽으오리
새벽 하늘을 물들일 자줏빛을 원하거든
여기 나의 피 있거니 내 기쁘게 흘리오리
내 피가 신생한 빛 머금어 찬연 빛나리라면.
내 어린 적에, 억센 청춘 시절에 꿈이란
애오라지 그대를 보는 것, 동녘 바다의 진주
그대의 눈물 어리지 않은 까만 눈망울
그대의 주름살 잡히지 않은 얼굴
그대의 티 없는 명예.
내 생명의 꿈이여! 나의 타는 고민이여!
바야흐로 떠나야는 영(靈)은 만세 부르나니
그대에게 날개를 주려고 쓰러짐은 광영이라
그대에게 생명을 주고
그대의 하늘 밑에 죽고
그대 조국의 품에 영원 잠드오리.
무르녹은 잎 속에 외로이 핀 한 송이 꽃을
그대 행여 내 무덤 위에 찾아오거든
그대의 입술에 갖다대고 나의 영(靈)을 입맞춰 다고
나의 이마에 그대의 따스롭고 부드런 입김을
차디찬 무덤 속에서 느끼게 해 다고.
달로 하여금 부드럽고 고요한 빛으로 날 지키게 해 다고
여명(黎明)으로 하여금 찬란한 광휘를 뿌리게 하여라
바람으로 하여금 장엄한 추도를 하게 하여라
행여 새가 날아와 내 십자가에 앉거든
평화의 찬미를 노래하게 해 다고.
타는 태양으로 하여금 이슬을 뿜게 해 다고
내 노래의 가락을 공간에 뿌리어라
나와 친한 자로 하여금 나의 조사(早死)를 조상하게 하여라
고요한 저녁에 기도 드리며
오 사랑하는 조국이여! 그대도 하나님께 기도 드려다고.
광역을 모르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다고
불평등한 고난에 신음하는 이들
남 몰래 신음하는 어머니들, 고아와 과부들
옥중에서 고문받는 이들 위하여 기도해 다오.
캄캄한 밤이 묘지를 감싸 주고
죽은이 모두 보아 주는 자 없이 홀로 남거든
그들의 안식을, 그들의 신비를 깨뜨리지 말아 다고
행여 거문고의 가락이 울리거든
사랑하는 조국이여! 그것은 그대에게 노래하는 나이니라.
내 무덤이 몰라보게 되고
십자가도 묘석도 남지 않게 되거든
밭 가는이로 하여금 그 흙을 들추게 하여라
그러면 나의 재는 사라지기 전에
그대의 땅의 티끌이 되오.
그러면 나는 망각(忘却)의 구렁에 떨어뜨려도 좋아
내 그대의 대기(大氣), 그대의 공간, 그대의 골짜기를 걷느오리
내 그대의 귀에 떠는 맑은 가락이 되오리
나의 진정한 신념을 되풀이하는
향훈과 빛과 풍설과 노래와 한숨.
나의 숭배하는 조국! 설움의 설움! 사랑하는 필리핀 사람들이여!
나의 최후의 이별곡을 들으시라, 내 모두를 그대에게 맡기노니,
나의 아버지들도 사랑도. 나는 노예 없는 곳으로 가노라
압제자도 사형 집행자도 없는 곳
신앙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으로.
잘 있거라! 나의 영(靈)을 낳은 아버지와 형제 들이여!
잃어버린 고향 어린 시절의 동무들이여!
내 노고(勞苦)하는 날을 떠나 안식함을 감사해 다고
잘 있거라 그리운 손, 나의 벗, 나의 기쁨
잘 있거라 사랑하는 것들이여, 죽음은 안식하는 것.
(1953년 5월 31일 역)
.오로지
.떠나야 하는
.光域. 사전적 의미의 원 뜻은 ‘피사체의 밝고 어두운 부분의 범위’를 말하나 여기 문맥에서는 ‘세상의 밝고 아름다운 면’을 말하는 듯.
.香薰. 향기로운 냄새. 꽃 향기
.風說. 떠돌아다니는 말. 풍문
백석시 연구를 하는 틈틈이 외국시를 번역하는 편역자 김달진은 이 번역시집에 리살의 ‘마지막 인사’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권말의 해설 원고에서 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였던 민용태 시인의 번역을 전문 인용 소개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자선 시집을 내기도 한 민용태 시인이 번역한 ‘마지막 인사’는 마닐라의 구도심 리살 기념관 입구의 돌기둥과 리살 공원(구 루세타 공원)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필리핀 민족시인의 대부격이라 할 수 있는 호세 리살의 대표작을 일람할 수 있는 이 번역시집에는 ‘꽃 중의 꽃’을 비롯한 ‘사람들은 내게 시를 청하지만’, ‘나의 외진 시골집’, ‘나의 뮤즈에게’, ‘고향을 추억하며’ 등 총 스물아홉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앞의 시 몇 편만 읽어 보아도 이 번역시집에 쏟은 역자의 열정과 정성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꽃중의 꽃』은 어린 학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재미와 감동으로 읽을 수 있는 번역시집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