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는 고발한다 : 해제,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에밀 졸라 / 책세상 /2005.5.10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외친 졸라의 용기는 그가 쓴 시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대한 국가 폭력에 맞서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개인, 졸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목소리는 사건 당시와 오늘날의 사이에 놓인 백여 년의 시간을 충분히 뛰어넘을 만큼 인상적이다. 졸라의 시론들을 모은 이 책은 행동하는 지식인 졸라의 면면을 보여주고, 오늘날 지식인이 가져야 할 시대와 사회, 역사에 대한 의무와 역할을 가늠하게 해준다.
– 지식인의 행동과 책임에 대해 말할 때 예외없이 언급되곤 하는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
그 중에서도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해명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졸라가 쓴 열한 편의 시론을 실었다.
거대한 국가 폭력에 맞서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개인, 졸라의 목소리를 통해서 여전히 진실이 가려진 사회 속에서 우리가 행동할 바를 생각하게 된다.

○ 목차
들어가는 말
서문
쉐뤠르 케스트네르 씨
조합
조서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 진술
정의
제5막
알프레드 드레퓌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공화국 대통령 에밀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
해제 –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1. 에밀 졸라
(1) 졸라의 문화사적 좌표
(2) 자연주의자 졸라
(3) 시대의 증인 졸라
2. 드레퓌스 사건
(1)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배경
(2) 드레퓌스 사건의 진행 과정
ㄱ. 드레퓌스 재판과 유죄 판결
ㄴ. 피카르의 문제 제기
ㄷ. 에스테라지 재판과 무죄 석방
ㄹ.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ㅁ.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과 사면
ㅂ. 드레퓌스의 완전한 복권
3. 드레퓌스 사건과 졸라
(1) <나는 고발한다!> 이전
(2) <나는 고발한다!>
(3) <나는 고발한다!> 이후
4. 멈추지 않는 진실
(1)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의미
(2) 졸라에게 보내는 경의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저자소개 : 에밀 졸라 (Emile Edouard Charles Antoine Zola)
1840년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토목기사 아버지와 가난한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엑상프로방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7세 때 아버지를 여윈 후 1858년 파리로 돌아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루이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두 차례 낙방한 후 학업을 포기하고 힘겹게 생활하다 아셰트 출판사에 취직했다. 1863년부터는 신문에 콩트와 기사를 기고하며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865년 자전적 중편소설 《클로드의 고백》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비평가이자 작가로 활동하여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테레즈 라캥》(1867), 《마들렌 페라》(1868) 등을 출간했다. 《마르세유의 신비》(1867)라는 통속적인 대작으로 발자크적인 사회 탐구를 시도한 후에는 발자크의 ‘인간극’에 영향을 받은 ‘루공-마카르’ 총서를 구상했다. ‘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사와 사회사’라는 부제가 붙은 루공-마카르 총서는 5대에 걸친 루공 가와 마카르 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총 20권의 연작소설로 그려낸 대작이다. 《루공 가의 운명》(1871)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한 편씩 발표되어 1893년 《파스칼 박사》를 끝으로 완결되었다. 총서에는 《목로주점》(1877), 《나나》(1880), 《제르미날》(1885), 《대지》(1887), 《인간 짐승》(1890) 등 졸라의 대표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1894년부터는 3부작 소설 ‘세 도시 이야기’를 집필해나가는 한편,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반유대주의에 기인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의 <나는 고발한다>(1898)를 발표하여 진보 지식인으로서 진실과 정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말년에는 연작소설 ‘네 복음서’ 중 《풍요》(1899), 《노동》(1901) 등을 출간했다. 1902년 9월 29일, 파리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네 복음서’의 세 번째 권 《진실》(1903)은 사후 출간됐으며, 1908년 유해가 국립묘지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 역자 : 유기환
1959년 태어난 그는 1977년 서울에 올라와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입학했다. 외무고시 이차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1979년부터 한 십 년 열심히 세상공부를 했다. 세상공부가 끝났다고 자부하던 순간 닥친 1990년대, 즉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대궤멸은 그에게 또 다른 방황을 안겼다. 최종적으로 그가 택한 것은 프랑스 유학이었다. 파리8대학에서 지도교수 자크 네프와 학우 다미엥 자논을 만난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다. 네프 교수는 문학의 경우 테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미학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다미엥은 수사학이 다만 장식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가장 공들인 분야는 글쓰기이다. 《노동소설, 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 《알베르 카뮈》, 《조르주 바타이유》,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공저) 등을 썼고, 바르트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카뮈의 《이방인》, 바타이유의 《에로스의 눈물》,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돈》, 외젠 다비의 《북 호텔》, 그레마스/퐁타뉴의 《정념의 기호학》(공역) 등을 번역했다. 그 외 <‘책을 읽는 하층민’ 쥘리엥 소렐의 독서 연구-《적과 흑》>을 비롯하여 불문학 관련 논문 30여 편을 썼고,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교수로 일하며 여전히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위의 고발을 함으로써 저는 1881년 7월 29일 제정 언론법 30조 및 31조에 따라 명예 훼손 행위로 기소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행위는 순전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제가 고발한 사람들에 관한 한, 저는 그들을 알지도 못하며,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으며, 그들에 대해 원한이나 증오를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제게 사회악의 표본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행위는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그토록 큰 고통을 겪은 인류, 바야흐로 행복 추구의 권리를 지닌 인류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의 열정, 즉 진실의 빛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불타는 항의는 저의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부디 저를 중죄 재판소로 소환하여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존경과 더불어 인사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안녕히 계십시오. – 본문 108쪽에서
사법적 오판은 슬픈 일이지만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법부가 틀릴 수도 있고, 군부가 틀릴 수도 있다. 여기서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오판이 내려졌을 때 시급한 단 하나의 의무, 그것은 조속히 오판을 시정하는 것이다.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날, 바로 그날 진정한 과오가 시작되리라.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판을 인정하는 데 괴로움과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결심을 하는 날, 바로 그 날 만사가 형통하리라. 그 점을 인식하는 이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쉐레르 케스트네르 씨’ 中)-28쪽
청년, 청년들이여! 언제나 정의와 함께 있으라. 그대들의 내면에서 정의의 관념이 희미해지는 날, 그대들은 파멸하리라. 지금 나는 사회적 관계의 보장에 지나지 않는 ‘법전’의 정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존중해야 하리라. 그러나 좀더 숭고한 관념, 모름지기 인간의 판결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정의, 심판자들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기결수의 무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의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법을 향한 그대들의 불타는 열정을 자극하는 모험이 아닌가? 아직 이해관계나 인간관계가 뒤얽힌 이전투구에 휩싸이지 않은 그대들, 아직 어떤 비열한 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은 그대들, 순수와 선의로 목청껏 외칠 수 있는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정의의 완성을 위해 일어날 것인가? (계속)-67쪽
(이어서) 청년, 청년들이여! 인간성을 지켜라. 관용을 잃지 마라. 설령 우리가 틀렸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있으라. 무고한 자가 끔찍한 형벌을 당하고 있고, 분노에 찬 우리의 가슴이 고통으로 찢어졌다고 우리가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비록 한순간일망정 이 한없는 형벌 앞에서 사람들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슴이 고통으로 찢어졌다고 우리가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비록 한순간일망정 이 한없는 형벌 앞에서 사람들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슴이 미어지고, 두 뺨에 눈물이 흐른다. 물론 간수들은 여전히 무정하고 무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대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온갖 비참과 온갖 연민에 민감한 그대들은 어찌된 일인가! 이 세상 어디엔가 부당한 증오를 받으며 죽어가는 순교자가 있을 때, 그대들이 어떻게 그의 대의를 지키고 그를 해방하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숭고한 무험을 감행할 것이며, 도대체 누가 위험하지만 훌륭한 대의 속에 몸을 던질 것이며, 도대체 누가 이상적 정의의 이름으로 군중에 대항할 것인가? (계속)-67-68쪽
(이어서) 만일 늙은 기성세대가 그대들의 고귀한 혈기, 고귀한 열정을 대신 불태운다면, 그대들은 얼마나 부끄러울 것인가? 청년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학생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거리로 내달리는 그대들, 시위의 물결을 이룬 그대들, 시대의 혼란 속으로 스무 살의 용기와 희망을 던지는 그대들이여…… “이제 우리 함께 가오, 인간과 진실과 정의의 세상을 향하여!”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中)-68쪽
애초에 내가 말한 대로, 진실은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으리라. 사악한 무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전진이 한 걸음 한 걸음 적시에 이루어지리라. 진실은 그 자체로 온갖 장애물을 분쇄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또 얼마간 진실을 땅속에 묻어두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때에도 진실은 땅속에서 자라며, 땅속에서 엄청난 힘을 얻고, 어느 날 폭발의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버리리라. 앞으로 몇 달 더 거짓과 밀실 속에 진실을 가두어보리라, 그러면 그대들은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재앙을 준비했음을 곧 알게 되리라.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中)-73쪽
대통령 각하,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진실은 당신의 통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단지 헌법과 측근의 수인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대로 역시 완수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사건’이 진정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오늘에서야 각자의 입장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 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장 멀리까지 울려 퍼질 재앙 중의 재앙을 준비했다는 것을. (‘나는 고발한다’ 中)-105-106쪽

○ 출판사 서평
– 격문의 꽃, ‘나는 고발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9·11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보라. 안보를 빌미로 한 국가 폭력, 보수와 진보의 대결, 인종 차별,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 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 혼란스러운 시대에 진실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047)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국내 최초로 번역된『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쓴 13편의 시론이 실린 『멈추지 않는 진실 : La Verite en marche』 중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은 〈브리송 씨에게 보내는 편지 : Lettre a M. Brisson〉와 〈상원에 보내는 편지Lettre au Senat〉를 제외한 열한 편을 수록했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11편만으로도 졸라 주장의 요체와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민주 항쟁 격문의 꽃으로 불리는 〈나는 고발한다!〉는 매우 친숙한 제목이면서도, 그동안은 번역이 되지 않은 탓에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들은 전문을 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거대한 국가 폭력에 맞서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개인, 졸라의 목소리가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목소리는 사건 당시와 오늘날의 사이에 놓인 백여 년의 시간을 충분히 뛰어넘을 만큼 인상적이다.
– 진실이 행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1894년 10월 31일 독일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드레퓌스라는 이름의 프랑스 장교가 체포되었을 때, 이는 단순한 정보원 사건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 사건을 봉건 보수 세력과 공화 진보 세력의 대결로 기억하며, 유태인의 정체성 확립과 이스라엘 건국의 계기로 파악하며,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의 효시로 인식한다. 하지만 졸라가 없었다면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쓰게 된 계기는 1898년 1월 11일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법정이, 진범인 에스테라지에게 무죄 석방을 선고한 것이었다. 이전부터 신문이나 팸플릿에 글을 써서 드레퓌스 재심 운동을 추진해왔던 졸라는 격분하여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격문을 작성했다. 1월 13일 이 글은 진보 성향의 일간지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몇 시간 만에 30만 부 이상 팔렸으며, 여론의 향방을 돌려놓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학생, 작가, 예술가, 과학자, 교수 들의 대대적 지지가 이어졌다. 에스테라지의 석방, 최초로 양심선언을 했던 피카르 중령의 투옥, 재심 운동의 중심에 있던 쉐레르 케스트네르의 상원 부의장직 상실 등 여러 악재로 꺼져가던 드레퓌스 사건 재심 운동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격앙된 어조로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객관적인 논리로 진실을 유추하는 이 시론은, 졸라가 실명을 거론하며 고발했던 자들의 범죄가 훗날 실제로 밝혀지면서, 그의 냉철한 분석과 현명한 판단을 다시 입증했다.
– 지식인의 전형, 졸라
드레퓌스 사건은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화두는 지식인, 즉 지식인의 행동과 책임이다. 드레퓌스파 식자들은 발언을 주고받고 행동을 조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회집단을 형성했으며, 반드레퓌스파 진영에서는 이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에도 지식인이란 단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현대적 의미, 즉 지적 활동 (사유의 영역)과 사회 참여(실천의 영역)를 결합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며, 사실상 졸라가 그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레퓌스 사건 이후에야 프랑스에서 양심에 따른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필요’의 차원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졸라의 장례식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자신의 조사(弔詞)를 지식인 졸라에 대한 찬사로 끝맺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방대한 저작과 위대한 참여를 통해 조국을 명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를 부러워합니다. 걸출한 삶과 뜨거운 가슴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운명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 추천글
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 – 정제원 (시인, 문학박사)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쓴 시론 모음집 《멈추지 않는 진실》에서 11편을 골라 엮은 이 책은 신문 게재 후 여론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민주 항쟁 격문의 꽃으로 평가된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 독자의 평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을 바라보고 있으니 행동하는 지성인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보수와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의 다툼을 보면 감정적인 갈등을 넘어서서 폭력적인 성향마저 보여주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실천하는 지성인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체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한 움직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기대가 되던 인물들도 아예 현실의 상황에서 손을 떼고, 음지로 들어가는 오늘날의 모습이 암담하게 느껴진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판단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헐뜯는데 혈안이 된 이러한 풍조는 정치는 물론 사회의 전반으로 팽배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1900년대를 전후로 한 프랑스 제3공화정의 초반부의 상황과 비슷해보인다.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제2제정이 막을 내리고 성립된 제3공화정은 독일에 대한 복수를 다지며 군부가 득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여기에 더하여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면서 반사회주의, 반유태주의가 팽배한 상태였다. 북한과 대치중인 우리는 국가 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입장인데, 이것을 정치적, 이념적으로 이용하여 각종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프랑스의 그것과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894년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의 이념적 대립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셔널리즘의 강조, 반유태주의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유태인 출신 장교였던 드레퓌스가 스파이로 몰리면서 프랑스의 내부적 이념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역시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굵직한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도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한 것을 비추어 본다면 100여년의 시차와 공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행이론처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다만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에밀 졸라와 같은 실천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였다는 점이고, 우리의 현실은 아쉽게도 그러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체와 경로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진영에서도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인이 아닌 지식인의 실천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기에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통하여 과거 프랑스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과 같은 ‘루공 마카르’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에밀 졸라가 왜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민감한 사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사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진행될 때, 에밀 졸라는 자신의 작품 구상을 위하여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없었다. 또한 드레퓌스가 유죄 판결을 받고, 섬으로 유배를 떠나는 상황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에밀 졸라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국민들도 그러했다. 군부의 득세와 반유태주의가 팽배한 상황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스파이 활동을 한 유태인 출신의 드레퓌스에게 동정을 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1896년 피카르 중령이 우연히 맡은 사건에서 용의자로 떠오른 에스테라지가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임을 알게 되면서 프랑스는 극심한 이념 논쟁에 시달리게 된다. 모호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부는 유태인이었던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몰아서 처벌하였지만, 정작 피카르가 제시한 재조사 요구는 묵살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군부의 실수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피카르를 오지로 내쫓기까지 한 것이다.
에밀 졸라는 이러한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드레퓌스의 구명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나는 고발한다>는 1897년부터 1900년까지 쓴 13편의 글에서 2편을 제외한 11편의 글이 실려 있다. 드레퓌스의 복권을 위하여 그의 투쟁을 기록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인 ‘나는 고발한다’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펠릭스 포르에게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조력자들, 프랑스의 젊은이, 국가로서의 프랑스에게 호소하는 글들에 이어 대통령에게 직접 고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왜 에밀 졸라는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우선 졸라는 드레퓌스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그가 무죄임을 믿었기 때문에 다시 복권 운동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에밀 졸라는 스스로 술회를 한다. 개인적으로 드레퓌스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심지어 자신이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태인에게 호의를 갖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로 복권 운동에 참여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제가 고발한 사람들에 관한 한, 저는 그들을 알지도 못하며,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으며, 그들에 대해 원한이나 증오를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제게 사회악의 표본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행위는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그토록 큰 고통을 겪은 인류, 바야흐로 행복 추구의 권리를 지닌 인류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의 열정, 즉 진실의 빛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중략)” -p. 108 –
위의 내용은 ‘나는 고발한다’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그가 진실과 정의를 위하여 에밀 졸라가 적극적으로 드레퓌스의 구명운동에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더 들여다보면 ‘행복 추구의 권리를 지닌 인류의 이름’이라는 부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중 팸플릿으로 작성된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서 에밀 졸라는 바로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이념을 정립한 프랑스의 본질적인 모습 회복의 촉구를 주장하고 있다. 즉, 드레퓌스 사건은 반유태주의와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의 희생양이며 동시에 프랑스의 가치와 이념이 땅에 떨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의 복권이야말로 개인의 명예와 더불어 프랑스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재심을 청구하는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밀 졸라는 당시 사회에서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법정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자, 영국으로 망명을 하기도 하였지만, 끝까지 그는 드레퓌스의 복권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카톨릭과 같은 보수 세력과 군부로부터 탄압과 비판을 받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박탈당하는 수모를 당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의 복권을 살아 생전 지켜보지 못하였고, 반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경제적인 파산 단계까지 이르고, 가스 사고라는 미심쩍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후에 다시 명예스러운 복권을 받기는 하지만, 그의 말로를 들여다본다면 지성인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고발한다>에 실려 있는 에밀 졸라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신념, 톨레랑스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관용 정신의 회복에 대한 갈구는 영원히 전승되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옳다고 생각되는 바에 따라 행동한 그의 행적은 근래에 몇 안되는 실천하는 지성인의 귀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 프랑스의 이념적 갈등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음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보고 있노라하면 다소 거친 전위대를 동원하여 서로를 규탄하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목격됨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검은 돈에 매수되어 생각없이 동원된 것일까? 모든 국민들이 깨어 있어서 말도 안되는 정책의 진행이나 법의 판결, 이념논쟁에 나름의 주관을 갖고 들여다보면 이상적이겠지만, 실제로 그것은 이상적인 바램일뿐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직면하고 있는 부조리에 대하여 외면하는 상황속에서 어쩌면 에밀 졸라와 같은 실천하는 지성인의 등장이 절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한 등장을 계기로 민중들도 조금씩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실천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비록 100여년 전의 내용이지만, <나는 고발한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