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내 남편 윤이상 상, 하
이수자 / 창작과비평사 / 1998.9.1
– 20세기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이면서도 민족통일을 위해 남과 북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묻힌 윤이상에 대한 부인의 회고록
일제 치하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일, 나이 사십에 유학길에 올라 동서양이 어우러진 현대음악의 창조자로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까지의 과정, 동베를린사건에의 연루와 구속으로 시작되어 죽기까지 계속된 조국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열정의 삶을 애절한 그리움으로 그려내고 있다.
○ 목차
[상권]
책을 내면서
나의 조국, 나의 음악•윤이상
1. 삼세의 인연
나의 친정 / 꿈 많은 여학생 시절 / 이화동산 / 음악선생 윤이상 / 불행 속의 빛 / 산과 들을 거닐며 / 흙 속의 금강석
2. 음악은 천직인가
사랑의 보금자리 / 6•25전쟁 / 첫아기 / 서울에서의 음악활동 / 오화섭씨와의 공개논쟁 / 제5회 `서울시 문화상`을 받다
3. 상처 입은 용
윤이상의 조상 / 상처 입은 용 / 자랑스러운 고장 / 무당굿 / 연못가의 향수 / 황홀한 첫 작품 / 배움의 길 찾아 일본 유학 / 태평양전쟁 발발 / 해방된 땅에서 / 고아들의 부모 되어
4. 유학의 길, 성공
이국의 하늘에서 / 빠리―망향 / 서독 베를린에서 /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의 국경지대에서 / 국제현대음악제 / 이승만 정권의 붕괴
5. 이국생활
5•16군사정변 / 남편에게로 가다 / 삶의 재출발 / 동서양의 음악꽃을 피우다 / 한인회 회장 / 평양으로 가다 / 강서고분 벽화 「사신도」 / 베를린으로 이주, 아이들 오다 / 동서양 양성으로 분출한 음악 / 미국, 각 하기음악제에서의 초청 / 나와 박정희
6. 동베를린사건
국내 정세 / 납치 / 고문 / 자살기도 / 나의 납치 / 취조실 / 옥중에서 남편과의 첫대면 / 옥중 작곡 오페라 / 윤이상 구명운동 / 아이들과의 편지왕래 / 병보석 `대학병원` / 「영상」 / 답답하고 무료한 갇힌 생활 / 서독 특별사절단 내한 / 오페라 성공/ 해방, 새로운 삶
[하권]
7. 상처 입은 몸 독일로
오페라를 보는 신문의 눈 / 「나비의 미망인」 / 킬문화상, 한국 제자 및 공광덕 / 「요정의 사랑」 / 우리의 고향이 된 클라도우 / 독일 국적 / 오페라 「심청전」 / 휴양
8. 민주화운동
민주운동에 적극 가담 / 해외민주화운동 대두 / 순수와 화합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하여 /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음악회 / 정신적 승화를 갈구하며 / 남편과 『월간음악』 / 「광주여 영원히!」 / 김대중 구명운동, 사회주의인터(SI)에 구명을 호소 / 한국 민주화 지원 긴급세계대회 / 제7회 대한민국음악제
9. 북과의 접촉
북녘의 딸을 며느리로 / 김일성 주석과의 대면 / 윤이상 작품 평양에서 연주 / 예술로 민족에 이바지하다 / 윤이상음악연구소 개관 / 북한국립교향악단 `바르샤바의 가을` 현대음악축전에 참가 / 윤이상음악연구소 확장
10. 민족의 통일을 위해
38선에서 남북합동음악축전으로 민족의 한을 풀자 / 범민족통일음악회 / 서울송년음악회 / 선물로 내려진 집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의장
11. 예술, 철학, 삶
나의 예술 / 작곡할 때의 남편 / 피아노곡과 두 개의 협주곡 / 5대 교향곡 /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 이국에서의 감상과 창작적 영감 /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 수여 / 국제씸포지엄, 민족문화와 세계공개성 / 선생이란 / 연금과 노후보장 / 한국과 남편 / 오길남 사건 / 신상옥·최은희 사건 / 슈바르츠발트 요양소에서 / 윤이상 탄생 75주년 축하음악회 / 함부르크자유예술원에서의 시상식 / 한국 윤이상음악제 / 마지막 작품 「화염 속의 천사」 / 임종
후기
윤이상 연보
윤이상 작품연보
○ 저자소개 : 이수자
1927년 부산에서 출생.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를 수료한 뒤 부산 南여자중학교 국어교사를 지냈다. 1950년 윤이상과 결혼한 후 61년 독일로 이주했다. 저서로 『내 남편 윤이상』(1998 창작과비평사)이 있다.
○ 책 속으로
유럽 각지에서 온 한국인들도 꽤 참석하고 있었소. 프로그램이 한 장씩 배부되자 청중은 ‘이상 윤’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걸 보고 도대체 어디 사람인지 궁금했으리라. 팸플릿에는 “이상 윤의 현악 4중주 1번 유럽 초연”이라고 적혀 있었소. 나의 작품이 연주되던 날은 대행사의 마지막 날로 피날래를 장식키 위한 기념연주였소. 현악4중주는 처음에 조용하고 섬세하게 연주되었소. 연주가들은 연주를 참 잘하였소. 1악장이 끝나자 박수가 나왔소. 그 다음 주교들과 주최측의 인사가 시작되었고 이어 강연이 있었소. 마지막으로 2,3악장이 끝나자 다시 박수가 일어났소. — 상권 p. 151
○ 출판사 서평
누가 시켜서도 빌어서도 아닌데 오직 자신이 정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길이 험준한 산길이요 폭풍우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뇌성벽력이 내리치는 길이라 해도 그 길을 꼭 걸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제에 투옥되고,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며, 그리고 전쟁고아들을 양육하면서 20년 세월을 민족의 수난과 더불어 보낸 사람. 나이 사십이 되어 유학길에 올라 평생을 염원하던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었으면서도,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면 당장이라도 작곡을 내던지고 그 길을 서슴없이 달려갈 것이라던 사람. 민족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평생을 몸바쳐 실천해 온 사람. 나의 남편 윤이상. 그는 그렇게 사랑하던 고향을 끝내 가보지 못한 채, 모든 병고도 민족의 고뇌도 다 털어버리고 갔습니다. -「책을 내면서」에서
○ 언론소개 : ‘내남편 윤이상‘ 부인 이수자씨 회고록 출간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작곡가로 태어나요. “
“그래?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래?”
“그러면 다시 당신의 아내가 돼야지. “
“그러나 후생에서도 (고생이) 또 되풀이되면 어떻게 하지?”
“여보! 그 때에는 우리 나라가 통일이 될 것이고, 남북이 갈라져서 당신이 그 사이에 끼여 고생할 것도 없을 테고 다음 세상에는 우리 고생 적게 할 거야. “
“그럼 그렇게 하지. “
지난 95년 11월 78세를 일기로 타계한 작곡가 윤이상과 그의 부인 이수자 (72) 씨가 윤씨의 마지막 자리에서 나눈 말이다.
분단 조국의 생채기를 아파하며 이역만리에서 반 (半) 평생을 보낸 윤씨의 행장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내 남편 윤이상’ (전2권) .이씨가 20세기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꼽히는 남편의 모든 것을 7백여쪽의 책에 정리했다.
이야기는 윤씨 부부의 첫 인연에서 시작한다.
장소는 48년의 부산사범학교. 각각 음악교사와 국어교사로 만나 나이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결핵을 앓아 몸이 약했던 윤씨. 어렵게 시작한 결혼생활 등. 그리고 6.25와 서울 생활, 득녀와 득남, 나이 40에 떠난 윤씨의 유럽유학 등이 이어진다.
6.25 이후 한때 윤씨가 전쟁 고아원을 운영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윤씨의 독일 유학은 이들 부부에게 말 그대로 전환기. 3년 일정으로 떠난 유학은 윤씨에게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비극의 출발이기도 했다.
“떠나고 보니 잊어버린게 잊어 – 뭔가 하면 – 내 땅의 흙 한 줌과 당신의 머리칼을 다음 소포에 부쳐주도록 하오. ” 유럽으로 가는 도중 아내에게 부친 이 편지는 그의 나머지 삶을 규정하고 만다.
윤씨가 이후 ‘내 땅의 흙 한 줌’ 을 직접 만지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 끝내 악수하지 못한 남한정권과 이를 예술로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으로 납치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속에서도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 을 완성하는 장면은 한 예술가의 서글픈 초상화를 보여준다.
이제 미망인은 먼저 간 이에게 시를 띄운다.
남편의 고향인 통영 바다에서 남편이 민족의 유산으로 남긴 1백50여곡이 울려퍼지는 날을 고대한다며.
“당신을 키워준/당신의 바다에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습니다/내 그 바다에 가는 날/ (…) /파도 철썩이는 바위 위에서/당신의 음악도 듣겠습니다. ” _ 박정호 기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