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내 이름은 빨강 1, 2
오르한 파묵 / 민음사 / 2019.10.28
『내 이름은 빨강』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구성으로, 역사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현대적 서사기법을 취하고 있다. 살해당한 시체, 여자 주인공 셰큐레, 남자 주인공 카라, 술탄의 밀서 제작을 지휘하며 서양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두 번째 희생자 에니시테, ‘나비’, ‘올리브’, ‘황새’라는 예명을 가진 세 명의 세밀화가는 물론, 금화, 나무, 죽음, 빨강(색), 악마, 그림 속 개까지 말을 한다.
이러한 서사기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 중 과연 누가 살인범인지 궁금해지게 만들뿐더러,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정황과 생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면서 작중 인물들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겹쳐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하는 이러한 서사기법은 마치 블록을 쌓아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며, 이 작품이 대단히 치밀한 건축학적 구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터키의 문학가 오르한 파묵이 쓴 장편 추리소설
200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선 민음사에서 1, 2권으로 발행했다가 2019년 10월 28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51~52권으로 편입되어 발간되었다.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꿨던 작가가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를 모사하며 연구했고 건축학도를 거쳐 소설가가 된 이후에 어릴 적 소망을 담아서 집필한 작품이다.
문장의 형식이 독특하기로 유명한데, 등장인물 전원이 파트 당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서술도 그들의 시점에서 나누어져서 설명한다. 등장인물이라고 하지만 동식물, 악마, 물건, 시체, 심지어는 색깔까지 나서서 말을 한다. 이러한 화법 때문에 시점이 시도때도 없이 달라져서 헷갈리기 쉬운 어려운 책으로 인식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선악의 경계가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추리물이지만 전반적으로 터키의 문화, 특히 성문화나 오스만 제국 시절 미술양식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어 터키를 이해하기 위한 문학으로도 높은 가치성을 가지고 있다.
1591년 오스만 제국의 궁정화가 “엘레강스”가 이스탄불 외곽의 버려진 우물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가 된 엘레강스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범인의 정체는 모른다.
한편 여주인공 세큐레는 남편이 4년 전 페르시아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자 남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새 남편감을 찾으려고 궁정화가들을 물색한다. 그러던 중 살인 사건을 추리하기 위해 12년 전 어린 시절 세큐레와 맺어지지 못하고 헤어진 사촌 “카라”가 돌아오자 세큐레는 남자답게 성장한 카라를 보며 다시 설레기 시작하지만 카라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시선과 여러가지 문제로 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궁정화가들을 모아 비밀리에 책을 만들고 있던 세큐레의 아버지인 에니시테는 원근법이 적용된 서양식 미술양식에 매료되어 술탄을 설득하고 궁정은 혼란이 불게 된다. 궁정화가 3인방인 나비, 올리브, 황새는 서로의 가치관을 설파하면서 이들 중 누가 엘레강스를 살인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살인자가 있는 것인가?로 이야기는 미궁에 빠진다.
○ 목차

– 1권
나는 죽은 몸
내 이름은 카라
나는 개입니다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나는 오르한
내 이름은 카라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나는, 셰큐레
저는 한 그루 나무입니다
내 이름은 카라
나를 나비라 부른다
나를 황새라 부른다
나를 올리브라 부른다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나는, 셰큐레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저는 금화올시다
내 이름은 카라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내 이름은 카라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죽음이다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나는, 셰큐레
내 이름은 카라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나는, 셰큐레
내 이름은 빨강
나는, 셰큐레
내 이름은 카라

– 2권
나는, 셰큐레
저는 말입니다
내 이름은 카라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내 이름은 카라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내 이름은 카라
나를 올리브라 부른다
나를 나비라 부른다
나를 황새라 부른다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악마다
나는, 셰큐레
내 이름은 카라
우리는 두 명의 수도승
내가 화원장 오스만이다
내 이름은 카라
저는 에스테르랍니다
저는 여자예요
나를 나비라 부른다
나를 황새라 부른다
나를 올리브라 부른다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셰큐레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본명: Ferit Orhan Pamuk, 페리트 오르한 파무크)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부유한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3년간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건축가나 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자퇴했다.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의 아들들』을 출간하여 오르한 케말 소설상과 밀리예트 문학상을 받았으며, 다음해에 출간한 『고요한 집』 역시 ‘마다마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받았다. 또한 1985년 출간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으로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는 뉴욕타임스 격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교수로 지내면서 대부분을 집필한 『검은 책』(1990)은 ‘프랑스 문화상’을 받았으며, 이 소설을 통해 파묵은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출간된 『새로운 인생』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내 이름은 빨강』(1998)은 현재까지 35개국에서 출간되었고,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 (2002), 이탈리아 ‘그란차네 카보우르 상’ (2003),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2003)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정치 소설’이라 밝힌 『눈』(2002)을 통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소설을 실험했다. 2003년에는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을 발표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파묵은 2006년에는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검은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밖에 2005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평화상’과 프랑스 ‘메디치 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순수 박물관』(2008)은 파묵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였다. 그의 지독하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는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출간되는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2012년 4월에는 이스탄불에 실제 ‘순수 박물관’을 개관해 문학의 확장성을 증명했다. 2006년부터 컬럼비아 대학에서 비교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호르헤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움베르토 에코의 뒤를 이어 하버드 대학 ‘찰스 엘리엇 노턴’ 강의를 맡은 후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2010)를 출간했다. 최근 국내 출간 도서로 에세이 『다른 색들』(2006), 소설 『내 마음의 낯섦』(2014), 『빨강 머리 여인』(2016) 등이 있다.
– 역자 : 이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터키문학으로 석사학위, 터키 국립 앙카라대학에서 터키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터키 문학의 이해』,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 『오르한 파묵과 그의 작품 세계』(터키 출간), 『한국어-터키어, 터키어-한국어 회화』(터키 출간) 등이 있으며 터키문학과 문화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빨강』등 50권이 넘는 터키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6편의 한국문학 작품을 터키어로 번역했다.

○ 주요 등장인물
.카라 에펜디 : 작품의 남주인공. 나이는 36세. 12년 전 이종사촌인 세큐레와 헤어져 동쪽 지방을 전전하며 이스탄불의 특정인들의 의뢰를 받아 책을 만들고 사람을 찾는 일을 주로 했다. 에니시테의 부탁으로 이스탄불로 돌아온다.
.세큐레 : 작품의 여주인공. 검은 눈을 가졌고 절세미인이다. 카라와는 12살 차이다. 남편이 페르시아 전쟁에 파견나간 후 계속 기다리지만 4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혼사를 고민 중이다.
.에시니테 에펜디 : 카라의 이모부. 세큐레의 아버지이다. 에니시테란 말은 삼촌 뻘의 친척 아저씨를 지칭하는 말인데 카라의 어머니가 카라에게 에니시테 에펜디라고 가르친 이후로 주변 사람들까지 전부 그렇게 불러서 어느새 본명보단 에니시테 에펜디로 더 많이 불린다.
.엘레강스 : 벌이가 좋은 궁정화가. 화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 밖에 없을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살다가 어느 날 밤, 괴한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맞고 우물에 던져진다. 시체가 된 이후에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어서 자신의 시체 묘사를 불필요할 정도로 많이 떠벌리면서 원통함을 토로한다.
.나비
.황새
.올리브
.에스테르 : 방물장수 겸 중매쟁이 유태인 여자. 카라와 세큐레 사이에서 심부름을 해주며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지나치게 오지랖이 많은 성격 때문에 세큐레가 약간 경계를 하고 있다.
.셰브켓 : 셰큐레의 첫재 아들. 아버지의 동생인 핫산의 빨간색 칼을 보물처럼 여기는 아이로 카라가 자꾸 어머니와 만나자 싫어하는 티를 역력히 낸다.
.오르한 : 세큐레의 둘째 아들. 세큐레에게 엘레강스의 살해 소식을 알린다.
.하이리예 : 세큐레 집안의 하녀. 에니시테와 내연관계다.
.오스만 : 환관장으로 카라가 돌아오자 엘레강스를 죽인 범인을 찾는 임무를 주기 위해 그를 호출한다.
.핫산 : 세큐레의 남편의 동생. 형이 페르시아 전쟁에 나가고 소식이 없자 세큐레와 아이들은 핫산네 집에서 얹혀살게 되는데 대놓고 세큐레를 유혹하려 들어 정내미가 떨어진 세큐레가 핫산의 집을 나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 책 속으로
– 1권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 본문 중에서
나는 카라의 에니시테다. 처음에는 카라의 어머니가 그에게 나를 ‘에니시테 에펜디’라고 부르도록 가르쳤는데, 나중에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에니시테라고 부르게 됐다. 카라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우리가 약사라이 동 뒤편, 밤나무와 보리수가 우거진 어둡고 눅눅한 골목에 살던 시절부터였다. — p.61
만약 당신들이 세밀화를 그리거나 예술 창작을 하면서 실망감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당신들이 타고난 재주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몰라도, 부와 명예는 다른 곳에서 찾는 게 좋을 것이다. — p.53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을 처음 보자마자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검은 머리칼, 새하얀 피부, 초록색 눈동자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팔뚝도 단단하고 강해 보였지요. 하지만 그는 늘 잠든 아이처럼 천진하고 조용했습니다. — p.92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바보들만 사랑에 빠지는 걸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방물장수 겸 중매쟁이 노릇을 해 왔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 불이 붙을수록 더 영리해지고 약아지며 지능적으로 술수를 쓰는 연인들 중에서도 특히 남자 쪽이 저는 아주 궁금하답니다. — p.164
“색의 의미는 그것이 우리 앞에 있다는 뜻이며, 그것을 우리가 본다는 것을 뜻하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빨강을 설명할 수 없네.” — p.362
– 2권
나의 슬픈 결혼식의 마지막 하객들이 신발을 신고 옷을 걸치고, 사탕 빠는 아이들을 끌고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 나자, 그 뒤에는 긴 정적이 흘렀습니다. — 본문 중에서
삶이 꽉 끼는 셔츠와 같다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왕국에서 진정한 행복은 육신이 없는 영혼이라면, 산 자들의 영토에서 가장 큰 행복은 영혼 없는 육신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죽은 다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 p.57
술탄 앞에서 시합을 벌인 두 명의 의원 가운데 분홍색 카프탄을 입은 한 명이 코끼리를 죽일 만큼 독성이 강한 초록색 알약을 만들어서 푸른색의 카프탄을 입은 다른 의원에게 주었다. 푸른색 카프탄을 입은 의원은 먼저 독이 든 알약을 먹고, 곧바로 푸른색 해독제를 꿀꺽 삼킨 다음 달콤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그가 경쟁자에게 죽음을 맛보게 할 순서가 되었다. 푸른색 카프탄을 입은 의원은 천천히 분홍색 장미를 꺾어 입술에 갖다 대고는 장미꽃 속에다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어둠의 시를 속삭였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분홍색 카프탄의 의원에게 장미 향기를 맡으라고 지시했다. 분홍색 카프탄의 의원은 장미 안에데 속삭인 시의 힘이 너무나 두려워서, 향기 이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 장미가 코에 닿자마자 겁에 질려 죽고 말았다. — p.131

○ 출판사 서평
–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대작,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함께 이룩해 낸 위대한 도시 이스탄불, 오스만 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음모와 배반 그리고 목숨을 건 사랑
.2002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 수상
.2003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2003년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
– 20세기적 글쓰기로 16세기를 마술처럼 생생하게 복원해 내는 비범한 능력, 오르한 파묵에게 ‘진정한 이야기의 대가’라는 칭호를 붙여 준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구성으로, 역사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현대적 서사기법을 취하고 있다.
살해당한 시체, 여자 주인공 셰큐레, 남자 주인공 카라, 술탄의 밀서 제작을 지휘하며 서양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두 번째 희생자 에니시테, ‘나비’, ‘올리브’, ‘황새’라는 예명을 가진 세 명의 세밀화가는 물론, 금화, 나무, 죽음, 빨강 (색), 악마, 그림 속 개까지 말을 한다.
이러한 서사기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 중 과연 누가 살인범인지 궁금해지게 만들뿐더러,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정황과 생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면서 작중 인물들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목소리들이 차곡차곡 겹쳐지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하는 이러한 서사기법은 마치 블록을 쌓아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며, 이 작품이 대단히 치밀한 건축학적 구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넓은 화폭 위에 대단히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오브제들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작품 속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이슬람 문화의 꽃인 세밀화를 이야기의 형태로 구현해 내고 있다.
이처럼 파묵은 역사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대단히 모던한 서사 방식에 추리 소설의 기법을 가미하고, 거기에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문명의 흥망성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감싸 안는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대단히 지적이고도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획득한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 전쟁과 테러의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화해와 상호이해의 미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문제작
어린 시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오르한 파묵은 일찍부터 이슬람 화가들의 세밀화를 모사하며,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 왔다. 그런 그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십 년에 걸친 준비 끝에 완성한 『내 이름은 빨강』은 한마디로, 다큐멘터리를 능가하는 이슬람 회화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16세기 말,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남쪽으로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무대로 하는 이 소설에는 쉴레이만 대제 시대의 궁정화원장으로 『축제의 서』를 제작한 오스만과 벨리잔 (‘올리브’라는 예명의 세밀화가)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또한 이슬람 세밀화의 대가인 비흐자드 (? ~ 1564)와 페르시아 세밀화의 중요한 화파 가운데 하나인 헤라트파의 생성과 소멸 과정이 현재 시점으로 재현된다. 또한 페르시아 문학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견되는 러브 스토리인 『휘스레브와 쉬린』은 물론, 『레일라와 메즈눈』,『유수프와 줄라이하』 등 페르시아의 다양한 전설과 민담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루미, 자미, 사디, 로크만, 푸줄리, 페르도우시 등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시인과 역사가의 작품들도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을 보면 오르한 파묵의 미술과 예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과 통찰력이 전문가의 수준을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세밀화가들 사이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시대성을 띠며,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층위 외에도 역사적인 필연성에 저항하는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 준다.
전범이 되는 작품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러한 고도로 단련된 기예를 통해 신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근대 이전의 예술론과 ‘작가 의식’이 싹튼 이후의 예술, 즉 개인의 ‘창의성’과 ‘창작’이라는 개념 간에 빚어지는 충돌이 결국은 살인까지 불러오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이 소설이 왜 오늘날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각 문화의 개별성과 고유성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며, 그 속에는 항상 소중히 간직되고 지켜지며 보호되어야 할 요소들이 있다. 동시에 세계의 문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과 충돌하면서 섞이고 변화하는 가운데 진보한다. 사실 수천 년에 걸친 문명의 투쟁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진보의 과정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이런 거시적 관점의 역사 속에 있는 각각의 개인들, 즉 ‘인간’을 보여 준다. 그들이 왜 투쟁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 추천평
현기증이 일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울 정도로 다채로운 문학의 진수. –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오스만 제국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재현해 낸 이 시대의 고전. – LA 타임스
문학적 묘미와 읽는 재미를 결합한 완벽한 소설. – 데일리 텔레그래프
○ 명대사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 작중 “빨강”이라는 색깔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하는 대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