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원제 : The Land Question and Related Writings : Viewpoint and Counterviewpoint on the Need for Land Reform (1982)
헨리 조지 / 경북대학교출판부/ 2012.4.18
이 책은 헨리 조지가 1891년에 쓴 편지 형식의 글로서, 같은 해어 반포된 교황 레이 13세의 회칙에 대한 반론이다. 헨리 조지는 1879년 『진보와 빈곤』을 펴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사상가 겸 개혁가이다. 헨리 조지가 주목한 지대조세제는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치근 50년간의 우리나라, 1990년대의 일본,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에서도 보듯이 빈부격차와 경제위기의 밑바닥에는 토지 문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헨리 조지는 노동자의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도 정답이 아니지만, 가톨릭계의 「회칙」도 정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토지 사유재산화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 목차
추천사
역자 서문 : 해제를 겸해서
일러두기
Ⅰ.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정당한 소유권 토지 이용 토지가치 징수
국사 수입과 하나님의 의도 창조주의 목적 최종 증명
Ⅱ. 토지 사유제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토지사유제에 대한오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매입하면 정당한 재산이 된다.
토지사유제는 인간이 부여받은 이성으로부터 나온다.
토지사유제는 다른 사람의 토지 이용을 방해하지 않는다.
토지에 노력을 투입하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
토지사유제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며,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고, 하나님의 법에서도 인정된다.
가장은 자녀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토지사유제가 필요하다.
토지사유제는 근면을 촉진하고 부를 늘리며 애항심과 애국심을 기른다.
토지사유제는 인간의 법이 아니라 자연법에서 나온 것이므로 국가가 폐지할 수 없으며, 토지 소유권의 가치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다.
Ⅲ. 사회주의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회칙의 오해 사회주의의 피상성
사회주의자와 저희의 차이범 인간의 법과 도덕법칙
양극화 원인은 토지사유제
Ⅳ. 최칙의 해결책도 정답이 아닙니다
잘못된 전제 세 가지 해결책 국가의 역할
노동자의 토지 취득 노동자 단체
Ⅴ. 그리스도교는 토지사유제 철폐를 명합니다
일꿈이 품삵을 받는 것은 당연 부자도 역시 희생자
정당한 임금 자선의 한계 회칙의 도덕 명령 종교의 임무
교황님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부록1] 헨리 조지의 해결책에 대한 의문과 해명
[부록2] 헨리 조지와 사회주의
[부록3] 맥글린 신부 파문 사건 경위와 「신앙 소명서」
[부록4]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 저자소개 : 헨리 조지 (Henry George)
헨리 조지(1839년 9월 2일 ~ 1897년 10월 29일)는 미국의 저술가, 정치가, 정치경제학자이다.
그는 단일세(Single tax)라고도 불리는 토지가치세의 주창자였으며, 조지주의(Georgism, Geoism, Geonomics)라고 불리는 경제학파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조지주의는 지공주의라는 우리말로 순화되어 사용된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에 카를 마르크스와의 논쟁에서 자본과 토지를 구분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였다.
1891년 로마 교황청이 토지공개념에 대해 반대하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교황 레오 13세에게 공개서한 을 보내 교황청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지공주의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개인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는 반면, 사람이 창조하지 아니한 것 즉,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것(대표적으로 토지, 넓게 볼 경우 환경 포함)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논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대표적 저서 “진보와 빈곤(1879)” 은 산업화된 경제에서 나타나는 경기변동의 본질과 빈부격차의 원인,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서 토지가치세를 제시하고 있다.
헨리 조지는 183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해 중학교를 5개월 다닌 후 중퇴했다. 선원생활을 하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정착해 한때 금광에 손대기도 했다가 실패하고, 샌프란시스코 타임스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다가 문장력을 인정받아 편집인이 되었다. 1868년 토지문제에 관한 견해를 처음 발표했고 1871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브닝 포스트를 발행했다.
그 후 공무원이 되어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자 대표작 <진보와 빈곤>을 발표해 4년 후에 미국과 영국에서만도 수십만 부가 판매되었고 15개국어로 번역되었다. 1881년 뉴욕으로 이사해 1886년에는 노동단체 후보로 뉴욕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897년 다시 뉴욕시장선거에서 출마했으나 선거 4일 전에 과로로 사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선지자’라고도 불리는 헨리 조지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주류경제학계에서는 즉흥적 사이비 경제학자로 이단시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상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설사에서는 그를 다루지 않고 있으며, 간혹 최후의 중농주의자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할 정도이다.
이렇게 경제학적으로는 인정을 못 받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높아 조지스트(Georgist)라고 불리는 헨리 조지의 추종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슘페터(J.A. Schumpter)도 헨리 조지를 가장 많은 대중의 인기를 끈 경제학자로 인정했고, 존 듀이(John Dewey)는 헨리 조지를 인류 역사상 10대 사상가에 포함시켰다.
톨스토이는 조지의 말을 듣고 자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다 나눠 줬다. 그리고 중국의 손문(Sun Yat-Sen)은 삼민주의에 헨리 조지의 원리를 넣었다고 한다. 조지스트들은 헨리 조지의 대표작 <진보와 빈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선전한다.
그런데 헨리 조지는 당대의 사회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다 배척을 받았다. 사회주의자들은 그가 자본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보수주의 추종자라고 비난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그의 추종자들이 사회주의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기 때문에 또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구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사상적 갈등을 겪었던 사회주의자들 중의 일부가 조지스트로 변신했다. 마르크스는 동산과 부동산 모두의 사유재산을 부정한 반면 주류경제학은 다 인정한다.
그런데 헨리 조지는 동산의 사유는 인정하지만, 부동산의 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헨리 조지의 사상이 마치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절충안이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해방의 경제학: 마르크스를 넘어 헨리 조지로>라는 책도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1984년 조지스트들이 ‘한국헨리죠지협회’를 설립했고, 후에 ‘성경적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이 주로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이 모임에 참여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면서 이들의 사상이 정책에 반영되어 토지공개념 3개 법안이 등장하고,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 역자 : 김윤상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사이며, 미국펜실베니아대학교 도시계획학 박사이며 현재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부 교수이다. 저서로는 『지공주의:새로운 토지 패러다임』,『알기 쉬운 토지 공개념』,『땅과 정의』,『진보와 빈곤』등이 있다.
○ 독자의 평
헨리 조지의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는 교황 레오 13세가 발표한 ‘회칙’에 대한 ‘공개서한’입니다. 당시 교황은 자본의 폐해를 대적하려던 사회주의를 차단코자 토지와 노동과 임금의 사유화를 공고히 하려는 글을 발표했고, 조지는 그에 대해 노동과 임금의 사유는 옳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자연법보다도 도덕법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것이 이 책의 핵심 골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합당하고 타당한 설명을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재산을 취득할 수 있지만 바다 자체에 대한 권리는 취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풍자를 건설하여 바람을 이용하고 그에 부합한 재산권을 누릴 수 있지만 바람 자체를 팔거나 남이 사용치 못하게 막을 순 없다는 뜻이죠. 그것은 태양도 마찬가지고, 토지 자체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이유가 뭔지 다들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이 세계의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인간 개개인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는 견해 때문이죠. 그것은 실증적 검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진화생물학의 ‘자연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고 또한 확실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 구약의 희년법이라는 ‘도덕법’을 제정하셨으니까요.
인간은 토지 위에서, 그리고 토지에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토지는 물질과 힘의 원천입니다. 인간의 신체 자체가 토지에서 나오며 생산 원료도 토지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토지 소유권이 소수에게만 부여되고 다른 사람은 이 권리에서 배척을 받는다면 인류는 필연적으로 부자 대 빈자, 특권 층 대 바닥층으로 양분되지 않겠습니까? 부당한 토지분배를 변화시키지 않는 그 어떤 발전과 개선의 혜택도 그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습니다.(40쪽)
그가 토지사유제를 거부한 근원적인 이유라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의 팽배 때문이죠. 미국을 예로 들 경우, 남부에 노예제가 지속된 것도 대규모 농장 때문이고 북부에서는 토지를 공평하게 배분한 것 같지만 그 역시 거래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죠. 호주도 영국처럼 토지사유제 때문에 사람들이 대도시로 쏠리는 현상이 심각했다고 하고요. 그것은 우리나라도 결코 다르지 않겠죠. 그것이 조지가 ‘토지단일세’(single tax)로 귀결시킨 이유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견해는 영어 사용권은 물론이고, 유럽 대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사상과 문학작품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고, 중국의 대 지도자인 손문도 깊은 공감을 피력했다고 하죠.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침체기를 맞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에도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경제가 더욱더 침체하여 깊은 수렁에 빠져들면 그가 제시한 ‘토지단일세’가 우리사회에 고개를 내밀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고 하죠. 그러나 때를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조지의 말대로 특권층과 바닥층의 간극이 극심해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치닫을 순 없겠죠. 다만 금리를 인하하고, 인턴사원을 늘여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고, 값싼 임대주택을 늘려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한들, 그것이 근본책은아니겠죠. 사회를 좀먹는 암덩어리는 근원부터 도려내야 합니다. 그의 ‘토지단일세’, 이 책의 번역자인 김윤상 교수의 말대로는 ‘우선세’, 요즘 용어로 말하면 ‘지대세’, 그것만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겠죠.
셋째 의문: 지대세로 토지가치를 모두 환수하는 것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삼는 자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나?
해명: 지대세는 오히려 진정한 자본주의에 더 충실한 제도이다. 사유재산제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의 대가를 노력한 자가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세재라면 불로소득부터 우선 징수하고, 그것만으로는 정부 수입이 부족할 경우에 한하여 노력과 기여의 결과에 과세하여야 한다. 더구나 여러 형태의 불로소득 중에서 토지 불로소득은 사회적 기여가 전혀 없고 오로지 폐해만 낳는 가장 악성의 불로소득이므로 최우선적인 환수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행 세제가 오히려 사유재산제에 어긋난다.(127쪽)
이 책 부록1에 나온 내용입니다. 헨리 조지의 해결책에 대한 의문과 그 해명을 밝혀 놓은 것이죠.
이를테면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를 ‘토지’에 대한 대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전국에 있는 수많은 필지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등을 묻고 답하며, 위의 내용은 세 번째 의문과 그 해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행 세재는 각 개인의 노력과 기여로 인한 소득인지 아니면 불로소득인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과세하는 반면에, 지대세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가치이므로 사유재산에 충실한 세제라고 답한 것이죠.
그 밖에도 이 책에는 헨리 조지와 사회주의의 연결점과 대척점도 엿볼 수 있고, 맥글린 신부 파문 사건 경위와 ‘신앙 소명서’도 읽을 수 있고,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자본과 노동에 관하여’라는 전체 글도 모두 읽어볼 수 있는 이점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토록 명확한 논리와 아름다운 문체가 또 있을까 싶어 정말 놀라고 또 흐뭇했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