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눌린자의 하느님
제임스 H. 콘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1987.6.1

- 이른바 ‘흑인신학’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
지은이 제임스 콘은 이야기 · 설교 · 기도 · 노래 등에 반영된 흑인들의 경험과 노예 제도 또는 인종 차별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성서의 메시지와 관련시켜 흑인 신학을 이야기 형식으로 심도있게 더욱 폭넓게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지배자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백인 신학을 비판함으로써 신학의 방향과 새로운 보편성을 모색하고 있다.
○ 목차
옮긴이의 말
머리말
주
사람 이름 찾아보기
- 서 론
- 진실을 말하자면
- 신학의 사회적 맥락
- 성서의 계시와 사회적 실존
- 흑인 신학과 이데올로기
-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해방의 의미
- 하느님의 해방과 흑인의 고난
- 해방과 기독교 윤리
- 해방과 화해

○ 저자소개 : 제임스 H. 콘 (James Hal Cone, 1936 ~ 2018)
제임스 H. 콘 (James Hal Cone, 1936년 8월 5일 ~ 2018년 4월 28일)은 미국의 신학자이며 흑인 신학과 흑인 해방 신학의 주창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69년 자신의 책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에서 흑인 교회에서 신학의 구별성을 정의하였다. 그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
콘의 신학적 방법론은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방법과 함께한다. 그가 영향은 받은 사람들은 포이에르바하와 칼 막스이다. 지식사회학에 학문적 도움이 많았다. 특별히 흑인 중심의 신학적 주제에 초점을 두었다.
저서로 ‘흑인 신학과 흑인 해방’ (A Black Theology of Liberation), ‘내 형제들을 위해’ (For My People), ‘내 영혼은 검다’ (My Soul Looks Black), ‘진실을 말한다는 것’ (Speaking the Truth), ‘기독교와 흑인 파워’ (Christianity and Black Power), ‘예수와 흑인혁명’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 ‘눌린 자의 하느님’ (God of the Oppressed), ‘나의 혼을 돌이키며’ (My Soul Looks Back), ‘흑인 영가와 블루스’ (The Spirituals and the Blues) 등이 있다.
– 역자 : 현영학
최근작으로 <한국문화와 기독교윤리>, <예수의 탈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15
백인들은 있는힘을 다해서 흑인의 현실을 정의 (定義)하고, 우리의 신분을규정 하려고 했다. 그들의 정의는 물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권 (利權)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느님은 흑인을 백인의 종으로 지었다는 것을믿게 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흑인들은 으례히 백인들의논밭을 갈아야 하며, 그들의 집 청소를 해야 하며, 그들의잔디를 깎아야 하며, 그들의 제재소에서 일해야 하는 것으로돼 있었다. 그래서 소위 이 선택 받았다는 열등 (劣等)한 지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운 눈치를 보이기라도 하면그들은 우리를 ˝건방진 깜둥이 (uppity niggers)˝라고 부르면서 곧 우리의 자리로 보냈다.
P.16
나의 신학은 유니온 신학교의 내 동료들의 신학과 같을 수가없다. 우리의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19
사실 문제의 핵심은 흑인의 종교, 경험과고전 신학에 관한 내 지식과의 관계였다.
P.22
기독교 신학은 하느님이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자유를 위한 존재가 되게 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현존 (現存)하는 하느님의 해방의 (liberating) 성격에 관한 언어다.
P.23
신학자라는 사람은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성서와 실존에 대한 주석가다. 성서 주석가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대한 증거로서의 성서를 신학적 논의의 기본적 원천 (源泉)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실존의 주석가가 된다는 것은 성서가 추상적인 말이나 단순히 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것을 의미한다. 성서는 이 세상에서 눌리고 업신여김을 받는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학자가 할 일은 그 메시지와 인간의 실존과를 관련지어 주기 위해서 성서의 깊이를주석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P.23
˝하느님의 입장에서 실존을 주석˝하는 것, 그렇게 해서 하느님은 고난에 무관심하지 않고 잔인성과 거짓을 참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P.24
철학자로서의 신학자는 삶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예리하게 관찰한다. 복음을 덮어놓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삶의 투쟁 속에서 계속 검토함이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것을 그는 알고 있다. 신학적 과제의 철학적 측면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적 (知的)으로 정직하게 만들며, 다른 입장에 대해서 개방적이 되게 한다. 독단주의를 경계하며 다른 종교신앙과의 대화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준다.
P.31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우리가 하느님에게 던지는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의 형태와양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 독자의 평
- 존재로써의 흑인과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내게는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적으로만 아니라 그들의 교회의 예배로부터도 흑인들을 제외했기 때문이다.(p.16)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흑인을 백인의 종으로 지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흑인들은 으레히 백인들의 논밭을 갈아야 하며, 그들의 집 청소를 해야 하며, 그들의 잔디를 깍아야 하며, 그들의 재재소에서 일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p.15)
나는 이 비어든 경험을 살았기 때문에 이 경험을 나의 신학적 입장에서 분리시킬 수가 없다. 나는 흑인신학자다!(p.18)
아칸소와 루이지아나와 미시시피주의 목화밭에서 온 흑인 학생들, 흑인을 비존재로 규정한 사회 안에서 자기들의 삶의 구조를 변혁시켜 보려는 흑인 학생들에게 있어서 칼 바르트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를, 그것과 비슷한 신에 대한 관념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머리 속에서 분석해야 하는 또 하나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구세주와 친구로, “들의 백합과 밝은 샛별”로 받아들인 이 사람들에게 니케아와 칼케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p.19)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자유를 위한 존재가 되게 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해방의 성격에 관한 언어다… 신학자라는 사람은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성서와 실존에 대한 주석가다.. 신학자가 할 일은 그 메시지와 인간의 실존과를 관련지어 주기 위해서 성서의 깊이를 주석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신학적 언어의 정열적인 성격을 인정한다. 그것은 약속된 자유가 해방을 위한 공동체의 투쟁 안에 이미 현존해 있다는 경축과 즐거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p.22-24)
“우리는 폭동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 폭동의 이유에는 동정한다.” 이것은 이런 말과도 같다. “우리가 너희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너희들을 사형(私刑)에 처하고 너희 아이들의 마음을 비틀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는 화를 낼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건물들에 불을 지를 이유는 되지 못한다. 너희들이 정 그런 식으로 계속하면 우리는 절대로 너희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p.20)
- 백인 신학과 그들의 기독교
코튼 메이터(Cotton Mather)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에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와 슈버트 옥든(Schubert Ogden)에 이르기까지 급진파, 보수파를 막론하고 미국의 신학은 백인들의 문화, 정치적 이익에 비추어서 복음을 해석해 왔다. 그들의 해방을 위해서 싸우는 흑인들의 의식에 비추어 복음을 분석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사회적 이익을 초월하려고 노력한 일이 별로 없다. 지배적인 권력 구조와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백인신학자들은 대체로 그들 자신의 문화와 역사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1) 어떤 백인 신학자들은 노예제도를 도대체 신학 문제로 보지 않았다. (2) 또 어떤 신학자들은 노예제도를 정당화했다. (3) 그리고 소수만이 이를 반대했다.
… 조나단 에드워즈는, 흔히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불려오는 사람인데, 완전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 거부할 수 없는 은총, 그리고 성도들의 인내 등에 관핸 설교하며 글을 쓰면서도 이런 문제들이 얽매어 있는 인간들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그는 단순히 칼빈의 전통에서 복음을 정의했을 뿐이다…. 그(코튼 메이터)는 백인들로 하여금 노예들에게, “그들의 노예가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며, 그들의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가르치게 했다.
… 웰드와 대부분의 백인 노예 반대주의자들도 그들의 문화와 전통 때문에 부분적으로 제약을 받았다… 그들은 노예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흑인 문화를 기본 자료로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노예제도가 비법화되면 자연히 자유가 오리라고 믿었다. 미국 노예제도 반대협회의 회원들이 사회적 평등을 그 목표로 삼지 못했던 것은 그리고 또 그 회원들이 남북 전쟁과 함께 그들의 사업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신학자들은 엄격한 학문성과 훈련된 과학적 사고를 숭상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들은 색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그들은 신학에 관한 그들의 정의(定義)가 문화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감추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성이 거짓임을 드러낸다.(p.71~75)
백인 신학자들은 논리적 체계들을 세웠다. 반면 흑인들은 이야기들을 이야기했다. 백인들은 유아 세례의 정당성이나 예정과 자유 의사의 문제를 토론했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포로생활로부터 이끌어내는 하나님, 여호수아와 여리고 전쟁, 불타는 용광로 속에 갇힌 히브리 민족 등에 관한 성경 이야기를 외웠다…. 기독교적 구원에 관한 백인들의 사상은 대체로 ‘영적’이거나 때로는 ‘합리적’이어서 이 세상에서의 구체적인 자유의 싸움과는 분리돼 있다…. 백인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흔히 예수를 영적 구주라거나 사람들을 죄와 죄책에서 풀어주는 분으로 묘사했지만 흑인 목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역사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역사 안에 있는 해방자로 보았다.(p.79~82)

- 성서와 흑인의 정체성
자유는 종말론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기대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이다. 흑인 노예들은 인간의 자유는 초월적인 것이라는 것을, 즉 미래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p.27)
우리의 신학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하나님이 흑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말하는 흑인들의 이야기에 반영된 경험, 즉 흑인들의 사회, 종교적 경험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형성해야 한다.(p.32)
흑인 신학의 기본 자료로서의 흑인 경험과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의 기본 자료로 되어 있는 성서와는 어떤 관계에 있나 하는 물음이 이제는 나올 수밖에 없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내보여 주는 하나님에게 대한 증언이다…. 백인들의 예수 그리스도는 흑인 억압을 정당화하는 편파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성서는 밝혀 주었다.
사람들이 선(善)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호소해야 하는 어떤 절대적, 윤리적 원리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야웨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고 죽은 자들 중에서 예수를 살려내신 주님으로 알려지고 예배되는 분이다.
같은 강조점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길을 인도한 이야기와 아말렉 사람들을 패배시킨 이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약하고 자위 능력이 없는 민족이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선택받는 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억눌린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사실은 신학을 하는 데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노예인 이스라엘 민족 대신에 노예 주인인 이집트 사람들을 자기의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했다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하나님이 계시됐을 것이다.(p.94)
< 흑인 그리스도 >
그리고 우리가… 울릴 자유를 얻을 때..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세, 드디어 우리는 자유를 얻었네”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p.73) : 마틴 루터 킹
킹은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의 상징이요, 속죄의 고난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라고 해석하였다. 킹은 모든 인류를 위한 깊은 사랑 때문에 예수가 인간들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십자가의 이해가 킹이 비폭력 저항 전략을 채택하게 된 근거였다. 그는 흑인들이 인류를 위한 예수의 십자가를 지도록 부름 받았다고 믿었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은 것처럼 흑인들도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정의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고난의 때”를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사랑, 속죄의 고난, 그리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백인들의 폭력적 반응에 ‘다른 뺨을 돌려 대며,“ 융화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헌신하며, 또 인종 차별적 사회 정책에 비폭력적으로 항거하는 것을 의미했다.(p.82)
< 아프리카 신학 >
아프리카 신학의 과제는 두 요소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다. 아프리카 신학은 파괴된 상태에 있는 아프리카 문화를 고려에 넣어야하며 동시에 왜곡되어 있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고려에 넣어야만 한다. 아프리카 신학을 만들어내려면 이 두가지에 관한 연구를 병행시켜야 한다. 성서와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가 모두 아프리카 신학의 원천인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p.59)
< 고찰 >
- 폭로
a. 기독교의 허실
중세와 근대역사에 ‘세례’를 주며 ‘신국이라는 환상’을 구매한 전통 교회와 교의신학의 역사적 허실
b. 기독교인으로써의 환상
“흑인-백인 그리스도의 문제의식”은 그들이 단지 기독교인이이었기 때문. 실체 혹은 중심으로써의 역사적 현실이 아닌 재창조된 현실로써의 문제 : 저항신학의 역사적 허실
c. 결국 인간(의 역사)과 하나님(의 역사)의 문제일 뿐
역사의 지평 위에 선 새로운 기독교적 정체성의 모색 : 하나님의 교회요 역사적 기독교로써 발돋움
- 기독교의 해방
a. 인간의 만족을 위한 해방이 기독교의 해방이 아님.
b. 정치적 해방 등을 추구하는 ‘시대 안의 기독교’가 되는 또한 해결이 아님.
c. 이는 초역사적, 보수적, 개인적 자세를 취하는 기독교만큼 잘못된 이해.
→ 자신의 창조세계의 잠재성을 현실화시키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하나님
광활한 인간 의지의 세계에 침입해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역사 안에 실천시키며 그 계획안에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 우리의 길, 중심의 전환 : 하나님을 추구하며 역사의 중심을 조망하는 기독교
- 신학과 기본 자료 사이의 관계
저항신학 성경 해석의 오류 – 정경중의 정경론의 근본 한계
작은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
- 가나안 해방 중에 ‘작은 민족’을 치신 하나님은? 저항신학의 해석 도식에 따라 발생되는 다양한 구약의 내용들은 삭제되거나 경시되어야 할 내용인가? : 그러기엔 성서에 차지하는 위치에서 중요한 부분.
“전통교의신학”이 가지고 있는 “무역사(초역사)성” , “저항신학”이 가지고 있는 “상황 중심성”은 모두 근본적 오류와 한계를 내재하고 있음.
신학 : 상황성과 역사성을 내재하고 있음 ↔ 선교지 or 현재 역사적 상황
성서 : 해석에 대한 재검토 및 오류 검토 ↔ 과정으로의 과거 역사 : 연속성 파악
성서 안의 세계성에 대한 재해석 ↔ 인간사 전체에 대한 통전적 분석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