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 2, 3, 4
피에르 쌍소 / 동문선 / 2000 ~ 2007
– 1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주는 책. 빠른 변화에의 적응이 곧 발전이라는 사회의 보편적 룰을 벗어나 ‘느림’의 철학을 주장하는 저자의 반론은 도태나 일탈이 아닌 ‘여유로움’이라는 내적 통찰이다. 한가롭게 산책하며 다른 사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느낌을 적어보는 글쓰기는 목적도 없이 발맞추기에 급급한 세상사를 초월한, 권태를 즐김으로 인해 얻는 수많은 가치들을 위함이다.
– 2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1권에서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철학’을 소개했던 프랑스 철학교수 피에르 쌍소의 두번째 에세이집이다. 2권에서는 ‘길’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월 속에 묻혀버린 꿈과 소망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인생을 느리게 살아가는 구체적인 지혜를 소개한다. 저자는 걷기, 말하기, 글쓰기, 그리고 읽기를 통하여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놓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일깨워 주고, 그것들에 감사하고 느긋하게 음미할 것을 권유한다. 1권에 비해 쉽고 소박한 문체를 사용하여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 3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1, 2″의 저자 피에르 쌍소가 들려주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삶의 지혜. 경제력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평범한 일 속에서 영속적인 삶의 기반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에세이 15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 4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철학 에세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제4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괴롭히고 있으며, ‘아름다움’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도 ‘아름다움’을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은 ‘아름다움’으로 타인에게서 ‘호감’ 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라는 날카로운 충고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내적인 ‘아름다움’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 목차

– 1권
여는 글
웃음 그리고 공포
노작가와 그의 도시
저편 세계에 익숙한 사람들
우수반 계단 강의
선동에서 범죄까지
노인들의 전쟁
공포의 박물관
몽상 그리고 해결책
침묵의 섬들
수많은 마지막
불쌍한 사람들
사랑하기
함께 늙어가기

– 2권
1. 행복한 길의 발라드
2. 인간의 위대함, 길의 겸손
3.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4. 기찻길
5. 고속도로
6. 도시의 길
7. 교외 지역의 가파른 언덕길
8. 길 위의 먼지
9. 어딘가로 가지 않는 길
10. 멋진 산행
11. 길, 아름다운 나의 길
12. 본질적인 산책자
13. 탈주의 기술
14. 표류, 그리고 방랑
15. 영광의 길, 그리고 돌아오는 길
16. 놀라운 작가들
17. 비유로서의 길
18. 걷기, 말하기, 글쓰기, 그리고 읽기
19. 걷고, 또 걷고

– 3권
적은 것으로 사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삶 … 15
소박한 자들의 의학 : 치유자 … 43
살림살이의 행복 … 55
아마추어 수리공 … 71
부부싸움 … 89
서민 동네의 열기 … 117
환희에 찬 위장 … 131
술취함에 대하여 … 159
잎이 피어나는 도시 … 177
길거리 축구 … 191
캠핑의 세계 … 211
7월 14일의 무도회 …. 227
투르 드 프랑스의 황금 전설 … 247
이 사람들의 문화 … 269
후기 : 접의자 … 289

– 4권
호감을 얻기 위한 노력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혹독한 단련 행위
다양한 모습의 가상체
진정한 호색가
댄디
내면의 조각가들
정신적 교양주의자
얀센주의자
차가운 인상의 미녀들
쾌락주의자
진정한 성숙자
자유사상가
위대한 성욕 지배자
신자유사상가
회개지심 없는 교태스런 남성들
어떤 유혹자의 항변
장의 수기
실재와 가상 및 현상체
호감과 반감 사이에서
호감을 사는 방법
비의도적인 호감행위
신망의 상실과 호감을 잃는 행위
반감을 사는 행위와 그 방법
호감 행위의 목적과 조건
호감을 사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여론의 평가
대중의 호의적 성격
현실 같은 환상
다수의 친구를 사귀기 위한 호감 행위
천눈에 반한 사랑은 참된 사랑일까?
심미적 쾌락: 외적 아름다움은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가?
상대의 능력을 보고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인가?
감동적인 오페라같은 여러분의 삶
피에르 쌍소의 저서

○ 저자소개 : 피에르 상소 (Pierre Sansot)
1928년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앙티브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한때 집시생활을 했으나, 프랑스 인문계 수재들이 모인다는 파리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그르노블과 몽펠리에대학에서 철학과 인류학을 가르쳤으며, 퇴직 이후 남프랑스의 나르본에서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해왔다.
1973년 『도시의 시학』을 출간한 이후 『감각적인 프랑스』,『가난한 사람들』,『도시의 서정』,『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공원』,『민감한 프랑스』,『느리게 한다는 것의 의미』 등 15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저서들 중 1998년에 출간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전 세계에 ‘느림’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5년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을 집필하던 도중 사망했으며, 이후 앙리 토르그를 필두로 한 제자들이 모여 프랑스의 위대한 지성 피에르 상소의 마지막 철학이 담긴 유고작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을 출간하게 되었다.
– 역자 : 김주경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옹 제2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좋은 책들을 소개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달콤 쌉싸름한 꿀벌』,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멋진 놈』, 『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 『성경-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레 미제라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 2, 3』, 『흙과 재』, 『교황의 역사』, 『80일간의 세계 일주』, 『신은 익명으로 여행한다』, 『어리석은 철학자』,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인생이란 그런 거야』, 『토비 롤네스』, 『오전 9시에서 10시 30분 사이』 외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 1권
현대사회는 빠른 것을 선호한다.신속한 동작,재빠른 반응,예리한 시선,반짝이는 생동감이 미덕이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더 빨라진다. 한때 재빠름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은 이들조차 인터넷과 정보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들의 속도에는 주눅이 든다.언제까지 시간에 쫓겨가며 살아야 하는걸까.
프랑스 폴발레리대 교수를 지낸 저자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에서 “차라리 느리게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가 이해하는 느림이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다.
저자는 “지금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것을 꿈꾸겠지만, 현실속 그들은 영원히 뭔가 결핍된 듯한 갈증 속에서 끝없이 바쁘게 살아간다”고 파악한다. 결국 바쁘게 살다 죽는 것이다.
이 책에서 느림은 게으름이나 무력감과는 다른 것이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p.
한가로이 거닐기 : 나만의 시간을 내서 발검음이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나를 맡겨 보면 어떨까?
듣기 : 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권태 : 이는 아무것에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인정하고 애정을 느껴 보면 어떨까?
꿈꾸기 : 우리의 내면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희미하면서도 예민한 의식을 때때로 일깨워 보는 것은 또 어떨까?
기다리기 :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 보는 것은?
마음의 고향 :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지금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부분, 시대에도 맞지 않는 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면?
글쓰기 : 우리 안에서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포도주 :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 그 순수한 액체에 빠져 보는 것은?
모데라토 칸타빌레 : 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그 방식을 따라 본다면? — 머리말 중에서
이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 멈추고 쉬는 시간, 불확실한 시간이 훨씬 더 많으며, 훨씬 더 많은 포기가 요구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느림은 태만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진부함이나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들에 도전하기 위해 예술가가 피하고 싶어하는 위험한 모험을 의미한다. —p.115

우리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면서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그 점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말을 하는 것은 대개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새로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듣는다는 것은 명령을 듣고 그 명령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말을 하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빈말이 아닌 의미 있는 말 권태롭지 않은 말을 하여 공동체를 매혹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가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아니라 듣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 p.62-63
우리를 이같은 광기와 상스러운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곧 절제라는 태도이다. 절제는 합법적인 야망을 지니고 살아갈 때,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악한 악마들을 쫓아낼 필요가 있다. 사실 소유와 능력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 보다 좀더 고귀한 삶은 자세들이있다.만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확신 한다면, 굳이 사회적 위치를 구분해주는 흔적들을 쌓으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 p.131
반면 가느다란 보슬비는 시골 소도시를 더욱 다소곳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평소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건물 벽에, 아이들 이마에, 비옷의 모자 위에 섬세한 진주 방울들이 맺히고, 모든 것이 친밀감과 행복감 속으로 모여든다. 집집마다 일치감치 덧창을 닫고, 상점과 시청의 커튼도 내린다. 그때쯤이면 소도시의 사람들은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조용히 미래를 접고서,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해 꿈을 꾸는 것이다. — p.101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는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그 첫번째 형태. 이것은 의지적인 방식에 의한 것인데, 우리 자신의 도약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주도권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앞에 투영해 본다. 이때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과 ‘우리의 현재 모습’사이의 거리를 말한다.
그리고 다소 시간이 걸리는 장기계획을 세우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토막난 짤막짤막한 시간들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삶에서 기다림이란 단지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는 시간,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지나가야 할 길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방법들을 계산해 보는 시간 정도일 뿐이다. — p.91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굼뜬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든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좀 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여유있는 동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도 우아함이라고 보기보다는 운동신경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그들은 일을 할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대강 시간만 때운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릇빠릇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후자들은 잽싼 손길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부탁하는 소리까지 금방 알아듣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 준다. 뿐만 아니다. 속셈에서도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 그들의 신속한 동작, 재빠른 반응, 예리한 시선, 날씬한 외모, 선명한 윤곽 속에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한 마디로 그들은 활발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없어요. 어쩌다 곤경에 빠졌다 해도 금방 헤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 p.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 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미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p.13
느림과 기억은 관계가 있을까?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는 현재는 조금 전만 해도 앞에 있던 순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뒤에 끌고서 달아나 버린다. 이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흔적 속에 갇혀진 수많은 순간들은 전혀 이탈할 염려도 없고, 망각 속으로 흘러가 버릴 염려도 없다. 한 과정의 시간이 계속 지체될 때 과거는 머나먼 혼돈 속으로 오래 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p.145,—p.5-9
그것은 (느림)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 버려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12
– 2권
작은 것이 아주 작은 것이 되고, 그것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서 비로소 무가 탄생한다.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곳에 눈부신 황홀과 하늘로 오르는 환희, 격렬한 기쁨, 극한까지 갔다는 자부심, 그리고 생명까지 내놓는 기쁨이 있다. 그런 기쁨을 경험한 자는 절대로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만 걸어가게 될 것이다.” — p.264

○ 출판사 서평
– 1권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워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느림’이라고 불렀다.
느림은 우리에게 시간에다 모든 기회를 부여하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한가롭게 거닐고, 글을 쓰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숨쉴 수 있게 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느림 또는 고요함은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의지, 시간이 뒤죽박죽 되도록 허용치 않는 의지, 그리고 사건들을 대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과 우리가 어느 길에 서 있는지 잊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과업은 시간성을 어긋나게 하거나 우리의 생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을 잊게 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들볶이거나 바쁘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더유익하게 다가 올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느림’과 ‘빠름’은 가치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감사의 행동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파동 같은 것이며, 격렬한 강물이나 토네이도라기보다는 차라리 가느다란 작은 물방울 같은 것이다. 또한 완력이 아닌 빛이다.
– 2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로 일약 프랑스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해진 철학교수 피에르 쌍소의 두번째 연작 에세이집.
제1권에서는 현대인들의 <속도 맹종>을 신랄히 비판하는 <느림의 철학>을 펼쳐 보였으나, 이번 제2권에서는 느리게 살아가는 구체적인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길이라는 한 테마를 통해서 그가 펼치는 <느림의 미학>은 삶의 또다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 길, 그것은 어쩌면 인생 그 자체가 아니던가?
길은 우리에게 느리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지혜를 준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동안 세월 속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들의 소망과 자유에 대한 꿈들이 다시 솟아난다.
피에르 쌍소는 걷기, 말하기, 글쓰기, 그리고 읽기를 통하여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놓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일깨워 주고, 그것들에 감사하고 느긋하게 음미할 것을 권유한다.
제1권과는 달리 이번 책에서 그는 애써 철학적인 논리 전개를 피하고, 쉽고 소박한 문체로 설득하고 있는데, 여전히 연한 철학적 향기가 독자들을 감동으로 이끈다. 따라서 독자층이 제1권보다 낮은 연령대로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좀더 부드럽고 여성적으로 편집되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여행을 가거나 조용히 쉴 때 정말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 4권
우리가 고개 숙이게 되는 소위 아름다움, 미란 무엇일까?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고, 끊임없이 우리의 몸을 괴롭혀대고 영혼을 메마르게 만드는 사랑을 얻기 위해, 친구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직장과 정치에서의 성공을 위해?
여기에서 낚을 상대만을 찾아다니는 남자들, 멋부리기만 하는 사람들, 방탕아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 말자. 허영심에 빠지는 것보다 우리의 본분을 지키는 게 낫다. 가벼움과 어떤 쾌할함을 가지고 세상과 마주서자.
우리의 이미지에 아주 주의 깊고 어떤 것을 주게 되면, 화려함을 추구하고 픈 욕망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몫이 가장 훌륭한 가치이며 보물임을 깨닫기 위한 책이다.
○ 추천평
– 1권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휴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불행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는가?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논픽선 부분 1위. 피에르 쌍소는 사회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서, 자기 자신에 충실한 가운데 사회 생활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형태를 포착하기 위하여 느림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_ <르 몽드>

○ 언론소개
– 소박하게 사는 속에서 얻는 행복
이 책의 저자 피에르 쌍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잘 모르는 이조차 같은 제목의 책이 세번째로 나온 만큼, 현대인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한발짝 떨어져있는 ‘소박함’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쉽게 짐작했겠다.
저자의 관심사는 당연히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에선 벗어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 국경일 (7월14일)을 기념해 거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매년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한바퀴 도는 100명의 사람들, 포도주 한 잔을 놓고 오래 시간을 끌며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단순소박함에 눈길을 맞추고 있다.
눈만 돌리면, 돈으로 해결할 ‘꺼리’들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돈만이 풍성한 행복과 웃음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소박한 행복’의 비결은 ‘발상의 전환’‘현재 가진 것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자세’에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멋진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애매하고 상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러므로 저자는 경제력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파를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박함을 미덕으로 삼아 사는 사람들의 ‘지혜’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말해보자. 아닌게 아니라 세상엔 음식점이 너무 널렸고, 둘만 모이면 외식한다고 이곳저곳 다니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정보매체에서는 어느 집의 어떤 음식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며 회가 동하게 한다. 이를 저만치 떨어져 바라다보아야 하는 서민들 가슴엔 다시 뭔가 뚫려버리고, 자신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게 와닿는 상대적 빈곤감에 젖는다. 소박한 밥상을 초라한 밥상이라고 여긴다.
이런 식으로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미덕을 담고 있는데, 적은 것으로 살고, 평범하게 살고, 살림살이의 행복도 알고, 아마추어 수리공밖에 안되지만 일일이 고치고 다듬는 소박함이 소중하다고 예를 들어 들려준다. 번역본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 덜 매끄러운 문장은 옥에 티지만.
정말 한국인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 많다. 물건 팔아먹는 업자들이 ‘달콤하게 해대는 유혹’에 잘도 넘어가, 휴대전화 냉장고 가전제품 옷 할 것 없이 바꾸고 새것 사는 데 하루를 평생을 좇아다니는 현대인들. 남들 보기에 어떠할까를 먼저 재고, 가짜라도 명품을 들고 다니면 대접이 달라지므로 몸에 바르고 다니는 그런 족속,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일에 ‘돈’이 유일한 매파라고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그래서 그만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부패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 이곳의 사람들은 이 ‘소박함의 교훈’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는 게다.
저자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을까. 글머리에서 한국인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말라. 당신의 마음이 속삭이면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해보라. 마음 한구석의 유년기로 돌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 겉치레를 벗어 던진 맨 얼굴만큼 감동적인 것은 없다.” _ 박정희 기자 (2002.8.15)

○ 독자의 평
– 1권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처럼 바쁘게 살아온 대가로 그동안 고이 아껴서 잘 감아 왔던 자유로운 시간의 실 뭉치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풀어가며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없이 해야만 하는 많은 과제들 때문에 시달리는 일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을 하지만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과연 그렇던가? 이상하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군분투하는 피곤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순간을 항상 고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문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 유행, 무리, 보통, 일반, 관용, 관례 이상의 것을 쫓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의 본질을 세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꿈뜬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좀 둔하다고 생각한다.”
– 1권은 느리게 사는 삶의 태도란 무엇인지 9가지로 설명한다.
한가로이 거닐기 : 발걸음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걷기
정하게 듣기 : 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하기
권태 ;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인정하고 애정을 느껴보기
꿈꾸기 ; 내면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희미하면서도 예민한 의식을 때때로 일깨워 보기
기다리기 ; 자유 한적함 무한한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기
마음의 고향 ; 추억 되살리기,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지금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부분, 시대에도 맞지 않는 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기
글쓰기 ; 내안에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 옮겨보기 읽고 감상하고 따라 해보기, 내식대로
근검절약 ; 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그 방식을 가늘고 길게하기
꿈꾸기 : 내면에 자리잡은 희미하고 예민한 의식을 일깨워 보는 것
포도주 :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 그 순수한 액체에 빠져 보는 것
데라도 칸타빌레 : 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그 방식을 따라 해보기
– 느림이란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역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대지 위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싶다는 욕구에 내내 사로잡혀 있다.
활기찬 동작, 생동감 잇는 태도를 그 누구라서 찬양하지 않겠는가?
삶이란 내게 주어진 행운, 그것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번의 행운이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균형상으로 볼 때, 기쁨의 총체가 고통의 총체를 넘어선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저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도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는 휴식을 즐기셨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 휴식은 끝나지 않아서 지금도 계속된다.) 게다가 그 휴식의 날, 하느님께서 매우 만족해하셨던 사실도 우리는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의 작품에 아주 흡족하셨고, 훗날 실수라고 생각하시게 될 것도 그때까지는 아직 예측하지 못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체기관은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날마다 놀라운 과업을 달성해 내는 공장과 같은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체기관이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서 매일 새롭게 해내고 있는 위업들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가! 이런 점에 주목하면 모든 문제가 바뀌어진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에게는 완전한 휴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좍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 보다는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라든가 영원에 가까운 허무 속으로 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시간과 경제에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는 법을 찾아왔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였고 지금 누구이며 누가 되고 싶은가?
내가 언제 누군가에게 잘 못을 저질렀던 일은 없었던가?
어떤 신념을 배반한 일은 없었던가?
언제부터 나는 내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던가?
자신의 진실한 모습과 그리고 이간의 상황과 용감하게 맞서보자.
자기를 살아해 주웠던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기 위해서…. 나를 찾고 바로 세워야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능력이 된다면 무엇이 있다면… 이러한 사고는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주위를 경계하며 관찰하는 태도는 한가로이 거니는 즐거움에 방해가 된다. 거리에 풍경이나 행인들의 얼굴을 지나치게 관찰하면 그것들은 갑자기 낯선 모습이 되어서, 본래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몽상에 빠지는 것. 그것은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주의력과 무의식이라는 두 강물 사이에서 머무를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흔한 방법이 아닐까? 장 자크는 파리를 떠나 식물을 채집하거나 호수의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사는 동안 시간을 잊을 수 있었으며, 그에게 원한을 품은 채 파리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의 존재도 까맣게 지을 수 있었다. “
“내 경우에는 다시 기쁨의 날이 돌아왔음을 알려 주는 전령을 하나 정해 놓았다. 그것은 봄이 무르익었을 때, 그러니까 5월이 되어야만 비로소 문을 여는 자그마한 변두리 술집이다. 저녁이면 그 집의 단골손님들과 어쩌다 찾아오게 된 뜨내기손님들이 밖에 나와서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5월의 따뜻한 저녁은 찌는 듯한 더위와는 전혀 다르다. 하기야 한여름에도 그곳의 기온은 참을 만하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튀김을 서비스할 것이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그곳에서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행위는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어 줌으로써 그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타난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게 될 때가 있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매우 정확하게, 또는 활발하게 드러내 놓을 수 있게 해주는 청중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듣는 사람 쪽에선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마음자세를 가질 때만이 그런 만남이 가능하다.

– 4권
소위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세상에는 ‘아름다움’에 굴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육체에 고통을 가하고 영혼을 퇴색시키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는 행위란 그에게서 사랑을 얻기 위한 준비 단계인가?
호감행위는 또한 일반적 교제, 직장에서의 승진, 정치인의 성공, 작가의 인기몰이 등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인가?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외모신봉주의에 도취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출현을 만나게 되는 바, 그들은 사교계의 바람둥이, 댄디, 자유사상가, 신자유사상가 등의 부류들이다.
이제 타인에게 호감을 구걸하는 행위는 그만두기로 하자. 오히려 세상이 그토록 정감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감탄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자기 과시로 가득한 허영의 세계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기에. 경쾌하지만 정중한 태도로 온정 어린 세상에 경의를 표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현대인들의지나친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따뜻한 세상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