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다석일지 전4권
류영모 / 홍익재 / 19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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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의 일기를 모은 책
다석 유영모 사상의 특징은 기독교에서 출발해 유불도 3교를 회통한 후, 다시 기독교를 동양적으로 체득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이른 시절부터 기독교 공부에 매진하였으며, 65세에 ‘인생은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1년 뒤인 1956년 4월 26일을 사망 예정일로 선포하고 자신의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매일 명상과 사색의 결과를 일기로 남겼다. 이 매일의 기록은 1955년 4월 26일부터 1974년 10월 18일까지 계속되었는데, 다석이 사망한 후 그의 제자들은 그간의 일기를 모아 ‘다석일지’로 출간하였다. 일기를 모아 책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일기 1권이 소실되어 부득이하게 일부가 누락된 채로 발간되었으며, 일기 형식을 띠는 글인 만큼 책의 내용은 현대 한국어로 풀어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따라서 다석의 제자인 김흥호가 현대에 들어와 다시 ‘다석일지’를 풀이 · 정리하여 주석본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 저자소개 : 류영모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불교, 노장 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다석의 종교관은 시대를 앞선 종교 사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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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난 류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인으론 첫 YMCA 총무를 지낸 김정식의 인도로 서울 연동교회 신자가 되어 15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7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으며,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봉직하였다. 이때 오산학교에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전파하여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에 입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 정인보와 함께 191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1921년(31세)에 고당 조만식 선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1년간 재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하였다.
처음 세례를 받고 몇 년 동안 정통 기독교인이었으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 뒤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평생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나아가 《노자(老子)》를 한글로 완역한 것을 비롯해 여러 성인의 말씀을 우리말과 글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여, 한자를 쓰는 대신 옛말을 찾아 쓰거나 ‘씨???(민중)’ ‘얼나’ ‘제나’ 같은 말을 만들어 썼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평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늘 “농사짓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다.”라고 말했으며, 45살 때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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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종교와 동양 철학에 관한 내용과 한시와 한글 시조 등 문학적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다석은 그의 일기를 통해 한시 1,700여 수와 한글 시조 1,300여 수를 남겼다.
훈민정음을 깊이 연구한 다석은 한글 하나하나가 심오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철학개론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의 시와 시조는 바로 그러한 한글 연구의 결과인 것이다.
또한 일기에는 그의 구도자로서의 실천적 노력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 출판사 서평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고전을 읽고, 명상하며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내려간다. 1955년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이 일지는 20년간 지속되다가 1974년에 끝이 난다.
함석헌과 김교신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다석 류영모. 인도의 간디와 같은 평화사상가로 그가 생전 발표한 육필 원고는 이 일지 뿐이다.
이 매일의 기록은 1955년 4월 26일부터 1974년 10월 18일까지 계속되었는데, 다석이 사망한 후 그의 제자들은 그간의 일기를 모아 ‘다석일지’로 출간하였다.
일기를 모아 책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일기 1권이 소실되어 부득이하게 일부가 누락된 채로 발간되었으며, 일기 형식을 띠는 글인 만큼 책의 내용은 현대 한국어로 풀어내기 힘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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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