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다시 태어나다 :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수전 손택 / 이후 / 2013.11.1
한 비범한 인간이 스스로가 설정한 이상적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부단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이 책 『다시 태어나다』는 총 3권으로 기획된 수전 손택의 일기 중 첫 권이다. 손택은 책이나 공연을 반복해서 읽고 보며 지난 견해들을 수정했다. 지나간 일기들도 마찬가지로 다시 읽고 고쳐 썼다. 일기란 단순히 신변잡기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자아를 창조하고 규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기 속에서 손택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났고 스스로를 창조했다. 그렇게 손택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의 글쓰기,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빚어냈다.
손택의 인생 가운데 1947년부터 1963년까지 청춘의 한 토막을 떼어 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사춘기 시절의 성적 자각과 결혼 생활에 대한 환멸, 보고 듣고 읽은 모든 것에 대한 대담하고도 거침없는 비평들, 수치심과 절망감으로 점철된 연애사로 가득하다. 새로운 비평적 감수성의 시대를 연, 미국 지성계의 대모이자 전방위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의 탄생에 얽힌 그 필연적 계기들과 성장통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빽빽하고 신중한 사유를 풀어 놓았던 손택이 전혀 다른 격정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사실상 손택은 단 한 가지 소망,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인생의 매 순간을 수렴시켜 나갔다. 손택은 작가야말로 세상이 동성애자인 자신에게 겨누는 무기에 맞설 정체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각은 글쓰기를 추동했고, 채워지지 않는 성적 욕망은 끝없는 지적 요구로 변환됐다. 이렇게『다시 태어나다』는 지적 편력과 사랑의 여정을 통해 수준 높은 문화 취향과 비평 감각을 갖춘 지성인으로 손택이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 준다.
○ 목차
엮은이의 글
1947년(14세)
1948년(15세)
1949년(16세)
1950년(17세)
1953년(20세)
1954년(21세)
1955년(22세)
1956년(23세)
1957년(24세)
1958년(25세)
1959년(26세)
1960년(27세)
1961년(28세)
1962년(29세)
1963년(30세)
옮긴이의 글
○ 저자소개 : 수전 손택 (Susan Sontag)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 (The Benefactor, 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 (Notes on ‘Camp’, 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 ~ 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 (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 편자 : 데이비드 리프 (David Rieff)
수전 손택의 외아들이자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저술가다. 손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어머니의 죽음』(2008)을 포함해 『전쟁을 시작하려는 순간At the Point of a Gun: Democratic Dreams and Armed Intervention』(2005), 『잠들기 위하여A Bed for the Night: Humanitarianism in Crisis』(2003), 『도살장Slaughterhouse: Bosnia and the Failure of the West』(1995) 등을 썼다.
– 역자 : 김선형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영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옮긴 책으로 『다시 태어나다』, 『시녀 이야기』,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캐주얼 베이컨시』, 『바보들의 결탁』, 『곤충극장』, 『프랑켄슈타인』, 『셀린』, 『가재가 노래하는 곳』,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살만 루슈디의 『수치』,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이 있고, 2010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 출판사 서평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다. 일기는 나를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제시한다. 따라서 그것은 그저 매일의 사실적인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안을 제시한다.” – 1957년 12월 31일 일기 중에서
– 수전 손택, 일기 속에서 다시 태어나다!
수전 손택은 2004년 12월 28일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 전, 아들 데이비드 리프에게 넌지시 자신의 일기의 존재를 알렸다. 손택은 평생 백여 권이 넘는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는 친구나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너무나 솔직하다 못해 고통스러운 기록이었지만 리프는 “진실”과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손택의 뜻을 받들어 내밀한 이야기들을 회피하거나 윤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실었다. 손택의 인생 가운데 1947년부터 1963년까지 청춘의 한 토막을 떼어 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사춘기 시절의 성적 자각과 결혼 생활에 대한 환멸, 보고 듣고 읽은 모든 것에 대한 대담하고도 거침없는 비평들, 수치심과 절망감으로 점철된 연애사로 가득하다. 새로운 비평적 감수성의 시대를 연, 미국 지성계의 대모이자 전방위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의 탄생에 얽힌 그 필연적 계기들과 성장통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빽빽하고 신중한 사유를 풀어 놓았던 손택이 전혀 다른 격정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 청춘의 방황과 성찰의 여정
손택은 굉장히 압축적인 성장기를 보냈다. 1949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UC버클리에 입학한 손택은 한 학기를 마치고 시카고 대학으로 편입했다. 이 시기 동안 손택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각하고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처연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시카고 대학 재학 시절 사회학 강사 필립 리프를 만나 이듬해 1950년 결혼한 손택은 1957년까지의 일기에서 주로 자아를 말살하고 개성을 말소시키는 배타적 사랑과 결혼제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피력했다. 손택의 삭막했던 결혼 생활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1957년 9월 영국 유학길에 오른 손택은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수학하다 그해 12월 파리 여행에서 캘리포니아 시절에 만났던 H라는 여성과 재회하게 된다. H와 함께 파리에 머무르며 손택은 그간 억눌렀던 자신의 성적 욕망을 폭발시켰다. 이때의 일기는 온통 해소되지 않는 애정욕과 사랑의 열병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1959년 미국으로 돌아온 손택은 1963년까지 뉴욕에서 극작가 아이린 포네스를 사귀면서 첫 소설 『은인 : The Benefactor』을 썼다. 일기에는 아이린과의 관계를 통해 H와의 실패한 관계를 반성하고 자신의 성격적 취약성을 오래 고민한 흔적들이 나타나 있다. 이처럼 『다시 태어나다』는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회피하지 않으면서 그에 따른 고통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성찰해 간 청춘의 초상을 보여 주고 있다.
– 성적 갈망과 지적 갈망 사이에서
청년기 손택을 지배하고 움직인 것은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교감에 대한 통렬한 욕구”와 “지적인 황홀경” 속에 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었다. 일기는 성적 욕구와 지적 욕구라는 얼핏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며 나아간다.
손택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고 H와 아이린 포네스라는 두 명의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방황, 깨달음은 『다시 태어나다』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열다섯 살의 일기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고백하는 손택은 그로 인한 죄책감과 혼란스러운 심경을 토로하지만 H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기폭제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섹슈얼리티에 눈을 뜨게 된다. 손택의 ‘다시 태어남’은 바로 이 성적 자각의 순간을 가리킨다. 손택에 있어 사랑과 성애의 발견은 “살아도 좋다는 허가”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는 자주 수치심과 모욕을 안기는 고통스러운 자해로 뒤바뀌었다. 되돌려 받지 못한 애정에 절망하고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혐오하길 반복하는 힘겨운 연애사를 손택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가혹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손택의 뜨거운 정념은 때로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손택은 여기에 함몰되지 않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 지적 세계에 대한 희구를 멈추지 않았다. ‘지적 갈망’을 채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일기의 나머지 축을 이룬다. 손택은 집요하게, 기록벽에 가까울 정도로 수많은 도서 목록과 공연 목록, 단어 목록을 만들었다. 문학은 물론이고 영화, 연극, 오페라, 음악과 회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비평과 감상을 남겼다. 사실상 손택은 단 한 가지 소망,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인생의 매 순간을 수렴시켜 나갔다. 손택은 작가야말로 세상이 동성애자인 자신에게 겨누는 무기에 맞설 정체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각은 글쓰기를 추동했고, 채워지지 않는 성적 욕망은 끝없는 지적 요구로 변환됐다. 이렇게『다시 태어나다』는 지적 편력과 사랑의 여정을 통해 수준 높은 문화 취향과 비평 감각을 갖춘 지성인으로 손택이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일기 속에는 이밖에도 손택에게 영향을 준 당대의 쟁쟁한 문화계 인사들이 등장한다. 대단한 야망가였던 손택은 버클리 대학에 들어간 1949년 겨울, 대담하게도 토마스 만을 찾아가 그와 문학을 논하는가 하면 동료 학자들과 작가들, 비평가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E. H. 카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손택이 하버드 대학교를 다닐 때 남편 필립 리프와 함께 친분을 쌓은 사이고, 종교 신학자 야콥 타우베스와는 강의를 같이 하면서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손택은 책이나 공연을 반복해서 읽고 보며 지난 견해들을 수정했다. 지나간 일기들도 마찬가지로 다시 읽고 고쳐 썼다. 일기란 단순히 신변잡기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자아를 창조하고 규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기 속에서 손택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났고 스스로를 창조했다. 그렇게 손택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의 글쓰기,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빚어냈다.
한 비범한 인간이 스스로가 설정한 이상적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부단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이 책 『다시 태어나다』는 총 3권으로 기획된 수전 손택의 일기 중 첫 권이다. ‘2013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동명의 연극이 해외초청작으로 상연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다』를 통해 독자들은 「캠프에 대한 단상 : Notes on ‘Camp’」(1964)이 나오기까지 초창기 손택의 사상적 단초와 비평적 토대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독자의 평 1
누구나 초등학생 시절 학교 숙제로 일기를 썼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작심삼일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이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과 며칠만에 일기는 밀리고는 했었다. 개학이 다가오면 그제서야 부리나케 날씨를 확인하고 무엇을 했던가를 물었다. 머리를 굴려도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기까지 하면서 할당량을 채우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완성된 일기들은 내 손으로 쓰여진 나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숙제 검사가 끝남과 동시에 잊혀졌다. 이사를 간다거나 공간창출을 위해 간만에 방 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고는 그제서야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며 웃고는 했다.
손글씨가 드물어졌다. 펜을 손에 쥐는 일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일기조차도 컴퓨터 블로그에 남기거나 아예 쓰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기록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기를 썼다가 누군가에 의해 읽히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게 더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처럼 자물쇠를 채워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적을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수전 손택의 일기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그는 십대 시절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일기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2004년까지 무려 60년가량 지속됐다. 2000년대에는 컴퓨터가 보급됐다 하나 고령이었던 그녀는 이제껏 해오던 방식인 손글씨를 고수했다. 그렇게 적어나간 일기는 백여 권. 한 사람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며 현재 읽어도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은 그녀의 글은 그녀의 삶을 닮았다. 잘 몰랐는데, 일기를 읽다 보니 그녀가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고, 열일곱에 결혼해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전통적인 엄마의 삶을 살기에 그녀는 너무도 똑똑했기에, 남편과 아이를 뒤로 한 채 유학을 떠나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로 성장했다. 그런데 유학생활 도중 뜻하지 않은 변화를 겪는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그녀에게 찾아온 성 정체성의 혼란이 바로 그것이다. 일기장에 등장하는 H와 아이린은 단순히 가슴 설렜던 인연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그리고 뜨겁게 그녀들을 사랑했고, 그 탓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5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발생했다고 하니 한 개인이 견디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싶다.
많은 일기 도중 이 책은 그녀의 삶이 가장 혼란했던 시점을 다룬 듯했다. 사랑은 마냥 뜨겁지 않았고, 특히 동성을 사랑하는 일은 제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그녀라 하여도 처음부터 쉬울 리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을지라도 여성 아닌 남성을 받아들여볼 것을 권유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가면서.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상대가 남성/여성인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사랑하고(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열망과는 별개로 그녀는 끊임없이 제 몸에 대해 불편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여성성을 마냥 긍정하지도 않았다. 처음 그러한 성향을 내가 느꼈던 것은 그녀의 10대 기록에서였다. 따라서 나는 성숙하기 시작할 무렵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하나일 것이라고 가벼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어쩌면 그녀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일찍 눈을 떴던 듯하다. 여기에 사랑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그녀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한 유리마냥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구속 아닌 자유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순간조차도 그녀는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강렬히 희망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가족을 챙겼던 듯하다. 일기에서 자주 나오는 엄마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썼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언젠가는 깨어질 그녀의 여린 자아로부터 불안감을 느꼈다. 이는 다른 이의 기록으로부터는 느끼기 힘들었던 지나친 솔직함 때문이기도 했다. 나만 해도 일기를 온전히 정직하게 쓰지는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발견돼 읽힐 글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내 자신에게 주지시키다 보니 자기검열 기제가 발동한 탓이다. 하지만 그녀는 읽어볼 테면 읽어보라는 식으로 적나라하게 스스로의 삶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아들에게 아예 일기의 존재에 대해 고백하고야 말았다. 뜻하지 않게 발견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긴 존재가 품고 가길 바랐던 것 같다.
글을 쓸만한 게 없어서 쓰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수전 손택은 제 삶이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짧은 하루의 삶조차도 이토록 많은 기록거리를 남긴다. 일기를 통해 끊임없이 제 삶의 일부를 덜어내고 그 빈자리는 다른 무언가로 채워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독자의 평 2
‘다시 태어나다’를 펼친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애니 레보비츠의 소울메이트, 많은 예술가들에게 뮤즈가 됐던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가 만들어 낸 세상 말고,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로 듬뿍. 그런데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녀의 지적에 대한 욕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뚜렷하고 문화와 예술 그리고 철학으로 가득 찬 글들 속에서 그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나는 ‘애니 레보비츠의 소울메이트’, ‘뉴욕 지성계의 여왕’ 만 알고 ‘까지껏. 책을 읽으면서 친해지면 되지’ 했던 또 한번 등장하는 내 오만과 편견으로 인해 또 이리도 힘들었던 거다.
12월 31일(1957년)
일기를 쓰는 것.
일기를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생각들을 담는 용기 ㅡ속을 터놓을 수 있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 문맹인 친구처럼ㅡ로만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나는 그저 일기에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다. 일기는 나를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독립전인 존재로 제시한다. 따라서 (아아.) 그것은 그저 매일의 사실적인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ㅡ많은 경우ㅡ그 대안을 제시 한다. (_213)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내 편협한 생각을 짓누른, 그녀의 일기는 단순히 내가 정의하는 ‘일기’와 너무도 달랐다. 그러니 물론 책이 어려웠고 내 중심을 잡기 어려웠던 거겠지.
각설하고, 책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수잔 손택의 ‘다시 태어나다’는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읽고 있는 일기의 첫 권. ‘다시 태어나다 1947~1963’ 14세부터 30세까지(1947-1963년)까지의 기록이다. 이 책은 그녀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대신해 세상에 내놓았는데 엮은이의 글을 보면 ㅡ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ㅡ 출판에 대한 고민을 끊임 없이 한 듯하다. ‘어머니는 일기가 공개 되기를 바랐을까?’, ‘이 일기의 출판을 허락하고 직접 편집하기로 한 내 결정 뒤에는 실제적인 이유들이 있다.(……) 그러니 아마도 수전 손택이라는 작가는 내가 한 일에 찬성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러기를 바란다.’ (_12)
차가운 속가락 이야기를 하라.
사적인 삶, 사적인 삶.
나의 경건함, 이상주의가 가라앉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모든 진술들이 옳고 그른 것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하게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면 그 의미가 대부분 탈색되어 버린다.자의식적이라는 것. 자신을 타인처럼 대하는 것. 자신을 감독하는 것.
나는 게으르고 자만하고 무분별하다. 나는 재미없을 때 웃는다.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는 행위엔 무슨 비밀이 있나?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 위스키를 마셔라. 또한 따뜻하게 있을 것. (_202)
그녀의 일기를 보고 있으면 ‘타고난 천재’는 없는 듯하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적어가며 지성에 닿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글로 적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또 한 없이 지적 욕구를 채워 넣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가진 명성들은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기회가 된 다면, 더 이상 휘청대지 않고, 그 지성들이 쌓아 만든 소설집을 읽어 보고 싶다.
사랑은 아프다. 상대가 언제든 내 껍질을 들고 떠나 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라고 몸을 다 내놓고 있는 기분이다. (_335)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