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달력과 권력 : 달력을 둘러싼 과학과 권력의 이중주
이정모 / 부키 / 2015.7.7
『달력과권력』의 저자는 기원전 6천 년경부터 현대의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변천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 달력과 관련된 여러 궁금증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달력의 구성 요소를 설명한 후 현대 달력의 기원인 고대 이집트 달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일 강의 범람에 따라 3계절로 나뉘었던 이집트 달력, 복잡하기 짝이 없었던 로마 달력, 1년을 365.25일로 비교적 정확히 계산해 16세기 말까지 널리 사용된 율리우스 달력, 카이사르가 무시한 674초 때문에 역사에서 없어진 열흘과 그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굵직굵직한 변화상을 설명해 나간다.
○ 목차
머리말
1 1582년 10월 로마에서는
2 달력의 구성 요소
1 달력의 최소단위 – 하루
2 인위적인 단위 – 일주일 쉬는 날은 언제?
3 달의 모양을 따라서 – 한 달
4 태양을 한 바퀴 돌면 – 한 해
5 1년 길이는 어떻게 잴까? 노몬 / 스톤헨지와 오벨리스크 / 1년의 길이
3 현대 달력의 기원
1 고대 이집트 달력
나일 강의 범람과 3계절 / 오시리스와 이시스 / 나일 강의 범람을 예보하는 시리우스 별 / 프톨레마이오스의 달력 개혁
2 고대 로마 달력
일 년 열 달 304일과 일 년 열두 달 378일 사이 / 윤달은 2월 중순에 / 달 이름은 어디서 / 미로찾기 – 로마 인의 날짜 세기
3 율리우스 달력
BC 46년 – 1년 445일의 해 / 1년은 365.25일 / 큰 달과 작은 달 / 아우구스투스의 달력 개혁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4 그레고리우스 달력
1 기원(紀元)의 기원(起源)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 0년은 어디에? / 한 해의 시작은 언제?
2 그레고리우스 개혁의 출발점 – 부활절
변방 국가의 부활절
3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와 달력 개혁
그레고리우스 13세 이전의 개혁 시도 / 그레고리우스의 13세의 달력 개혁
4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보급
독일 개신교도의 저항 / 모든 길은 다시 로마로 / 역사상 가장 짧은 달 / 가장 정교한 달력
5 정확히 365,237일
6 그레고리우스 개혁의 미스터리
5 혁명과 달력
1 프랑스 혁명 달력
자연과 역사의 일치 / 상퀼로티드 / 혁명 달력의 폐지
2 이탈리아 파쇼 달력
3 소비에트의 달력 개혁
경제를 위한 달력 개혁
6 고대 문화권의 달력들
1 수메르 달력
2 바빌로니아 달력
3 그리스 달력
8년 주기 윤년 시스템 / 메톤 주기 – 19년 / 히파르코스 주기 – 304년
4 유대 달력
출애굽 – 유대 달력의 시작점 / 포로 이후 – 태음태양력 / 천지창조 – BC 3761년
5 모슬렘 달력
순수한 태음력 / 윤월 없는 태음력
6 마야와 아즈텍 달력
종교 달력 트촐킨 / 농사 달력 하압 / 긴 세월 세기 / 아즈텍의 태양석 / 신들에게 시간을 분배한다
7 우리나라 달력
1 세종대왕과 칠정산
하늘의 일을 이 땅 위에 실현하는 일 / 최고 기예들을 투입하여 만든 칠정산 / 절기-24기(氣)와 72후(候) / 확립된 왕권과 쇠퇴하는 과학
2 태음태양력
절기는 태양력 / 음력의 윤달은 어떻게 생기는가? / 60갑자 – 햇수와 날짜 세기 / 단기(檀紀)
3 우리나라 전통명절
설 / 대보름 / 한식 / 삼짇날 / 초파일 / 단오 / 유두절 / 삼복 / 칠석 / 백중 / 추석 / 중구?중양 / 상달 / 동지 / 납일
8 현대 달력의 허점들
1 현대 달력의 문제점
요일이 변한다 / 달의 길이가 다르다 / 주와 달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 결국 부활절이 문제인가 / 아직도 하루가 남아
9 또 새로운 달력이 필요한가
1 국제 고정 달력 동맹
2 세계 달력
존 레논과 올리비아 / 세계 달력 협회
3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많다
달력의 역사 연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이정모
저자 이정모는 지은이 이정모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를 했으며,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일했다. 지은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공저), 『과학하고 앉아 있네 1, 2』(공저), 『해리포터 사이언스』(공저),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눈이 뱅뱅 뇌가 빙빙』, 『제이크의 뼈 박물관』, 『인간 이력서』가 있다. 현재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유럽의 16세기는 이렇듯 천동설을 절대의 진리로 여기는 교회에 관찰과 실험 및 수학의 결합을 통하여 진정한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과학자들이 대항하던 시대였으며, 또한 종교개혁의 시대이자 식민지 개척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유럽사에서 16세기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16세기의 역사 기록에 빠져 있는 며칠이 있다. 바로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의 기간이다. 당시 유럽의 중심 로마에서는 이 열흘 동안이 기록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18쪽)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로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답은 간단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혀, 아무 일도. 이 열흘 동안 로마에서는 단 한 건의 종교재판도, 마녀 화형식도 없었다. 멀리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싣고 들어오는 배도 보이지 않았으며, 매일 열리는 시장도 서지 않았다. 뾰족한 창을 들고 몰려다니면서 행패를 부리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았고, 주정뱅이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교회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으며, 학자들의 열띤 토론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숨도 쉬지 않았다.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거나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한 명도 남김 없이 죽어 버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째서 역사책에는 이 열흘 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일까? (19쪽)
1582년 10월의 로마 달력에는 5일부터 14일까지가 빠져 있다. 하지만 이 달력은 잘못 인쇄된 것이 아니다. 또는 못된 폭군이 재미 삼아 백성들에게 어처구니없는 달력을 강요한 것도 아니다. 이 달력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한 달력으로, 제대로 된 달력이었다. 어쨌든 이 달력에 따라 사람들은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들어 다음 날인 금요일 10월 15일 아침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20쪽)
서양에서는 8월 중 가장 더운 때를 일컬어 ‘개의 날(Hundstage)’이라고 한다. 우리의 복(伏)날과는 묘한 우연인 셈이다. 이때가 되면 여명이 비칠 무렵 그 전에는 볼 수 없는 시리우스 별이 지평선 근처에서 관찰된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이 별을 소티스(Sothis), 즉 ‘나일 강을 가져오는 이’라고도 불렀다. 이 별은 큰개자리의 일등성으로서, 신화의 주인공 이시스의 별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기 전까지 시리우스는 먼저 떠올라 있는 태양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태양이 이동하고 태양과 시리우스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다가 마침내 사람들은 시리우스를 해가 뜨기 전 여명에 볼 수 있게 된다. (63쪽)
로마 인들은 윤달을 ‘메르세도니우스 (mercedonius)’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윤달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음력 달력의 윤달과는 달리, 하나의 독립된 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월 중순에 끼어 넣어졌다. 즉 마지막 달인 페브루아리우스 23일 후에 윤달에 해당하는 22일 또는 23일 간을 끼워 넣고서, 이 기간이 모두 지나면 다시 24일부터 28일까지 5일을 더 세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체계가 없는 달력은 다른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로마 공화정 말기의 사회 혼란상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달력을 주관했던 제관들은 윤달의 원칙을 제멋대로 무시하고 1년의 길이를 고무줄 늘리듯 늘였다 줄였다 하기도 하였다. (73쪽)
폼페이우스를 무찌른 후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원정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고 그에 따라 더욱더 큰 권력을 장악하게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로마로 귀환하였다. 그의 개선 행진을 보기 위해 모든 로마 시민들이 도로로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화려한 개선 행진 이면에 가려져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주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 위험부터 우선적으로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위험이란 바로 혼란스러운 달력 체계로 인한 사회 질서의 혼란이었다. (80쪽)
이후로 로마의 달력 체계는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권력자들이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선례를 따라 자신의 이름을 달력에 넣어 보려는 시도나 계속되었을 뿐이다. 제 이름을 따서 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복잡한 숫자를 가지고 까다롭게 머리를 써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 그러나 권력에 아부는 따라올지 몰라도 업적과 존경심까지 반드시 따라오는 법은 아니어서,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로마의 제5대 황제로서 폭군의 대명사인 네로(Nero, 재위 54-68)만큼은 4월인 아프릴리우스를 자신의 이름를 따서 네로네우스(neroneus)로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마자 사람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4월의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88-89쪽)
교황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톨릭 국가들에 그레고리우스의 개혁 달력이 보급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1582년 12월 9일에서 바로 20일로 넘어갔으며, 홀란드와 플랑드르에서는 1582년 12월 21일 다음 날이 1583년 1월 1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얼마 전에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개신교 국가들은 로마 교황청의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다. (114쪽)
그러나 달력 개혁의 논리적인 이유 같은 것은 상황 개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개신교 지역에서는 율리우스 달력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달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별로 두 개의 달력이 동시에 사용되자 일상생활과 특히 국제 무역에서 대혼란이 생겼다. 서로 날짜가 달랐기 때문에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은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단절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115쪽)
더 심각한 사태는 가톨릭 교도와 개신교도가 혼재하여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타났다. 로마의 달력을 따르는 가톨릭 가정에서는 2월에 이미 수난절(受難節)이 시작되었는데, 개신교도들은 성문 앞 광장에 모여 사육제(謝肉祭, 카니발)를 즐기고 있었다. 또 개신교도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금식을 하고 있는데, 가톨릭 교도들은 바로 옆 교회에서 기쁜 마음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거나 들판에 일을 나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독일에서는 이런 현상이 10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116쪽)
하지만 새로운 달력을 접하게 된 신문을 비롯한 모든 출판물들은 파쇼 달력과 함께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따른 날짜를 나란히 병기하였다. 그래서 다행히 사람들은 생활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었다. 파쇼 달력만 사용되도록 애썼던 무솔리니의 무수한 노력은 사람들의 비웃음만 샀을 뿐이었다. 파쇼 달력은 1943년 2차 대전 중 파쇼 권력이 무너지면서 조용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파쇼의 시대는 정작 원조(元祖)의 나라에서는 무척 짧았던 것이다. (142쪽)
여기에 또 공휴일은 차치하고라도 주말의 수도 매번 다르므로 각 달, 분기별로 근무일의 수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토요일도 쉬는 경우에 주말이 월의 앞과 뒤에 걸쳐 있다면 그달의 근무 일수는 2일 정도 줄어들 수가 있다. 따라서 근무 일수가 많은 경우의 큰 달과 근무 일수가 적은 경우의 작은 달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매우 커진다. 예를 들어 2001년의 2월은 근무 일수가 겨우 20일이지만 같은 해 5월에는 23일이나 있다. 2001년 5월에는 2월보다 근무 일수가 15퍼센트나 많은데, 같은 기본급을 주고 또 받는다면 과연 옳은가. (227-228쪽)
○ 출판사 서평
잠깐 눈을 들어 살펴보자.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의 벽 혹은 책상이나 선반 위에는 최소한 달력이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달력에 따라 일 년, 한 달, 한 주의 계획을 세우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생일과 중요한 기념일을 챙길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과 시간을 조율하는 매개체인 달력을 주제로 한 흥미진진한 ‘달력 이야기’다.
저자는 기원전 6천 년경부터 현대의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변천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 달력과 관련된 여러 궁금증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달력의 구성 요소를 설명한 후 현대 달력의 기원인 고대 이집트 달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일 강의 범람에 따라 3계절로 나뉘었던 이집트 달력, 복잡하기 짝이 없었던 로마 달력, 1년을 365.25일로 비교적 정확히 계산해 16세기 말까지 널리 사용된 율리우스 달력, 카이사르가 무시한 674초 때문에 역사에서 없어진 열흘과 그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굵직굵직한 변화상을 설명해 나간다.
달력의 역사와 함께 ‘달력과 권력’에 얽힌 뒷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로마 공화정의 관리들이 자신의 임기 연장을 위해 뇌물을 주며 달력을 조작했던 이야기나 무솔리니가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파쇼 달력,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만든 소비에트 달력 등 시간을 지배하려는 이들의 일화는 동서고금 속성이 다르지 않다.
이 외에도 수메르, 바빌로니아, 그리스, 유대, 마야, 아즈텍 달력 등 고대 문화권의 달력과 우리나라의 달력, 현대 달력의 허점에 대해서도 두루 다뤘다. 이 책을 통해 달력과 관련된 자연과학적 궁금증과 역사에 새겨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 달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과 과학의 타협, 인습과 혁신의 갈등, 그 숨겨진 역사의 미로 찾기!
미시사 (微時史)든 통사 (通史)든, 정치사든 생활사든 우리는 역사를 접할 때 연도와 날짜를 중심으로 파악한다.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도 기실은 그 속에서 만들어진다. 헤겔의 ‘시대정신’과 같은 극도로 추상화되고 고도로 관념화된 개념조차 연도와 날짜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事實)이 없었다면 그 탄생조차 의문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연도와 날짜가 올바른 것일까? [달력과 권력]에 따르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또 역사 속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연도와 날짜의 경우 시대의 흐름을 부정할 만큼 전후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전제 및 도입부에는 오류의 가능성이 높다.
그 단적인 예로서 제시되는 것이 연도의 문제다. 서기 2000년을 밀레니엄이라 해서 성대하게 기념을 했는데 그것이 과연 21세기의 시작이 맞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현대의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숭배해 마지않는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상에서 사라진 ‘열흘’이라는 시간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曆)은 16세기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그 도입과 함께 시차는 있지만 열흘이라는 시간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로마 역사에서만 본다면 1582년 10월 5일 다음 날이 10월 14일이 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력 이전에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에서는 1년에 11분 42초의 오차가 발생했다. 그 오차는 계속 누적되어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달력상의 춘분과 천문학적인 춘분에 열흘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력을 그레고리우스 개혁 달력이라고도 표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의 자전을 하루, 지구의 공전을 1년으로 삼은 역법(曆法) 규정과 천문학적 관찰상의 차이를 수정한 것은 물론 이후에도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까다로운 윤년 규정(4년에 하루를 추가하되 1700년, 1800년과 같이 100년으로 나누어지는 해에는 하루를 추가하지 않고, 2000년과 같이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에는 원래대로 하루를 추가한다)을 두어 우리의 역법이 제자리를 찾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레고리우스력의 도입과 함께 사라진 열흘에 있다. 이전의 역법과 비교해 철저히 계산해 보면 당시 달력상의 춘분과 천문학상의 춘분에는 12.69일의 차이가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열흘만 없애고도 달력상의 춘분과 천문학상의 춘분이 일치하게 되었다. 과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물론 그와 관련된 가설은 많다. 하지만 천문학적 관찰이나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현대의 건강한 상식에 입각해 보면 역사의 신빙성 자체에 의심의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 지금은 2000년이 아닌 1593년에서 1718년 사이의 어느 해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레고리우스력의 도입 때 열흘을 제한 것으로 보아 당시 생긴 날짜의 오차는 최소 9.51일에서 최대 10.49일이다. 이전의 역법과 비교해 계산한 12.69일과는 최소 2.20일에서 최대 3.18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의 오차는 1년에 0.00780121일이다. 따라서 대략 282년(2.20 / 0.00780121)에서 407년(3.18 / 0.00780121)의 오차가 역사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면 지금은 2000년이 아닌 1593년에서 1718년 사이의 어느 해일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만일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많은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그 많은 종말론의 진위를 아직은 판가름할 때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종말의 해는 아직 최소 200년 최대 400년 정도 남은 셈이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이야기도 ‘신앙’의 문제나 설교상의 ‘비유’라고 도외시하기도 어렵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재단하는 우(愚)를 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그레고리우스의 달력 개혁은 최후의 심판 때문?
‘달력’이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학구적, 과학적 논의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달력은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그레고리우스력의 도입 과정이 그랬다. 그레고리우스력은 도입 이후 가톨릭 국가들에 보급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개신교 국가들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주도로 도입된 새 달력을 비난하는 온갖 종류의 문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가난한 농부의 인생에서 열흘을 훔쳐간 데 대한 분노는 물론 언제 다시 길을 떠나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진 떠돌이 일꾼들의 한탄과 “교황은 최후 심판의 날이 곧 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달력을 고쳤다. 그는 새로운 달력으로 그리스도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는 언제 최후의 심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이로써 교황은 간악한 행위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교황의 새로운 달력에 대한 두 마이센 농부의 짧은 대담> 1584년 독일)는 다소 ‘시사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다.
- 200년에 걸친 달력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
사회적으로도 혼선이 거듭됐다. 지역별로 두 개의 달력이 동시에 사용되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국제 무역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서로 가리키는 날짜가 달랐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가 섞여서 사는 지역에서는 ‘희한한’ 일도 종종 벌어졌다. 가톨릭 가정에서는 수난절(受難節)이 시작되었는데 개신교도들은 사육제(謝肉祭)를 즐기고 있는가 하면, 개신교도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금식을 하고 있는데 가톨릭교도들은 성당에서 기쁜 마음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식이었다.
이런 현상은 근 200년에 걸쳐 계속됐다. 그동안 ‘달력에 관한 한’ 사회적 관습과 이데올로기의 힘 앞에서 과학적 합리성은 논외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 달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즉위에 따라 연호를 붙이는 방식과 같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따라 햇수를 세는 것 역시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모든 도량형을 10진법을 기초로 통일하였는데 시간에는 도입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우리의 축제가 200년 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내린 칙령에 따라서 정해져야 하는가? 새로운 시민 권력은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그리고 과학적 현상과 걸맞은 달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10진법에 입각한 새 달력을 만들어 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7일에 하루씩 놀던 것이 10일에 하루 쉬는 데 대한 민중들의 반발에서 대외 교역상의 애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한 탓이었다.
그러니 보다 불순한 동기에서 출발한 파쇼 달력(무솔로니가 개인적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제정), 소비에트 달력(스탈린이 경제적 목적에서 제정)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진 것 정도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소박한 집필 동기에서 시작하였으나
여기까지만 보면 [달력과 권력]은 ‘달력’을 소재로 한 과학사이자 ‘달력과 권력’ 사이의 갈등과 봉합 과정을 그린 사회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초 저자의 집필 동기는 단순했다.
서문에 적혀 있듯이 어느 날 잡지 퀴즈를 풀다가 시작된 이 집필 작업은 “도대체 우리는 왜 달력이 필요한가? 그것도 매년 새것으로. 우리 스케줄이 해마다 일정하면 달력은 하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구구단을 외듯 쉽게 머리에 담을 수 있도록 달력을 단순하게 만들면 보다 편리하지 않을까? 왜 새해는 꼭 1월 1일에 시작될까?”와 같은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날짜나 요일을 확인하기 위해 힐끗 보면 그만인 달력의 ‘근거’를 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를 찾아내고 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달력과 관계된 무수한 ‘이벤트’가 전개된다.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紀元)이 갈리는데 천문학적으로 보나 역사학적으로 보나 예수는 서기(AD) 1년이 아닌 기원전(BC) 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일반의 상식을 뒤엎는 결과가 나온다.
- 달력의 역사이자 역사의 달력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달력의 역사’ 전반 속에서 조망된다. 선사 시대 인류가 1년을 어떤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를 비롯해 고대의 이집트, 수메르, 바빌로니아, 그리스, 유대, 마야, 아즈텍 달력, 회교 달력, 프랑스 혁명 달력, 이탈리아 파쇼 달력, 소비에트 달력은 물론 달력 하나면 영원히 사용 가능한 세계 달력, 영구 달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달력이란 달력은 모두 그림 및 표와 함께 제시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되새기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달력은 서양, 그것도 기독교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인데 바로 그 달력이 왜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리는 무엇이고 다른 달력에 비해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 달력이 어떻게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울러 ‘역사의 달력’은 과연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된다. 아마도 그 답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책 서두에 실린 경구 ‘모든 존재의 기본 형태는 공간과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 밖의 존재라는 것은 공간 밖의 존재만큼이나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고린도 사람이 10일이라 하는 날을 아테네 사람은 5일이라 하며, 다른 사람들은 8일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제노스)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 독자의 평
이 세상은 관습과 약속, 합의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든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면: 느끼고 있든, 그렇지 않든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면, 이것들을 거스른 채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사회란 무릇 수많은 합의와 약속 아래 세워진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관습과 합의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약속은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학문에서는 기호, 혹은 표기 (notation)이며, 각 개체에게는 이름, 번호 등이 그 예시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편의를 위해 지금부터는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라는 식의 합의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주로 통용되는 표현들이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 혹은 집단에 따라서 새롭게 약속할 수도 있다. 수학의 경우 책마다 사용하는 기호가 다른 것이 이 경우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본질 자체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마치 대원칙과도 같은 범사회적 합의들이 몇 가지 있는데 법률이나 달력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한 뒤 법정에서 ‘나는 다른 이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 법에 저촉된다고 규정하지 아니하였다’라고 진술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심신 미약으로 감형될 노릇이다.
달력도 법률보다 더 큰 규모의 약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월 모일에 이러이러하기로 하였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였을 때는 상대 국가와 모월 모일 이라는 때가 물리적으로 언제를 가리키는지 약속이 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만일 국가들이 서로 다른 시간 체계, 즉 달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4장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새롭게 반포된 그레고리우스 개혁 달력을 종교적인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독일 지역에 초래된 혼란과 그 영향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그 규모에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고, 그 본질과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훌륭한 합의를 만들기 위해 수반되어 온 수많은 고민들과 치열한 세월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큰 즐거움과 통찰을 준다. <달력과 권력>은 고대 문명에서 각각 만들어져 온 달력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에 하나의 달력으로 수렴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어떤 목적에서든, 새로운 달력을 만들고자 했던 혁명가들의 시도가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패턴과 리듬을 깨뜨리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달력은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종교, 경제, 문화, 정치, 나아가 개인의 생일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범사회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달력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모든 항목을 필히 고려해야 한다. 이때 13일에 금요일에 나타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거나, 홀수는 짝수보다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로마 미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상기하라! 몇 번의 시도 끝에, 아마 당신의 혁명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달력은 그 태생 상 정밀한 관측에 의거한 천문학적 사실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태양력 기준 1년의 길이는 약 365.2422 일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자연수로 1년의 길이를 정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투리’들이 남게 되고, 때문에 윤년의 도입은 필연적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이러한 자투리에 해당하는 기간은 축제을 열거나 한 해를 정리하는 기간으로 정하였는데, ‘송구영신’의 정신이 공통되게 들어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영원한 종말을 거부하고 역동적인 출발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세계관이 대부분의 문화권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확실한 건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무언가 사고를 단순화시키고 통찰 비슷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모든 문화권이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달력은 곧 시기적절하게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 것은 그 국가, 나아가 문화권이 강대해지는 길이었다. 때문에 달력을 만들고 수정하는 일은 대부분 국가의 간부들이나 권력을 잡은 지도층 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였으며, 이는 종종 민중들에게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도 명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독자적인 역법을 가질 수 없지 않았던가. 물론 세종대왕에 이르러 <칠정산>의 편찬으로 조선만의 역법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궁금했던 달력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서 또 하나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은 달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간 체계, 즉 경도와 관련된 책을 살펴볼 예정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