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더러운 손
장 폴 사르트르 / 서문당 / 2014.8.8
– 현대 실존 철학의 제1인자 사르트르가 쓴 문제의 희곡
우리가 전후 직면하고 있는 많은 과제를 다루었다 점에서 독자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영화화까지 되어 있다. 이는 동부유럽의 한 가상국 이리리의 공산주의 정당의 내분을 둘러싸고, 한 지식인이 공산주의의 이상과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목적과 수단과의 배치 속에서 너무나 큰 환멸을 느끼고 자기의 이상에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한 문제작이다.
○ 목차
해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제6막
제7막

○ 저자소개 : 장 폴 사르트르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철학자 · 소설가 · 극작가 · 에세이스트 · 모럴리스트로 활동했다.
1905년 파리에서 출생.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1929년에는 고등학교 교사자격시험에 수석으로 합격. 메를로퐁티와 <사회주의 자유>라는 이름의 저항단체를 조직하였다.
196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절했다.
1980년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존재와 무』 『파리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 내용 – 원제 : Les mains sales (by Jean-Paul Sartre 1948)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자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명성에 비해서 돌이켜보면 그의 방대한 저서 중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더군다나 그가 희곡을 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완전 백치 상태로 그의 희곡 ‘더러운 손’을 읽게 되었다. 너무 오래 전에 번역되어 최근 개정작업을 안한 탓인지 적지 않은 오타와 어색한 표현들이 희곡 읽기에 방해가 되었다. 그래도 대략적인 그림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되진 않았다. 현학적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롭게 읽었다. 동유럽의 가상국가 일리리아에서 공산주의 이상과 현실을 둘러싼 사상투쟁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제는 너무 흘러간 얘기처럼 느껴지는 이질감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전체 7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1막은 동유럽 일리리아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패퇴하고 소련군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돌아가던 즈음, 주인공 위고가 출옥하여 올가의 집을 찾게 되면서 시작된다. 올가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그를 뒤쫓는 공산주의 노동당 동료들로부터 잠시 시간을 갖고 위고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2막에서 6막까지는 2년여의 투옥생활 전 21세의 젊은 이상주의자 위고의 회상씬으로 이루어진다.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박사 인텔리인 위고는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자신의 배경을 버리고 42년 공산주의 노동당에 입당하여 행동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려 하나, 가명 라스콜리니코프 그에게 맡겨지는 일들은 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인텔리에게 적합한 신문 편집 정도뿐이다. 당시 독일 나치와 연합국 간 전쟁 중 일리리아는 파시스트 정부와 동조하는 섭정정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공산주의 노동당, 자유주의적․국가주의적 부르주아를 규합한 펜타곤 당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갈등하고 있다. 노동당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과 연합할 것인가(당 대표 에드레르 파/ 트로츠키로 상상하면 될 듯) 아니면 독자노선을 갈 것인가(루이파)로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연합노선이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루이파는 에드레르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공산주의에 대한 순수한 이상과 원칙에 경도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위고는 그 사명을 자진하여 맡게 된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했던 위고는 부인 제시카를 대동하고 에드레르의 비서직을 맡으면서 기회를 노리게 되나, 에드레르의 명석한 판단력과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략방향, 인간적인 매력에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루이파는 그의 주저함에 신뢰를 거두고 그에게 막중한 기회를 주는 데 도움을 줬던 올가가 에드레르 사무실에 폭탄테러를 하면서 자극을 준다. 올가의 시도는 에드레르나 같이 있던 위고에게 아무 해를 입히지 않았으나, 위고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인텔리로서 어쩔 수 없는 고뇌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매우 초조해진다.

무위로 돌아갔던 올가의 테러가 있었던 날은 연합노선을 현실화하기 위한 회합이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회합을 마친 그날 밤, 에드레르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위고 부부의 집을 찾는다. 그날 에드레르와 위고는 대표자회의 때 나타났던 그들 간 노선갈등에 대해 다시 논쟁을 벌인다. 공산당 정당 활동의 목적이 무엇인가, 정권 쟁취인가 사상의 승리인가. 이런 논쟁은 매 선거 때마다 21세기 한국 좌파에서도 익숙하게 반복되어 오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칙과 이상에 눈먼 부르주아 출신의 아나키스트 위고는 마음으로는 에드레르의 전략과 전술에 설득되었을지 모르나,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는 너무 무가치해져 버린다. 에드레르는 위고의 그 점을 직시한다. “자넨 정말 순수성에 집착하는군. 정말 손을 더럽히는 것을 무서워하는군…자네들 인텔리나 부르주아의 아나키스트들은 순수함을 구실로 해서 아무 일도 안해.”. 정치란 순수성만으로 되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그 순수성이라는 것도 에드레르가 보기에는 박제화된 인간성에 다름 아니다. “자넨 인간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 위고, 자넨 원칙만을 사랑하고 있어… (중략) 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하지. 모든 그들의 더러운 면, 악덕과 더불어 인간을 사랑해…(중략) 자넨 자기 자신을 증오하기 때문에 인간도 미워하지. 자네의 순수함은 죽음과 흡사한 거야…”
다음 날 위고의 부인 제시카는 에드레르에게 달려가 남편의 무모한 암살 계획을 알려주고 그를 설득해주길 부탁한다. 위고는 결국 에드레르에게 설득되어 권총을 내려놓고 나가지만, 그들의 대화를 숨어서 듣고 그전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제시카는 에드레르를 유혹하고 그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위고가 보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공산당의 숭고한 사명도, 질투에 눈먼 치정도 에드레르 암살의 동기라고 할 수는 없는 묘한 상황에서 위고는 에드레르를 죽인다.
제7막. 이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위고는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해 동기든 의미부여든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 우연이 그를 죽였을 뿐. 그런 위고에게 올가는 이제는 바뀐 시대적 정황 속 당의 노선, 결국은 에드레르가 예견했던 방향과 노선을 얘기하면서 위고가 행한 그 모든 행위를 무위로 묻고 다시 당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에드레르를 인간적으로 사랑했고 그의 생각과 행동을 마음으로 추앙했던 위고가 ‘자존감’ 하나로,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했던 행동 자체가 무가치한 일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결국 위고는 연극을 벗어던지고 죽음을 선택한다. 혹은 결과적으로 가치없는 일이였다 하더라도, 최소 자신에게만이라도 의미를 부여해야하는 연극을 끝까지 밀고 간다.
“살지 않으면 죽는 것뿐이지,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연극이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