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독일 사회민주주의 100년
100 Hundert Jahre Sozialdemokratie
W. 아이힐러 / 혜진서관 / 1989.4.1
자본주의란 원래 개인 이윤을 목적으로 개인 소유 위에서 개인 경쟁에 의하여 운영되는 경제적 ‘개인주의’이다. 그런데,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자유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는 원인이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유 ·평등의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려면 자본주의의 ‘개인주의’를 그 반대의 원리, 즉 ‘사회주의’로 바꾸어야만 된다고 믿었던 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폭력혁명을 방법으로 삼은 데 대하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폭력이 아닌 민주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그 목적을 실현하려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이 사회민주주의에는 통일된 이론체계가 없고 그 개념도 시대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거쳐왔으며, 오늘날에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실정에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마르크스주의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등장한 정치 사상이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로사 룩셈부르그와 블라디미르 레닌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에두아르 베른스타인, 카를 코츠키와 진 조레스등의 개량주의·진화주의자들을 동시에 포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비혁명적 접근법과 동일시되었다.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점진적인 의회주의적 개량 프로그램을 강조하여 이론적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최종 목표는 아예 잊거나 또는 친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재 정의한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특정 사회 형태를 의미 할 수 도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정당들을 포괄하는 전 세계적 조직인 국제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대리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로 정의한다. 이러한 형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사회주의는 다음의 원칙을 중시한다. 첫째로는 “자유”가 있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생산 수단의 소유주 또는 폭압적인 정치 권력의 대리인 들에게 의존하지 자유를 포함한다. 둘째로는 “평등과 사회 정의”가 있으며 이것은 법상만의 정의가 아니라 경제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정의를 포괄하며, 모든 이들, 구체적으로 육체·정신·사회적 장애를 겪는 이에게 대한 동등한 기회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연대”가 있으며 이것은 불의와 불평등의 피가해자에게 대한 동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결을 뜻한다.
○ 저자소개 : W.아이힐러 (Willi Eichler, 1896 ~ 1971)
빌리 아이흘러 (Willi Eichler, 1896년 1월 7일 ~ 1971년 10월 17일)는 독일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상인집안에서 태어난 아이흘러는 1922년부터 괴팅겐의 철학자 레오나르드 넬손 (Leonard Nelson)의 비서로 일했다.
1923년에 독일사회민주당에 입당한다.
넬손의 추종자로 넬손이 만든 국제사회주의자투쟁동맹의 방침에 따르다가 사회당민주당으로부터 1926년 출당된다.
1932/33년에 아이흘러는 나치반대 투쟁을 위해 국제사회주의자투쟁동맹이 만든 일간지 ‘Der Funke’의 편집인을 역임한다.
1932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독일 공산당과 독일사회민주당의 공동선거운동을 위한 활동으로 많은 유명지식인과 학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1933년 프랑스로 이주한다.
루테티아 그룹 (Lutetia-Kreis)에 속해 히틀러 독재에 대항하는 인민전선의 형성을 시도한다.
후에 영국으로 가서 다시 독일사회민주당에 합류한다.
1946년 그는 독일로 돌아와서 독일사회민주당 재건에 참여한다.
동시에 ‘정신과 행동’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그가 사망하는 1971년까지 발행자를 지낸다.
또한 1951년까지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한다.
정치 경력으로는 사민당 중부라인지역 대표와 1947/48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의원을 지냈다.
1946년에서 1968년까지 독일사민당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슈마허 사후에는 대표의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고데스베르크 강령 준비위원회 대표를 지냈으며, 1947/48년에는 영국군정의 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독일 경제 재건에 관한 일을 했던 프랑크푸르트의 경제자문위원회의 위원도 역임했다.
1949년에서 1953년까지 연방의원을 지냈으며, 1952년부터는 언론, 방송, 영화관련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다.
아이흘러는 전후 독일사회민주당의 영향력있는 강령이론가 중의 하나였으며,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초안작성과 수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에 독일 사회민주당 관련 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공동대표로 일했다.
주요저서로 Das Parlament als Repräsentant der Öffentlichkeit im Rundfunk, in: Die Freiheit des Rundfunks, München, 1956; Grundwerte und Grundforderungen im Godesberger Grundsatzprogramm der SPD, Bonn,1962; Hundert Jahre Sozialdemokratie, Bonn, 1973. ‘독일 사회민주주의 100년’, 李泰永 譯, 중앙교육문화, 1989: Sabine Lemke-Müller: Ethischer Sozialismus und soziale Demokratie. Der politische Weg Willi Eichlers vom ISK zur SPD. Bonn 1988 등이 있다.
– 역자: 이태영
○ 사회민주주의
– 연원
사회민주주의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860년대로서, 1864년 창간된 F.J.G.라살파(派)의 ‘전독일노동자협회 (全獨逸勞動者協會)’의 기관지 《사회민주주의자》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1869년 K.마르크스와 F.엥겔스의 지도하에 조직된 사회민주노동자당 (SDAP), 이른바 아이제나흐파 역시 이 사상을 저들의 지도이념으로 내걸고 있다.
대체로 말해서, 1864 〜 1876년 제1인터내셔널 시대에 있어서 사회민주주의란 말은 모든 사회주의운동의 총칭처럼 되어 있었으며, 1889 〜 1914년 제2인터내셔널 시대에는 사회민주주의란 말에 혁명적 요소가 가미됨으로써 공산주의란 말을 대신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V.I.레닌도 이 명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그가 이끈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당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 단계에 있어서도, 예컨대 K.카우츠키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하면서도 끝까지 폭력과 독재를 배격함으로써 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한 사회개조라고 하는 이 사상을 고수하여 이른바 중도파 (中道派)를 이루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사회민주주의의 주장에 개량주의적 ·수정주의적 요소가 증대되어 가자, 이 사상의 좌파 (左派)를 대표하던 레닌은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을 결성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지 않는 사회주의 사상을 뜻하게 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공산주의와 결별하게 되었다. 레닌 혁명 이후 194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통하여, 소련에서의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의한 사회개조의 실패, 소련 ·독일 ·이탈리아 등에 있어서의 독재의 해악 (害惡) 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재평가 ·재인식의 기운이 크게 일게 되었다. 마침내 1951년 6월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자유세계의 약 30개 사회민주주의 정당대표들이 회동하고, 7월 ‘민주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 (흔히 민주사회주의선언 또는 프랑크푸르트선언으로 불림)’를 채택 ·선포하였다.
민주사회주의의 본질 및 사회민주주의와의 이동 (異同)에 대하여는 아직도 이견 (異見)이 분분하여 과도기적 혼란상을 보이고 있으나, 종래의 사회민주주의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만능시 (萬能視)해 온 데 대하여 민주사회주의는 이것을 부정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와는 물론 종래의 모든 사회주의와도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방향 및 성격을 나타내고 있어서,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자체의 하나의 질적 (質的) 변화를 느끼게 하고 있다.
–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독일의 기본법(헌법)에는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경제적으로는 복지를 좀 더 중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다만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독일의 재통일 이전의 동독과 대립했던 서독의 반공적 색채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혁명적 사회주의와 거리를 둔 채 선을 긋고 있다.
– 독일 사회민주당
독일 사회민주당 (독: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은 중도좌파 성향을 띠는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독일의 양대정당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국제적으로는 진보동맹에 가입되어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창립 멤버였지만 반민주적 정당 가입에 대한 반발로 회비 납부를 거부하다가 탈퇴했다. 일반적으로 독일 언론 등에서 빨강은 사회민주당을 상징한다.
1875년에 정식 창당된 사민당은 독일의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프랑스 사회당, 영국 노동당, 이탈리아 민주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등과 함께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중도 우파 정당인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과 함께 독일의 양대 정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