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라케스 (Laches)
플라톤 / EJB / 2014.4.9

플라톤이 남긴 영원한 고전 가운데 한 편인 ‘라케스’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와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룬 책이다.
‘중무장 전투술’ 시범을 보고 나온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는 이것이 자녀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아테네의 명망 높은 정치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자식 교육에는 소홀하였던 부친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지닌 그들은 자연스레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이란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혼의 보살핌’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야지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이 두 명의 학부모와 함께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그동안 잊고 지내 왔던 ‘참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목차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해설
작품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 작품 개요
1. 교육의 문제(178a-190c)
1) 중무장 전투술의 교육적 가치(178a-184c)
(1) 도입부: 중무장 전투술에 대한 조언 요청(178a-181d)
(2) 중무장 전투술의 가치에 대한 니키아스의 견해(181d-182d)
(3) 중무장 전투술의 가치에 대한 라케스의 견해(182d-184c)
2) 교육은 영혼을 위한 것이다(184c-190c)
(1)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제안: 영혼의 보살핌에 대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184c-187d)
(2) 막간: 소크라테스와의 문답 대화에 대한 니키아스와 라케스의 생각(187b-189d)
(3)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제안: 덕에 대한 검토 필요성(189d-190c)
2. 용기에 대한 정의 시도(190c-200a)
1) 예비적 논의: 덕의 부분으로서 용기를 고찰하기로 함(190c-e)
2) 용기에 대한 라케스의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반론(190e-194b)
(1) 용기에 대한 라케스의 첫 번째 정의: 용기란 대오를 지키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의 반론(190e-192b)
(2) 용기에 대한 라케스의 두 번째 정의: 용기란 영혼의 인내이다 / 소크라테스의 반론(192b-194b)
3) 용기에 대한 니키아스의 정의와 그에 대한 반론(194c-199e)
(1) 용기에 대한 니키아스의 정의: 용기란 두려워할 것들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앎이다(194c-196a)
(2) 라케스의 반론(195a-196b)
(3) 소크라테스의 반론과 덕의 부분으로서의 용기에 대한 물음(196c-199e)
○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출판사 서평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7번째 대화편 ‘라케스’ 출간
.자녀 교육과 용기에 대해 묻다.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
이 천년도 넘게 지난 플라톤의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여전히 읽히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시대를 넘어 동서양을 넘어 누구나 가진 고민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시공을 뛰어넘는 영원한 고전이다. 플라톤이 남긴 영원한 고전 가운데 한 편인 ‘라케스’에서 고민은 바로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와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이다.
‘중무장 전투술’ 시범을 보고 나온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는 이것이 자녀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아테네의 명망 높은 정치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자식 교육에는 소홀하였던 부친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지닌 그들은 자연스레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이란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혼의 보살핌’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야지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녀에게 잘 살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시류를 거스를 수 없어서 자식을 입시 경쟁의 대열에 밀어 넣는 부모들 모두가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두 명의 학부모와 함께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그동안 잊고 지내 왔던 ‘참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영혼을 보살피는 것이라면 교육은 영혼이 ‘덕’을 갖추게 하는 것이고, 우리는 ‘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체를 다 살핀다는 것은 어려우므로 그 가운데 하나인 ‘용기’에 대해 살펴보자고 소크라테스가 제안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안에 따라 니키아스와 라케스라는 당대 아테네의 유명한 두 장군이 진정한 ‘용기’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소크라테스가 이에 반론을 제시한다.
‘용기’가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세 사람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지만, 소크라테스와 라케스, 니키아스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행동과 경험을 중시하는 라케스와 진지한 숙고를 중시하는 니키아스의 성격을 엿보고 이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두 실존 인물이 보인 행동을 비교해 보며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용기란 바로 이것이다.’라며 직접 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들 스스로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길을 열어 놓는다는 점에서 시공을 넘어 영원히 읽힐 고전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 등장인물
.뤼시마코스(Lysimachos)
이 대화편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과 멜레시아스의 대변자로서 자기 아들과 멜레시아스의 아들의 교육을 위한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역사상 실재 인물로서의 뤼시마코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대화편에서도 언급되듯이 유명한 부친에 비해 그 자신은 저명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유명한 부친은 페르시아 전쟁 때 특히 이름을 떨친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 아리스테이데스(Aristeides)이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정의로운 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테미스토클레스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도편추방된 일화로 유명하다. ‘라케스’의 대화 초반(179c-d)에 뤼시마코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여 자신이 그다지 명성을 얻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 ‘메논’ 93e-94e에서도, 멜레시아스와 함께, 위인도 그 덕을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여러 실례들 가운데 하나로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유명한 부친과 무명의 자식이라는 이러한 상황이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라케스’의논의를 이끄는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라케스’의 곳곳에서 뤼시마코스는 자신을 나이를 많이 먹은 자, 곧 노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대화편에서 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의 아버지인 소프로니스코스(Sophroniskos)의 친구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 대화편에서 뤼시마코스의 작중 나이는 대략 육십 대 후반에서 칠십 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그와 멜레시아스, 소크라테스가 모두 같은 알로티케 구 출신의 사람이다.
.멜레시아스(Melrsias)
크멜레시아스에 대해서 역시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뤼시마코스와 마찬가지로 ‘메논’에서 아버지에게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나 덕을 전달받는 데는 실패한 사례로 나온다. ‘메논’ 94c에서는 아버지의 훌륭한 교육으로 아테네 최고의 레슬링 선수가 된 것으로 묘사된다. 멜레시아스의 유명한 아버지는 정치가 투퀴디데스(Thoukydides)로,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알려진 역사가 투퀴디데스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멜레시아스의 아버지인 정치가 투퀴디데스 역시 당대에는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아테네 정계에서 활약한 귀족파 지도자로 페리클레스 정권의 주요 반대자였다. 이 대화편 ‘라케스’에서 멜레시아스는 대화 내내 동석하고 있긴 하지만 대화에 직접 동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뤼시마코스가 그의 생각과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 멜레시아스가 직접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장면(184d-185b)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말도 아주 간결하다. 그는 단지 일곱 번만 말한다.
.니키아스(Nikias)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활약한 아테네의 대표적 장군 중 한 사람이다. 페리클레스의 죽음(기원전 429년) 이후에 정치 세력 다툼에서 클레온과 라이벌 관계로 나타난다. 엄청나게 부유했던 니키아스는 부유한 귀족들의 대변자로 여겨지고는 있지만, 겸손하고 인심이 후했던 덕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온건파인 그는 민주파 내의 몇몇 과격파들의 제국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야심에 반대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스파르타와의 관계에서 가능하면 빨리 평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그는 기원전 423년의 휴전과 421년의 평화협정에 이르는 협상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 기원전 421년의 평화협정은 후에 ‘니키아스 평화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곧 평화협정이 깨지고 기원전 415년 아테네 민회가 시켈리아 원정을 결의하였을 때, 니키아스는 원정에 반대했으나 오히려 사령관에 지명되어 출정하게 된다. 기원전 413년 전황이 불리하게 된 후, 철군에 실패, 전투에서 패배하여 적에게 처형당한다. 이때의 철군 실패는 당시 있었던 월식으로 인해 철군을 유예시키라는 예언자의 조언을 따른 것으로, 이것이 결국 아테네군의 전멸을 초래하게 된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6권과 7권에 당시 니키아스의 활약상과 성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대화편 ‘라케스’에서는 경험과 행동을 중시하는 라케스와 대비되면서 신중하고 논리적이며 소크라테스적 논의에 익숙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라케스’에서는 소크라테스보다 연장자로 언급되고 있는데 나이 차이가 그다지 컸던 것 같진 않으므로 이 대화편의 시기에서는 50세 정도의 장년으로 보인다.
.라케스(Laches)
라케스에 관한 자료는 보고된 니키아스 관련 자료보다 수적으로 매우 적다. 니키아스와 반대로 라케스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군인으로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원전 427년 그가 장군직을 맡아 시켈리아로 가는 20척 규모의 함대를 지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421년에는 스파르타와의 평화 협상에 니키아스와 함께 참여하여 이 협상이 체결되는 데 힘썼고, 삼 년 뒤인 기원전 418년 만티네아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또 플라톤의 ‘향연’과 ‘라케스’에는 라케스가 기원전 424년 델리온 전투에도 소크라테스와 함께 참가하였음이 언급되고 있다. 이 대화편 ‘라케스’에서 라케스는 니키아스에 비해 단순하고 직선적이며 감정적인 성격을 드러내면서 지적인 사고보다는 행동과 경험을 중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라케스 역시 니키아스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니키아스와 동년배로 보인다.
.소크라테스(Sokrates)
대화의 시기가 델리온 전투(기원전 424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고 한다면, 이 전투에 참가했던 소크라테스의 나이가 45세 정도이므로, 이 대화편에서의 그의 나이는 그보다 조금 많은 4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대화편의 내용으로 보아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그 이름이 회자하고 있었고 많은 젊은이들과 교제하고 있었다. 대화편에서 델리온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전투에 함께 참가했던 라케스는 전투에서 그가 보여 준 용맹스러운 모습을 극찬하고 있다. 델리온 전투에서 보여 준 소크라테스의 침착하고 용감한 모습은 ‘향연’ 220e-221b에서도 알키비아데스에 의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라케스’의 대화는 애초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니키아스와 라케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정작 니키아스와 라케스는 교육에 대한 조언자로 소크라테스를 강력하게 추천하면서 자리에 동석하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이 주제의 대화에 참가하게 된다. 논의는 주로 니키아스와 라케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 의해 진행되고, 소크라테스는 논의되는 주제에 대한 판정자의 역할을 계속해서 요청받지만, 그는 일관되게 자신을 ‘모르는 자’로 지칭하고 있다. 대화편에서 선친인 소프로니스코스가 뤼시마코스와 각별한 사이였음이 언급된다.
.뤼시마코스의 아들과 멜레시아스의 아들
대화편은 바로 이들에게 중무장 전투술을 배우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들의 아버지가 당대의 유명한 장군 니키아스와 라케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화편 초반에 나와 있듯이, 아테네 관례대로 이들은 각각 자신의 유명한 조부의 이름을 계승하여 아리스테이데스와 투퀴디데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20세 정도의 젊은이들로 보이며, 대화편에서 이들이 평소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대화편 내내 함께 동석은 하고 있으나, 뤼시마코스의 아들이 아버지 뤼시마코스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한 장면(181a)만 빼놓고는 대화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테아이테토스’ 151a에서 뤼시마코스의 아들 아리스테이데스가 소크라테스와 교제하다가 너무 일찍 떠난 어리석은 자로 언급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