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헨드릭 빌렘 반 룬 / 서해문집 / 2006.8.5
시몬 볼리바르 (Simon Bolivar, 1783 ~ 1830)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다섯 나라를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킨 독립 영웅이다. 그에 대한 남미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이 어찌나 대단한지 차베스처럼 ‘볼리바르’라는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짓고, 화폐단위, 지형, 경제조약에도 그의 이름을 붙인다. 신념 있는 정치 철학자였으며 평생을 혁명 전장에서 보낸 혁명가였던 볼리바르는 일찍이 중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연방공화국이라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 룬의 말을 빌리면 이는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는 허세에 찬 지도자나 허황된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감 있는 지식인 볼리바르”의 면모였다. 최근 중남미 일대에서 이른바 좌파정권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견제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볼리바르라는 이름은 또다시 변혁과 연대의 구심점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 목차
머리말
- 이 책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될 무대를 소개한다. 무대가 워낙 광활하다보니 얘기가 꽤 길다
- 혼자서 온갖 질문을 다해 보는 남다른 습성을 지니다
- 자유를 위한 전투가 시작되다
- 영광스러운 나날이 이어지다
- 위험한 평온
- 한 위대한 인물, 쇠락 끝에 몰락하다
맺는말
볼리바르 연보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헨드릭 빌렘 반 룬 (Hendrik Willem van Loon)
제1회 뉴베리상 수상 작가, 풍자와 해학의 대가, 박학다식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문화사가, 시대를 앞서간 진보주의자, 20세기 초의 위대한 휴머니스트…. ‘반 룬’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이렇듯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1882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그는 1902년 (20세)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과 코넬대학에서 공부한 뒤 AP통신의 유럽 특파원으로 일했다. 1911년 뮌헨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서양사를 강의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벨기에에서 종군 기자로 활동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미국에서 역사를 강의하면서 20권이 넘는 작품을 썼다. 그중 『인류 이야기』는 미국의 권위 있는 출판상인 뉴베리상의 제1회 수상작으로 유명하며 30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밖에 『예술 이야기』 『성서 이야기』 『관용』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발명 이야기』 『반 룬의 지리학』 『배 이야기』 『렘브란트』 등도 뛰어난 역작들로서 여전히 세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44년 3월, 그는 코네티컷의 한 작은 마을에서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역자 : 조재선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영문과를 거쳐 우송대학교 TESOL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1998년부터 서울 혜화동에 있는 동성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성심수녀회 역사』, 『발명 이야기』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반 룬이 쓴 남아메리카 역사
반 룬은 묻는다. 남아메리카의 역사를 아느냐고. 반 룬은 스스로 남미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고, 자신의 무지가 심연과도 같다고 고백한다.
우리로서야 그들의 역사에 끼어든 적이 없는 아시아인으로서 남미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여행지로서의 정보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
미국인인 반 룬이 남미의 역사와 그들의 해방자인 시몬 볼리바르에 대해 ‘공부’를 하며 깨우친 것을 특유의 비유와 은유로 전해주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반 룬의 첫 깨달음은 이렇다. “미국 역사가 단 한 명의 조지 워싱턴을 배출하는 동안 남미 대륙은 그에 버금가는 인물을 이렇게나 여럿 배출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절반쯤 쓴 책을 다시 써야 했다.
반 룬은 독자들에게 시몬 볼리바르에 관한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남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한 이 해방운동가의 역사적 배경도 함께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기들만이 고귀하고 영예로운 과거사를 지닌 국민이라는 착각에서 헤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 시몬 볼리바르는 누구인가
시몬 볼리바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사는 이름이다.
1999년 그가 취임해서 가장 먼저 한 조치 중 하나가 나라 이름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꾼 것이다.
국기 國旗에도 별을 7개에서 8개로 하나 추가했다. 차베스는 그 별을 ‘볼리바르의 별’을 상징한다고 선언했다.
그가 주장하는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다른 이름은 ‘볼리바르 혁명’이다.
시몬 볼리바르 (Simon Bolivar, 1783 ~ 1830)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다섯 나라를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킨 독립 영웅이다.
그에 대한 남미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이 어찌나 대단한지 차베스처럼 ‘볼리바르’라는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짓고, 화폐단위, 지형, 경제조약에도 그의 이름을 붙인다.
신념 있는 정치 철학자였으며 평생을 혁명 전장에서 보낸 혁명가였던 볼리바르는 일찍이 중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연방공화국이라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 룬의 말을 빌리면 이는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는 허세에 찬 지도자나 허황된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감 있는 지식인 볼리바르”의 면모였다.
최근 중남미 일대에서 이른바 좌파정권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견제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볼리바르라는 이름은 또다시 변혁과 연대의 구심점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 볼리바르는 어떻게 독립운동가가 되었나
1783년 7월 24일 볼리바르는 남아메리카의 가장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메리카 땅에서 태어난 크리올료 (남미에 이주한 백인, 특히 스페인 사람의 후손을 가리킨다)였기 때문에 아무리 잘나가도 스페인 사람의 눈에는 이등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굴욕적인 사회 질서 안에서 출생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유복하기는 해도 정치적으로 철저히 배제된 크리올료 계층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터져 나왔다. 물론 신세계에 살던 원주민인 인디오들의 삶에 비하자면 이런 차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디오들은 집과 가정뿐만 아니라 자유마저 빼앗긴 채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세계에 발을 디딘 이래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순진무구하게 예를 갖춰 환영했지만 백인들은 이들을 끊임없이 학살했다.”
다시 볼리바르의 삶으로 돌아가 보자.
볼리바르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그가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몇 년 후엔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후견인인 친척의 손에 맡겨져 자라게 된다.
볼리바르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던 친척 아저씨는 개인교사로 시몬 로드리게스를 소개하는데, 로드리게스는 18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특히 루소의 추종자로서 인간의 권리, 해방 그리고 평등에 대한 온갖 선언을 신봉하는 이였다. 이 만남은 장차 청년 볼리바르가 유럽 합리주의 사상가들을 접하는 데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볼리바르는 18세 (1801년)에 스페인의 막강한 집안의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열 달 후에 아내는 황열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실의에 빠진 볼리바르는 1804년 나폴레옹이 생애 최고 전성기에 유럽으로 건너갔고, 파리에서 어릴 적 개인교사였던 시몬 로드리게스를 다시 만난다.
로드리게스는 그에게 볼테르·몽테스키외·루소 등 유럽 합리주의 사상가들의 저서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 무렵부터 볼리바르에게는 독립과 저항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는 로마 여행 중 몬테 사크라의 정상에 서서 외세의 지배라는 굴레로부터 베네수엘라를 해방하는 그날까지 결코 그의 손과 영혼을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그의 생애는 죽을 때까지 이때의 맹세를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반 룬은 볼리바르를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로 소개하면서 볼리바르의 자기소개서를 가상으로 써내려간다.
“저는 아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 스페인 국왕 폐하의 대리인으로 파견된 오만불손한 총독들을 저는 뼛속까지 경멸했습니다. 우리가 해방을 쟁취하기만 한다면 우리 공화국의 통치자로 왕을 추대하자는 의견에 결연히 반대할 생각입니다. 설사 저 자신에게 왕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차라리 해방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되길 바랄 것입니다. 해방자라는 칭호야말로 동료 시민들이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칭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망하던 모든 것들을 이루어낼 수 없었던 점은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충직한 군인처럼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 내 원칙을 사수하였습니다.”(70p)
- 반 룬, 분투하며 고뇌하는 해방자를 그리다
중남미와 미국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반 룬이 미국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과 역사의 진보를 철저히 신뢰했던 반 룬은 시몬 볼리바르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철학적 신념의 실천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며 고뇌하는 인간적 면모에 눈길을 더 주고 있다.
아울러 인접 지역인 중남미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관심과 무지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반 룬은 볼리바르의 생애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주요한 역사적 사실과 아울러 볼리바르의 독립운동, 누에바그라나다 해방, 페루 해방, 그란콜롬비아와 페루의 대통령이 된 볼리바르, 내전, 슬픈 최후 등을 유연한 속도로 훑는다.
무엇보다 그의 저술은 한 사람의 생애에 걸친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통째로 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폭넓은 지적 스펙트럼를 통한 입체적 서술방식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역시 역사의 행간에서 볼리바르의 행동을 여러 갈래로 읽고 당시의 상황을 끌어들여 최대한 열린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는 반 룬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의 시선이 순수한 이성주의, 시대를 앞서간 진보주의 그리고 휴머니즘에서 비껴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구성부터가 그렇거니와 쇠락 끝에 몰락하는 볼리바르의 최후를 전하는 6장은 슬픔에 깃든 영광스런 해방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져 읽는 이의 가슴마저 저미게 한다.
“임종은 1830년 12월 17일 늦은 저녁에 찾아왔다. 시신의 입관을 준비하던 프랑스 인 주치의는 볼리바르가 입고 있던 셔츠 (그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셔츠였다)가 심하게 해진 것을 발견하였다. …… 이 위대한 자유의 사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그의 생명, 그의 재산, 그의 행복과 건강을 자유의 제단에 제물로 봉헌한 이 사람은 빌린 수의를 입은 채 땅속에 묻혔다.”(196p)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