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랑그도크의 농민들 1•2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 한길사 / 2009.12.20
- 프랑스 현대 역사학의 거장,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의 첫 저서!
역사학에서 프랑스의 아날 학파는 이카루스와 같은 존재이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자고 제언했던 역사학의 흐름이 아날 학파이다. 월러스틴과 같은 세계체제론자들의 학문적 저작은 아날 학파의 등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는 프랑스의 아날 학파를 형성시킨 또 한명의 거장이다. 그는 인간 생황의 모든 영역을 빠짐없이 다루고자 하는 전체사를 지향했다. 르 루아 라뒤리는 먼저 자연환경에서 탐구를 시작한다.
『랑그도크의 농민들』은 그의 첫 저작으로 자연환경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학문적 지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포도수확일자의 변화를 통해 랑그도크 지방의 기후 변화를 밝혀내고, 환경 변화로 인해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한다. 이처럼 그는 문화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를 함께 고찰함으로써 브로델의 전체사와는 조금 다른 식의 전체사를 구성하고 있다. 민족국가 단위의 협소한 역사학이 아닌 전체적인 역사학을 꿈꾸는 역사학도, 혹은 역사를 넓게 보려는 일반인이라면 반길 만한 저작이라고 하겠다.
○ 목차
- 1권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현대 역사학의 증인|김응종
화폐 가치 및 도량형
프랑스의 계산 화폐
기타 화폐
도량형
약어표
서문
제1부 힘의 자장
제1장 기후의 자극
I. 여름과 포도수확
II. 추운 계절
체계적 관찰들
사건 자료들
제2장 남부의 식물과 기술들
I. 초목 문명
종자와 곡물의 품종들
과거의 포도품종
과수원과 채원
아메리카의 식물들
중계지와 원산지
II. 지중해 지역의 기술
낫과 쟁기
물과 불
제3장 북부에서의 이주와 유혹
I. 이주 영역의 구조
랑그도크의 거지들
노동의 이주와 인구의 쇄신
남부의 하찮은 기여보헤미아인, 무어인, 마라노
II. 주요 인구 이동의 대차대조표
인류학
축산 문명의 기여: 인간의 이주와 동물의 이주
외지인 장인들과 농촌 상인들
문화적 기여
남부의 문명, 북부의 문화
제2부 맬서스의 부활
제1장 한 사회의 최저 수위
사람이 드물던 세기
결과: 농촌 풍경
토지의 재통합
동일 가계의 재통합
지대의 불행
임금의 황금 시기
고기와 밀
제2장 인구, 생계, 수입: 16세기의 ‘가위들’
I. 인구 폭발
“곳간의 쥐처럼”
확장적 반격: 한계지의 개간 집약적 반격
: 혼합 재배
세벤 지방의 사례: 밤, 숯, 생사(生絲) II. 고난을 향해 밀의 비극 실질 소득의 정돈(停頓) 제3장 분할, 집중, 빈곤화 헥타르 또는 스테레 토지대장상의 리브르 완전히 분할된 세 마을 분할지들의 압축 상속지의 축소
: 상속자들의 빈곤화
제4장 임금, 지대, 이익: ‘토지 노동자들’의 빈곤화
실질임금의 하락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움
실질 지대의 지속적인 정돈
이익의 승리
‘아웃사이더’`: 십일조, 토지세(cens), 타유세
농업 경영자와 그의 수입
자본임(任)과 토지임
농민 부르주아와 젠틀맨-파머
제5장 전체적 조망
빈민들의 세계
심층의 위기
자본주의의 유산(流産)
랑그도크와 카탈루냐
찾아보기
- 2권
제3부 의식화와 사회적 투쟁
제1장 글쓰기의 길
두 가지 문화의 흐름
종교개혁과 수용 구조: 도시와 시골 위그노파 소모공과 교황파 농민 세벤에서
: 촌부들의 가담
제2장 위그노들의 공세와 사제들의 땅
교회 재산에 굶주린 자들
구매자들의 유형
제3장 십일조는 개혁인가, 혁명인가?
개혁교도들이 십일조를 빼앗다
십일조 납세자들이 납세 거부 투쟁을 벌이다
곡물 십일조
현금 십일조
제4장 ‘하층 계급’의 투쟁과 행동
로망의 사육제
랑그도크와 중부 지방의 크로캉
‘시골뜨기’ 투사들
제5장 사바트와 반란
전도(顚倒) 의지
제4부 지대의 공세
제1장 인구
완만한 증가(1600~70)
죽음의 마을들과 1629년의 위기
제2장 생산
포도와 생사(生絲), 첨단 분야
아캅트와 콩플랑
완만한 확장, 제로 성장
제3장 분배(제1악장)
르 냉의 세기의 외양, 장식
토지의 분할, 세분화의 지속
제4장 징수
지대의 승리, 임금의 안정, 이익의 하락
십일조의 재상승·
세금 ‘짜내기’
더 무거워진 채무
‘순이익’의 승리
농민들의 시련
제5장 봉기
빵과 세금
의식(儀式)적인 절단
제5부 역류
가격과 연대(年代)
제1장 총생산의 부침
포도주
밀
기름
가축
실질 총수입: 최종적인 감소, 전반적인 무기력
죽은 땅
제2장 인구의 재감소
호적대장과 부활절 성체배령자들
하락 추세: 호적대장 저항의 극점들
: 도시
총생산과 농촌 인구
왜 그렇게도 많이 죽었나?
만혼? 산아 제한?·360
사라진 마을들
부락도 죽는다
제3장 분할에서 재통합으로
토지대장상의 인구: 타유세 납세자 수의 감소 우익의 강화 제4장 토지는 더 이상 수익성이 없다 1665~72
: 이익의 사망
1680`: 차지농들의 파산
임금의 저항
지대의 하락
리브르가 이삭을 죽이다 조세의 시의부적절한 공격
제5장 야만적인 반란들
국왕 만세, 징세관 꺼져라
세벤의 광신자들
쥐리외의 묵시록
발작적이고 예언적인 히스테리
납세자들의 반감
결론
거대한 농업 사이클
시대 구분
기술의 막다른 골목과 문화적 장애물
진정한 성장의 씨앗
문맹의 문제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한다. 중국이 공산화되던 해인 1949년에 공산당에 가입하고, 그해 9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1953년 교원자격시험 (아그레가시옹)에 합격해 1955년부터 몽펠리에의 한 중등학교(리세)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해 11월 소련의 헝가리 침공 소식을 듣고 공산당원증을 반납한다. 그 후 통합사회당 (P.S.U.)에 가입하여 활동하나, 1963년에 브로델의 추천으로 고등연구원 제6국의 조교수로 옮겨가면서 탈퇴한다. 1955년, 르 루아 라뒤리는 지리학자인 레몽 뒤그랑의 권유를 받아들여 랑그도크 지방에 많이 남아 있는 콩푸아라는 토지대장을 가지고 학위논문을 쓰기로 결심한다. 토지의 집중과 분할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기원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5년간 연구 후에 모습을 드러낸 『랑그도크의 농민들』은 경제사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히지 않았고, 지리/경제/사회/정치/문화/심리를 두루 포함하는 전체사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는 1960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하고, 1963년 고등연구원 조교수로 임명되어 파리에 올라온다. 1968년에는 새롭게 개편된 『아날』의 공동 편집인이 되며, 1970년에는 소르본 대학 교수, 그 이듬해에는 파리 7대학 교수가 되었다. 1973년에는 브로델의 뒤를 이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근대문명사 담당 교수가 된다. 취임 강의 제목인 「움직이지 않는 역사」는 역사학의 본질과 관련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서로는 『랑그도크의 농민들』을 비롯하여 『랑그도크의 역사』 『역사가의 영역』 『천년 이후 기후의 역사』 『몽타이유』 『로망의 사육제』 『자스맹의 마녀』 『랑그도크 지방에서의 돈, 사랑, 죽음』 『플라터의 세기』 『생시몽 또는 궁정 체제』 등이 있다.
- 역자: 김응종
1978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졸업 후 1984년 프랑스 낭트 대학교에서 석사, 1987년 프랑스 프랑쉬콩테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이래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충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아날학파》(민음사, 1991),《 오늘의 역사학》(공저, 한겨레신문사, 1998), 《아날학파의 역사세계》(아르케, 2001),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푸른역사, 2005), 《 페르낭 브로델》(살림, 2006), 《서양사 개념어 사전》(살림, 2008), 《관용의 역사》(푸른역사, 2014),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푸른역사, 2022)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프랑스혁명사》(일월서각, 1990), 《16세기의 무신앙 문제》(문학과지성사, 1996), 《고대도시》(아카넷, 2000), 《랑그도크의 농민들》(공역, 한길사, 2009),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푸른역사, 2015), 《라로슈자클랭 후작부인의 회고록》(한국문화사, 2018) 등이 있다. - 역자: 조한경
서울대에서 문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암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리옹 3대학에서, 학술 재단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 기간을 가졌다. 한국어의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열두 띠 이야기≫, ≪쥐돌이는 화가≫, 프랑스어의 한국어 번역으로는 ≪저주의 몫≫, ≪종교이론≫, ≪에로티즘의 역사≫, ≪미덕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비평과 의식≫, ≪에로티즘≫, ≪초현실주의≫ 등이 있고 저서로는 ≪변혁의 시대와 문학≫, ≪서양문예사조≫, ≪한국어 한자-불어 사전≫, ≪라모의 조카≫, ≪프랑스 현대문학의 이해≫ 등이 있다. 논문은 <절대인간 사드-부정의 극단, 극단의 부정>, <미술비평가 디드로와 비평적 태도>, <바타유와 에로티즘>, <리베르탱 소설연구 : 에로티즘 또는 허무주의 철학> 등 다수가 있다.
○ 출판사 서평
- 『랑그도크의 농민들』이 있기까지 ―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의 정치 편력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 (1929 ~ )는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로 3세대 아날학파의 대표 주자다.
「아날」의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소르본 대학과 파리 7대학 교수를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의 근대문명사 담당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1929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의 대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2년 비시 정권 아래에서 농업•식량보급 장관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에는 비시 정권에 호의적인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다음해에 아버지가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자 독일과 비시 정권에 비판적인 태도로 돌아서게 되며,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기도 한다.
해방 후에 그는 파리의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우익으로 분류되던 가톨릭 서클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피상적이나마 트로츠키주의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자 공산당에 가입한다. 같은 해 입학한 에콜 노르말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모리스 아귈롱의 뒤를 이어 학생 생디카 (조합)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후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스탈린주의자로서 역사학에 입문하게 된다.
그의 공산당 활동은 1956년, 흐루시초프 보고서가 스탈린주의와 결별할 것을 재촉하고, 그해 11월 소련이 헝가리를 침입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 후 그는 통합사회당 (P.S.U.)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나, 브로델의 추천으로 1963년 고등연구원 제6국의 조교수로 옮겨 가면서 탈퇴한다.
이렇게 페탱주의, 스탈린주의, 사회주의 등의 정치 이력을 마감한 후에야 그는 역사학의 영토에 본격적으로 몸담게 된다.
- 전체사라는 모험에 뛰어들다 : 『랑그도크의 농민들』의 구성과 내용
『랑그도크의 농민들』은 르 루아 라뒤리가 1960년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이 논문을 지리학자인 레몽 뒤그랑의 권유로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 서남부의 랑그도크 지방에 콩푸아라고 하는 토지대장이 많이 남아 있어 연구하기 좋은 여건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5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는 콩푸아를 토대로 토지의 집중과 분할 과정을 추적하여 자본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기대를 갖고 연구에 착수했다.
그러나 5년의 연구 기간 후에 모습을 드러낸 결과물은 처음의 생각과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았다. 토지 집중이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는 페스트로 인구가 격감한 14세기 중엽 이후 15세기 말까지다. 이 기간에 중간 크기 소유지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인 토지 집중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토지가 자연스레 통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는 16세기 초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며 그 증가 추세는 1680년까지 계속된다. 그와 더불어 중간 크기의 소유지들은 소토지와 대토지로 양극화된다. 이 기간에 자본주의적 통합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신생 농촌자본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도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토지 집중은 1680년 이후의 총체적 경제 침체를 겪고 난 18세기의 현상이었다.
무엇보다 『랑그도크의 농민들』은 경제사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이는 이 책의 ‘서문’에 저자가 직접 남긴 말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처음에는 토지대장에 있는 단위와 헥타르를 더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나, 연구의 마지막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행동하고 다투고 생각하는 것을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물질적이고 계량적인 역사가 비록 아무리 완벽하고 엄격할지라도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요불가결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거친 골조를 공급할 뿐이었다.
나는 팽창이 부딪치는 맬서스적인 한계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님을 평범한 지식만 가지고도 알고 있었다. 나는 심성(心性, mentalit?s))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장애물 가운데 가장 구속력이 강하고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정신적 한계를 간파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희망 없는 반란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농촌 지역의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
가용 수단의 범위 내에서, 그리고 인간 집단의 제한된 테두리 내에서, 나는 전체사라는 모험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전체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만일 전체사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을 빠짐없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전체사의 방법은 인간 생활의 제반 영역을 몇 개의 층으로 나눈 다음 각 층의 상호관계를 밝혀낸다. 그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일 수도 있고, 경제-사회-정치-문화일 수도 있으며, 브캷델이 그러했던 것처럼 구조-국면 변동-사건일 수도 있다. 미슐레가 꿈꾸었던 ‘과거의 총체적인 소생’은 각 영역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재구성될 때 실현될 것이다. 르 루아 라뒤리 역시 이러한 전체사의 이념에 충실하고 있다.
그가 전체사를 엮어가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그는 먼저 자연환경에서 시작한다. 포도수확일자의 변화를 통해 랑그도크 지방의 기후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러한 환경 아래서 어떤 작물과 가축이 어떻게 재배되고 사육되었는지 재구성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어떠한 경로로 랑그도크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 또 그 결과 어떠한 신체인류학적 변화가 생겨났는지를 기술한다. 인구와 생활상을 비롯한 문화적인 요소는 그다음에 등장한다. 페스트와 전쟁의 충격이 있던 15세기 후반에 저점을 찍었던 인구는 그때 이후로 점진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그와 더불어 토지 소유가 양극화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십일조-지대-세금-임금이라는 망 속에서 경제생활을 해야 했던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농업생산성이 인구증가폭을 따라잡지 못하자 점차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인구는 17세기 말부터 다시 감소세로 접어들고, 그에 따라 수요 감소, 가격 하락, 생산 감소, 이익 감소라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사회 전체는 총체적인 파국으로 떨어진다. 르 루아 라뒤리는 이를 ‘맬서스의 저주’라는 유명한 표현으로 묘사했다.
랑그도크 지방에서 농민들의 사회적 투쟁이 나타난 것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였다. 농민들은 종교전쟁의 와중에 십일조 납부를 거부하거나 반란을 일으켰다.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의 반란은 민속적인 성격을 띠었고, 때때로 경련적이고 예언적인 히스테리를 동반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처럼 지리,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제반 층위가 총망라되어 있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르 루아 라뒤리는 연구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출발점에서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심성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의 존재를 확인한다.
1960년, 피에르 빌라르는 자원의 ‘자연적’ 한계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문화다. 그것은 습속, 생활양식, 심성이다. 그것은 기술지식, 가치체계, 사용 수단, 목적 등으로 이루어지는 총체다. 팽창을 구부러뜨리고, 제동을 걸고, 최종적으로는 꺾어버리는 이 같은 힘은 엄격한 의미의 경제적 힘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 힘이며,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 힘이다. 특히 정신적인 힘의 크기를 수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의 구속력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전체사를 완성하기 위해 구분했던 다양한 층위들은 각각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상호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결정론을 배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포도 수확일자가 변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기후 요인 때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간 요인, 다시 말해 소비자들의 요구와 함수관계에 있는 포도재배자들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기후결정론을 피해간다.
그렇다면 경제결정론은 어떤가? 학위논문 지도교수인 에르네스트 라부르스 같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유물론적이며 경제결정론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콩푸아와 타유세 징세 대장 등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 저서를 통틀어 나오는 엄청난 양의 통계와 도표와 숫자는 이와 같은 혐의를 갖게 한다.
그러나 그에게 이것들은 하나의 ‘필수적인 추상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 ‘심성’이라는 말로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통계 숫자의 수사학 뒤에 숨어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가 결론부에서 “문화는 예고하며, 심지어 결정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질적인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인 요인의 힘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 르 루아 라뒤리의 선구자들
‘전체사’는 에마뉘엘 르 루아 라뒤리의 발명품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랑그도크의 농민들을 연구하도록 권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브로델도 이미 『지중해『에서 더 큰 규모의 전체사를 시도해 르 루아 라뒤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프랑스의 지리학자들이 가꾸어온 ‘생활양식’이라는 개념과, 그들이 개척한 지방지리, 그리고 역사가들이 이어받은 지방사 역시 이 저서에서 계승되고 있다. 계량사 역시 선구자들이 있었다.
『랑그도크의 농민들』에서 여러 차례 인용된 뫼브레는 가격의 역사의 선구자였고, 구베르는 역사인구학의 개척자였으며, 학위논문 지도교수인 라부르스는 18세기의 가격 동향을 밝힌 역사가였다. 특히 피에르 빌라르에 대해서는 “그와 함께 드디어 다시 땅에 발을 디뎠다”고 묘사할 만큼 각별한 감정을 가졌다. 그리고 맬서스의 지대한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이라는 문제? 직면하여 인구를 감소시켜야 한다”는 비인간적인 처방을 제시한 맬서스는 마르크스주의자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르 루아 라뒤리는 ‘인구’라는 요소가 근대의 역사 변동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르 루아 라뒤리의 역사세계
이후 르 루아 라뒤리의 역사 세계는 사회경제사에서 인류학적 역사, 그리고 문화사, 정치사, 전기 등에 넓게 열려 있었다. 그는 역사학의 인접 학문들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과 대화하며 폭넓은 역사 세계를 보여주었다. 『랑그도크의 농민들』이 전체사의 모험의 시작이었다면, 후속 작품들은 그에 대한 계속적인 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저서에서 이미 배양되고 있던 요소가 각각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는 사회경제사의 토대 위에 단단히 뿌리내린 후 여러 분야의 미시사와 종횡무진 결합하며 열려 있는 역사 세계를 보여주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저서로는 역사인류학을 통해 ‘인간’에 관심을 보였던 『몽타이유』(1975), 『로망의 사육제』(1980), 문학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가능성을 모색한 『자스맹의 마녀』(1983), 『랑그도크 지방에서의 돈, 사랑, 죽음』(1980),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론을 역사학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생-시몽 또는 궁정 체제』(1997) 등을 비롯해, 『역사가의 영역』(1973), 『천 년 이후 기후의 역사』(1983), 『플라터의 세기』(1995) 등이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