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로마서
칼 바르트 / 복있는사람 / 2017.8.31
바르트의 ‘로마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망각하고 안팎의 거짓 신들에게 미혹당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다르심, 멀리 계심, 생소하심, 숨어 계심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의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울의 로마서를 붙잡고 씨름하며, 저 위로부터 수직으로 치고 들어오는 폭발적인 계시의 흔적을 꼼꼼히 답사하며 우리를 진정한 불안에 노출시킨다. 거기서 새롭게 교회의 소망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이 촘촘히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바르트가 느낀, 그리고 독자들이 느끼게 될 발견의 기쁨은 신학함의 기쁨, 감사, 감격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로마서’ 독서는 밤이 빛과 만나고, 곤경과 소망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우리를 견인하여 율법, 심판, 믿음, 종교, 자유, 은혜, 윤리를 그 뿌리까지 심사숙고하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로마서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전혀 새로운 빛에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것이다. 처참한 몰락이 지속되고 가망 없는 인간 실존의 절망적인 시도가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프라텔른 교회 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Deus dixit).
○ 목차
일러두기
약어표
감수자의 글
옮긴이의 글
원서 편집자 서문
I.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
II. 대화하며
신학적인 반응들 / “이 책은 기다릴 수 있다” / Πιστιs[믿음]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
“신 정통” / 주지주의(主知主義) / 학문에 대한 바르트의 태도
III. 『로마서』 내부의 인용과 암시들
IV. 『로마서』 제2판에 대한 투르나이젠의 논평
“어디서 한 사람의 생각이 끝나고, 또 한 사람의 생각이 시작되었는지…”
V. 이 판의 편집 장치들에 관하여
출전 / 인용 / 쪽 번호 / 성경의 장절 / 찾아보기
VI. 편집자의 사례(謝禮)
칼 바르트 아카이브 책임자 서문
본문 비판과 본문 구성
저자 서문
제1판 서문
제2판 서문
제3판 서문
제4판 서문
제5판 서문
제6판 서문
1장 서두(書頭)
1:1-7 필자가 독자들에게
1:8-15 개인적인 것
1:16-17 사태
1장 밤
1:18-21 원인
1:22-32 결과
2장 인간의 의
2:1-13 심판자
2:14-29 심판
3장 하나님의 의
3:1-20 율법
3:21-26 예수
3:27-30 오직 믿음으로
4장 역사의 음성
3:31-4:8 믿음은 기적이다
4:9-12 믿음은 시작이다
4:13-17a 믿음은 창조다
4:17b-25 역사의 유익에 관하여
5장 다가오는 날
5:1-11 새 사람
5:12-21 새 세상
6장 은혜
6:1-11 부활의 능력
6:12-23 순종의 능력
7장 자유
7:1-6 종교의 한계
7:7-13 종교의 의미
7:14-25 종교의 현실성
8장 영
8:1-10 결단
8:11-27 진리
8:28-39 사랑
9장 교회의 곤경
9:1-5 연대
9:6-13 야곱의 하나님
9:14-29 에서의 하나님
10장 교회의 죄책
9:30-10:3 인식의 위기
10:4-21 어둠 속의 빛
11장 교회의 소망
11:1-10 하나님의 하나되심
11:11-24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한 말씀
11:25-36 목표
12-15장 거대한 방해
12:1-2 윤리의 문제
12:3-8 전제
12:9-15 긍정적 가능성들
12:16-20 부정적 가능성들
12:21-13:7 거대한 부정적 가능성
13:8-14 거대한 긍정적 가능성
14:1-15:13 자유로운 “인생의 시도”의 위기
15-16장 사도와 신도들
15:14-33, 16:1-24 사도와 신도들
본문 비판
찾아보기(성구, 인명, 주제)
○ 저자소개 : 칼 바르트 (Karl Barth)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스위스의 개혁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세속화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예수의 복음과 신앙을 지키려 한 그의 신학을 일컬어 ‘신정통주의’라고 한다. 그의 완고한 신학은 때로는 자유주의 신학자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개신교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그는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서 독일의 베르린, 튀빙겐, 마르부르그의 대학에서 공부한 후 스위스 자펜빌의 교구목사가 되었다. 거기서 그는 1918년 8월 『로마서 주석』을 완성하였다. 이 저서를 통해 자유주의와 단절하고 새로운 변증법적 신학의 기수가 되었다. 바르트는 이후 나치의 등장으로 1935년 스위스로 가 바젤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1962년3월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1962년 4월 시카고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일련의 강연을 했는데, 그것이 『복음주의 신학 입문』이다. 그의 평생의 역작은 『교회 교의학』이라고 평가된다. 그 외 저서로는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로마서 강해』등이 있다.
– 역자 : 손성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강의하고, 창천감리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칼 바르트의 『로마서』, 에버하르트 부쉬의 『칼 바르트』(복 있는 사람) 외에 『도스토옙스키』(포이에마), 『마르틴 루터』(IVP), 『역사적 예수』(다산글방),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 등이 있다.
– 감수 : 신준호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해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연구원과 연합신학대학원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과에서 칼 바르트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2006-2007). 역서로는 『칼 바르트 개신교신학 입문』, 『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복있는사람), 『창조론자들』, 『하나님의 인간성』(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고, 저서로는 『아픔의 신학』(한들), 『11차원 우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그렇기에 죽음 저편에 계신 하나님은 죽음 이편의 사멸적 인간에게는 전적 타자이며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계신 죽음 저편과 죽음 이편의 인간 세상 사이에는 그 어떤 관계도, 긍정적인 유비도 있을 수 없다. 이성과 윤리는 물론 믿음에서도 인간이 채워 넣은 내용은 남김없이 비워진다. 믿음조차도 “텅 빈 공간”일 뿐이다. — 24쪽.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그 방법은 이해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지향하는데 그런 준비는 언제나 꼭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과 전통적인 성경 영감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후자를 취할 것이다. 성경 영감설은 더 크고 깊으며 “더 중요한” 정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 영감설은 이해 작업 자체를 지향하며, 이 작업이 없다면 모든 준비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강요를 받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전적인 관심은 역사적인 것을 “뚫고 들어가서” 성경의 영, 곧 영원하신 영을 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 84쪽.
“그리스도와 이 땅의 관계는 마치 탄젠트와 같다(신적인 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나타날 수 없다). 그분은 자신의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다. 탄젠트는 원과 유일한 접촉점을 이루는 직선이다.” — 147쪽 각주17.
복음은 다른 진리들 곁에 있는 또 하나의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진리를 의문시한다. 복음은 문짝門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무게를 지탱하는] 추축이다. 복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건 싸움, 사활이 걸린 싸움에 들어섬으로써 다른 모든 싸움에서 해방된다. — 155쪽.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너무나 새로운 것, 이 세상이 단 한 번도 듣거나 기대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능력은 이 세상에서는 그저 모순처럼 보이고, 모순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복음은 자신을 설명하거나 추천하지 않는다. 부탁하거나 흥정하지도 않는다. 위협하거나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직 복음만을 위해서 복음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복음이 스스로를 닫아 버린다. — 161쪽.
하나님께서는 전적인 타자로서,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는 거룩한 분으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게 우리에게 마주 다가오시고 또 뒤따라오신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인간의 믿음은 이 ‘아니요’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경외, 빈 공간이 되려는 의지, 감격으로 끝끝내 ‘아니요’의 부정(否定) 안에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인간의 믿음과 만나는 곳, 거기서 그분의 의가 밝혀진다. 거기서 의인은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이다. — 167쪽.
하나님 자신, 그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물의 맥락 속으로 돌입하시는 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불가능한 가능성(unmoliche Molichkeit)이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마 19:26 병행 본문]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칼 바르트 『로마서』 출간 100주년 기념판
“칼 바르트의 『로마서』는 현대 신학사에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 정식 계약에 의한 『로마서』 제2판 전집판 정본 번역
– 판 더르 코이 교수(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 의한 세밀한 각주 및 본문 비판 작업
–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과 감수, 치밀한 편집 및 격 있는 장정
김기석, 김도훈, 김영봉, 김진혁, 손희영, 유진 피터슨, 오성현, 유해무, 이용주, 전철, 알리스터 맥그래스 추천
처음에는 책으로 펴낼 의도가 없었던 방대한 양의 연구 노트였다. 젊은 목회자인 바르트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치열하고 끈기 있게 써 내려간 그 원고 뭉치는 결국 책이 되었고 신학의 세계, 그리스도교 지성계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 속에서 자유주의신학에 실망하고, 종교 사회주의에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던 바르트는 치열한 암중모색에 뛰어들었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에 이끌려 그가 새롭게 붙잡은 성경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다급하고 치열하게 증언한 『로마서』 제1판(1919)은 더욱 치열한 대화와 심원한 성찰을 통해 보완되어, 마침내 새로운 신학 사상의 여명을 알린 문제작 『로마서』 제2판(1922)이 되었다. 이 책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강력한 도전의 에너지와 파격적인 통찰은 20세기 그리스도교 사상의 거대한 산맥 하나가 형성되는 지점이었다.
바르트의 『로마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망각하고 안팎의 거짓 신들에게 미혹당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다르심, 멀리 계심, 생소하심, 숨어 계심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의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울의 로마서를 붙잡고 씨름하며, 저 위로부터 수직으로 치고 들어오는 폭발적인 계시의 흔적을 꼼꼼히 답사하며 우리를 진정한 불안에 노출시킨다. 거기서 새롭게 교회의 소망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이 촘촘히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바르트가 느낀, 그리고 독자들이 느끼게 될 발견의 기쁨은 신학함의 기쁨, 감사, 감격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로마서』 독서는 밤이 빛과 만나고, 곤경과 소망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우리를 견인하여 율법, 심판, 믿음, 종교, 자유, 은혜, 윤리를 그 뿌리까지 심사숙고하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로마서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전혀 새로운 빛에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것이다. 처참한 몰락이 지속되고 가망 없는 인간 실존의 절망적인 시도가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프라텔른 교회 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 dixit).
.이 책은 개신교 역사에 새로운 피, 강렬한 맥박,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신학의 심장이다!
.특징
– 정식 계약에 의한 『로마서』 제2판 전집판 정본 번역
– 판 더르 코이 교수(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 의한 세밀한 각주 및 본문 비판 작업
–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과 감수, 치밀한 편집 및 격 있는 장정
.독자 대상
– 칼 바르트의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칼 바르트의 주석을 통해 로마서를 깊이 있게 읽으려는 이들
– 신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신학생, 목회자, 신학자들
–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으려는 열망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
○ 추천평
촘촘하기 이를 데 없는 신학적 사유를 이렇게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늘날 성경이 사람들 속에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닳고 닳은 말로 빚어진 신학과 설교의 언어 때문이다. 바르트의 『로마서』는 그러한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 _ 김기석 청파교회 담임목사
이 책은 분명 신학책이다. 그것도 200년의 신학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새로운 신학의 흐름을 만든 책이다. 그러나 부탁컨대 신학책으로만 읽지 말기 바란다. 신학적 인문학, 인문학적 신학의 관점으로 파헤쳐 보라. 『로마서』를 통해 로마서를 읽는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될 것이다. _ 김도훈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오늘 한국 교회에 바르트의 『로마서』가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한없이 작아지고 인간은 분수없이 부풀러져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수많은 형용모순과 역설과 비유 어법을 통해 담아내려 했던 그 신비를 까맣게 잊고 기독교 신앙을 천박한 삶의 지혜로 전락시켰다. 성령께서 바울 사도와 바르트를 통해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라. 진정한 갱신과 회복이 찾아올 것이다. _ 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이번에 새로 출간된 『로마서』는 전문적이고 친절한 주석과 신뢰할 만한 번역 덕분에 고전의 “근거 있는” 두려움을 당당하게 극복하게 한다. 20세기 초 유럽 신학과 지성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로마서』를 읽으며, 21세기 초 한국 독자들도 바르트에게서 솟구쳤던 급진적 창조성과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_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오늘의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바르트의 『로마서』는 명확한 빛을 제시한다.……이 책 안에서 바르트의 깊은 묵상과 예리한 통찰이 맺은 수많은 열매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단지 로마서뿐 아니라 성경 전체 그리고 역사와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_ 손희영 행복을 나누는 하나교회 담임목사
칼 바르트의 『로마서』는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다섯 권의 책 중 하나이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_ 유진 피터슨
이 책은 명실공히 현대 신학의 시조始祖다. 이 책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직접 접하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 발간된 이 책은 깔끔한 번역과 편집, 무엇보다도 본문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도록 첨부된 주해를 통해 독자들의 가독성과 접근성을 탁월하게 높였다. _ 오성현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
“복음은 모든 진리를 의문시한다.……복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건 싸움, 사활이 걸린 싸움에 들어섬으로써 다른 모든 싸움에서 해방된다.” 100년 전에 바르트가 토한 격문은 지금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굳이 바르티안Barthian이 될 필요가 없이 이 책은 한국 교회를 반성하고 복음의 진리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촉매가 될 것이다. _ 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바르트 연구를 위해서, 20세기 신학사 연구를 위해서, 나아가서는 기독교적 신앙고백 그 자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주목해 보아야 할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정신이 ‘드디어’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_ 이용주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
칼 바르트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 dixit는 신학의 정신을 위대하게 증언한 개신교 신학의 교부다. 『로마서』는 성경이 얼마나 강력한 근원이며, 빛과 별로 다가오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겸허히 서 있어야 하는지를 역동적으로 잘 보여준다. _ 전철 한신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교수
『로마서』가 현대 신학의 위대한 전환점들의 기원이라는 사실에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_ 알리스터 맥그래스
○ 독자의 평
바르트는 『로마서』의 시작을 “필자가 독자들에게”, 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말로 『로마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바르트의 『로마서』를 읽는 독자는 바르트의 서언과도 같은 시작을 중심으로 서평을 작성해 가려고 한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 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이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섬기는 신하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 위에 있으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그리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있다. 그는 사도의 소명을 자기 인생의 한 순간쯤으로 여길 수 없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계몽주의의 도전 아래 자유주의 신학으로 점철되어 가는 시점에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 성경이 우리(바르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면서 사과나무 아래에서 로마서를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쓰고 또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앉아서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쓰고 또 써 내려갔던 사과나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상징하는 사과(선악과)로, 트로이 전쟁의 불화의 원인을 상징하는 사과로, 백설 공주가 한 입 베어 먹었던 저주를 상징하는 사과로, 빌헬름 텔의 정의를 상징하는 사과로, 그리고 21세기 스티븐 잡스의 혁신을 상징하는 사과로, 특별한 의미를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줌과 같이 바르트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시작된 『로마서』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대변되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놀이터에 폭탄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 바르트는 자신을 겸손하게 천재가 아니라고 일갈하고 있지만 『로마서』를 읽는 내내 천재다, 천재구나, 라는 말을 뇌까릴 수 밖에 없었다. 예와 아니오,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 위와 아래, 긍정과 부정, 주체와 객체, 나타나심과 숨어계심, 등등의 변증법적 용어는 그야말로 독자를 때로는 혼란스럽게, 때로는 현란하게, 때로는 고민스럽게, 때로는 지치게, 때로는 오기가 생길 정도의 독법(讀法)을 요구하고 있다. 결코 만만한 읽기가 아니고, 쉽게 넘어가지 않는 『로마서』는 그러기에 다른 어떤 로마서, 에서 맛 볼 수 없었던 바르트 창작의 최고봉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로마서』의 추천사 곳곳에 천재에 대한 헌사(獻詞)가 줄을 이었다. 신학적 사유를 이렇게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김기석), 신학적 인문학, 인문학적 신학의 관점으로 파헤쳐 보라(김도훈), 바르트가 수 많은 형용모순과 역설과 비유 어법을 통해 담아내려 했던 그 신비를……(김영봉), 바르트의 급진적 창조성과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김진혁), 명실 공히 현대 신학의 시조(始祖)다(오성현), 100년 전에 바르트가 토한 격문은 지금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유해무),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정신이 ‘드디어’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이용주), 칼 바르트는 … 개신교 신학의 교부다(전철), 한 천재 바르트에 대한 말들의 성찬(盛饌)이다.
“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이다” 바르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대변하는 계몽주의와 함께 슐라이어마허로 대변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지성인들과 신학자 그리고 목회자들이 전쟁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젊은 바르트의 가슴은 뜨거운 사명에 붙잡히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치열한 암중모색(暗中摸索)으로 성경이 말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 dixit, 는 사실 앞에 로마서를 붙든 사명자이자 심부름꾼이 되었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섬기는 신하다.” 성경이 모든 선지자들로 대변되는 예언자들은 말씀에 붙잡힌 사람들이었고, 말씀의 종이라 여겼다. 나아가 그들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신하로서의 자기 역할, 왕의 말을 전하는 대사(大使)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그런 점에서 바르트 역시 종으로 그리고 신하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 위에 있으며,” 여기에 바울이라는 이름 대신 다시 바르트라는 이름을 대신해 보자, 그가 로마서 집필을 끝내고 일갈(一喝)했다는 ‘나는 어둠에 잠긴 교회의 종각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계단을 타지 않고 겁도 없이 종에 매달린 줄을 잡아 당겼는데 그렇게 큰 종소리가 울릴 줄이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말처럼 바르트 역시 로마서가 놀라운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르트에게 맡겨진 로마서의 사명은 바르트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시 상황의 정황 속에 일하셨다는 것을 마땅히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바르트가 써 내려간 로마서 읽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는 이유는 낯섦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다. 책을 펴 들고 읽어 나가는 것이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이해의 난이도나 독해(讀解)의 높이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있다. 그 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타의 로마서, 에 대한 여러 주석이나 강해 그리고 설교문과 비교해 보았을 때 바르트의 『로마서』 역시 주석이지만 주석이지 않고, 강해 같지만 강해가 아니고, 설교 같지만 설교이지 않은 그 낯섦이 로마서 전체에 묻어 나 있다.
“그리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있다.” 그러기에 바르트는 자신이 써 내려간 로마서가 독자들에게 낯섦으로 다가 오듯이, 로마서를 써 내려간 바르트의 동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더욱 아찔함과 아득함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미 바르트의 『로마서』 의 추천사와 감수자의 글과 옮긴이의 글 그리고 원서 편집자 서문을 통해 우리는 바르트의 『로마서』가 주는 아득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아득함이 조금이나마 풀어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그는 사도의 소명을 자기 인생의 한 순간쯤으로 여길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바르트는 『로마서』를 당대 자신의 소명으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순간에 지나지 않고, 찰나에 지나지 않음이 아니라 곳곳에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자리에서,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복(說伏)시키고 있다. 1000여 페이지가 넘는 글과 글의 다툼, 단어와 단어의 싸움, 문장과 문장의 몸부림은 그야 말로 언어의 향연(饗宴), 글의 성찬(盛饌)을 부족함이 없게 차려 놓고 있었다. 그러한 자기 소명은 나중에 그의 대작이며 유작이었던 『교회교의학』(대한기독교서회 刊)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20세기 신학』, IVP
『칼 바르트의 교의학 개요』, 『개신교신학 입문』, 복있는사람
『위대한 열정: 칼 바르트 신학 해설』, 새물결 플러스出
『신학논쟁』, 새물결 플러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