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뤼시스 (Lysis)
플라톤 / EJB / 2014.5.15

정암학당의 학자들이 7년간의 시간을 기울여 번역한 플라톤 전집 중 한 권.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적 대화편’ 혹은 ‘초기 대화편’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서양 지성사에서 ‘우정’ 이나 ‘사랑’이라고 번역되는 필리아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꼽힌다.
짧은 분량이지만 난해성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 이후 플라톤이 개진하는 에로스론이나 아리스토텔레서가 윤리학 저작에서 펼치는 필리아론이 이 작품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삼는대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목차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 해설
작품 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1.에로스와 필리아
2.필리아와 앎 혹은 유용성의 관계
3.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4.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
5.훌륭한 자의 자족성
6.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에게 친구
7.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훌륭한 것의 친구
8.첫째 친구
9.욕구가 필리아의 원인
10.가까운 것이 가까운 것에게 친구
11.아포리아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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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플라톤(Platon)
플라톤은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기원전 404년 아테나이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플라톤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의 귀족 출신 젊은이답게 정계 진출을 꿈꾸었지만, 믿고 따르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라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 출판사 서평
‘뤼시스’는 ‘필로스(친애)’, ‘에로스(사랑)’에 대한 대화편이다. 히포탈레스는 소년 뤼시스를 사랑하고 있다. 메넥세노스와 뤼시스는 친구 사이다. 아무 것도 모르지만 ‘사랑’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소크라테스가 메넥세노스와 뤼시스에게 사랑과 우정에 관하여 묻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두 사람 중 누가 누구의 친구가 되는가?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의 친구가 되는가?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의 친구가 되는가? 별반 차이가 없는가?”
첫째,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의 친구인가?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이지만,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에게 적이 된다. 적은 친구를 사랑하고, 친구는 적을 미워한다. 이 주장은 불합리하다.
둘째,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의 친구인가? 역시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는 경우에,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이지만, 사랑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에게 적이 된다. 친구는 적을 사랑하고, 적은 친구를 미워한다. 이 주장도 불합리하다.
셋째,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인가? 나쁜 자는 모든 자에게 해를 입힌다. 해를 주는 자와 해를 당하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훌륭한 자는 훌륭한 자에게 친구인가? 훌륭한 자는 스스로 충분하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없으므로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다.
넷째,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에게 친구인가? 정의로운 것이 부정의로운 것에게, 절제하는 것이 제멋대로인 것에게 친구가 될 수 없듯이, 적대적인 것이 친구인 것에게 친구가 될 수도, 친구인 것이 적대적인 것에게 친구가 될 수도 없다.
다섯째,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훌륭한 것의 친구인가? 훌륭한 것, 나쁜 것,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있다. 훌륭한 것끼리, 나쁜 것끼리,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끼리는 친구가 될 수 없다.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나쁜 것’ 때문에 ‘훌륭한 것’을 위해서 ‘훌륭한 것’을 친구로 가진다. 예를 들어, 몸(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은 병(나쁜 것) 때문에 건강(훌륭한 것)을 위해서 의술(훌륭한 것)을 친구로 가진다. 하지만 더이상 ‘훌륭한 것’을 위할 필요가 없는 가장 ‘첫째 친구’가 있다. 이 때문에 다섯째 주장도 기각된다. ‘첫째 친구’는 오직 ‘나쁜 것’ 때문에 친구가 된다. ‘나쁜 것’이 사라진다면 모든 친구는 사라질 것인가? 인간에게는 욕구가 있다. ‘나쁜’ 욕구가 사라지더라도 이로운 욕구와 이롭지도 나쁘지도 않은 욕구는 남는다.
여섯째, 가까운 것이 가까운 것에게 친구인가? 우리가 욕구하는 것들은 본래 우리에게 속했던 것들로서 잠시 빼앗긴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원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까운 것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것이 비슷한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가정하자. 나쁜 것은 나쁜 것에게 가까운 것이며,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에게 가까운 것이며,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은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에게 가까운 것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의 친구이고,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의 친구이며,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은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의 친구이다. 이것은 셋째 논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기각될 수 밖에 없다.
해답을 찾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하나 시간이 늦어 친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두 친구 뤼시스와 메넥세노스는 노예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다.
‘뤼시스’는 짧지만 매력적이고 어렵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주장들을 소거해 나가면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매력적이다. 필로스(친애)와 에로스(사랑)를 함께 다루고 있고 자주 맥락을 잊어버릴만큼 복잡한 논변은 어렵다. 그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명료하고 자세하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가 감정과 유용성(이익)에 기반해 지속되기 어려운 일반 사람들 사이의 친애(‘에로스’가 포함됨)보다 품성에 기반해 한층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훌륭한 사람들 사이의 친애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훌륭한 사람들은 서로 본받으면서 나날이 탁월해진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 해답을 말해주지만, 소크라테스는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깊은 수렁(aporia)에 빠뜨린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자만이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