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애닝 : 세계 최초로 공룡 화석을 발견한 소녀
쉴라 콜 / 에디슨북 (Edison Book) / 2002.10.31
1799년에 태어나 1847년에 세상을 떠난 메리 애닝의 전기를 담았다. 수많은 공룡 화석을 발견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메리 애닝의 숨겨진 삶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자신의 공을 남성 과학자들에게 빼앗겼지만 애닝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룡 화석 채집에 온 힘을 다했다. 12살 때 처음으로 공룡 화석을 발견한 후, 애닝은 가난한 집안에 경제적 보탬이 되기 위해 화석을 채집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생물학계는 생명 진화의 흔적을 발견했다.
살아있을 때 단 한 번도 자신의 공을 인정받지 못한 메리 애닝. 좌절감을 극복하기 힘들어, 다른 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지만, 그녀는 다시 화석 채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47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묵묵하게 화석을 채집했다.

○ 목차
들어가는 말
화석과의 운명적인 만남
학교가 싫어요
아버지에게 화석 채집 일을 배우다
화석이 우리의 희망이다
희망을 잃어버리다
동생들의 죽음
마침내 벼랑에서 용과 만나다
몸체를 찾다
필포트양의 격려
어이없는 거래
화석이 맺어준 첫사랑
화석을 도둑맞다
오빠의 복수
외로움 속에서
우리 사이의 거리
명예를 빼앗아간 사람들
나의 길을 찾아서
끝맺는 말

○ 책 속으로
화석을 발견한 일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적인 짐을 가볍게 해주고 내가 발견한 화석 동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보통 때는 알지도 못하는 계층의 사람들, 필포트 자매 같은 사람들과 사귀도록 해주었다. 동시에 이것은 오래 사귄 이웃들과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고, 리치와 나 사이에도 틈이 생기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1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좋은 옷을 입고 키가 큰 엷은 갈색머리의 소년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안녕, 메리.”
그가 말했다. 그의 짙푸른 눈동자가 장난기로 가득 차서 명랑하게 빛나고 있었다. —p. 133
다시 해안으로 내려왔다. 멈춰 서서 내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여기였던가? 문득 해안을 따라 마을로 걸어서 돌아가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벼랑으로 기어 올라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였다. 내가 처음 기어올랐던 장소를 찾기 위해 해안을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벼랑을 살폈지만 뭔가 눈에 띄는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관목들은 있었던 기억이 나서 암벽 어디에 매달려 있는 게 없나 찾았지만 몇 군데서 관목의삭이 나기 시작하는 걸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절망에 가까운 눈물이 흘렀다. —p. 74

○ 출판사 서평
메리 애닝은 1799년에 태어나 1847년에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이다. 이 책은 메리 애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써 메리 애닝의 역사적인 업적과 화석을 향한 그녀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상황에서 메리 애닝은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화석 채집으로 돈을 벌게 된다. 비록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화석 채집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녀는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였으며 그 누구보다도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초로 ‘벼랑 속에 숨겨진 용’을 발견하게 된다.
메리 애닝이 벼랑 속에 발견한 용은 나중에 ‘프로테오사우루스 (Proteosaurus)’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 동물을 ‘어룡’ 또는’물고기 도마뱀’으로도 부른다. ‘머리 작은’ 생물의 뼈를 처음 발견한 지 거의 10년이 지난 1824년 메리 애닝은 최초로 플레시오사우루스 (Plesiosaurus)의 뼈를 완전하게 발견했다. 이 공룡은 바다 속의 어룡 옆에서 바다거북을 요리조리 헤쳐 다니면서 살았는데, 어느 정도는 뱀처럼 보이는 목이 긴 생물이었다. 그녀는 이 화석을 런던의 지질학 협회를 대표하는 버킹엄 공작에게 팔았다.
또한 그녀는 1828년에 최초로 16억 년에서 18억 년 전에 살았던,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도마뱀 같다고 해서 ‘날개 달린 도마뱀’으로 불리는 익룡의 영국 표본을 발견했다. 그 이전에도 한 두 조각이 발견되기는 했었지만, 메리 애닝의 표본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이 화석의 발견으로 화석 연구는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메리 애닝은 또한 수없이 많은 작은 바다 생물의 화석들을 찾아냈다.

메리 애닝이 살던 시대의 과학자들은 그녀의 발견 덕분에 과학적인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마땅히 그녀가 받아야 했던 인정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보통 생물의 종은 과학 문헌에 그들을 처음 설명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만, 메리 애닝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녀가 발견한 생물에 그녀 이름을 붙이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그녀에게서 화석을 산 사람들이나 잡지 등에 맨 처음 발표한 사람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메리 애닝이 47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런던 지질학 협회의 회원이었던 그녀의 오랜 친구는 메리 애닝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협회 연보에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사망 기사를 실었다. 협회 회원이 아닌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실린 부고였다.
“단지 애도의 뜻만을 표하면서 이 글을 마칠 수가 없다. 보다 안락한 사회 계층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석 채집이라는 노동을 통해 먹을 빵을 구해야 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끝없는 연구를 통해 거대한 도마뱀류와 다른 형태의 생물들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형성하는 데 끼친 무시할 수 없는 그녀의 업적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메리 애닝은 가구 장인인 리처드 애닝의 딸로 1799년 5월에 태어났다. …인근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화석을 수집해 팔았던 아버지로부터 화석을 발견하고 캐는 법을 배운 후, 그녀의 삶은 오직 이 일에 바쳐졌다. 이 방에도 어룡과 플레시오사우루스의 수많은 정교한 뼈대들을 찾아 낸 그녀의 솜씨가 얼마나 빼어났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꼼꼼하고 날카로운 눈이 아니었다면 비교 해부학자들은 손상되지 않은 형태로 발굴된 화석들을 연구, 고찰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메리 애닝은 훌륭한 처신과 그녀가 가진 재능으로 해서 많은 친구들과 교류했으며, 우리 협회 회원 중 한 사람이 영국 수상인 멜버른 경에게 제안하여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는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특혜로까지 이어졌다. 화석 판매에 있어서도 친구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그녀는 유방암에 걸려서도 쓰러질 때까지 꿋꿋하게 견디다가 1847년 3월 9일 눈을 감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