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모더니즘 :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 그리고 자유롭게
원제 : MODERNISM (The Lure of Heresy )
피터 게이 / 민음사 / 2015.8.25
모더니즘은 대략 184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초까지,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에서 베케트와 그 이후 팝아트를 비롯해 위험한 작품들까지를 아우르는 시대이다. 물질주의에 대한 반항과 속물 부르주아들의 가식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되어 성의 해방, 솔직함, 자신만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과 연결된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첫 번째 특징은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고 뒤집기, 두 번째 특징은 나 자신만의 주관성으로 독창성을 이루는 것이다. 모더니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창성과 시대성이다.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을 ‘주관성의 극대화’로 정의한다. 그러나 주관성이 독창성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당대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기법의 혁신과 심리적 탐구가 모더니즘의 요건이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점잖은 주제를 벗어 던지며 일탈을 감행했고, 소설가들은 스토리 중심에 갇히지 않고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화가들은 자연을 재현하는 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이렇게 험난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내면적 삶을 탐구한 모더니스트들은 진실했고, 그들의 진정성은 그들 작품이 문화적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예술사에 영원히 살아남도록 했다.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면서까지 진실에 다가가려는 의지, 그렇게 시대의 요청에 가장 충실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독창적일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지금 문화 정체에 빠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혁신인 것이다.

○ 목차
갈등, 인간과 모든 역사의 본질
1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나를 놀라게 하라!”
“새롭게 하라!”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
모더니즘의 조건들
1부 창시자
2 아웃사이더
현대의 영웅주의
예술가를 위한 예술
3 비타협주의자와 흥행주
1900년
새로운 시각
교육자로 부상한 문화 중개인
2부 클래식
4 회화와 조각: 광기와 의외성
따분할 새가 없던 시절
자기 몰입: 내면의 표현
신비적 모더니즘
무정부주의자와 권위주의자
피카소: 원맨 밴드
L. H. O. O. Q.
안티 미메시스
5 산문과 시: 마음의 단절
새로운 소설
에드워드 시대에 도전하기
네 명의 현대 거장
카프카
시인 중의 시인
6 음악과 무용: 소리의 해방
전주곡
선두주자들: 드뷔시와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작은 거인들
발란신 시대
7 건축과 디자인: 기계, 인간 생활의 새로운 요인
“건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집은 거주를 위한 기계다.”
“훌륭한 비례와 실용적 단순성”
“히틀러는 최고의 친구”
“아름다움은 우리를 기다린다”
8 연극과 영화: 인간적 요소
“우리는 이 시대의 정신에 몰두한다”
“똥 덩어리!”
자전적 작가들
새로운 인간
온전히 현대적인 유일한 예술
3부 결말
9 괴짜와 야만인
안티모던 모더니스트와 야만인
이신(異神)을 찾아서: T. S. 엘리엇
지방의 천재: 찰스 아이브스
북유럽의 심리학자 크누트 함순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비에트연방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10 모더니즘의 미래
모더니즘은 죽었는가?
과거 청산
독창성의 시대
아방가르드의 성공
생존 신호들
코다: 빌바오의 프랭크 게리

○ 저자소개 : 피터 게이 (Peter Joachim Gay, 1923 ~ 2015)
피터 조애킴 게이 (Peter Joachim Gay, 1923년 6월 20일 ~ 2015년 5월 12일)는 독일 출신의 미국의 역사학자, 교수, 저술가로 주로 서양 근대사상사와 문화사를 연구했다. 본명은 페터 요아힘 프뢰흘리히 (독: Peter Joachim Fröhlich)로 미국 시민이 된 직후 성을 게이로 바꿨다. 1923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9년 쿠바를 거쳐 1941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 명예교수를 역임했으며,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신분석을 역사 연구에 도입한 선구자로서 ‘역사학계의 프로이트’로 불린다.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신론자 아버지 슬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자각 없이 자랐으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9년에 고향을 떠나 1941년에 미국에 정착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9년부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계몽주의’로 1967년에 전미도서상 (National Book Award)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문화사 분야의 혁신적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마르 문화’를 출간했다. 1970년대 중반 ‘웨스턴 뉴잉글랜드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이트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 등장의 전주곡으로 인식되던 독일 근대 문화가 지닌 가치를 올바로 해석하려는 목적에서 쓴 ‘프로이트, 유대인, 그리고 다른 독일인들 : Freud, Jews, and Other Germans’ (1978)에서 게이는 특히 유대인이 독일 문화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프로이트는 학문적 관심사는 물론이고 개인적 배경에서도 게이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인물이었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유대교와 상관없이 무신론자로 자랐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어권 국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설명은 프로이트와 피터 게이에게 공통되는 사항이었다.
10년에 걸친 연구와 2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1988년에 출간한 ‘프로이트 : Freud – A Life for Our Time’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저서로 ‘역사가를 위한 프로이트’, ‘모차르트’, ‘부르주아 전’, 5부작 ‘부르주아의 경험 : 빅토리아에서 프로이트까지’ 등이 있다. 2004년 미국역사협회가 뛰어난 업적을 거둔 역사학자에게 주는 공로상을 받았다.
– 역자 : 정주연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문사회,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잭 런던 걸작선에 수록된 『버닝 데이라이트』와 『밑바닥 사람들』, 그리고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을 모은 『가든파티』 『책과 집』 『모더니즘』 『더 걸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789~790
언젠가 엄청난 모더니즘의 부활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더니즘의 역사를 보면 대단히 멋진 순간들이 있었고 미래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환상이 실현될지 예측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모더니즘이 너무도 아름답고 늘 참신한 작품들을 120년 동안 문화 시장에 내놓고 있으며 혼란과 놀라움,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대단한 장기 공연이다.
1번 사진: 프랭크 게리가 지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조각이다.
“나는 대칭광이자 격자광이었다.” 그러나 프랭크 게리는 국제주의 양식의 완벽한 직사각형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나는 격자를 추종했었는데 이후 그것이 속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60도 격자에 매여 있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게리가 원하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
2번 사진: 스트린드베리 원작 『율리에 아가씨』의 영화 포스터
부르주아가 너무도 오랫동안 연극을 지배해 왔으니 새롭고 철저히 반부르주아적인 연극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극은 전통적인 감수성에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정신의 핵심을 관통하게 될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모더니즘의 수사법이다. 『율리에 아가씨』는 과연 스트린드베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 동기의 복잡한 양상을 단 세 인물을 통해 확연히 보여주었다.
3번 사진: 제임스 앙소르, 「거북을 바라보는 가면들」(1894)
앙소르의 작품에서 대단히 눈에 띄는 축제 가면들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부모의 가게 주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라면, 자신의 부모 같은 지독한 프티 부르주아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야 한다는 반항심도 나타낸다. 한 친구에게 자신이 가면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들이 나를 그렇게 나쁘게 여기는 대중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앙소르의 분노와 우울이 무의식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4번 사진: 에드바르 뭉크, 「황폐」(1894)
“내 작품은 사실 자기표현이며 세상에 대한 나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일종의 자기중심주의지요.” 그러나 뭉크의 놀라운 재능에 기가 질린 미술 애호가들은 그의 작품이 더 넓은 현실에 대한 증언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알다시피 모더니스트들은 자기 시대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 바람을 이루는 방법은, 뭉크에 대한 반응이 보여 주듯, 위기에 처한 문화의 징후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5번 사진: 클로드 모네, 「수련」(1914-1917)
모네는 시골에 처박혀 그림을 그릴 때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적어도 남들과 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다네. 내가 경험한 것만 표현하면 되니까.” 이것이 바로 모더니스트들이 추구했던 예술적 자율성, 곧 독창성의 선언이다.
6번 사진: 폴 세잔의 자화상(1880-1881)
세잔은 형태, 색상, 벗겨진 머리, 넓은 어깨, 즉 모든 것을 전체 구조에 종속시켰다. 경사가 크게 진 반들거리는 정수리를 강렬한 다이아몬드 무늬의 벽지와 대비시켰고, 눈은 광채 없이 불투명하게 칠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잔이 관객들에게 던진 그 공허한 눈길은 비밀을 폭로하고 말았다. 그가 억제되지 않는 무질서한 자아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평생 애썼다는 사실 말이다.
○ 출판사 서평
- 습관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라! 철저한 자기 탐구에서 시작하라!
21세기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모더니즘 정신, 즉 독창성이다.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과 ‘철저한 자기탐구’에서 비롯된 개성적 표현력이라고 설명한다.
보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상황의 아름다움’을 찾았던 보들레르, 남들과 다르게 그리기를 바랐던 모네, 나만의 상상력을 소중하게 여겼던 쇤베르크, 이 모든 추구는 결국 지금 내가 속한 ‘현재’에 대한 애정이자 독창성의 추구였다.
‘인습’에 마비된 정신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한 마티스, 익숙한 것을 불편하게 만들고자 했던 버나드 쇼, 진부한 기성 체제를 공격한 말라르메,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예술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문화 정체, 경제 침체에 빠진 지금 우리가 창조적 혁신으로 새로운 역사를 쓴 예술가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롭게 하라.”는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원칙, “놀라게 하라.”는 천재 안무가 댜길레프의 요구인 것이다.

-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제임스 조이스, 전통에 맹렬히 도전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소설가.
엘리엇, 선배들의 작품을 맘껏 이용하여 독창성을 과시한 시인.
드뷔시, “나만의 감정과 생각의 자유”를 위해 전통적인 한계를 모두 뚫고 나갔던 작곡가.
‘미학적 주관주의’를 강조한 칸딘스키와 ‘현대적 정신’을 포착하려고 했던 몬드리안.
소설가와 시인, 화가와 작곡가, 건축가와 영화감독을 아우르는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모더니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창성’과 ‘시대성’이다. 리오타르는 모더니즘을 새로움에 대한 강박증이라고 정의했는데,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을 ‘주관성의 극대화’로 정의한다. 즉 “새롭게 하라.”는 에즈라 파운드의 강령과 “놀라게 하라.”는 댜길레프의 요구는 ‘주관성의 극대화’를 겨냥한다. 그러나 주관성이 독창성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당대성’을 획득해야 한다.
모더니즘은 대략 184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초까지, 보들레르와 플로베르에서 베케트와 그 이후 팝아트를 비롯해 위험한 작품들까지를 아우르는 시대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견디었고, 전체주의의 혹독한 적개심을 이겨냈고, 조각에서든 소설에서든 몇 번이고 새로운 혁신적인 거장이 나타나 충격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거점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겼다.
모더니즘은 물질주의에 대한 반항과 속물 부르주아들의 가식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성의 해방, 솔직함, 자신만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과 연결된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첫 번째 특징은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고 뒤집기, 두 번째 특징은 나 자신만의 주관성으로 독창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기법의 혁신과 심리적 탐구가 모더니즘의 요건이다.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은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꽃피웠던 문화예술 분야의 혁신들이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익숙한 것, 상투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한 자기탐구 필요
모더니스트들은 진보적이지 않은 것은 부르주아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들은 ‘부르주아적’이라는 말과 ‘지루하다’는 말을 동의어로 여겼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가였으며 미학적인 안전지대 밖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모든 모더니스트가 군말 없이 동의했던 유일한 신념은 이랬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익숙한 것보다 낫고, 드문 것이 평범한 것보다, 실험적인 것이 상투적인 것보다 낫다.”
모더니스트들에게 확연히 눈에 띄는 차이점이 많기는 하지만 뚜렷한 공통점도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이며, 또 하나는 철저한 자기탐구이다. (…) 1940년 마티스는 자신의 창조력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했다. 동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인습적 요소 때문에 굳어서 내 뜻대로 그릴 수 없어.” 마티스는 곧 이 불안감을 이겨 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완전한 예술적 자율성, 오직 내부에서 나온 지향점에 대한 애착과 열망이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점잖은 주제를 벗어 던지며 일탈을 감행했고, 소설가들은 스토리 중심에 갇히지 않고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화가들은 자연을 재현하는 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통해서, 나의 개인적인 시선, 내가 그 풍경에 부과하는 관념과 감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모더니즘 최초의 영웅이었던 보들레르는 특히 상상력을 언어화하는 데 뛰어났다.
- 고상한 예술가들이 말하지 않은 삶의 진실 폭로
1981년 런던에서 입센의 「유령」이 초연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역겨운 표현”이니 “덮개 없는 하수구”니 “대중 앞에서 행해진 추잡한 짓”이라고들 매도했다. 하지만 입센의 작품은 그토록 추악하지 않았다. 모더니스트들이 이처럼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 선량한 시민들이 갑자기 억압된 삶의 진실에 맞닥뜨리자 걷잡을 수 없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과장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면, 모더니스트들이 ‘고상한’ 예술가들이 말하지 않으려 했던, 아니 말할 수 없었던 중요한 내용을 자신들이 말한다는 믿음은 옳았다.
『굶주림』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누트 함순은 다른 소설가들이 심리적 피상성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칸딘스키는 모든 화가가 존재의 신비한 본질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캔버스에서 본질에 대한 암시를 점차 지워 나갔다. 스트린드베리는 당시 무대를 지배하고 있던 신중한 연극에 대한 비판으로서 「아버지」와 「율리에 아가씨」를 무대에 올려 “사랑과 증오의 팽팽한 공존, 욕망과 사디즘의 힘, 복수의 쾌락, 이성에 대한 정욕의 우월성” 같은 주제를 건드렸다. 즉 다른 작가들은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이었다. 엘리엇은 “1909년과 1910년 시가 젊은 시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되어” 있다며 도발적인 시 『황무지』를 발표했다. 이러한 “모더니스트들은 방어가 삼엄한 문화의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일탈을 감행해야 했다. 그래서 “과장했지만 진지했다.” 1905년 파리 살롱도톤 전에서 마티스의 작품을 본 평론가들은 그의 강렬하고 화려한 화폭에 대하여 “색의 광기”에서 기인한 “회화적 정신이상”이라고 매도했다. ‘야수파’라는 꼬리표는 당시 매우 적대적인 별칭이었던 것이다. 클레의 유희적 작품에 대해서는 일곱 살 난 아이도 그런 황칠은 할 수 있다는 평가였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이렇게 험난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내면적 삶을 탐구한 모더니스트들은 진실했고, 그들의 진정성은 그들 작품이 문화적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예술사에 영원히 살아남도록 했다.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면서까지 진실에 다가가려는 의지, 그렇게 시대의 요청에 가장 충실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독창적일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지금 문화 정체에 빠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혁신인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