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모래 사나이
E. T. A. 호프만 / 문학과지성사 / 2001.9.30
독일 낭만주의 작가 E. T. A. 호프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혹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을지도 모르는 <호프만의 뱃노래>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펜바하가 작곡한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원작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된 단편 「모래 사나이」이다. 꿈, 환상, 몽환, 몽상, 광기… 등 이성의 밝은 빛 저편에 있는 인간 정신의 또다른 일면을 심층적으로 다룬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괴테는 호프만의 작품이 “시적인 정신의 관점에서 씌어진 작품이 아니라 몽유병자의 정신착란적인 고백이다.” 라고 했고, 헤겔 역시 호프만을 병자라고 단정짓고 “예술에서 어두운 힘은 몰아내야 한다. 모든 게 명백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그의 작품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이네는 그를 인정해준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이성의 나라’ 독일에서의 일반적인 혐오와는 달리, 호프만은 외국에서는 경탄과 전율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처음부터 열광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많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호프만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에 들어 표현주의, 정신분석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 호프만의 작품은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현대적이다. 그의 작품의 틀은 있을 법 하지 않은 기이한 이야기지만, 현대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 이면에 숨은 뜻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으며, 단순히 자동인형의 모습에 대한 묘사만 봐도 현대 SF의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아직 호프만이 묘사한 수준의 로봇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정도니까. 독일 낭만주의에 관심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꿈과 광기 등에 흥미를 가진 사람,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단편선이다.
○ 목차
기획의 말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
옮긴이 해설 | 현실의 환상, 환상의 현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E. T. A. 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1776년 당시 독일 땅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호프만이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자랐다. 이때 그는 음악에 심취하여 모차르트에 매료된다. 그래서 훗날 자신의 본명 Ernst Theodor Willhelm Hoffmann에서 Willhelm을 빼고 대신에 ‘Amadeus Mozart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서 따온 Amadeus로 바꾼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E. T. A. 호프만’이 된 것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등을 거쳐 폴란드 지방에서 법관으로 일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관직을 잃은 호프만은 음악에 몰두하여 밤베르크와 드레스덴에서 지휘자, 비평가, 음악 감독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오페라 「운디네」 등을 작곡하여 음악가로서의 평판도 쌓았다. 1809년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이후 수년이 더 지난 후부터였다.
1814년 다시 관직에 나선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1814년 단편들을 모은 『칼로풍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822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놀랄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호프만은 『황금단지』(1814), 『악마의 묘약』(1816),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1816), 『모래 인간』(1817), 『클라인 차헤스, 치노버』(1819)), 『브람빌라공주』(1820),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21) 등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난 후 알렉상드르 뒤마가 각색한 작품을 토대로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가 발레곡을 작곡해 세계적으로도 호프만의 작품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 알려지게 되었다.
– 역자 : 김현성
서강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수학했다. 역서로 카프카의 『심판』, 페터 퓌츠의『페터 한트케론』, 슈바이처의『사랑으로 밝힌 생명의 등불』, 어슐러 구디너프의『자연의 신성한 깊이』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모래 사나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나타나엘, 아직 그것도 모르니?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서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먹는단다” 하고 말했어. 그리하여 내 마음 속에는 잔인한 모래 사나이가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 그래서 밤에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모래 사나이야! 모래 사나이야!” 하고 더듬거리며 소리쳤어. 어머니는 내게서 그 말밖에 들을 수 없었지. 나는 곧 침실로 뛰어갔지만 모래 사나이의 끔찍한 모습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어.— p.16
“모래 사나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나타나엘, 아직 그것도 모르니?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서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먹는단다” 하고 말했어. 그리하여 내 마음 속에는 잔인한 모래 사나이가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 그래서 밤에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모래 사나이야! 모래 사나이야!” 하고 더듬거리며 소리쳤어. 어머니는 내게서 그 말밖에 들을 수 없었지. 나는 곧 침실로 뛰어갔지만 모래 사나이의 끔찍한 모습이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어. — p.16
친애하는 독자여! 다른 모든 것을 몰아내고 그대의 마음, 감각,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는 무언가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때 그대 안에 끓어넘치는 열정은 불이 붙어 피가 솟구치고 그대의 뺨은 붉게 물들어, 그대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허공에서 붙잡으려는 듯이 기이하며, 그대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슬픈 한숨만 지을 것이다. 그때 친구들은 그대에게 물을 것이다.
“왜 그래, 이 친구야. 무슨 일이야?”
그러면 그대는 온갖 불타는 색채와 빛과 그림자로 휩싸인 내면의 형상을 말하려고, 적어도 시작이라도 하려고,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곧 첫마디로 그 모든 경이롭고 비범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무서운 일을 단 한 번의 전기 충격처럼 적절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도 그대에게는 색깔이 없고 얼어붙고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리라. 그대는 찾고 또 찾지만 아무리 중얼거리고 더듬거려도 냉정한 친구들의 질문만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처럼 그대 안으로 파고들어 그대의 열정을 식히리라. 그러나 그대는 용감한 화가처럼 처음에는 몇 개의 대담한 선으로 그림의 윤곽을 그리고 그다음엔 좀더 쉽게 점점 빛나는 색깔을 칠하다 보면, 살아 있는 다양한 형상들의 혼란이 그대의 친구들을 사로잡게 되고 그들은 그대의 정서에서 나온 그림 한가운데에 그들 자신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30~31쪽)
그때 나타나엘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눈알 두 개를 보았다. 그것은 나타나엘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스팔란차니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것을 움켜잡아 나타나엘을 향해 던졌다. 눈알은 나타나엘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 순간 불타는 발톱처럼 그를 사로잡은 광기가 내면에 파고들어 그의 이성과 사고력을 갈기갈기 찢었다.
“휘, 휘, 휘! 불의 동그라미여, 불의 동그라미여! 돌아라. 불의 동그라미여, 신나게, 신나게! 나무 인형이여. 휘, 아름다운 나무 인형이여, 춤추어라!” (61쪽)
“도대체 일상적인 삶이라는 게 뭐지? 아, 코가 사방에 부딪히는 좁은 원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인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의 규칙적인 걸음에서 도약을 시도하려고 들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예지능력을 매우 탁월하게 갖고 있는 듯한 어떤 사람을 알고 있어.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걸음걸이나 옷차림새, 목소리, 시선에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으면 그들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고, 고려할 가치도 없고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정반대되는 일들을 종합해서 아무도 생각지 않는 연관성을 상상해내곤 하지.” (72~73쪽)
어느 날 거울이 흐린 것 같아 닦으려고 거울에 입김을 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맥박이 멈추고 황홀한 전율로 온몸이 떨렸지! 그래, 내 입김이 거울에 닿자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가슴을 에는 듯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을 때 엄습한 그 느낌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94~95쪽)
“…… 때로는 사악한 악마까지도 즐거워할 만큼 기쁘고 유쾌한 순간에도 남작은 그의 삶을 파괴하고 내게도 해를 끼칠 어떤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해요. 사람들은 장자 상속법을 만든 선조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어대죠. 난 이 성안에 숨겨져 있는 가족의 어두운 비밀이 무서운 유령처럼 소유자를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짧은 기간 동안 난폭하고 떠들썩한 소란 속에서 지내는 것만이 가능할 뿐임을 잘 알아요. 그러나 난! 이 소란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모든 벽에서 스며 나오는 기이함이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170~171쪽)
○ 출판사 서평
“모든 것, 삶 전체가 그에게는 꿈과 예감이 되었다”
- 현실 속 환상, 환상 속 현실의 세계를 그려낸 꿈과 환상의 작가 E.T.A. 호프만의 대표 단편선!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T.A. 호프만의 소설집 『모래 사나이』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현실의 시공간을 신비와 몽상으로 가득 채우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꿈꾸는 인물들을 그려낸 호프만은 “꿈과 환상의 작가”로 불리며, 도스토옙스키, 고골, 보들레르, 발자크, 포 등의 대문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바그너와 차이콥스키 등의 작곡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모래 사나이』는 그런 그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세 편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을 선별해 묶은 책으로,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계몽주의의 밝은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의식적으로 간과되는 심리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작가 호프만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예술은 범속함을 신성함으로 바꿀 수 있고 황량한 삶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예술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에서 혼란과 분열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호프만의 작품은 대개 그러한 예술가의 운명을 그린 예술가 소설이며 운명비극이다.
- 꿈, 환상, 예감, 비밀, 광기… 이성의 밝은 빛 저편에 있는 어두운 심연을 살피는 날카로운 시선
이 책의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는 호프만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편으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원작 소설이자 프로이트의 유명한 분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모래 사나이’는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작품 속 주인공 ‘나타나엘’은 어린 시절 유모에게서 모래 사나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서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 (12~13쪽)
이후 나타나엘은 아버지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모래 사나이라 믿으며,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모래 사나이에 대한 공포는 성인이 된 뒤에도 ‘눈’이나 코펠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생생히 되살아나며, 종국에는 나타나엘을 광기로 몰고 간다. 광기는 공포와 함께 호프만이 일생에 걸쳐 깊이 천착한 주제다. 평생 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 그는 “광기에 대해 광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두번째 작품 「적막한 집」은 「모래 사나이」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유년기의 체험에서 유발된 공포가 광적인 상상으로 인해 주인공의 강박관념이 되고, 이탈리아 상인에게서 구입한 시각 기구인 거울이 환상과 마성의 도구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에 이끌려 이성을 잃게 되는 등 「모래 사나이」에서처럼 고립되고 확대된 시선이 마성과 결합하여 주인공인 ‘테오도어’를 광기로 끌고 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모래 사나이」와의 주된 차이점은, 나타나엘은 광기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 반면에 테오도어는 치유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력과 의사의 충고로 강박관념을 몰아내고, 마침내 영혼의 안정을 찾은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세번째 작품 「장자 상속」은 호프만 자신의 현실이 많이 투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호프만과 마찬가지로 법관이면서 시인, 음악가인 소설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일하는 작은할아버지를 따라 로시텐 성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기이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과장된 사랑의 열정, 비밀스러운 살인, 유령의 등장, 우연, 다양한 사건 고리, 가문에 내려진 저주 등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두운 힘이 운명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시기, 교만, 증오, 복수심, 물욕, 권력욕 등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불행을 초래한다. 음울하고 통속적인 공포 소설의 소재에 비밀스러운 암시와 작은 예시 기법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며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놓는 이 소설은, 정확한 성격 묘사와 정밀한 묘사 기법으로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로 꼽힌다.
○ 독자의 평
- 줄거리
대학생 나타나엘은 약혼녀의 오빠 로타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어릴 적 ‘모래 사나이’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심어졌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나타나엘의 집은 9시만 되면 아버지가 누군가를 맞이하러 방으로 들어가고 어머니는 슬퍼하며 아이들에게 모래 사나이가 잡으러 오니까 얼른 자라고 말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나타나엘은 유모에게 모래 사나이가 도대체 누구냐 묻게 되고 유모는 이렇게 말한다.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먹는단다.”
그 뒤로 나타나엘의 공포는 더욱 심해졌고 호기심도 더해갔다. 그래서 아버지의 방에 몰래 들어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다가 변호사 코펠리우스와 아버지의 수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은 연금술을 하듯 방안에서 무언가 만들고 있었는데, 나타나엘은 눈이 없는 사람 인형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고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에게 들킨다. – 이 소설의 특징이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하다는 점인데, 나는 ‘모래 사나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나타나엘의 환상이 더 부각되었다고 본다. – 그는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에게 틀키자 코펠리우스가 자기를 붙잡고 눈을 뽑아버린다는 말을 듣고 기절한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그는 코펠리우스가 모래 사나이이며, 그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확신한다.
어린 아이에게 유모의 이야기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모래 사나이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상에 사로잡히고 ‘눈’을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G로 떠났고 편지를 썼을 때는 유명한 물리학 교수 스팔란차니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코펠리우스와 닮은 청우계(기압계) 장수 코폴라가 나타나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그는 코폴라가 코펠리우스라고 생각하여 흥분하며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로타르에게 썼던 편지를 그의 약혼자 클라라가 보게 되고,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코폴라는 코펠리우스가 아니며, 당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내면에서 두려움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말해준다. 클라라는 밝고 예리하게 사물을 분간하는 이성적인 여성이다.
나타나엘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적인 클라라에게 코펠리우스가 그의 사랑의 행복을 파괴하리라는 어두운 예감을 주제로 쓴 시를 읽어주었다.
‘그러자 이러한 생각이 불의 동그라미 속으로 세차게 뚫고 들어간 듯, 갑자기 불길이 사그라지고 그 모든 소란은 캄캄한 심연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나타나엘은 클라라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클라라의 눈을 통해 그를 다정하게 바라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클라라는 질겁했고, 그의 어두운 예감은 적중한다.
그러다 나타나엘은 물리학 교수가 코폴라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지금은 그곳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교수의 딸 올림피아를 보게 되는데, 올림피아는 완벽하게 아름다웠으나 마치 눈을 뜬 채 자는 것처럼 생명력이라곤 없었다. 우연히도 나타나엘의 집에서 잘 보이는 앞집에 올림피아가 살고 있었으며, 그는 청우계 장수 코폴라에 의해 망원경을 구입하게 되고 마치 예견된 운명인 듯, 그 망원경으로 올림피아를 훔쳐보며 사랑에 빠진다. 그는 교수의 파티에 초대되어 올림피아를 만날 수 있었고 그녀와 춤도 추며 점점 사랑에 빠졌다. 자신이 그녀의 눈을 바라볼 때면 그녀가 살아난다고 느꼈다.
‘그녀의 눈은 사랑과 동경으로 가득 차 그를 마주 보며 빛났다. 그 순간 차가운 손에서도 맥박이 뛰고 생명의 피가 뜨겁게 흐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타나엘의 가슴에서 사랑의 욕망이 더 높이 불탔고 그는 아름다운 올림피아를 감싸안고 날 듯이 춤추며 돌았다.’
이성적인 클라라와 달리 올림피아는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경청해주었다. 나타나엘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은 올림피아뿐이며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의 집으로 찾아간 나타나엘은 어릴 적 아버지와 코펠리우스를 목격한 것처럼, 스팔란차니 교수와 코폴라가 왠 여자를 가지고 내놓으라며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여자가 올림피아란 것을 알고 구하려고 하지만 코폴라가 어깨에 짊어지고 데려가 버린다. 나타나엘은 코폴라의 어깨에 축 늘어진 ‘자동인형’ 올림피아를 보았고, 교수가 땅에 떨어진 올림피아의 피투성이 눈을 자신에게 던지자 발작을 일으킨다. 어디서부터 그의 망상인걸까. 아마도 자동인형을 가져간 것은 현실이고 눈을 던지는 장면은 그의 망상이 시작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는 교수의 목을 조르며 미쳐 날뛰었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갔다.
그는 정신을 차려 다시 클라라와 행복한 일상을 꾸려가려 했다. 그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가기 전 클라라와 장터에 갔다가 높은 탑에 올라가게 된다. 그는 무심결에 주머니에 있던 망원경을 꺼냈고 망원경으로 클라라를 보자 발작을 일으키며 그녀를 죽이려 한다. 놀란 로타르가 그녀를 구해 내려갔고 탑에 혼자 남겨져 미쳐 날뛰던 나타나엘은 탑 아래에 자신을 지켜보는 코펠리우스를 발견하고 “그래, 아름다운 눈이야. 아름다운 눈이야.” 하고 외치며 투신한다.
- 작가&작품에 관하여
호프만이 독일 낭만주의 시기에 쓴 <모래 사나이>는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던 계몽주의 시기에 금기시되고 배척되었던 인간의 어두운 내적 요소들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을 낭만주의 문학이라고 한다. 즉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환상적인 세계가 일상의 세계와 통합되며,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모래 사나이>는 ‘광기’라는 주제로 계몽주의와 반대되는 비이성적이고 공포스럽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리뷰
<모래 사나이>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모래 사나이, 눈, 자동인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래 사나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심한 공포를 조성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눈’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서 안구 상실에 대한 공포는 작품 전체에 존재한다. 서양에서 눈의 의미는 플라톤 이후 외부세계가 비치는 거울, 즉 ‘마음의 창’ 또는 ‘영혼의 거울’로써 기능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안구 상실에 대한 공포는 내면과 외부가 정상적으로 소통하기 어려움을 나타낸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마음, 영혼의 상태에 따라 눈으로 비치는 것들도 왜곡되거나 잘못될 수 있다. 나타나엘은 트라우마로 인해 눈의 왜곡 현상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코폴라의 망원경을 산 뒤로 그의 눈은 더욱 왜곡된 세계를 향하고, 올림피아 때문에 내면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만다. 또한 올림피아가 사람이 아니라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예 내면세계까지 무너져 미쳐 날뛰게 된다.
모래 사나이는 이성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려는 나타나엘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존재다. 클라라와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혼생활은 계몽주의를 닮았다. 올림피아가 나타나엘의 어둡거나 괴상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도 경청하고 수용해주는 모습은 낭만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나타나엘은 내면의 트라우마(내적요소를 인정하는 낭만주의)를 가진 채 클라라와 평범한 결혼생활(밝고 이성적인 계몽주의 혹은 고전주의)을 하려 하지만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른다. 나타나엘의 투신 자살은 고전주의에 반하는 낭만주의 소설을 완성하는 멋진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내면에 어떤 치유되지 않은 부정적인 요소, 공포나 두려움을 가진 존재가 밝고 이성적인 세상에 부합할 리 없다.
심리학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모래 사나이>가 강렬하게 남을 것이다. 광기, 망상, 트라우마 그리고 성숙되지 않은 어릴 적에 겪은 일들이 일생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끔 한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겨본다면 이 소설에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읽어보시길. 어쨌든 내게는 짧고 강렬한,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