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문명화과정 1, 2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 한길사 / 1996, 1999
– 근대 유럽문명의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기원을 밝히는 엘리아스의 역저

서구 상류층 사람들의 일상 의례를 역사적으로 비교 분석하였다.
엘리아스는 12∼19세기의 식사예법, 방뇨행위, 코 풀고 침 뱉는 행위, 잠자는 습관, 남녀 관계 등 일상의 변화를 살핀 뒤 문명화 과정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목차
[1권]
- ‘문명’과 ‘문화’ 개념의 사회적 발생
1) 독일에서 ‘문화’와 ‘문명’의 대립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기원
2) 프랑스에서 문명개념의 사회적 발생근거 - 인간 행동의 특수한 변화로서 ‘문명’에 관하여
1) ‘시빌리테’ 개념의 역사
2) 중세의 일상 의례
3) 르세상스 시대의 행동변화 문제
4) 식사 중의 행동
5) 생리적 욕구에 대한 태도의 변화
6) 코를 푸는 행위에 관하여
7) 침을 뱉는 행위에 관하여
8) 침실에서의 행동에 관하여
9) 이성관계에 대한 사고의 변화
10) 공격욕의 변화
11) 기사의 생활풍경

[2권]
서양문명의 사회발생
1) 봉건화 메커니즘
2) 국가의 사회발생사
3) 문명화이론의 초안
○ 저자소개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 1897 ~ 1990)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 1897년 6월 22일 ~ 1990년 8월 1일)는 유대계 독일인 사회학자로, 나중에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는 1897년에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난 독일의 유대계 사회학자다.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철학과 의학을 공부했고, 1924년 신칸트학파 철학자 리하르트 회니히스발트를 지도교수로 하여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념과 개인 : Idee und Individuum’을 발표했다.
1925년 엘리아스는 당시 사회과학과 철학의 중심지였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가서 사회학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문화사회학자인 알프레트 베버 밑에서 근대 과학의 발달에 관해 연구했으나, 1930년 이를 포기하고 친구였던 젊은 교수 카를 만하임을 따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그의 조교가 되었다.
엘리아스는 이곳에서 교수자격청구 논문으로 ‘궁정사회’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1933년 나치 집권으로 만하임의 사회학연구소가 문을 닫으면서 엘리아스도 파리로 도피했다.

1935년 다시 영국으로 망명한 엘리아스는 대작 ‘문명화 과정’을 써서 1939년에 출판했다.
그후 케임브리지에 머물며 여러 곳에서 강의하면서 집단심리치료 공부도 했다.
1954년 레스터 대학에 전임강사로 임용되었고 1962년 정년퇴임 때까지 이곳에서 8년간 강의했다.
일부 사회학자와 역사학자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문명화 과정’이 1969년 재출간되면서 엘리아스는 뒤늦게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현대 사회학계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977년에 ‘아도르노 상’을, 1987년엔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1970), ‘죽어가는 자의 고독’ (1982), ‘인간의 조건’ (1985), ‘개인의 사회’ (1987) 등을 저술을 남겼다.
1990년 8월 1일, 암스테르담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 역자 : 박미애
1955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유교예법을 통한 가부장제도 Patriarchat durch konfuzianische Anstandsnormen》,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공저) 등이 있으며, 《막스 베버》, 《새로운 불투명성》, 《문명화 과정 1, 2》, 《로자 룩셈부르크》, 《생각 붙잡기》,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공역),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냉소적 이성비판 1》(공역), 《전체주의의 기원》(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1권]
프랑스의 궁정적 개혁지식인들은 오랫동안 궁정의 전통 속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좀더 나아지기를, 변화를, 개혁을 원했다. 루소와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들이 내세운 이상과 모델은 지배적 이상, 모델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을 개량한 것이었다. ‘잘못된 문명’이란 표현 속에 이미 독일운동과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
독일의 시민계급 지식인이 주창하는 ‘교양인’과 ‘인격’의 이념과는 달리, 그들은 ‘문명인’에 전적으로 다른 인간형을 대립시키지 않고, 궁정적 모델을 받아들여 그것을 변형시키려고 한다. 155-6)
프랑스에서 시민계층은 이 당시 벌써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 지식인층이 정신과 이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모든 인간적 문제들과 더불어 사회적•경제적•행정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도 궁정귀족 지식인층의 사상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독일의 사고체계는 프랑스와 달리 순수한 연구였으며, 그들의 사회적인 활동장소는 대학이었다. 159)
에라스무스의 견해는 그 시대의 몇몇 소수의 저자들과 함께 예법서 전통 가운데서도 예외에 속한다. 왜냐하면 일부 매우 오래된 규정과 규칙들의 설명 속에 개인적인 열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시대의 징표’이며, 사회적 변동의 표현인 동시에 비록 맞지 않는 개념이긴 하지만 우리가 보통 ‘개인화’라고 부르는 것의 징후이다. 203)
이제 이 자연스러움에 인간관찰이 덧붙여지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타인에 대한 고려가 첨가된다. 218)
이 시대(중세)의 문헌들을 펼쳐보기만 하면 언제나 비슷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즉 우리와는 다른 감정구조를 가진 삶, 안정도 없고 미래를 위한 장기적 예측도 불가능한 존재들이 눈에 띈다. 이 사회에서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못했던 사람, 열정의 유희에서 사나이답게 행동하지 못한 사람은 수도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속적인 삶에서 그는 패배자였다. 이와는 반대로 후대의 사회에서는, 특히 궁정에서는 자신의 열정을 억제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여 ‘문명화’될 수 없었던 사람이 패배자였다. 382)

[2권]
기사와 관료들에게 땅을 제공해야만 할 필요성, 새로운 정복전쟁이 없는 한 줄어들게 마련인 왕의 소유지, 평화시기에 중앙권력의 약화 경향 등 모든 요소들은 ‘봉건화’란 커다란 과정 자체의 부분과정들이다. 72)
11세기 초에는 원래 두 계급의 자유인, 즉 기사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성직자들만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농노, 소작농이 존재했다. ‘기도하는 자들, 싸우는 자들, 일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2세기가 지난 후, 정확히 말하자면 1세기 반이 지난 1200년경—개간이나 식민지 확장전쟁처럼 이 운동도 1050년부터 가속화되었기 때문에—일련의 수공업자 거주지인 도시공동체 코뮌은 고유의 권리와 법, 특권과 자율성을 획득한다. 제3의 자유인 신분이 등장한다. 99)
대다수의 도시 자유인들이 노동에서 소외되었던 고대의 노예사회와는 정반대로 서구사회에서는 자유인의 노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종속성은 결국 비노동계층인 상류층을 분업의 순환과정에 끌어들인다. 111)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독점 메커니즘의 게임에 의해 종속적 처지에 떨어지면 질수록 종속된 사람들 전체의 사회적 힘은—그들 개개인의 사회적 힘은 아니라 하더라도—소수의 또는 단 한 사람의 독점자와 반비례하여 더 커진다.
…
달리 표현하면 독점적 지위가 포괄적이면 포괄적일수록 그리고 그것의 분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 독점적 소유는 독점자의 기능분화적인 기구의 중앙관리인이 되어 다른 관리인들보다 아마 좀더 강력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갈 개연성이 그만큼 더 확실하고 커진다. 175-6)
사회의 각 부분들 간의 대립이 의식적 투쟁의 형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중세 말기에 대부분의 봉건 기사영주들을 사회적으로 추락시킨 것은 시민계급의 의식적 공격이라기보다 그 당시 확산중에 있던 금전화와 상업화의 메커니즘이었다. 251)
한 군주가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영토의 지배권을 장악한다. 토지소유권은 상업화되고 금전화된다. 이 변화는 한편으로 왕이 전국의 세금을 징수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독점하게 되고 따라서 그가 가장 많은 수입을 통제하게 되는 사실에서 표현된다. 땅을 소유하고 분배해주는 왕으로부터 돈을 통제하고 돈으로 급여를 주는 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물물경제사회에서 군주를 속박하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해주었던 것이다. 306)

이곳은 상거래와 분업이 엮어낸 넓은 그물망 속에서 아직도 농업경제를 위주로 하는 내성이다. 사람들은 화폐의 물살에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세금이, 그리고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것들을 사야만 하는 필요성이 이방향으로 그들을 몰아대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사슬에 속박됨으로써 사람들에게 부과되는,필수적인 육체노동의 정도를 넘어서는 성향억제, 특히 불투명한 통제와 예측은 이 영역에서는 언제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그리고 근본적으로 불가해한 강제일 뿐이다.-133쪽
자기 통제, 감정의 억제 및 이에 따른 충동의 승화를 산출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종속적인 남성과 높은 지위의 여성간의 관계밖에 없다. 이런 인간적 상황에서 개인적 현상이기도 하고 사회적 현상이기도 한 서정시가 생겨나고 또 쾌락의 변형, 감정의 채색, 충동의승화가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145쪽
우리는 다시금 이 시민계급으로 하여금 맞수 귀족에게 결정적 일격을 가할수 없게 만드는 그 장치의 특별한 측면에 부딪치게 딘다. …시민계급은 결코 귀족에게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특권이란 사회적 제도 자체를 없앨 수도 없고 또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사회적 존재 자체도 이런 특권들로 유지되고 보호되기 때문이다.
.. 모든 특권계층들은 과도한 투쟁을 삼가는데 일치된 관심을 보인다. 그들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체 사회의 극심한 동요와 무게중심의 이동인 것이다.-254-255쪽
엄격한 행동 규제가 그때그때의 상류층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할때 … 그것은 지배의 수단이다. 서양 사회의구조에서 그들의 식민지화 운동의 구호가 ‘문명화’ 라는 사실은 매우 특징적이다. … 특정한 수준의 상호의존으로는 사람들을 단지 무기와 신체적 위협만으로 지배하는 것이 서양에서도 더이상 불가능한 것과 같이, 바라는 것이 식민지와 식민노예들 이상이라면 그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제국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부분적으로 자기 자신을 통해, 즉 그들의 초자아를 주조함으로써 지배하는 것이 필요하다.-407쪽
○ 출판사 서평
저자는 ‘문명화과정’에서 사회변동과 인성구조의 변화를 연결함으로써 현재 사회학이론에 부과된 시대적 과제인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의 통합을 이미 1930년대에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1권에서는 문명과 문화 개념에 대한 사세한 고찰 위에 서구 상류층 사람들의 일상의례를 역사적 비교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2권에서는 인간의 문명화 과정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다.국가 형성은 사람들을 길들이고, 평화롭게하고, 문명화한다는 것이 엘리아스의 해석이다.

○ 독자의 평 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문명화과정 1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지음 |김상희 옮김
.성의 역사 –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박광자 외 옮김
1편에서는 문명의 개념을 정의한다. 문명은 독일에서의 문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또한 프랑스 궁정에서 문명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사회적배경을 살펴본다.우리는 문명이란 개념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새련되고 우아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명이란 개념은 유렵인들이 식민지를 지배했던 경험에 비추어 자신들의 우월감을 나타내는 단어인 것이다. 프랑스 궁정에서 생겨난 문명의 개념은 궁정인들이 피지배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엘리아스는 문명은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문명은 발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미셸푸코의 『성의 역사1』를 읽었다면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을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문명화의 과정』은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이해하기에 조금 인내가 필요한 책이지만 , 그만큼 지적탐구의 기쁨을 선사해주는 책이다.
2편에서는 문명화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봉건국가의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지배형식의 변화는 서구사회 전체의 구조변화를 가져온다. 1편에서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문명의 개념이 필요했던 것처럼 2편에서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토지,군대가 필요해진다. 봉건제하에서는 토지와 군대가 지배권력의 유지에 중요한 요소였다. 인구의 증가와 지배구조의 변화는 토지의 부족을 초래했고,토지의 부족은 식민지 개발을 필요로 했다. 봉건제하에서는 사회구조와 상황에 따라 전쟁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진다. 십자군전쟁은 이런 확장운동의 특수한 형태다!
땅의 부족과 인구증가의 압력은 내부의 팽창과 외부 식민지확장으로 이어지고 사회는 분화하여 도시를 만들어낸다. 토지→소유주생김→인구증가→수공업.상인공동체 →화폐수요증가 →화폐경제급성장. 문명화는 인간들의 강한 상호연관성 및 상호의존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독점의 메커니즘은 국가형성에도 작용을 한다. 토지경제에서 화폐경제로 이동하면서 절대군주의 통제력이 커진다.
봉건제도는 놀랍게도 현대사회의 국가간 관계와 일치한다!
중세사회처럼 현대사회의 국제관계에서도 군사적 잠재력은 다시금 영토의 크기와 생산성, 인구수와 노동잠재력에 의해 결정된다. (P122) 소유와 축적을 통한 중세의 패권형성의 메커니즘은 현대의 기업들이 경제를 독점하고 지배하는 것과 동일하다. (P160)
지배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내의 계급간의 갈등을 평행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회는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다.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이 상호의존도가 높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문명화과정이 흥미로운 점은 , 수많은 개인의 이해와 의도가 얽히고 설켜서 그 누구도 계획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 산출된다는 점이다. 문명이 직선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다. 문명이란 개념이 궁정에서 먼저 생겨났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들도 상호의존의 압력에 따라야 했던 것이다.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1』『문명화과정2』를 읽고 나서, 엘리아스가 대단한 이유는 프로이드의 초자아, 칸트의 선험이 문명화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을 증명해준다는 점이다.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은 막스베버의 합리화 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의미까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봉건사회와 현대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닮은 점이 있다는 점에서도 문명화란 과연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제공한다.

○ 독자의 평 2
“문명화 과정”은 내가 읽기로 아마 최근에 가장 재미있는 사회학의 연구분야를 잘 다루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은 계층 혹은 계급이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아스의 대답은 다른 계급 혹은 계층과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결합태 (figuration)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들고 나온다. 즉, 그는 서양의 귀족계급을 연구하면서 장기적인 사회변동 속에서 인간들이 상호결합하는 어떤 욕구의 패턴을 이 개념으로 읽어내려한 것이다. 따라서 결합태는 간략하게 요약하면, 인간들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형성하는 인간관계의 구체적 형태이다.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개인의 역할관계, 감정과 합리적 사고능력, 그리고 갈등과 조화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개념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 비교 가능하며, “문명화과정”의 역자는 이것을 막스 베버의 이상형 (idealtypen)과 대비하여 현실형 (realtypen)이라고 부른다. 본고 33쪽) 이 개념을 통한 엘리아스의 실증적인 작업인 본고는 장기적인 사회변동 속에서 인간의 행동과 감정의 일정한 구조와 방향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중요한 결론이 새로운 행동과 감정수준이 발전, 확산되는 동인은 바로 권력 차이의 보존과 확대에 있다는 것이다. 즉, 상류층이 칼과 포크를 사용하고, 식사시간에 위생적인 생활습관을 드러냈던 것은 그들의 권력을 다른 계층과 구별지음으로서 위계질서의 차를 공고히 하려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부분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모든 계층이 그런 구별짓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한 계층은 자신의 하위계층과는 구별짓기를 하지만, 상위계층과는 동화되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계층의 즉자적인 의식작업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적 습속이 아닐까? 계층은 오히려 분절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개인이 아닐까?
[인상깊은 구절]
엘리아스에게서 방법은 구체적 사실과 유리된 이론적 틀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인 구체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말해, 연구대상인 구체적 현실은 특정한 방법을 만들어내고, 이 방법은 동시에 구체적 현실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독자의 평 3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 인류는 어떻게 문명화되었는가?
만약 함께 식사하러 간 사람이 식탁에서 큰 소리로 코를 풀거나, 가래침을 뱉거나, 젓가락이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당연히 그런 행위에 당혹해하거나, 불쾌해 하거나, 역겨움을 느낄 것이며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과 식사하기를 꺼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또한 공공의 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생리적 현상(대소변)을 해결하는 것을 본다면 어떤 기분을 들까. 아마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특정 개인이 그런 행위를 한다면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지만 국가나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중동에 있는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내 경우 파키스탄을 여행할 때 내 가이드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식욕을 잃은 적이 있었다. 중국을 여행할 때 문이 개방된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볼 때의 당혹감과 불쾌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나의 말이 그 나라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행위가 왜 나에겐 당혹감, 불쾌함, 역겨움을 가져오는 것일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은 이런 느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준다. 우리는 사람이나 민족을 “문명인 vs 미개인“, ”문명국가 vs 미개국가“로 나눈다. 그렇다면 문명과 미개를 구별하는 기준선은 무엇인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을 통해 서양사회가 어떻게 오늘날 매너(manner), 예절(civilite) 또는 에티켓의 발명을 통해 문명화되었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문명화과정>에 따르면 오늘날 대표적 문명국가인 서구 유럽국가에서 앞서 내가 말한 당혹감, 불쾌감,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는 행위가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일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16세기 궁정예절교본에 나오는 사례를 보면
“고상한 사람은 여러 사람과 같이 식사할 때 스푼으로 수프를 후루룩 소리내여 먹지 말아야 한다. 식사 중에 돼지처럼 음식에 덤벼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서는 안된다.
입안에 든 음식을 다시 접시에 뱉지 마라
음식물이 묻은 손을 옷에 닦지 마라 (냅킨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침을 함부로 뱉지 마라“
“식사 중에 헛기침을 하는 사람
식탁보에 코를 푸는 사람은
모두 버릇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탄호이저의 ‘궁정예법’)
오늘날 서양사회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식사를 한다는 것은 특별히 문명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 일상생활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포크가 처음으로 식탁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중세 말기였다. 11세기 비잔틴의 공주가 베니치아공국의 궁정에서 조그만 포크-금으로 만들어진 삼지창-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입으로 가져갔을 때,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고 이 사건은 스캔들이 되었다.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천벌이 내릴 것이라 예언했고, 곧 그녀가 끔찍한 병을 앓게 되자 자신들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설교했다. 포크가 식탁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였다. (이전에는 귀족이라도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또한 대소변 등 생리적 행위를 역시 폐쇄되고 은밀한 장소에서 남의 눈을 피해 해결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589년 브라운슈바이크 궁정규정집을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식사 중, 식사 전후에, 밤늦게 또는 이른 아침에, 나선형 계단, 층계, 복도나 방을 소변이나 다른 오물로 더렵혀서는 안된다. 그런 용무를 위해서는 지정된 적합한 장소로 가라”라고 하였다. 당시 사회의 최상류층인 궁정예법에 이런 규정이 있는 것을 보면 귀족이라도 생리적인 현상을 공공연하게 해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 14세 때 지어진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어 궁전 곳곳이 악취로 가득했다고 한다. 16세기 에라스무스의 시대에 ‘소변이나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다른 사람 앞에서 해결하고, 또 그것에 관해 스스럼없이 말하였다.
침을 뱉는 행위, 코를 푸는 행위, 공공장소에서의 생리적 행위,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 등을 기피하는 문명화과정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앞서 말한 행위의 기피는 의심의 여지없이 위생적인 생활습관을 확산시켰다. 공동의 그릇에서 먹거나 손으로 코를 후비는 행동, 땅바닥에 침을 뱉거나 담벼락에 방뇨하는 행위는 오늘날 비위생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행동과 인성구조의 변화가 합리적인 건강관념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엘리아스는 강조한다. 위생적인 관점에서 문명화과정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먹거나 침을 뱉는 행위, 공공장소에서의 생리적 행위 등을 수치로 생각하는 사회적 규범이 먼저 궁정의 상류층에서 발전하게 되고, 나중에 시민계급으로,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문명화과정 이전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규율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열정에 따라 행동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시빌리테(civilite:예절)’ 개념이 서구사회에서 중요하게 된 시기는 기사사회가 붕괴되고 절대주의 왕정이 형성되던 때였다. 시빌리테 개념이 고유한 특성과 기능을 얻은 것은 16세기 후반이다. 자신의 감정과 열정을 방해받지 않고 발산할 수 있었던 기사계급은 봉건제도의 몰락과 함께 절대주의 왕정으로 귀속되었고 궁정사회에서 행동하기 위해 ‘자기통제’와 ‘타인의 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과거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외부적인 규범을 통해 규제되기 시작했고 후에는 외부적 압력이 내면화하면서 ‘자기통제’로 발전하였다.
문명화과정이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문명화과정이 외적으로는 단순히 예절, 매너, 에티켓의 발명으로 드러나지만 내적으로는 ‘폭력성의 감소’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문명화과정 이전에는 서구사회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였다. (중세시대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생각해 보라) 기사계급을 중심으로 한 끊임없는 전쟁, 약탈, 강간, 고문이 일상화된 사회였다. 중세사회에서 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위협일뿐만 아니라 때로는 축제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 중범죄인을 광장에서 처형하는 것은 단순히 권력자가 백성에게 위협을 가하려고 하는 행위에서 시작되었으나 축제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한 도시에 공개처형에 처할 중범죄인이 없을 경우 이웃도시에서 돈을 주고 사와 백성들 앞에서 처형했다. 백성들은 사형수가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낄낄대며 웃고 즐겼다.
그러나 문명화과정을 통해 폭력이 당혹스럽고 불쾌하며, 심지어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죄수를 공개적으로 고문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처형하는 일은 사라졌다. 아마 현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사회로 가서 당시의 폭력을 목격한다면 혐오감에 치를 떨 것이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사형수를 고문하고, 목을 베거나 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가>에서 문명화과정을 통해 인간은 폭력성을 제어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을 통한 인간의 행동변화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개인의 기능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얽혀 들어가 이루는 상호의존의 관계망이 촘촘해지면 질수록 이 관계망이 점점 더 넓은 사회적 공간으로 확대하고 그것을 통해 기능적이거나 제도적 통일체로 통합되면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열정과 충동에 끌려가는 사람의 사회적 실존은 점점 더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은 유리하게 되며, 그럴수록 모든 개인은 사회적 고리의 여러 이음새들에 미치는 자기행위 또는 상대방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도록 어려서부터 가한 압력을 받게 된다. 즉각적인 분노표출의 억제, 감정의 진정, 현재 순간을 넘어서 과거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들로 엮어지는 연쇄고리로 사유영역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 등 이 모든 것은 동일한 행동변화, 즉 육체적 폭력의 독점과 더불어 행위고리의 연장 및 사회영역 내의 의존성 증가와 동시에 일어나는 행동변화의 여러 다양한 측면들이다. 이것이 ‘문명화’의 의미에서 일어나는 행동변화인 것이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독일계 유태인으로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을 잡자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망명했다. ‘문명화과정’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이 꾸준히 제어되었다고 한 그의 주장은 히틀러와 같은 파시스트의 출현으로 전 유럽이 전쟁과 폭력의 도가니로 빠지면서 다소 무색해졌지만 인류의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유효하다. <문명화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예절, 매너, 에티켓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소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다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인문학적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PS: 문명화과정은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어떤 행위가 불쾌감, 수치심, 혐오감을 유발하면서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흡연은 미래의 문명화과정을 통해 사라지거나 은밀한 행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 흡연은 불쾌감, 혐오감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독자의 평 4
문명화과정 I, II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한길사 펴냄)
『문명화과정』은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작으로 두 권을 합치면 8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다. ‘결합태 사회학’이나 ‘문명화과정의 이론’과 같은 독창적인 사회학적 사유를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와 결합한 이 고전적인 저술은 1939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지만, 세계대전으로 인한 망명과 이로 인한 늦은 학계정착이라는 저자의 개인적 불행에 당대의 주류 사회학계와 벗어난 학문적 관점이 더해져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그의 생애 말년에 화려하게 복권되고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문명화과정이란 사회구조의 변동에 따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사회적 통제를 내면화함으로서 개인의 감정구조가 변화해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논지를 당대의 예법서에서 인용한 온갖 ‘더러운’ 예들로 입증해 나가는 1권의 경우 흥미롭기도 하고 읽기에도 어려움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화과정이 봉건적인 중세사회에서 중앙집권적 절대국가가 등장하는 근대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유럽의 사회구조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실증적 태도로 상세히 설명하는 2권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번역자의 해설을 참조해 내용을 요약하고 짧은 개인적 단상을 덧붙임으로 이 책과 함께했던 긴 여정을 마감하기로 한다 .
*요약
- 결합태 사회학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결합태’는 글자 그대로 인간들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형성하는 인간관계의 구체적 형태를 의미하며, ‘구체성’과 ‘상호의존양상’ 그리고 ‘동태적 관계’라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결합태인 사회의 흐름은 분명 일정한 방향과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미리 규정된 계획이나 목적에 따라 진행되지는 않는다. 엘리아스 사회학의 근본과제는 바로 이러한 결합태 내의 상호의존양상을 분석하고 그 역동성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개개인은 결합태의 구성원으로서 그 결합태 내에서 발달된 사회적 규범을 학습해나간다. 모든 결합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단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으며, 그 결합태에서 특정 시대에 모범으로 생각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행동과 감정 규약 역시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 행동방식을 습득하여 내면화하는 개인의 사회심리적 발달과정이 ‘사회화’라면, 장기간에 걸친 사회나 문화의 사회심리적 발달과정이 바로 ‘문명화과정’이다.
- 문명화과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문명화되었다’는 말에서 “남에게 예절바르고 친절한 태도, 남을 배려하는 태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습관, 온건함과 강한 자제력” 등을 연상한다. 엘리아스는 식탁에서의 행동규칙이나 코 풀고 침 뱉는 방식등에 대한 행동지침을 수록한 예법서나 문학작품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분석해 서구인의 행동양식이 중세 후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문명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인간의 심리 및 감정구조 전체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밝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화과정’은 근대 시민계층이 아닌 궁정 귀족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1)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에 수반하는 행동방식의 변화에는 행동의 외면적 통제에서 내면적 통제로의 전환이라는 보편적 과정이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행위를 외부로부터 규제하는 제제가 문명화과정을 통해 개인의 내면으로 옮겨지면서 결국 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통제장치가 개인의 내면에 형성된 통제장치와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문명인은 자신의 감정과 충동에 더 이상 예속되지 않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그래서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문명화과정’이란 ‘합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러한 합리화 및 문명화과정을 위해서는 물리적 폭력에서 자유로운 평화적 공간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중앙집중화와 절대주의 국가의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절대주의적 국가는 궁정사회라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로 얽힌 새로운 결합태를 산출하고, 무기로 치르는 투쟁을 허용치 않는 궁정사회는 궁정인들에게 감정과 충동의 폭력적인 분출을 그 특징으로 하던 중세의 기사들과 다른 특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이 바로 “심사숙고, 장기적 안목, 자기절제, 감정의 정확한 조절, 생리적 기능의 은밀화, 인간을 비롯한 전체의 영역에 대한 광범한 지식”, 즉 ‘궁정적 합리성’이다.
(3) 이러한 궁정적 합리성을 비롯한 궁정적 생활형태나 행동양식은 중세의 전사들을 길들여 온건한 궁정인으로 만들면서 평화로운 상호교제의 모델을 만들어냈고, 이는 모범적인 상류사회의 표본으로서 17, 18세기의 산업적 시민사회로 확산되었다. 사회구조의 변화가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금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가는 인간들의 행동방식 및 정서구조의 변화를 촉발한다는 것이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결국 문명화과정 및 합리화과정은 중세 후기부터 시작된 궁정의 발달과정의 부산물이었으며, 그 주체는 세속 궁정귀족이었다.
- 문명화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엘리아스는 이렇게 행동과 인격구조의 변화를 그 본질로 하는 유럽 ‘문명화과정’이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사회구조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국가형성과 그로 인한 사회의 평화가 적어도 유럽발전의 특정한 시기 즉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문명화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문명화과정』 2권에서는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 중세의 봉건사회는 낮은 수준의 교역과 노동분화, 제한된 화폐사용 그리고 물리적 폭력의 분권화를 그 특정으로 하며, 강력한 중앙권력의 부재로 인해 끊임없는 폭력과 사회볼안을 그 특징으로 하는 사회였다. 왕이 하사한 토지에 웅거하던 영주들은 자기 나름의 경제적 수입원 · 무력 · 행정조직을 장악하면서 비교적 자율적인 단위로 존재했으며, 이들에게는 강력한 무력과 전투능력만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중세인들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인 육체적인 것의 직접적 표출이나 개인의 감정과 충동의 공격적 발산을 통제할 필요나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2)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며 노동분화와 교역망의 증대,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 도시와 시민계급의 사회적 상승 등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대영주에게는 유리하게 중소 영주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제후들간의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독점 매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면서 강력한 영주가 상대적으로 약한 영주들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며, 그 결과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절대왕정과 근대국가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는 물리적 폭력과 조세권을 독점하면서 전통적인 영주 귀족들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
(3) 조세권을 독점해 부유해진 왕은 토지의 분배 대신 화폐지급을 통해 군대와 관료조직을 유지하고 지방이나 중앙의 관직에 귀족뿐 아니라 시민계급을 등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왕은 중앙의 통치기구를 시민계급의 전유물로 만듦으로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지만, 약화된 귀족계급에게는 궁정의 관직을 제공함으로서 두 계급 간의 균형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여러 개인이나 집단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상호조정하고 규제할 상부 조장자로서의 왕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다.
(4) 경제적 입지가 축소된 군소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 머무는 대신 절대군주의 궁정에 가신으로 들어가게 되며, 절대군주의 궁정에서 감정과 충동의 폭력적 분출이 아니라 세련된 예절과 자기통제 즉 ‘문명화’된 행동양식을 요구받게 된다. 귀족층은 점차 이러한 ‘문명화된’ 생활양식을 내면화하여 자신들을 시민계급과 구별짓고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려고 하며, 경제권을 가지고 권력에 참가하기를 요구하는 시민계급 역시 그러한 ‘문명화된’ 생활양식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 한 가지 단상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이란 다른 사람에 의해 외부에서 주어지던 강제의 역할을 개인이 스스로 담당하게 되는 사회적 통제의 내면화과정이며, 그 원동력이 물리적 폭력수단이 중앙권력으로 집중되면서 내부의 평화가 달성되는 국가형성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평화가 사라지고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불안이 사로잡는 상황이나 전쟁과 같이 개인의 충동과 폭력성이 여과 없이 분출되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문명화’라는 내면화된 통제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문명화된’ 서구인들이 과거 식민지에서 행한 여러 만행이나,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포함한 20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전쟁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참상, 그리고 오늘날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무정부 상태에 빠진 국가에서 벌어지는 무질서와 폭력을 상기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문명화’란 세워지기까지 지난한 노력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힘써 지키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연약한 구조물이다.

○ 독자의 평 5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문명화과정’ (The Civilizing Process)은 이미 1930년대에 출판되었지만 줄곧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7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적인 저서다. 57세가 되어서야 전임강사가 되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불운했던 엘리아스. 영미권을 풍미하던 기능주의와 체계이론이 점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역사적인 실증연구와 결합된 독창적인 사회학 이론과 방법이 부각되기 시작한 이래 엘리아스는 최근까지 새로운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독일의 사회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다음은 [문명화과정]의 국내 번역문 중에서 머리말을 발췌하여 소개해본다. _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1996. 문명화과정 박미애 올김. 한길사. p 45-53.
이 연구의 중심주제는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전형적이라고 간주되는 행동양식이다. 그 주제가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에게 전형적이며 ‘문명화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예전부터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우리 시대의 사람이 과거의 어느 시대로, 예컨대 중세 봉건적인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는 자신이 오늘날 다른 사회들에서 ‘야만적’이라고 평가하는 많은 특성들을 재발견할 것이다. 그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서구 밖의 봉건사회 사람들의 행동이 그에게 촉발시키는 감정과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 자신의 처지와 취향에 따라 곧 그 사회의 상류층이 영위하는 거칠고, 자유분망하며 모험에 가득 찬 삶에 끌리거나, 아니면 그들의 ‘야만적인 ‘ 습관, 불결함과 조야함에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든 과거의 어느 시점의 서구사회는 현재의 서구사회와 동일한 의미에서 그리고 동일한 수준으로 ‘문명화’된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그는 분명하게 감지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으므로 다시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그 질문이 우리의 자기이해에 전혀 무의미하지 않는데도,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의 의식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 변화, 즉 서구의 ‘문명화’가 실제로 일어났는가, 그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그 원동력과 원인 또는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이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주된 질문들이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즉 그 질문에 대한 서론으로서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문명화’ 개념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들과 가치평가들을 살펴보겠다. 제1장에서 이 과제를 다룰 것이다. 이 작업은 ‘문화’와 ‘문명’의 개념을 항상 대립시키는 우리의 고정된 사고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반대로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에게는 독일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문명화과정 자체의 전형적인 형태들을 명료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중심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선 서구인들의 행동과 감정을 다스리는 구조가 중세 이래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제2장에서 다루게 될 과제이다.
서구 역사의 흐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태도의 변화가 특정한 질서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또는 사변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경험자료들의 검토만이 무엇이 올바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여기에서, 즉 이러한 실물자료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지 않은 지금 전체 연구의 구성과 주요사상들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 자체가 단지 점차적으로, 즉 역사적인 사실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또 나중에 관찰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을 통하여 이전에 보았던 사실들을 통제하고 수정함으로써 확고한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
독자들은 제2장에서 여러 가지 예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 보기들은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영화에서처럼 전체의 발전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수준의 변화가 여러 세기에 걸쳐 항상 동일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여기에서는 단지 몇 쪽에 걸쳐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본다. 그들이 잠자러 가거나 혹은 전투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이런저런 기초적인 활동에서 개개인이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이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단계적 ‘문명화’의 의미에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 단어가 원래 무엇을 뜻했는지 더 명확해진다. 예컨대 이 단어는 수치심과 불쾌감의 특정한 변화가 이러한 문명화과정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수준도 변한다. 이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불쾌와 불안의 한계점도 변한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인간의 불안문제는 문명화과정의 핵심문제 중의 하나로 부상한다.
이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다른 문제들이 있다. 행동 및 전체 심리적인 구조에서 어른과 어린의 격차는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점차 커진다. 왜 많은 민족들과 민족집단들이 ‘더 어리거나’, ‘어린아이와 같은지’, 다른 민족들이 ‘더 나이가 들었거나’ 또는 ‘어른스러운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이 사회들이 거쳐온 문명화과정의 종류와 단계들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책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없는 문제이다.(…)
제3장의 과제는 이러한 긴 역사의 특정한 과정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제2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3장에서는 정확하게 규정된 몇 개의 영역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서구사회의 구조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부단히 변화하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그 영역 안에서 서구인들의 행동수준과 심리적인 태도가 변화한 까닭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 초의 사회적 풍경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성들이 가득하다. 오래 전부터 도시 주거지였던 곳조차도 봉건제화되었다. 무사계급 출신 지주들의 농장과 성들이 도시의 중심을 이룬다. 문제는 어떤 사회적 관계들이 서로 얽혀 우리가 ‘봉건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몇몇 ‘봉건제화의 기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유로운 도시의 수공업자와 상인의 주거지를 거느린 성채의 충경에서 부유한 대영주의 저택들이 서서히 돌출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무사계급 내에서도 점차적으로 일종의 상류층이 뚜렷하게 형성된다. 그들의 저택이 한편으로는 연가와 중세 남프랑스 음유시인풍 트로바도르 서정시 중심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궁정 기사적’ 행동과 대화양식의 중심지이다. 앞에서 심리적 태도변화에 대한 명확한 상을 제시하는 여러 보기들의 출발점으로 ‘기사적인’ 행동수준을 설정하였다면, 여기에서는 이러한 기사적 행동양식의 사회발생적 근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또는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것의 초기 형태가 서서히 형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절대주의’ 시대에 ‘예절’의 표어 아래, 오늘날 우리가 ‘예절’에서 파생된 낱말을 가지고 ‘문명화된’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행동수준의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문명화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일은 절대주의 정권과 국가의 형성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 요청되는 방법이 과거를 관찰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여러 사실들을 관찰하여보면 ‘문명화된’ 행동의 성립은 서구사회가 ‘국가들’로 조직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크고 작은 세력을 가진 무사들이 서구지역을 실제로 장악했던 중세 초의 지방분권적인 사회로부터 내적으로는 어느 정도 평화를 유지하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무장한 사회, 즉 우리가 ‘국가’라 부르는 사회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어떤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넓은 지역들이 비교적 안정되고 중앙집권적 하나의 통치기구로 통합되는가.
모든 역사적 구성체들의 발생근거를 묻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현상들, 인간의 태도나 사회제도들도 실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인위적인 추상화를 통해 이 현상들을 자연적 또는 역사적 흐름으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으로부터 운동과 과정의 성격을 박탈하고 또 이 현상들을 발생, 변화되어가는 과정과는 무관한 하나의 정적인 구성체로서 파악하려는 사고형식들이 어떻게 이 역사적 현상들의 이해에 평이하고 적합한 것일 수 있겠는가.
다른 사유수단과 방식을 요청하는 것은 어떤 이론적 선입관이 아니라 경험 자체이다. 역사적으로 동적인 모든 것을 부동적인 것으로 또는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가진 ‘정태주의’의 호구(虎口)를 피하는 한편, 역사에서 단지 끊임없이 변화만을 보기 때문에 이 변화의 질서와 역사적 구조의 형성을 지배하는 법칙을 꿰뚫을 수 없는 ‘역사적 상대주의’의 용혈(龍穴)로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유의 길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여기에서 시도되고 있다. 사회발생적·심리발생적 연구는 역사 변화의 질서와 법칙, 구체적인 기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잡한 것으로, 또는 사유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상당히 단순하고 정확한 답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의 사회발생적 근거를 묻는 것이다. 국가의 형성사와 구조사의 한 측면을 말한다면, 그것은 ‘권력독점’의 문제이다. 이미 막스 베버도 처음에는 단순히 개념을 정의하려는 의도에서 물리적인 폭력행사의 독점이 이른바 ‘국가’라는 사회 조직체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이 연구에서 폭력행사가 서고 경쟁관계에 있던 무사집단의 특권이었던 시대로부터 점차 물리적인 폭력행사와 이를 위한 수단의 중앙화와 독점화에 이르는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밝혀내고자 한다. 과거 어느 시대의 독점현성 경향은 현 시대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계들이 함께 얽혀 있는 일종의 매듭점인 육체적인 폭력행위의 독점과 더불어 개인을 형성하고 각인하는 장치들, 개인에게서 사회적 태도를 조형해내는 사회적 요구와 금지의 작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안의 형태가 결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전체의 개략으로서 ‘문명이론의 초안’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심리적 태도 및 행동구조의 변화 간의 연관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제1권에서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서술하면서 단지 암시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진술된다. 제1권에서 사료를 직접 고찰하면서 저절로 드러난 사실들로부터 도출해낸 일종의 이론적 결과로서 수치감 및 정서적 고통의 구조에 대한 짧은 개요가 마지막 장에 들어 있다. 또한 왜 이런 종류의 불안이 문명화과정의 진전과 함께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다. 동시에 ‘초자아’의 형성을 비롯해 ‘문명화된’ 사람들의 정신구조 속에서 의식적 충동과 무의식적 충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 또 역사적 과정의 문제도 이 결론부분에서 비로소 해답을 얻게 된다. 즉 이 모든 과정들이 개인의 행위들로만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떤 한 개인의 의도와 계획에 따르지 않은 제도와 구성체들이 생성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