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미테랑 평전
자크 아탈리 / 뷰스 / 2006.12.11
– 1981년 대통령선거에서 65세의 나이로 프랑스 사상 최초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1996년 타계할 때까지 프랑스는 물론 세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랑수아 미테랑!
그가 탄생시킨 유럽연합은 세계 역학을 바꾼 일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적으론 끊임없이 정치적 도전에 직면해야 했고, 이를 ‘좌우연정’이란 탁월한 협상과 타협으로 풀어가 세계 정치학자들의 부단한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30대 초반인 1974년부터 17년 간 미테랑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했던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가 미테랑 사망 10주기를 맞아 펴낸 책으로 오늘의 한국에 많은 귀감을 줄 것이다.
○ 목차
Chapter 1 권력을 정복하다
Chapter 2 국가를 통치하다
보좌관들/아첨꾼들/기자들/문인들/여자들/자유인/프랑스에 관한 그의 생각/자취 남기기/어느 철저한 사회민주주의자/통치하다/정보 수집/회의 소집/결정 방식/정당들과의 관계/드골에 관한 생각/그와 돈의 관계/친구들을 무릅쓴 결정
Chapter 3 삶을 변화시키다
정권교체의 성공/3년 만에‘삶을 변화시키다’/거짓‘전환기’/위대한 승리/두 번째 정권교체를 성공시키다:좌우동거/정상회담에서의 위기/“비행기 조종사는 한 명”/정부의 훈령에 대한 위기/분개한 두 번의 경우/두 건의 인질사건/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계획 없는 후보/토론의 열쇠/제도적 군주/말로만 하는 직무/대도서관 건립사업의 난맥상/사회당의 장악은 불가능/사건은 사건이다/로카르 총리를 끝장내기 위하여/미테랑 최후의 사회당내각들/고통의 좌우동거
Chapter 4 프랑스를 지키다
미국과 뜻을 같이하다/프랑스를 무장하다/독일을 지키다/미?소의 군축정책에 끌려가지 않다/G7정상회담의 충돌/레이건에서 부시로:(미국과 프랑스의) 밀월의 시작/소련에 접근하다/레바논을 위해 죽다/식민지 개척의 국경 유지/남북관계를 변화시키다/민주주의와 경제발전/르완다의 종족학살
Chapter 5 유럽을 건설하다
분쟁의 해결/새로운 사업장:단일의정서/대변동의 주역을 추구한 여섯 명의 인물/해빙:공포 없이 살다/베를린장벽은 무너지고/유럽의 통합 없는 독일 통일은 없다/새로운 유럽 건설을 향하여/강물은 다시 물길을 찾고/유럽부흥개발은행의 탄생/소련의 종말:런던 G7정상회담에서 쿠데타까지/꿈의 구체화:마스트리히트 조약/유고슬라비아의 비극/『베르바팀』과 유럽부흥개발은행/막판
Chapter 6 과거의 베일을 벗기다
성서적 인간/유대인의‘로비’/하나의 땅, 두 개의 나라/팔레스타인을 지원하다/이라크를 제압하다/비시ㆍ페탱ㆍ부스케/자신의 받침대에서 떨어진 영웅
Chapter 7 전립선암, 웃음, 신앙, 죽음이라는 것
죽음에 맞서는 두 가지 슬기:웃음과 신앙/죽음
○ 저자소개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자크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태어나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열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학, 파리고등정치학교, 국립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계와 정계, 국제기구를 넘나들며 활동하였고, 1974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아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탈리는 10여 년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직을 거친 후 유럽부흥개발은행을 설립하여 총재직을 맡았다.
현재는 아탈리 자신의 이름을 건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정치인, 행정관료 등을 두루 거친 아탈리의 탁월한 혜안과 과학적인 분석은 프랑스 지성계를 넘어 전 세계의 방향타가 되었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예측을 담은 그의 저서들은 학자로서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주고 있다.
한편 아탈리는 한 인물에 깊게 파고들어 전기 傳記를 쓰는 일에 매혹되었는데 이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에 대한 충실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서로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이 있다.
– 역자 : 김용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및 프랑스 프로방스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서울대ㆍ충북대ㆍ건국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파리의 화상 볼라르』 『새들이 전해준 소식』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프랑수아 미테랑이라는 사람과 그의 활동에 관해 많은 의문이 대답 없이 남아 있다. 나는 이들 의문에 솔직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그는 정직했던가? 자신이 한 말을 믿었나? 자신의 과거를 속였나? 그는 대독 협력자였던가? 유대인 배척주의자였나? 자신의 질병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했나? 제왕처럼 처신했나? 그의 재임기간 끊이지 않은 ‘사건들’의 공모자였던가? 동유럽의 변화를 알았나? 독일 통일을 늦추려고 혈안이었나?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을 후원했나? 유고와 르완다의 비극에 책임이 있는가? 진정으로 사회주의 경험을 밀고 나가고 싶어 했나? 그의 공약을 배반했나? 민주적으로 프랑스 사회를 개혁하려는 모든 시도에 비록 부분적이라도 모범이 될 수 있는가? 프랑스는 그의 치세에서 얻은 것이 있나? 미래를 위해 어떤 교훈을 얻어낼 것인가? — 저자의 서문 중에서
긴장이 고조되어야 할 순간인 선거일 5월10일도 마찬가지로, 7년 전에 이미 겪은 하루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선거운동의 주요 지휘자들이 모여 있었다. 조스팽ㆍ랑ㆍ킬레스ㆍ포프랑ㆍ파비위스ㆍ에스티에ㆍ모루아ㆍ베레고부아ㆍ뒤마 그리고 나. 전해에 죽은 조르주 다얀을 제외하면 1974년 5월부터 뚜렷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 아침 비에브르 가의 미테랑 집에 모였던 모든 사람이었다. 하나의 이상과 한 사람에 대한 믿음에 의해 모인 친구들의 무리가 최악의 상황에서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14%의 인플레이션, 150만 명의 실업자, 400억 프랑의 무역수지 적자, 투기 때문에 위협받는 화폐가치, 위기의 유럽, 냉전에 휘둘리는 국제정세, 그 어느 것도 희망을 주는 것이 없었다. — Chapter 1 권력을 정복하다 중에서
그의 중요한 보좌관들은 봉사의 관점에서(그는 이것을 행정이라고 불렀다)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고 선발한 주변인들이었다. 그는 지적 능력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보다 기질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독창성과 기발함, 창의성과 기이함을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틀린 생각이라도 그에게 참신해 보이면 대다수가 인정하는 옳은 생각보다 그를 더욱 끌리게 만들었다. 그는 특히 고위 공무원들을 경계했다. … 그는 권력이란 정치에 맛들인 사람에게 마약이며, 정치에 안주하는 사람을 타락시키고, 정치에 만족하는 사람을 파괴할 뿐 아니라 명망과 평판, 영예와 유명, 인정과 존경, 호기심과 경탄을 혼동하도록 부추긴다는 말을 즐겨 했다.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의심을 멈추게 하고, 모든 비판적 생각을 가시게 하며,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게 하고, 무언가 영속적인 담보, 즉 면책을 가졌다는 환상을 믿게 한다고 생각했다. — Chapter 2 국가를 통치하다 중에서
당시 사회복지 부문에서의 불평등은 심각했다. 노동자의 절반은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70만 명의 봉급생활자는 한 해에 40번 이상 밤샘노동을 했다. 노동자 자녀들의 대학진학률은 4%에 불과했는데, 회사 중역의 자녀들은 4분의 3이나 대학에 진학했다. 4분의 1에 해당하는 젊은이가 전문기술교육을 받지 못하고 교육기관을 떠났다. 평균수명은 남자의 경우 70세였는데, 노동자들은 훨씬 낮았다. 그들은 대부분 퇴직하고 5년 안에 죽었다. 자기 진영에 속한 단체들을 포함한 많은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테랑은 60세 정년제, 주 39시간 근무, 제5주째 유급휴가, 노동조건 개선, 세입자와 집주인의 균형적 관계 유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10년 유효 갱신가능 체류증명서 발급 등을 실행했다. 이는 많은 사람의 생활을 바꾸었다. 마침내 봉급생활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 미테랑의 최대 관심사는 봉급자와 실업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봉급인상이나 실업수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가상승 억제와 세금인하를 통해서였다. 그는 식료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경감, 직업세 경감, 대규모 사업의 예산배정 제외를 결정했다. 세금을 낮추기 위해 사회보장기금, 공·사기업을 위한 재정지원의 다른 수입원을 찾기 위해 나섰다. — Chapter 3 삶을 변화시키다 중에서
그가 보기에 미국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었다. 그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지리적으로 유럽에 한정된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공산권으로부터의 모든 공격적 의도에 맞서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럽대륙 대부분의 사회민주당과 달리 그는 미군과 핵무기가 유럽에 주둔하는 것을 찬성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미국은 또한 매우 침략적이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강대국이었다. 미테랑은 많은 프랑스 사회당원이나 공산당원들과 달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잠수함에 탑재하는 전술핵무기를 조심스럽게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럽이 단합하고 경제ㆍ정치ㆍ군사적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세계적 세력이 되기 위해 프랑스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불ㆍ독 관계를 유지 강화해야만 했다. — Chapter 4 프랑스를 지키다 중에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미테랑은 많은 계획을 제안했다. 그 중 몇몇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럽이라는 건축물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들은 대규모 시장, 기술, 유럽의 확대, 통화, 방위, 사회복지 권리, 제도적 구조에 관한 것들이다. 매번 프랑스 대통령은 그것을 우선 프랑스와 독일의 계획이 되도록 했다. 그 다음 들로르 유럽집행위원장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다른 회원국들에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게 ‘파는’ 데 성공했다. — Chapter 5 유럽을 건설하다 중에서
내가 일생의 일부를 바쳤고, 그 덕분에 내가 프랑스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인물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영웅은 완벽하지 못했다. 그는 전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실망과 반발의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꼭 필요한 증인들과 생각하고 공부하고 토론했다. 나의 생각이 다듬어졌다. 그는 분명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비시정권의 범죄 행위에는 전혀 손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이데올로기에도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비시에서 주위의 순응주의와 지배적인 유대인 배척주의 그리고 모두 라발과 페탱을 모두 우러러보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는 엄청난 명철함과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레지스탕스에 몸을 담는 것이 아직 적절한 처신으로 생각되지 않던 시절, 많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스물여섯 살에 그는 투철한 레지스탕이 되었다. — Chapter 6 과거의 베일을 벗기다 중에서
1992년 여름 동안 병의 진전이 빨라졌다.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그는 버티려고 해보았다. “나에게 칼질을 하도록 하고 싶지 않다. 병을 더 확산시킬 뿐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스테그 교수는 극비 속에 10년 전부터 그를 돌보고 있었다. 대통령에게는 마스트리히트 조약문제에 관한 텔레비전 토론 다음에 수술을 받을 권리만 주어졌다. 토론 상대자는 필립 세갱이었고 날짜는 1992년 9월10일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그는 나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들기 위해 외출했다. 저녁 10시, 그는 극비리에 코섕병원으로 들어가 스테그 교수 단독 집도로 수술을 받았다. 병원장인 드브레 교수는 마지막 순간에야 그 병원에 고위 인사 환자가 왔다는 것을 통고받았을 뿐, 수술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 Chapter 7 전립선암ㆍ웃음ㆍ신앙ㆍ죽음이라는 것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미테랑의 통치 양식, 우리 정치ㆍ외교의 타산지석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는 지금 본격적인 정치 시즌을 맞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뛰기 시작했으나 과연 큰 정치로 한반도의 난마와 같은 갈등과 모순, 분열과 혼란, 격렬한 대립과 분쟁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와 국민을 행복감에 젖도록 할 수 있는 리더십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유권자만 혼란스럽게 하는 헤쳐모여니 이합집산이니 신당창당이니 하는, 정치인 그들만의 이해타산으로 국민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 모두 통치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을 숙독할 필요가 있다.
『미테랑 평전』은 후세의 작가나 기자가 기록과 문서 그리고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전기가 아니다. 저자인 자크 아탈리는 프랑수아 미테랑이 야당 지도자였던 인연을 맺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최측근인 특별보좌관으로 엘리제 대통령궁의 중심에서 통치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해냈다. 그래서 이 평전은 미테랑의 통치 동반자로서 아탈리의 경험과 대화, 그리고 정치ㆍ외교ㆍ 경제ㆍ사회ㆍ교육ㆍ문화 전반에 걸친 통치행위에 대한 증언이며, 또 공부며, 철학적 사고와 성찰의 결과이자,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대통령궁 내부에 깊숙이 참여한 한 석학의 내밀한 관찰기록이기도 하다.
“미테랑은 민주주의적 정치인이라면 지니고 있으며, 지녀야 할 품위를 보편적 방식으로 구현했다. 그는 가치들을 신뢰하고, 이들을 획득해 나누어줌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경영능력의 소유자였다. 비전, 카리스마, 경영능력이라는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은 거의 없다. 첫 번째 자질만 갖춘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이론가다. 두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위험한 선동정치인이다. 세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상상력이 없는 보수정치인이다.”
아탈리는 미테랑이 이 세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라 평한다.
‘한국 대선’에 나선 정치인 중 이 세 가지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과연 있는가? 대선은 한민족이 전락하느냐,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의 일대 분수령이다. 이 책에는 미테랑이 어떻게 미래를 내다보고 어떻게 프랑스를 위해 지혜와 슬기, 용기와 행동을 투입했는지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실로 많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를 가려 뽑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미테랑과 노무현 대통령, 시작은 같았으나 그 끝은?
아탈리는 “한국은 일반정치인과 국가원수를 구별할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정치인과 달리 한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에 대한 깊은 인식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뛰어난 행정적ㆍ법률적 수완과 시대의 전략적 쟁점들에 대한 엄격한 분석, 굉장한 작업 능력, 뛰어난 기억력, 대단한 신체적 저항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적절한 품성, 자기통제, 예측 능력, 도덕적 지표, 실수를 인정하고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국가에 대한 비전과 확고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 계획의 실행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판에도 무관심하고 필요하다면 일시적 인기 하락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든 점을 갖춰야 진정한 국가원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 취임 당시 프랑스는 국내외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느 것 하나 희망을 주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미테랑을 포함한 참모진들은 국정 경험이 거의 없었다. 미테랑 자신이 정부 각료직을 떠난 지 25년이나 되었으며, 참모진 중에서도 한 명만 장관직을 경험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386처럼 젊은 세대가 주축이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시작도 당시 미테랑의 프랑스와 다르지 않다. 미테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시작은 이념적인 면을 비롯하여 상당 부분 흡사했으나 이후 국내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 달랐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타계 10년이 된 지금, ‘미테랑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그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애정은 각별하다.
미테랑은 여소야대 상황을‘좌우연정’을 통해 탁월한 협상과 타협으로 원활하게 국정을 수행, 경기 부양 및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한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사회지도층들이 서로‘네 탓’‘발목잡기’로 허송세월하는 사이에 부의 양극화는 극에 달하는 등 사회 전반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시작은 같았으나 판이한 결과를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제대로 준비된 대통령’이냐 아니냐가 그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 독자의 평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 정부는 그것을 줄이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라고 당시 총리였던 미셀 로카르에게.
혹 국무회의에서 노무현대통령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고대 세계사는 물론 근,현대 세계사는 나를 주눅들게 한다. 중2때 배운 세계사가 나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도무지 동서 냉전이 어디서부터 와해되어 종식되었는지, 통독은 어떻게 그렇게 삽시간에 이루어졌는지, 소련은 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주저앉을 수 있었는지, 유고내전은 어디서 시작됐고, 르완다 내전은 또 어디서 촉발되었으며, 중동이란 곳은 희망이 없는 곳인지?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신문에서 가끔 친절하게 실어주는 박스기사가 또한 전부.
그래서 미테랑 평전은 일부러 더 보고 싶었다. 그가 20세기 말, 격동기를 대표하는 유럽의 정치인이었기에.
아니나 다를까 그의 통치기간은 유럽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였고, 그런 지각변동의 속도조절은 미테랑의 몸짓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탁월한 외교력, 외국의 국가 책임자들과의 협상과 조율, 밀고 당기기는 그가 아니면 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유럽 통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대처 총리와의 ‘보조금 반환에 대한 협상’, 독일 통일에 앞서 국경선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결국 헬무트 콜 서독 총리를 굴복시키고 마는 협상력, 소련 붕괴를 예고하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수세에서 구해내려 하던 그의 예지력,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위해 강한 미국을 거부하며 미국의 레이건, 부시 대통령과 벌이던 외교력 등. 집권2기 당시의 그의 외교는 현란한 춤사위를 구사하는 발레리나처럼 정교하면서도 세련되었다.
집권1기 시기에는 국내의 안정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던 그가 유럽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매달린 유럽통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 하루 전날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그는 혼신의 힘으로 공개토론을 벌여 프랑스인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51.05%라는 찬성표을 이끌어 냄으로써 유럽 통합의 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었다. 그 자신에 대한 강한 신념이 그러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 공개토론 다음날 그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단다.
이 책 주석 172에는 “미테랑의 집권2기에 거의 모든 난제들이 집중적으로 폭발했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동구 공산권의 민중혁명과 공산주의의 장례, 그리고 소련 제국의 멸망, 냉전 해체와 새 질서 태동, 걸프전쟁과 유럽통합 등. 그는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가는 주역으로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결국 난제들은 유럽 통합의 성공과 유럽의 항구적 평화 구축으로 귀결되었다. 전립선암을 앓으면서도 20세기 최대의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미테랑의 국제정치적 재능과 천재성은 아무리 박수를 보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표현이 미테랑을 잘 말해 주는 요약문이라고 생각한다.
미테랑은 젊은 시절 나치 협력 정부였던 프랑스의 비시 정부에서 18개월 정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미테랑이 반유대 정책으로 유대인 말살에 앞장 선 나치즘의 부역자였다면 이 책의 저자 자크 아탈리는 유대인으로서 그 부역자의 특별보좌관이 되는 셈이었다. 그는 미테랑의 과오를 샅샅이 찾으려 하지만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미테랑을 위해 되레 면죄부를 씌우기 위해 부역의 증거를 찾아내려 한 것처럼 보인다.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미테랑이 영원히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영원한 평화 정착 우선의 정책을 늘 펴는 사람이었음을 저자도 인정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였다. 생래적으로 우파를 싫어했던 확실한 좌파였다.
사회주의자로서의 그는 당선 이후 어느 여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1981년 당선되고 난 후에 일어난 일들은 프랑스가 사회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진보세력들에 이끌려 겪은 경험들 중 가장 오랜 것입니다. 그것은 혁명은 아니고 국제적이며 국가적인 가치와 우선권의 진정한 재분배입니다. 그 안에서 지식과 연구의 발전. 더욱 방법론적이고 심화된 일반인의 교육, 소외의 거부, 자유의 보장, 문화의 확산, 복지 권리의 활성화, 책임의 분산, 지방화, 현대의 정글인 야만적 자유주의의 중지를 모색할 것입니다.”
그는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 은행 등 금융기관의 전면적 국유화, 시장원리보다 계획경제의 선호, 최저임금의 인상 등 프랑스 사회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켰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국제적이며 국가적인 가치라고 말했다. 그런 그였기에 60세 정년제, 주 39시간 근무, 노동조건 개선 등. 그로 인해 프랑스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서두의 질문은 집권2기 시절 국제외교에 전념하면서 내정을 각료들에게 맡긴 그가 당시 총리를 압박하며 물은 질문이었다. 그에게서는 프랑스인들의 삶의 질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장미꽃 세송이를 팡테옹 사원에 바치면서 시작한 취임식, 대통령궁에서 떠날 때는 사회당이 선물했다는 소형 자동차를 타고 파리 근교 아파트로 돌아갔다는 그 소박함. 비록 이 책이 미테랑의 특별보좌관으로 30년 이상을 동거동락한 최측근이 썼다 해서 더 미화되고 과대포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테랑의 말과 행동이 충분히 저자의 진정성을 보장한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비교가 되는 우리 당대의 대통령들. 저자 아탈리가 말한 정치인상. 비전만 갖춘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이론가다. 카리스마만 갖춘 정치인은 위험한 선동정치인이다. 경영능력만 갖춘 정치인은 상상력이 없는 보수정치인이다. ‘그러나 미테랑은 이 세 자질을 모두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저자의 자신감이 부럽기만 하다.
책속에 조지 부시 자택을 방문한 저자가 우연히 조지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방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지 부시의 방은 만화와 탐정 소설로 가득차 있었으며 야구방망이와 권투장갑이 여기저기 널린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역사와 유럽문학의 고전으로 가득찬 그의 아버지 부시의 서재와 대조적으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