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리처드 루드글리 / 뜨인돌출판사 / 2004.3.25
바바리안 (야만인)들은 예술과 사회문화에서 한때 그들을 지배했던 로마의 문화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바바리안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다채로운 삶과 암흑기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 바바리안이란 고대 그리스.로마인을 제외한 유럽인을 가리켜 부르는 말
여기에는 켈트족, 게르만족, 훈 족 등 수많은 부족이 포함된다. 지금껏 바바리안은 문명화 된 로마인의 일방적 시각에 의해 폭력적이고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졌다. 이 책은 왜곡된 바바리안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암흑기’로 알려진 고대 유럽 역사에서 당시의 상황이 야만인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밝히는 것은 일방적 시각에서만 쓰여 온 유럽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기도 하다.” 고 말한다.
3부로 구성되어 바바리안과 로마와의 싸움으로 인한 로마의 몰락, 앵글로 색슨의 역사, 바이킹의 역사를 각각 다루고 있다.

○ 목차
1부 황혼의 효과
1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2장 제국의 변두리(브리튼 섬)
3장 방랑벽과 황금욕
4장 고트 족 : 로마 인의 공포 이야기
5장 그림자 황제
6장 지옥 천사의 역사
7장 반인반마의 흔적
2부 세계를 덮어버린 그림자
1장 히드라 같은 야만인
2장 늪지의 거주자
3장 게르만 족이 물결을 지배하다
4장 두 마리 용의 세계
5장 앵글로색슨 족의 재현
6장 언어 유산
7장 셔튼 후의 공동묘지
8장 전사한 왕의 보물
9장 이교도들의 최후 의식
3부 북쪽의 빛
1장 쌍둥이 수도원
2장 성스러운 섬
3장 바이킹 : 해적 그리고 시인
4장 전함과 환락의 요트
5장 고트 족의 땅 : 야만인의 은행
6장 북대서양 식민지들
7장 신들의 최후 : 바이킹 세계의 종말
○ 저자소개 : 리처드 루드글리
영국 왕립지리연구회 특별연구원이다. 지은책으로 <석시시대 잃어버린 문명>,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등이 있다.
– 역자: 우혜령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대학 언어교육원 강사를 역임했다. 2009년 현재 기업의 통역 및 번역, 출판 번역을 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바바리안>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바바리안-야만인 혹은 정복자>의 출간 의의
역사란 현실을 알 수 있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만든다. 역사가 일방적인 편견에 의해 왜곡되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발전된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역사는 중요하다. 역사는 흑백논리로 기록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양사에서 ‘암흑기’ 또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시기’로 불려진 서기 300~1000년 동안의 고대 유럽 역사로, 지금껏 문명화된 로마인의 일방적 시각에서만 기술되어 온 바바리안의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유럽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있는 영국이나 스웨덴을 비롯한 바바리안들의 많은 유적들을 통해 바바리안들의 사회상, 수준높은 기술과 문화를 하나씩 증명하고 있다.
- 역사는 늘 강한 자의 편일 수밖에 없는가?
바바리안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기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가리키는 바르바로이 (BARBAROI, 야만)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단어 속에는 ‘폭력, 비겁, 미개’ 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세계사에서는 그리스·로마 인을 제외한 고대 유럽 인들을 가리켜 바바리안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켈트 족, 게르만 족, 훈 족 등 수많은 부족들이 포함된다. 이 책은 유럽의 현 지형을 이룩한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으로 아직까지도 폭력적이고 미개한 종족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바바리안들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다룬다. 이같은 인식은 게임에서도 나타나는데, 디아블로의 확장팩인 헬파이어에서의 바바리안은 체력과 공격력이 매우 높은 반면 마법은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일자무식의 극단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또 디아블로 2의 바바리안 역시 매우 강인한 체력과 접근전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책으로 익히는 마법은 단 몇 가지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바바리안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다. 저자는 바바리안들을 결코 폭력적이고 미개하기만 했던 종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로마에 의해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무지’한 것으로만 표현되는 바바리안들의 이미지는 일차원적인 캐리커처일 뿐, 바바리안들도 훌륭한 사회문화 유산을 갖고 있었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성 아폴리나레 교회의 모자이크, 트란실바니아에서 발견된 바바리안들의 보석, 덴마크 남부 니담 늪지에서 발굴된 4세기 색슨 족의 배, 영국 웨스트 스토우의 건축물에서 알 수 있는 앵글로색슨 족의 조직적이고도 안정적인 마을 형태, 영국 우드브리지 근처 서튼 후 배의 매장지에서 발견된 패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보물들, 바이킹들의 조선술과 스웨덴 고트랜드에서 발견된 바이킹 시대의 700점에 달하는 보물들은 폭력적이고 미개했다는 바바리안들도 로마 못지않은 훌륭한 사회문화유산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일방적 시각에 의해서 쓰여진 바바리안들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로마의 문명화된 시각에서 본 바바리안들의 역사를 진실과 혼동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 책의 내용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로마와 켈트 족, 동 게르만, 고트 족 그리고 훈 족에 관한 이야기로 바바리안들과 로마와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인한 로마의 몰락을 먼저 짚고 있다. 내란으로 인한 공화정의 붕괴로 황제의 등극을 야기시킨 로마는 3세기경부터 세력이 강해진 바바리안들과 잦은 갈등을 일으키며 전쟁을 하게 되면서 바바리안들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져 갔다고 한다. 그 예로 로마군의 동의를 얻어 황제가 된 막시미누스 1세가 당시 트라키아라는 지역 태생의 바바리안이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고트 족은 처음으로 로마를 패배시키면서 유럽 고대세계의 질서를 무너트린 종족이었지만 로마의 생활양식을 좋아해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용했다고 주장한다. 고트 족 최고의 영웅 ‘테오도릭’ 황제가 창백하고 생명력 없는 로마풍 모자이크에 여러 가지 돌과 색깔을 사용해 생명력을 불어넣은 일과, 자신의 무덤을 1층은 로마식으로 하고 2층은 1층과 다르게 이국적으로 건설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야만인의 대명사 훈 족의 아틸라 왕이 더 이상 로마를 약탈하거나 파괴하지 않았던 이유는 훈 족의 영토에서 로마의 영향력을 몰아내고 로마가 약탈해 간 금과 보물을 다시 찾는다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목표 이상의 것을 원치 않는, 타 부족과는 다른 독자적인 민족성을 가졌던 증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또 로마 인이 쓴 훈 족에 대한 역사 가운데 ‘들쥐 가죽으로 옷을 만든다’거나 ‘날고기를 먹기 위해 고기를 말 등과 안장 사이에 보관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유목 민족인 훈족은 그들 고유의 문화에 이란 유목민의 의복문화를 접목, 중절모와 헐렁한 바지 등 새로운 스타일의 의복을 유럽에 소개했고, 말 등 위에 날고기를 보관한 이유는 말 안장에 의해 말에게 생길 수 있는 상처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2부는 앵글로색슨 족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이동한 게르만 족과 켈트 족과의 교류를 말하는데, 이들의 결합은 풍성한 예술적·기술적 혁신을 낳았다. 이는 ‘야만인은 편안하거나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는 시각이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중반부터 시작되었던 웨스트 스토우의 발굴을 든다. 웨스트 스토우에는 7개의 강당과 70채의 집이 있는데, 이는 이 마을이 매우 조직적이었으며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기보다는 여유 있고 안정적인 정착 생활을 했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잉글랜드 서퍽 지역의 작은 마을 우드브리지 외곽에 있는 서튼 후에서 발견된 석류석과 금으로 된 어깨걸이, 금으로 만들어진 주머니 뚜껑 등 수많은 보물들이 이들의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3부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앵글로색슨 족과 바이킹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황의 승인을 얻어 40명의 독실한 제자들을 데리고 켄트에 도착한 597년부터 앵글로색슨 족의 개종이 시작되었다. 영국에서는 673년 에그프리드 왕이 베네딕트 비스코프에게 수도원을 세우게 해주었는데, 여기서 수도사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책들이 씌어졌고, 이런 일련의 작업들과 수도사들의 정진이 부족들을 계몽시키는 새로운 교육의 시작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로 인해 영국은 문화후진국에서 벗어나 유럽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전통적으로 유럽의 진보를 중단시켰던 매우 파괴적인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바이킹들의 사회는 엄격한 행동강령은 물론 ‘싱 (Thing)’이라는 자유민으로 구성된 의회를 통해 정의를 실현시켰다. 이밖에도 정착생활을 통해 농장을 유지함으로써 스스로 경제와 가족생활의 기초를 다지면서 안정적 경제기반을 이미 이룩해 놓고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들은 또 콜럼버스의 항해가 있기 500년 전에 뉴펀들랜드에 도착, 북미지역을 탐험했을 정도로 항해술이 뛰어났는데, 이같은 항해를 이용한 무역망의 확대는 유럽 역사의 새 장을 여는 데 기여했으며, 지도와 공예품들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은 이들의 침략행위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독자의 평
유럽사에 등장하는 야만인은 훈족-여기에는 고트족도 포함된다, 게르만족, 바이킹이 대표적이다. 이들 야만족들은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철저하게 “악의 화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자비함과 흉폭함 그리고 무지함이 뒤섞여있는듯한 관찰자의 기록은 공정하기 보다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본 ‘만약에’라는 가정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들 야만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이들은 정복자이면서도 그것을 기록할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피정복자의 문자로 자신들의 업적을 기록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정된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유럽사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들 야만족들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 대신 유물을 남겼다. 그래서 유럽 각지에서 발굴되는 이들 야만족들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이들의 삶과 역사적 기록의 진위여부를 판별해야만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 유물을 통해 바라본 야만족들은 결코 ‘야만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이 활약한 시기인 5세기에서부터 10세기에 걸친 기간이 야만의 시대였고 암흑의 시대였을 뿐이다. 즉 이들 야만인들은 그러한 시대에 활동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야만인 대접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떠올릴때면 원시성이란 상상에 사로잡힌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이 케나의 나이로비의 나이트클럽에 모여 코카콜라를 마시며 디스코를 추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흑인이라는 인종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불안전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미국의 흑인을 생각할 때면 미국인이라는 개념보다는 흑인 가운데 그래도 가장 나은 부류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런 편협된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럽의 야만인들인 훈족, 게르만족, 바이킹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점이 되는 것이다.
고대 로마가 사라진 유럽의 대륙은 정말로 모든 문명이 사라진 어둠의 땅이었을까? 이런 물음으로부터 유럽의 야만인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야만인들은 고대 로마의 경계선 밖에 위치한 사람들이었다. 고대 로마는 라인강과 도나우 강을 지나 카파르티아 산맥을 넘어 흑해에 이르는 장대한 자연적 국경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 국경선 안쪽은 문명이고 그 바깥쪽은 야만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었다. 이들 경계선 바깥의 사람들은 로마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역사적 삶은 로마인의 입장에서 볼 때 혹은 현대의 눈으로 볼 때 야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주지며 유물들은 로마의 영향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독자적인 문명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훈족, 게르만족, 바이킹의 야만의 역사는 이들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과정이면서 야만인에서 유럽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훈족의 경우 고대 세계를 붕괴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게르만족은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감으로서 중세 유럽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바이킹의 경우 유럽의 주변부를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들의 등장과 확산은 고대 그리스-로마적인 세계에 주변부의 문명이 혼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즉 전통적인 유럽의 세계관이 주변 세계의 세계관과 합쳐지면서 확장되고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은 종교적 단일성이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되면서 주변부의 문명은 그리스도교로 순화되어야할 거친 문명, 혹은 교화될 문명이라고 폄하되면서 다원적 유럽은 단일적 유럽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 세 야만인의 기본적 사료는 요르다네스의 게티카Getica,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germania, 이븐 파들란의 여행기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