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박인환 평전
윤석산 / 모시는사람들 / 2003.11.26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 – <목마와 숙녀> 일절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의 일생과 그의 시적 성취 과정을 조명한 ‘박인환 평전’이 나왔다.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고난의 시대를 살았지만 언제나 ‘멋’과 ‘낭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정열의 ‘명동백작’, 박인환. ‘목마를 타고 떠났던’ 그가 꿈과 희망을 잃고 팍팍한 현실의 바다를 표류하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50년대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의 서울 명동거리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낭만의 나그네, 박인환은 또다른 의미로 폐허화하는 21세기 서울에 낭만의 복원을 주장한다.
- ‘목마를 타고 떠났던’ 박인환, 그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박인환이 살았던, 40~50년대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더 허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길에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흘리고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해답일 수 있다.)은 또 무엇인가.
처세서와 경영서가 판치는 오늘, ‘현대’의 우리는 무엇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것인가. 과거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지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며 현대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현대문명을 비판했던, 그래서 당대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던 ‘모더니즘’ 시학. 그 ‘모더니즘’ 시학의 대변자, 박인환을 통해 ‘현대’의 우리를 되돌아본다.
- 잊혀져 가는 이름,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사람…
정치가는 그 권력으로써 현실을 조리 (調理)하여야 한다면, 작가는 이 현실을 저항 정신으로써 구체화하여 인간과 인간과의 융합을 도모함에 그 의무가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불안한 세대의 증인으로서의 작가의 의무는 현대를 능히 지 (支)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인간상을 수립하여 불안한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바 길을 밝힘에 있을 것이다. 벌써 현대의 황폐 의식은 낡은 세계관 속에 숨어서 존립할 수는 없으리만치 입체적이며, 또한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으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다. …. – 본문 126쪽/ 1952.6.16. ≪주간국제≫에 피력한 <신시론> 결성 의의 中.
1945년 해방기부터 60년대 시기의 문인들과 그 시는 현대 시사 가운데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꼽힌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시인들은 학계 연구자들의 꾸준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고 당대 대중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해방기부터 60년대의 시기는 몇몇 대중적인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연구와 관심의 대상에서 비껴서 있었다.
특히 문단이 순수주의와 참여주의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 틈바구니에서, 그러나 가장 삶의 한가운데인 도시 한복판에다 ‘모더니즘’이라는 ‘문학의 영토’를 마련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박인환’. 당 시대 시단의 흐름을 ‘모더니즘’이라는 시상으로 새롭게 물꼬를 튼 그에 대한 연구는 현재 대단히 희박하고, 그리하여 몇몇 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외에는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비운이다.
이에 50년대의 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가십 차원의 풍문이 대단히 풍부했고 또 화려했던 박인환을 시인으로서의 삶, 인간으로서의 삶을 그려내는 ‘이 책’으로 세상에 빛을 또한번 보게 한다는 데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게 했다.
박인환은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신시론>,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후반기>로 이어지는 모더니즘 운동의 주동자로 끊임없이 시적 추구와 성취에 매달리던 진정한 모더니스트였다.
이 책에서는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히 그의 일생의 흔적들을 좇아가며 그려내지는 않았다. 수려한 외모에 러시아식 오버코트를 좋아했던 박인환의 개인적 취향부터 당대 문인들의 모임 터였던 <마리서사> 시절의 낭만과 관련된 풍문들, 후반기 동인회를 둘러싼 이야기, 감상적 실존주의와 폐허의식의 물결에 휩싸인 명동을 누비고 다닌 명동시절의 에피소드, 박인환의 시 세계에 드러난 그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까지 인간 박인환, 시인 박인환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시인의 짧고도 긴 일생을 바탕으로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고, 모더니스트의 대표자였던 박인환을 알아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 목차
제1장 러시아식 오버코트와 박인환
제2장 마리서사 시절
제3장 순수에의 열망
제4장 전쟁, 인간, 허무
제5장 술과 명동과 가난과 時
제6장 미지의 먼 항구, 그 불빛
제7장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부록
연보
주요 연구자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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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윤석산 (尹錫山)
1947년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동 학원을 졸업했으며, 경동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편지」가 당선되었고, 다시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바다 속의 램프」가 당선되었다. 3인 시집 「분리된 椅子」가 있으며 「新感覺」 동인 활동을 하였다. 시집으로는 「바다 속의 램프」(고려원), 「온달의 꿈」(정음사), 「처용의 노래」(문학아카데미), 「용담 가는 길」(동학사), 「적寂」(시와 시학) 등이 있으며, 그 외 시론집 「고전적 상상력」, 연구서 「용담유사연구」, 번역서 「道源記書」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 출판사 서평
- 박인환 그 사람은…
명동의 멋쟁이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를 연상하리만치 잘 생긴 얼굴, 늘 말끔한 중년신사 차림을 하고 기분을 내며 명동을 활보하던 박인환.
어느 모임에서건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이며, 조금은 오만스럽게까지 보이는 풍모.
재치와 유머가 섞인 그의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 한 푼의 돈이 없어도 언제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고, 양주 (洋酒)를 기분 내면서 마시고 싶어 하던 그의 댄디즘적인 사고, 그러나 커피 한 잔도 비굴한 것은 마시지 않는 정신적 귀족의 모습을 보인 사람.
당대의 모더니스트 명동의 어느 다방에서 현대시가 장차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흥분하기도 하며 심각하게 논의하고, 그 당시의 문단의 혼란상에 대하여 개탄과 격분도 금치 않았던 사람.
지금도 그렇지만, 빼어난 수재들만 들어가는 국립의과대학에 입학하고서도 문학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미련없이 떨치고 나와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당시 문인들의 모임터로 대표적인 <마리서사>를 경영하며 문학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가진 사람.

-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그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가 남기고 간 시는 아직 가슴 속 한 켠에 따뜻하게 살아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아직도 자신의 시를 읊조리게 만들어 버린 사람
시인 박인환은 그랬다. 작은 일에도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면 잘 감격을 하던 그의 섬세한 감성, 언제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하여 배가 (倍加)의 정열을 단숨에 뿜어내던 정열의 시인 박인환.
그는 폐허로 변한 명동에서 돌을 비집고 자라는 잡초들 중 가장 억센 억새풀마냥, 때로는 높은 대궁을 바람결에 맡긴 채 자작시를 읊조렸고, 때로는 담배를 피워 물고 바쁘게 다방과 술집을 들락거렸고, 술이 취하면 이내 영화 속의 대사를 외우며 술집 테이블에 올라서서 한 편의 멋진 연기를 보였던 젊은이였다.
이러한 박인환은 “한마디로 광기의 시인이었으며, 그 광기라는 것이 그저 미쳐 날뛰는 단순한 치기가 아니라 소위 그의 멋이 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명실공히 명동의 연인으로 대폿집 마담도, 살롱의 마담도,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도 사랑받는 명동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적 시의 흐름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이룩해 보려고 노력했던 시인이었다. 러시아식 오버코트를 즐겨 입으며 남달리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의 겉치장은 다만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있던 서울의 기운을 이어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 – <박인환이 죽기 3일 전 ‘이상(李箱) 추모의 밤’에서 그의 친구에게 써 준 글귀>

- 박인환 (朴寅煥) 연보
1926년(1세) :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4남 2녀 중 맏이로 출생. 중학생 시절부터 시와 영화에 관심을 두고, 관련 책을 사들이기 시작.
1945년(20세) :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개업.
1946년(21세) :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 발표로 시인 데뷔.
1948년(23세) : 마리서사 폐업. 김경린, 양병식, 김수영, 임호권, 김병욱 등과 함께 동인지 《신시론 (新詩論)》 제1집을 발간. 한 살 아래의 이정숙 (李丁淑)과 결혼, 이후 종로구 세종로 135번지에서 기거. 자유신문사에 입사. 시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世界日報》), 「지하실」(《民聲》), 산문 「아메리카의 영화 시론 (詩論)」(《新天地》1월), 시 「인도네시아 인민 (人民)에게 주는 시」(《新天地》5월), 산문 「사르트르와 실존주의」(《新天地》10월) 등 발표.
1949년(24세) :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5인합동 시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 이 시집에 시 「열차」, 「지하실」 등 5편 발표. 4월, 《민성》지에 시 「정신의 행방을 찾아」 발표. 경향신문사에 입사. 동인 그룹 ‘후반기’를 발족시킴.
1950년(25세) : 6.25 발발.
1951년(26세) : 경향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 종군기자로 활동. 「신호탄」, 「고향에 가서」, 「문제되는 것」, 「벽」 등을 쓰다.
1952년(27세) : 《주간국제》의 ‘후반기 문예 특집’에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이라는 산문 기고(6월 16일). 경향신문사 퇴사, 대한해운공사에 취직.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떠한 날까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등을 쓰다.
1953년(28세) : 7월 중순경, 서울의 옛집으로 돌아오다. 환도 직전, 부산에서 ‘후반기’의 해산이 결정됨.
1955년(30세) :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을 여행. 귀국 후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를 기고(5월 13일 및 17일). 대한해운공사 퇴사. 10월 15일 『박인환 선시집 (朴寅煥 選試集)』 출간.
1956년(31세) : 「세월이 가면」, 「죽은 아포롱」, 「옛날의 사람들에게」 등 쓰다. 3월 20일 오후 9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9월 19일, 문우들의 손으로 망우리 묘소에 시비가 세워지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