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 / 창비 / 1999.7.31
- 80년대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현기영 문학의 본격적 전개
조선조 말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다룬 이 소설은, 거납 (拒納)운동으로 시작된 민란이 어째서 반봉건·반천주교란으로 발전되었는가를 집요한 천착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그리다!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조명해온 작가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에 연재되어 1983년 출간된 이 작품은 구한말 제주도에서 연이어 발생한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다루었다.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치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동명의 연극으로, 1999년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당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구한말의 정치가 김윤식의 기록을 기본 사료로 천주교 측의 자료와 민간 취재 등을 더해, 제주도 전 도민이 봉기한 최대 민란이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거납운동에서 시작된 민란이 민중에 의한 천주교인 박해로 이어지게 된 시대적 요인을 치밀하게 파헤치며 두 민란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한다.
또한 역사를 구성하는 겹겹의 진실을 적객 김윤식, 문객 나인영, 이름 없는 민중들 등 다양한 역사적 주체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했다.
○ 구성
제1장: 제주 백성의 수난사
제2~3장: 운양 대감의 유배 상황
제4~8장: 방성칠의 난
제9~16장: 이재수의 난
제17장: 후일담

○ 저자소개 : 현기영 (HYUN,KI-YONG, 玄基榮)
민족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1941년 제주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 제5회 만해문학상, 제2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1999년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순이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누란』,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이 있다.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다룬 깊이 있는 작품을 써왔고, 중후하고 개성 있는 문체로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 해제
이 작품은 1900년을 전후로 일어났던 제주도의 방성칠란과 신축 제주 항쟁(이재수의 난)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프롤로그 구실을 하는 1장, 방성칠란과 후일담을 담고 있는 2~8장, 신축 제주 항쟁을 다루고 있는 9~16장, 후일담 성격의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금 문제로 인해 일어난 방성칠 무리의 봉기와 좌절, 봉세관(封稅官)의 횡포와 천주교 포교로 인한 제주 민중의 고통, 이재수의 항쟁과 좌절 등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반봉건적, 반외세적 차원의 운동이었던 제주도의 항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전체 줄거리
봉세관 강봉헌의 횡포로 인해 제주 민중의 고통이 가중되는 가운데, 프랑스 신부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일부 천주교인들의 행패 또한 심해진다. 이에 반발하여 유생들과 토호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시위가 무력 충돌로 번지게 된다. 사태가 격화되면서 이 시위는 제주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관노 출신인 이재수가 지도자로 나서면서 제주 하층민까지 참여하는 대대적인 투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프랑스 군함의 무력시위와 관군의 개입으로 한 달여의 투쟁은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 작품의 역사적 배경
.방성칠의 난 (방성칠란)
1898년 제주도에서 방성칠 등이 가혹한 세제 징수의 시정 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민란으로, 제1차 제주 민란이라고도 한다. 당시 서울에서 파견된 세리의 지나친 조세 수탈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을 지도자로 수백 명이 관아에 몰려가 화전세, 목장세 및 호포의 과다 징수와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아 달라는 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제주 목사 이병휘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방성칠을 잡아들일 궁리만 하였다. 결국 제주 목사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분개한 지역민들이 다시 봉기하면서 1만 명 이상이 참가한 민란으로 확산되었다. 한 달 이상 진행된 민란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나 3년 뒤에 일어난 이재수의 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재수의 난 (신축 제주 항쟁)
1901년 제국주의 (프랑스)를 등에 업고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일부 천주교도의 행패에 맞서 이재수와 오대현 등이 이끈 민란으로, 제2차 제주 민란이라고도 한다. 1900년 강봉헌이 제주도 봉세관으로 부임하면서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였고 이 과정에 천주교인들을 활용하였다. 또한 천주교회가 신목, 신당을 없애는 등 제주도민의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를 하여 도민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하였다. 이에 대정 군수 채구석과 유림 오대현은 ‘상무사’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봉세관과 교회에 대항하였고, 관노 이재수를 주축으로 민란이 일어나면서 천주교인 300여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정부에서 파견한 군대에 의해 약 한 달간 진행된 민란이 진압되고, 주동자들은 교수형이나 징역에 처해졌다.
- 역사 소설의 가치
역사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창조하여 보여 줌으로써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고찰을 유도한다. 동시에 역사서에서 배제되기 일쑤인 민중의 삶을 추가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독자는 이를 통해 어떤 삶이 옳고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 출판사 서평
중후한 문체로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조명하면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활동을 해온 소설가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에 연재되어 1983년 출간된 이 작품은 구한말 제주도에서 연이어 발생한 방성칠란(1898)과 이재수란(1901)을 다룬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뿌리 깊은 학정에 시달려온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치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역작이다. 출간 당시 “명실상부하게 80년대 우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우람하게 열어놓았다”(소설가 이호철)는 평을 얻으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동명의 연극으로, 1999년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각색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은 옛 표기를 현행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장정을 바꾸어 작품이 지닌 묵직한 감동을 새롭게 전한다.
- 수난과 저항의 역사, 면면히 이어져온 민중의 강인한 혼
『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 제주도 전 도민이 봉기한 최대 민란이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의 전 과정을 당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구한말의 정치가 김윤식의 기록을 기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 측의 자료 등과 민간 취재를 더해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해낸다.
소설은 을미사변의 연좌로 김윤식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중앙 정부와 토호들의 수탈에 시달려온 제주도의 수난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제주 목사 이병휘의 가혹한 징세가 극에 달하자 방성칠을 장두(狀頭)로 한 대정읍의 화전민들이 제주성으로 몰려가 조세의 폐단을 성토하는 소장을 올리는 일이 일어난다. 이에 이병휘가 은밀히 주모자들을 잡아들일 계획을 세우자 그 사실을 안 화전민들이 각 마을에 통문을 돌려 만명 가까운 민당(民黨)을 모아 제주성으로 진군하여 목사 이병휘를 비롯한 탐관들을 붙잡고 징세 문서와 호적을 불태운다. 제주성을 점령한 민당 지도부는 남학당(南學黨)을 중심으로 진열을 정비하고 제주도에 유배된 적객(謫客) 최형순과 김낙영을 끌어들여 제주도 삼읍 수령을 혁파하고 환곡 부담을 반으로 줄인다는 방을 써붙이며 정감록에 근거한 역성혁명을 기도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토착 양반들과 김윤식 일행을 비롯한 적객들이 대항군을 조직하고 최형순?김낙영과 내통하여 계략을 내어 방성칠을 비롯한 지도부를 붙잡으면서 민란은 진압되고 만다.
그러나 방성칠란이 수습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제주 목사 이상규와 왕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봉세관(封稅官)으로 온 강봉헌의 가혹한 수탈이 이어진데다, 이 무렵 전래된 천주교가 교세를 확장하면서 프랑스 신부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일부 교인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특히 천주교인들이 봉세관의 마름으로 고용되면서 세금과 천주교로 인한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아가 반(反)기독교 격문을 내건 유생이 천주교 교인들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유생들은 대정 군구 채구석의 후원하에 상무사(商務社)라는 결사를 조직한다. 때마침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오대현을 능멸한 교인을 치죄한 데 반발해 교인들이 관가에 보복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상무사는 오대현을 장두로 하여 민란을 주모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봉기는 애초에는 프랑스의 개입을 우려해 봉세관의 수탈에 항의하는 차원에 그치고자 했으나, 천주교 측이 협상을 가장해 민당을 기습, 지도부를 생포하고 사상자가 발생하자 사태는 민당과 천주교 측의 전면적인 충돌로 치닫게 된다.
관노 출신인 이재수가 강우백과 더불어 새 장두로 자원해 나서면서 민당은 진열을 정비해 교인들이 피신해 점거하고 있는 제주성으로 진격한다. 성 안의 교인들과 성을 포위한 민당이 대치하는 가운데 교인들의 발포로 민당 측의 사망자가 늘어나자 민당 측도 성 밖의 교인들을 색출해 처형하기 시작한다. 열흘이 넘는 격렬한 대치 중에 성 안에서도 무녀와 퇴기(退妓) 등이 주축이 된 여성들이 개문(開門) 투쟁을 벌여 마침내 성문이 열리고, 제주성에 입성한 이재수의 주도로 숨어 있던 교인들 수백명이 색출당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다. 그러나 입성 후 유생들이 지도하는 강우백의 동진(東陳)과 민중들이 주도하는 이재수의 서진(西陳) 간의 분열이 불거지고, 프랑스 군함의 무력시위와 관군의 개입으로 이재수를 비롯한 장두들이 체포되면서 민란은 종식된다.
작가 현기영은 거납(拒納)운동에서 시작된 민란이 민중에 의한 천주교인 박해로 이어지게 된 국내외의 복합적인 시대적 요인을 사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파헤침으로써 두 민란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럼으로써 『변방에 우짖는 새』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적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두 민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라 할 만한 성과로서 완성되었다.
거납운동으로 시작된 이 민란에서 어째서 수많은 천주교인이 희생당해야 했는가? 관에 의한 천주교 박해가 막을 내린 지 어언간 이십여년이 지난 세월에 어째서 관이 아닌 민에 의해서 그러한 불상사가 저질러졌는가? 그것이 과연 천주교 측이 주장하듯이 ‘박해’인가, 아니면 마을 촌로들이 말하듯이 ‘의거’인가? 교난(敎難)이냐, 교란(敎亂)이냐? (…) 전(全) 도민이 봉기했던 이 두 민란은 그 규모로 보나, 그 쟁점의 심각성으로 보나 역사의 정당한 조명을 받아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실상이다. (…) 민란은 결코 평지돌출 현상이 아니다. 화산의 분출은 그것의 지질학적 까닭이 있고, 종기가 곪아 터짐은 그것의 병리학적 연유가 있게 마련이다. 민란이 있게 한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병리현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국사의 문맥에서 파악해보려는 것이 이 소설이 지닌 최대의 의의일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나 『변방에 우짖는 새』에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의 복원에만 한정되지 않는 커다란 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소설 틈틈이 민란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적객 김윤식의 목소리와 비교적 민중적 입장에 가까웠던 그의 문객(門客) 나인영의 목소리가 개입하는 가운데, 이름 없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대목마다 생생하게 펼쳐지고 여기에 이 모두를 조망하는 작가적 시선이 더해짐으로써 소설은 역사를 구성하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겹겹의 진실을 각각의 역사적 주체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민란의 발단과 전개과정에서 작동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동학(動學)을 문학으로써 포착하는 데는 그 이상의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을 통해 『변방에 우짖는 새』는 중앙과 변방의 위계를 전복하고 더 나아가 제주 안의 위계들마저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교착하는 제주의 속내를 핍진하게 드러낸다.”(문학평론가 최원식) 더불어 당시 제주도의 풍속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제주어의 보고라고 할 만한 풍부한 어휘들이 소설의 서사와 긴밀하게 어울려 자아내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변방에 우짖는 새』가 보여주는 수난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민중의 억센 혼을 발견하는 일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 빼어난 문학적 성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

○ 추천평
가렴주구와 탐관오리의 발호가 도저히 민중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가학적일 때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민란이다. 그러나 봉건주의 외에 다른 이념을 알지 못하던 왕조시대의 민란은 몇몇 희귀한 예를 제외하면 대개 거납 (拒納) 운동의 범주를 넘 어서지 못했다. 전 (前)시대의 백성
은 먹이의 피라밋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자신의 숙명을 여간해서는 거역하려 들지 않았다. 민란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살려달라는 아우성이지 결코 거역의 몸짓은 아니었다. 언론이 없는 민중이 입을 열 수 있는 방법이 란 오직 그 길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이 소설은 왕조 말기에 제주도에서 3년 간격으로 발생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다룬다. 이른바 남학당 (南學黨)이 주축이 된 방성칠란은 거납운동으로 시작되어 자칫 반란으로 뒤바뀔 뻔하다가 좌절된, 비교적 성격이 단순한 민란인 데 비해서 이재수란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뒤얽혀 있다. 거납운동으로 시작된 이 민란에서 어째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희생당해야 했는가? 관 에 의한 천주교 박해가 막을 내린 지 어언간 이십여 년이 지난 세월에 어째서 관이 아닌 민에 의해서 그러한 불상사가 저질러졌 는가? 그것이 과연 천주교측이 주장하듯이 박해
인가, 아니면 마을 촌로들이 말하듯이 의거
인가? 교난 (敎難)이냐, 교란 (敎亂) 이냐? 제주시 동남쪽 황사평의 교인 묘지에는 그때 죽은 교인들을 순교자로 모시고 해마다 추모제가 벌어지고 있고, 민란의 진원 지인 대정읍 인성리 네거리에는 이재수 등 민란의 세 장두를 기리는 삼의사비 (三義士碑)가 세워져 있다.
전 (全) 도민이 봉기했던 이 두 민란은 그 규모로 보나, 그 쟁점의 심각성으로 보나 역사의 정당한 조명을 받아야 함에도 전혀 그 렇지 못한 것이 실상이다. 남학당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이재수란에 대해서도 천주교측 호교가 (護敎家)의 아전인수격인 논문 이 두어 편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두 민란에 대한 고찰이다. 당시 제주로 귀양가서 두 민란을 차례로 겪었던 한말 (韓末)의 거물 정객 김윤식 의 『속음청사』를 근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측이 공개한 신부와 주교의 서한문, 황성신문, 그리고 민간에서 취재한 촌로의 증언을 참고하여 이 글이 씌어졌다.
나는 이 소설에서 문학성의 추구보다는 두 민란의 진정한 성격을 구명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았다. 민란은 결코 평지돌출 현상 이 아니다. 화산의 분출은 그것의 지질학적 까닭이 있고, 종기가 곪아터짐은 그것의 병리학적 연유가 있게 마련이다. 민란이 있 게 한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병리현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국사의 문맥에서 파악해보려는 것이 이 소설이 지닌 최대의 의의일 것 이다.
민란의 진행과정을 재생시키는 데 나는 적잖이 애를 먹었다. 그 복원작업은 깨어진 사금파리 몇 조각을 맞춰보며 도자기의 원형 을 살려내려는 일과 흡사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상상력이 문제가 되는데, 문학에서 높이 평가하는 분방한 상상력
은 사건의 원 형을 크게 왜곡시킬 것 같아서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창조작업일진대, 상상력을 절제하여 복원작업 에 더 열중한 이 작품은 아마 문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