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변선환 전집 전1~7권
변선환아키브 편 / 한국신학연구소 / 1996 ~ 1999
- 감리교신학 대학원장을 지낸 신학자인 변선환 전집
변선환 아키브에서는 추모 1주년 되는 1996년 8월에 변선환 신학에 대한 연구 논문집인 『변선환 종교신학』을 펴냈고, 그를 기점으로 4년 간 유고 논문 일체를 7권 전집으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판하였다.
전집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권 『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학』(1996), 2권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1997), 3권 『한국적 신학의 모색』, 4권 『요한 웨슬레 신학과 선교』(1998), 5권 『그리스도론과 신론』(1998), 6권 『현대신학과 문학』(1999), 7권 『현대 문명과 기독교 신앙』(1999).
○ 목차
- 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학
-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 한국적 신학 의 모색
- 요한 웨슬리 신학과 선교
- 그리스도론과 신론
- 현대 신학과 문학
- 현대 문명과 기독교 신앙
○ 저자소개 : 변선환 (邊鮮煥)
1927년 9월 23일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신학교, 한국신학 대학 대학원 미국드류 대학교 등에서 공부하였고, 스위스 바젤 대학 신학부에서 기독교와 불교 간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감신대 대학원장과 신학대학 학장직을 역임하였고, 조직신학회 회장 및 한국기독교 공동학회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세계 종교인 평화회의, 크리스천 아카데미 모임을 통해 종교간 대화 원리를 몸소 실천하였으며, 종교다원주의 신학 사조를 소개하고 체계화 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신학 분야의 세계 석학들과도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이웃 종교인, 학자들로부터 바르고 참된 좋은 목사님으로 칭송되었으나, 정작 그가 속한 감리교회로부터는 이단 시비에 말려 출교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2년에는 30여 년 간의 교수 생활을 접는 정년 은퇴를 제자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맞이하였고, 마음의 고통을 승화시키며 학자의 길을 정리하다가, 1995년 8월 8일 너무도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변선환 박사의 저서, 역서 및 논문 목록은 은퇴기념 논문집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 신학』(한국신학연구소, 1992)에 실려 있으며, 소천 후 남긴 장서를 보관하고 그의 유고를 정리할 목적으로 한국 신학계 최초로 변선환 아키브를 만들어 제자들의 학문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변선환 아키브에서는 추모 1주년 되는 1996년 8월에 변선환 신학에 대한 연구 논문집인 『변선환 종교신학』을 펴냈고, 그를 기점으로 4년 간 유고 논문 일체를 7권 전집으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판하였다. 전집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권 『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학』(1996), 2권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1997), 3권 『한국적 신학의 모색』, 4권 『요한 웨슬레 신학과 선교』(1998), 5권 『그리스도론과 신론』(1998), 6권 『현대신학과 문학』(1999), 7권 『현대 문명과 기독교 신앙』(1999).
○ 신학자 변선환 (邊鮮煥)의 생애 및 활동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이다.
1927년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46년 진남포상공학교 기계과 졸업반 때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진남포 유사리교회에서 목회하던 신석구 목사에게 감화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진남포상공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제련소 설계사로 근무하다가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1948년 평양 성화신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던 중 6·25전쟁이 터져 1·4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하였다. 부산에서 감리교신학교 (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편입하였고, 신학생 신분으로 1952년 예산 지방 봉산교회를 개척,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1953년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군종장교로 7년간 복무하였고, 1955년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0년 한국신학대학 (현 한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학교 교목이 되었으며, 1965년 십자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가 드류대학교 (Drew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1967년부터 감리교신학대학 교수가 되어 1992년 은퇴할 때까지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강의하였다.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로 봉직하는 사이 1971∼76년 스위스 바젤대학에 유학하여, 「선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의 궁극성」이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감리교신학대학 원장을 거쳐 1988년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 되었고, 1991년 한국기독교공동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신학자로서 변선환은 ‘진보주의’ 노선을 취하였다. 초기에는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 신학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 야스퍼스의 실존주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에 집중하다가 1960∼70년대 미국과 스위스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 토착화 신학과 종교 간 대화 신학에 몰두하였다.
그는 1977년 『월간목회』를 통해 총신대학교 박아론 교수와 “교회 (기독교) 밖에도 구원 있는가?” 라는 주제로 신학 논쟁을 벌인 후, 1982년 『기독교사상』에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그리고 1984년 『신학사상』에 「타종교와 신학」을 발표하고, 1990년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심포지엄에서 「불타와 그리스도」를 발표하여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다.
개종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교 간 대화를 통해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완성 (해방)시켜 나가야 한다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교회 내 보수적 목회자, 특히 부흥사들의 비판과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감리교신학대학 홍정수 교수의 포스트모던 신학은 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해 1991년 10월 감리교 특별총회에서 “감리교 교리에 위배된다.”는 평결을 받았고 1992년 5월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에서 최고형인 ‘출교’를 선고받았다.
1992년의 종교재판을 전후하여 감리교회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계와 신학계에 찬반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한국 교회의 뿌리 깊은 진보•보수 간 신학갈등이 다시 한 번 노정되었다.
종교재판 이후 변선환은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다가 1995년 8월 7일 원고 집필 중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하였다.
사후에 그의 부인 (신옥희 교수)와 제자들이 만든 변선환아키브에서 그의 논문과 저술을 묶은 『변선환 전집』 (전 7권, 1996∼1999), 유고 설교집 『인생은 살만한가』 (2002)를 간행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