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병사 슈베이크 상•하
야로슬라프 하셰크 / 학원사 / 1985.2.15
- 「체코」풍자문학의 대표작 선량한 병사 「슈베이크」
선량한 병사 「슈베이크」, 그는 특출한 재주를 하나도 갖고있지 못하다. 그저 밑빠진 술독이고 대식가이다. 얼핏보면 무위도식에만 능한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둔중하게 느껴지는 전형적인 농부의 「포커·페이스」 속에는 어떠한 폭력에도 굽히지 않으려는 끈기와 앙칼진 저항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어려운 고비를 눈치껏 넘겨버리는 날카로운 기지가 유해보이는 조그만 눈에 번뜩이고있다.
병사 「슈베이크」는 1차대전이 터지자 많은 「체코」사람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군대에 끌려나간다. 그는 그 속에서 때로는 병자를, 때로는 또바보를 가장해가면서 스스로를 웃음감으로 만든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그는 「오스트리아」 군대를,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지배계급을 웃음감으로 만들어가며 그 나름으로 버티어나갔던 것이다.
거대한 힘에 맨주먹으로 맞선다는 것처럼 무모한 일도없다. 「슈베이크」는 몹시 몸을 사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보다도 더많이 「오스트리아」군대를 괴롭혀주고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을 마음껏 골탕먹인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슈베이크」는 물론 가상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차페크」와 함께 「체코」가 자랑하는 「유머」와 풍자문학의 쌍벽을 이룬 「하세크」가 1910연대 초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소설 「선량한 병사 슈베이크」의 주인공이다. 작자는 「슈베이크」가 「오스트리아」 군대에 끌려간 다음부터 저지른 여러가지모험을 통해서 권력자 「오스트리아」의 관료, 군벌을 매섭게 비판했다.
이 작품은 완결되지는 못했지만 병사 「슈베이크」의 이름은 그 어느 영웅보다도 더 널리 「체코」에서 알려졌으며 다시없이 친밀한벗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련과맞선 오늘의 「체코」 사람들이 다시 병사 「슈베이크」를 연상하고 있는것도 당연한 얘기다.
오늘처럼 괴롭고 가파로운 때 「슈베이크」는 그들에게 다시없이 귀중한 용기와 웃음과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자소개 : 야로슬라프 하셰크
야로슬라프 하셰크 (체: Jaroslav Hašek, 1883년 4월 30일 ~ 1923년 1월 3일)은 체코의 작가이자 출판인, 언론인이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으나 나중에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프라하의 자유분방한 예술가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체코 아나키스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그로 인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합법적인 온건당>을 설립한 그는 주로 당시 정치적인 상황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일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군에 자원하여 참전하다가 후에 러시아에서 소집된 체코 독립군에 가담하게 되어 극동 러시아로 가게 된다. 거기서 한국인을 만난 하셰크는 나중에 자신의 작품에 한국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변경하여 러시아군에도 가담했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체코슬로바키아로 귀향하여 원래의 자유주의적 생활방식으로 돌아갔다.
초기에는 주로 여행담을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과 유머레스크를 집필하여 잡지를 통해 널리 발표했다. 직접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들에는 그의 작가로서의 기질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하셰크는 사회주의적인 시를 풍자했으며 위선이나 감상주의를 비판하고 윤리적이고 문학적인 규범을 싫어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작품을 저술하였다.
그의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4권으로 이루어진 미완의 장편소설인 『세계대전 중의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의 운명』(1921-1923)이다. 하셰크는 대중의 언어로 작품을 썼으며 무의미한 전쟁과 구사회적 질서를 하찮고 우스운 것으로 묘사했다.
– 역자: 강흥주
○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
“슈베이크, 하느님 맙소사. 쏴 죽여버릴 테다, 이 짐승 같은 놈. 멍청이. 이 새끼. 이거 얼빠진 놈 아냐?”
“충성, 신고합니다. 중위님. 저는 아주 얼빠진 놈입니다.”
요제프 슈베이크 실제로 그런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민간인으로 돌아가서는 주인 없는 개를 잡아다 팔고 폭음을 일삼는다. 슈베이크라는 인물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 사이에 하나의 전설이 되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뒤에 책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이것은 실로 문학의 대중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다.
초기 독자들은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을 싸구려 잡지의 연재소설로 읽었다. 슈베이크는 체코 의회의 끊임없이 허튼소리만 늘어놓는 것으로 유명한 어느 의원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그 당시 프라하에서 술고래로 유명했던 슈트라슬리프카 부관도 주인공의 모델이었다.
이 작품이 세계 문학으로 진입하리라고는 그 당시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 소설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런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까지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셰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로 징집당한 뒤 전쟁포로가 되었다가 체코군으로 편입되었고, 결국에는 내전에서 볼셰비키 진영에 가담해 싸웠다.
하셰크는 자신이 만들어낸 슈베이크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 어릿광대 역을 즐겨 했고, 아주 호전적인 술꾼이었으며, 어떤 난관이든 헤쳐나갔다. 공산주의자 사이에서조차도 성공을 거뒀다.
하셰크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고, 상대가 누가 됐든 말로써 사로잡아버렸으며, 나중에는 정치국원까지 됐다. 하지만 프라하에서는 반동혁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하마터면 그는 러시아 첩자로 몰려 벤첼 광장에서 처형당할 뻔했지만 말로써 살아남았다.
하셰크는 프라하 출신으로, 말 그대로 보헤미안이었다. 그러나 하셰크는 슈베이크와 달리 대학교육까지 받은 지성인이었고,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였다. 그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글이든 가리지 않았다.
똑같은 ‘독점’ 이야기를 여러 신문사에 한꺼번에 팔아넘기는가 하면, 자신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에 관한 르포를 써서 파산 위기에 놓인 한 동물잡지를 살려내기도 했다. 그는 술집과 카페에만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에게 1크로네만 주면 한 쪽 분량의 글을 살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만에 거의 2000편에 이르는 만담과 짤막한 재담이 그의 펜 끝에서 술술 풀려나왔고, 세 편의 장편소설도 탄생했다. 그 가운데 두 편은 유실됐고 유일하게 남은 작품이 그의 주저이자 유작인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이다.
“슈베이크 루카쉬 중위는 서로 말없이 눈만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나. 지금 보니 내가 너를 쏴 죽이지 않은 게 이상하군. 그렇게 하더라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어림도 없지. 나는 무죄선고를 받을 게다. 내 말 알아듣겠어?’
‘충성, 신고합니다, 중위님. 충분히 알아듣고말고요.'”
무엇이 이 착한 병사를 그토록 우스꽝스럽게 만드는가? 그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항상 들어주는 반면에 자신에게 지정된 자리를 줄곧 고수해 왔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반역적이다. 그는 상황이 언제 다시 바뀔지 정확히 알고 있기에 자발적으로 감방에 들어간다.
권력과의 대결 구도에서 슈베이크는 순순히 복종하면서도 한발 앞서 나가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이다. 슈베이크는 자신에게 제기되는 질문을 진지하게 해석하지 않고 머릿속에 막 떠오르는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야말로 해학적인 그의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기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경찰 고문관은 이를테면 그가 불경죄로 시작해서 대역죄에 이르기까지 죄라는 죄는 다 범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면서 그의 엄청난 죄목을 하나하나 읽어준다. 이에 대해 아무 죄도 없는 슈베이크는 순진하게 얘기한다.
“그것 좀 심하군요. 너무 지나치면 건강에 해로운데.”
요제프 슈베이크라는 인물을 처음 구상한 것은 1911년이었다. 그후 이소설은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세 권으로 출판됐다. 그러나 이 소설은 독일어 번역본이 출간되고 나서야 빛을 보았다.
정작 체코인들은 처음에 전혀 열광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는 게으름뱅이이자 기결수인 슈베이크에게 반감까지 가졌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다르게 보았다. 쿠르트 투홀스키는 이 소설을 경이로운 작품이라며 격찬했다.
에르빈 피스카토르가 1929년 베를린에서 무대에 올린 연극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슈베이크”라는 제목의 극작품으로 개작했다. 이로써 슈베이크는 더 이상 폭음을 일삼는 선동가로만 머물지 않고, 온갖 책략을 다 동원해서 악한 군부 세력과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인간적인 반항아이자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그려졌다.
이러한 해석과 함께 슈베이크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원작자인 하셰크는 그러한 유명세를 누리지 못하고, 1923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인은 폭음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