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부활
레프 톨스토이 / 동서문화사 / 2017.01.20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1889년 12월부터 1898년 끝 무렵까지 10여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 3대 장편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애독되고 있다.
주인공 공작 드미트리 네흘류도프가 카츄샤(다른 이름은 류보프, 성은 마슬로바)란 여자를 만나 타락시킨 죄의식을 톨스토이 특유의 방법으로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 목차
주요인물
제1편…11
제2편…238
제3편…433
톨스토이 인도주의 문학…531
톨스토이 연보…556
○ 등장인물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 소설의 주인공으로, 과거 카추샤를 타락시킨 죄책감을 씻을 방법을 찾고있다
.카추샤 마슬로바 : 네흘류도프네 집에서 쫓겨난 후 독살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수감됨
.코르챠기나 : 네흘류도프와 결혼 말이 오가는 공작의 딸
.마리야 바실리예브나 : 네흘류도프를 유혹하여 깊은 관계를 맺은 유부녀
.마슬레니코프 : 군에 있을때 경리장교 였던 고지식한 사람. 카추샤 사건 해결을 위한 면회를 도와줌
.메니쇼프 : 아내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 중
.페도샤 : 남편 독살 미수로 수감되었으나 보석 기간동안 화해함. 시어머니가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려 했으나 시베리아 징역형을 선고받음
.베라 : 벽촌의 여교사 였으나 혁명 운동으로 수감된 정치범
.블라디미르 시몬손 : 카추샤가 결혼하기로 하는 정치범
○ 내용
네흘류도프 공작은 어느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는데, 거기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카추샤를 만난다. 젊은 시절에 네흘류도프는 고모네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 카추샤는 고모의 양녀 명목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하녀 노릇을 하며 살고 있었다. 고모네 집을 떠나기 전날 밤에 네흘류도프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겁탈했다. 그가 떠난 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고모는 화가 나서 그녀를 쫓아내 버린다. 졸지에 갈데없는 신세가 된 카추샤는 매춘부로 살아가다 끝내는 범죄자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네흘류도프는 카추샤의 타락이 자신의 비열한 행동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 속에서 자신의 방탕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반성한다. 또 땀 흘리는 농민은 가난하게 살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지주와 귀족은 농민을 착취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현실의 부당함을 깨닫는다. 카추샤의 석방을 탄원하면서 감옥을 드나드는 동안, 네흘류도프는 무고한 사람들이 법률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죄인으로 갇혀 있는 현실을 발견한다. 또,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영지에 내려갔다가 농민의 궁핍한 생활을 비로소 깨닫고,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귀족 사회의 부패와 천박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결국 네흘류도프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카추샤를 따라 떠난다. 그리고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벽지의 어느 여관방에서 그는 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서를 읽다가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킬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 저자소개 : 레프 톨스토이 (Leo Nikolayevich Tolstoy, Lev Nikolaevich Tolstoi)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 출판사 서평
– 힘없는 대중의 슬픈 운명!
『부활』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네플류도프와 카튜사의 이야기, 또 하나는 재판제도?군대?관료조직 더 나아가 국가 그 자체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며, 마지막 하나는 신의 계시이다. 이 세 부분은 연결되기도 융합되기도 어려운 것으로서 이 소설 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삐걱대고 있다. 이 셋은 오래된 지층 위에 흙이 차곡차곡 쌓이는 식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세 요소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네플류도프와 카튜사 이야기’라는 찢어진 상처에서 날카로운 사회비판이 튀어나오고, 이 사회비판이라는 상처에서 또 갑자기 신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하나는 ‘카튜사의 영혼’이고 다음은 ‘네플류도프의 의식’이며, 마지막은 ‘신의 부분’이다.
카튜사의 불쌍한 운명만이 소설로서 잘 구성되어 있고, 이것이 나머지 부분을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주고 있다. 카튜사의 운명, 그녀가 겪는 기쁨과 슬픔은 역사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수많은 ‘힘없는’대중의 운명을 나타낸다.
소설 구성면에서 본다면『부활』은 그 무렵 러시아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을, 네플류도프와 카튜사의 상호 관계를 통해 더없이 유기적인 형태로 잘 그려놓았다. 특히 가난한 농민생활에 대해서는, 그것이 농노해방 뒤에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빈곤이 생겨난 현실상을 밝혀냈다.
『부활』 속에서 무엇보다 톨스토이가 설득력을 가지고 그린 것은 재판과 교도소의 실태이다. 거기에는 ‘사람을 재판하지 말라’는 톨스토이 만년의 사상이 톨스토이식 복음서의 해석으로 숨김없이 폭로된다.
– 상류 계급 허위를 통렬하게 비판!
소설 전체에 걸쳐 카튜사는 거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하고픈 말을 가슴속에 숨겨두고 “용서하세요”라고만 말한다. 그런데 네플류도프는 진지한 사람이라 그녀의 단 한 마디 속에서 중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녀의 눈빛과 애처로운 미소를 보고는 역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부러 물러서는구나 하고 지레짐작해 버린다.
카튜사의 진짜 속마음은 어땠을까. 네플류도프는 자신이 카튜사와 결혼하는 것은 ‘희생’이고, 그녀가 그의 제안을 억지로 거절하고 다른 이와 맺어지는 것은 ‘배를 불태워 버리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런데 카튜사 본인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녀의 마음을 짐작해 보는 것은 『부활』을 읽을 때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몇 안 되는 카튜사에 대한 묘사는 다채롭고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네플류도프와 헤어지는 장면으로, 법정에서 멍하니 있는 그녀의 모습이다. “카튜사는 이따금 몸을 움찔거리며 반론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얼굴을 붉히다가도, 곧 괴로운 듯이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바꾸어 끼고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다시 낭독자에게로 눈길을 보냈다.” 하고픈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묵직한 무언가가 그 말을 꾹 눌러 버린다. 그녀는 말을 삼키고 한숨을 내쉰다.
톨스토이는 카튜사를 통해서 가난과 근심?억압에 갇혀 버린 러시아 농민의 영혼을 나타낸 것이다. 토지?재산?위엄?행복?사랑 등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렸으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영혼의 화신이며, 네플류도프가 대표하는 지주?상인 계층에게 학대 받아 온 존재이다.
톨스토이는 카튜사의 비극적 운명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이 속한 상류 계급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 톨스토이의 영원한 휴머니즘
등장인물 중 네플류도프만이 유일하게 성격적으로 객관적 진실성을 띠지 못했다. 그 까닭은, 톨스토이가 자기 자신의 사상을 그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서른세 살 난 도락가의 육체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흔 살 먹은 자신의 늙은 영혼을 담아 놓았다.
네플류도프는 호의호식하는 청년 귀족이다. 자신이 유혹한 처녀에게 돈을 좀 쥐여 주고서 깨끗이 떠나갔던 이 호색한이 갑자기 카튜사 사건의 사회적 배경을 파헤치는 집요한 사상가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카튜사가 자기를 알아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눈을 내리까는 남자다. 그렇다면 그가 카튜사의 운명이 어찌되든 상관 않고 이 위기를 잘 넘기고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축배라도 들었어야지 ‘객관적 진실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네플류도프는 갑자기 나서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고, 그 결과 제정 러시아의 잔혹함을 파헤치는 ‘영웅’이 된 것일까.
그 까닭은, 네플류도프는 톨스토이에게 조종당하는 로봇과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네플류도프의 죄과를 헤아려 벌을 내리는 대신, 그 스스로 ‘서른세 살 난 도락자’의 육체에 파고든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의 뒤틀림과 엄청난 비약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상가의 맹렬한 분노와, 애를 태우며 생각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네플류도프(톨스토이)는 무책임한 권력자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 사람들(죄인들)은 모두 정의를 파괴하고 법을 어겨서 체포되거나 수감되거나 추방된 것이 아니라, 단지 관리나 부자가 인민에게서 착취한 부(富)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곧 이런 결론이 나온다. “올바른 인간이 머무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감옥이다.” 왜냐하면 감옥에 갇히지 않은 사람은 ‘관리나 부호가 인민을 착취하는 행위’를 돕거나 방관한 자이기 때문이다.
『부활』을 읽는 이들은 사회와 인생에 대한 무시무시한 톨스토이의 통찰에 순수한 감탄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