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붉은 10월 혁명 : 레프 트로츠키 (혁명의 역사)
레프 트로츠키 / 북메이커 / 2017.7.13
– <러시아 >10월 혁명, 혹은 볼셰비키 혁명 (十月革命)
1917년 2월 혁명에 이은 러시아 혁명의 두 번째 단계이다. 10월 혁명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하에 볼셰비키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혁명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10월 혁명의 진짜 주체는 레닌 등의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아닌, 민중들이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 특파원으로 와 있던 일본 언론인은 민중혁명의 기운이 달아오른 모습에 대해 “노동자와 사병들이 근위병들의 탄압에도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레닌 자신도 “혁명이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주도한 민중혁명인 2월 혁명 후 러시아로 귀국한 트로츠키는 레닌과 다시 손잡고 전쟁반대와 임시정부 타도 투쟁을 벌이다가 볼셰비키당에 정식으로 입당하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된다.
이어 무장봉기를 조직해 10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소비에트 러시아의 외무장관이 된다. 1918년 붉은군대 즉, 적군(赤軍)을 창건, 황제파인 백군(白軍)과의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1919년 코민테른 선언문을 기초한다.
레온 트로츠키의 최후의 저서 《배반당한 혁명》은 미국 하퍼스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자객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암살당할 당시 그의 책상에는 교정을 마친 교정쇄가 있었는데,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곧바로 하퍼스 출판사에 배달되었다.
당시 카스 캔필드 편집장은 미국이 독일과 전쟁을 벌일 것을 내다보고 출판을 미루었다.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소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트로츠키의 원고를 금고에 보관하였으며, 이미 인쇄한 트로츠키의 책들도 서점에 깔지 않고, 서고에 보관하였다.
○ 목차
머리말
러시아 혁명(10월 혁명)의 배경과 전조
러시아 혁명 : 붉은 10월 볼세비키
1. 10월 혁명의 교훈
10 월 혁명을 연구해야한다
2월과 10월의 ‘노동자 농민 민주주의 독재’
조국방위 및 전쟁 지속에 대한 투쟁
4월 당협의회
7월 시기, 코르닐로프 쿠데타, 민주회의, 예비 의회
10월 혁명 전야에; 이후의 파장
10월 봉기와 소비에트 ‘합법성’
노동계급 혁명에서 소비에트와 당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하자
이 책에 대한 간략한 논평
2. 10월 혁명을 옹호하며
들어가는 말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
혁명의 의미
‘쿠데타’
10월 혁명의 원인들
불균등 발전 법칙
결합발전의 법칙
농민
민족문제
연속혁명
10월 혁명의 전제조건
볼세비키당
10월 혁명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10월 혁명에 대한 결산
10월 혁명과 이 혁명의 역사적 위치
인류의 미래
3. 러시아 평가와 전망
러시아 사회구성체에 대하여
재발간에 붙이는 저자 서문
제1장 러시아 역사발전의 특수성
제2장 도시들과 자본
제3장 1789-1848-1905년의 혁명들
제4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제5장 프롤레타리아 권력과 농민
제6장 프롤레타리아 정권
제7장 사회주의의 제반 선행조건들
제8장 러시아에서의 노동자 정부와 사회주의
제9장 유럽과 혁명
제10장 권력을 위한 투쟁
부록 : <레프 트로츠키>는 누구인가?
<참고문헌>
판권 페이지
○ 저자소개 : 레프 트로츠키 (Leo Dawidowitsch Trotzki, 1879 ~ 1940)
저자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Leo Dawidowitsch Trotzki, 러: 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1879년 11월 7일 ~ 1940년 8월 21일)의 본명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Leib Davidovich Bron-stein)으로 보통 레프의 영어식 이름을 따서 레온 트로츠키라고 불린다. 그는 1879년 11월 7일 러시아 남부 야노프카에서 유대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나로드니키 비합법 서클에 가담했다가 곧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남러시아노동자연합을 창설했다. 1898년 체포돼 시베리아로 유배됐다가 1902년 탈출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런던에서 레닌을 만나 이스크라 그룹에 합류한다.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2차 대회에서 멘셰비키에 가담했으나 1904년에 결별하고, 1917년 7월 볼셰비키에 가입하기 전까지 양 분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1905년 혁명에서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이 됐다. 1906년 다시 체포돼 시베리아 종신 유배형을 받았으나 1907년 탈출했다. 국외에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통일을 도모했으나 실패하고 1914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0년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다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 되어 10월 혁명 당시 무장봉기를 지도했다. 그후 적군을 창설해 1925년까지 군사인민위원을 역임하면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레닌과 함께 제3인터내셔널을 창설했다.
레닌 사후 당의 노선을 놓고 스탈린과 대립하다가 1927년 제명돼 1929년 국외로 추방됐다. 각국을 전전하다가 1936년 멕시코에 정착했다. 1940년 8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될 때까지 스탈린에 맞서 투쟁하며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를 지켜냈다.
한국에 소개된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혁명사』, 『연속혁명, 평가와 전망』, 『나의 생애』, 『인민전선 비판』, 『반파시즘 투쟁』, 『배반당한 혁명』 등이 있다.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는 10월혁명에서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당의 지도자 중 하나로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했다. 레닌의 사후 스탈린과 이론적인 차이가 생겨 권력투쟁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뒤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도끼로 살해당했다.
– 역자 : 볼셰비키그룹
역자 볼셰비키그룹은 사회주의 정치를 실천하는 활동가 모임으로 트로츠키 저작들의 번역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는가』, 『레닌과 전위당』, 『제국주의와 전쟁』, 『러시아 혁명사』 등을 번역했다.
○ 책 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들은 노동계급 혁명을 지도하는 정당이 없이는 혁명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노동자들은 자생적인 봉기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고도로 공업화되었으며 고도의 문화적 수준을 누렸던 독일에서조차 1918년 11월 노동자들의 자생적 봉기는 권력을 자본가계급에게 넘겨주었을 뿐이다. 한 유산계급은 다른 유산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 자신의 부와 문화적 수준 그리고 구 국가기구 내의 수많은 연줄들을 통해 정치적 행동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신의 혁명정당 없이는 절대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11~12쪽
수세기를 통치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은 관료적 왕정보다 훨씬 우수한 정치 훈련을 받았다. 부르주아 의회가 노동계급에게 어느 정도 정치 훈련을 시켜준 반면 부르주아 계급 역시 의회를 통해 반혁명 전략을 훨씬 더 많이 고안했다. 이제 부르주아 계급은 의회를 통해 사민주의자들을 사적소유의 주요한 기둥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만 말해도 의회가 부르주아 계급에게 얼마나 많은 장점을 제공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은 격렬하고 가차 없을 뿐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계산된 전투를 거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1917년 러시아 혁명보다 훨씬 더 계획적인 혁명이 될 것이다.-81쪽
자유부르주아는 정권을 장악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자신이 전혀 참여하지 않은 투쟁의 결과 두 번 이상 권력을 잡았다. 권력장악을 위해 대단히 좋은 기관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 대중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오랫동안 주는 법은 알았어도 갖는 법은 알지 못했다. 이들은 노동에 종사한다. 그리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참고 견딘다. 희망한다. 그리고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떨쳐일어나 투쟁한다. 그리고 죽는다. 다른 세력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고 배반당한다. 절망에 빠져 고개를 늘어뜨린 후 다시 노동에 종사한다. 이것이 모든 사회체제에서 이어져온 인민 대중의 역사다. -111~112쪽
후에 레닌이 된 울리야노프의 동생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인민주의자들의 투쟁과 정치적 결론을 몸소 체험하면서 성장했다. 아주 어린 청년기부터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반석 위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노동계급에게 얼굴을 향했다. 잠시도 농촌 마을에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는 노동자들을 통해 농민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았다. 혁명 선배들로부터 자기희생의 능력과 끝을 보려는 적극성을 물려받은 그는 어린 나이부터 새로운 지식인과 선진노동자 세대의 혁명 스승이 되었다. -112~113쪽
과학 기술은 흙, 물, 불, 공기 등 4원소의 압제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곧 자신이 압제를 행하면서 인간을 가두었다. 인간은 자연의 노예 상태를 면했으나 기계의 노예 그리고 더 나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의 노예가 되었다. 대양의 바닥까지 잠수하고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지구의 정반대에서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이 자랑스럽고 용감한 자연의 지배자는 자기 경제의 맹목적 힘의 노예가 되었다. 현재 세계 경제의 위기는 이 사실을 특히 비극적 방식으로 증언하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시장 법칙을 합리적 계획으로 대체하고 생산력을 인류의 필요에 조화롭고 순종적으로 기여하도록 강제하는 것, 이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이다. 오직 이 새로운 사회적 기초를 통해서만 선택받은 극소수가 아닌 모든 남녀 시민이 자신의 피곤한 팔다리를 뻗고 사상의 영역에서 완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126~127쪽
○ 출판사 서평
–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의 성과와 교훈에 대해 쓴 책
레닌, 스탈린 등 혁명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의 성과와 교훈에 대해 쓴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적군(赤軍)을 지휘하는 군사위원장이었던 트로츠키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10월 혁명의 교훈」과 「10월 혁명을 옹호하며」란 두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10월 혁명의 교훈」은 러시아 혁명의 성공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지 못하고 독일과 불가리아에서 혁명이 실패한 후,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10월 혁명의 교훈을 다시 아로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월 혁명을 옹호하며」는 러시아 혁명 15주년을 맞아 트로츠키가 덴마크에서 했던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원리로 일어났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우리는 그 미완의 혁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러시아 민중들은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민중의 나라를 건설했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적 성취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오늘, 부의 양극화와 실업,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폐해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는 다시금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고 있다.
이 책 『10월 혁명』은 레닌, 스탈린 등 혁명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의 성과와 교훈에 대해 쓴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적군(赤軍)을 지휘하는 군사위원장이었던 트로츠키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10월 혁명의 교훈」과 「10월 혁명을 옹호하며」란 두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10월 혁명의 교훈」은 러시아 혁명의 성공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지 못하고 독일과 불가리아에서 혁명이 실패한 후,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10월 혁명의 교훈을 다시 아로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월 혁명을 옹호하며」는 러시아 혁명 15주년을 맞아 트로츠키가 덴마크에서 했던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원리로 일어났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은 실패한 혁명인가,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인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을 단지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 동인과 과학적 원리를 지닌 역사로 복원함으로써, 오늘날의 우리가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 ‘10월 혁명’ (볼셰비키 혁명) 개관
‘10월 혁명’, 혹은 ‘볼셰비키 혁명’ (十月革命, 러: Великая Октябрь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cкая революция)은 1917년 2월 혁명에 이은 러시아 혁명의 두 번째 단계다. 10월 혁명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도 아래 볼셰비키들이 이루었으며, 카를 마르크스 사상에 기반한 20세기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혁명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10월 혁명의 진짜 주체는 레닌 등의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아닌, 민중들이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 특파원으로 와 있던 일본 언론인은 민중혁명의 기운이 달아오른 모습에 대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근위병들의 탄압에도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레닌 자신도 “혁명이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 10월 혁명 (十月革命)
.러시아 혁명의 일부
.날짜: 1917년 11월 7일 (당시는 율리우스력 사용으로 10월로 칭함)
.장소: 러시아 공화국 페트로그라드
.결과: 볼셰비키의 승리, 러시아 공화국의 붕괴, 소비에트 러시아의 건설, 러시아 내전의 시작
.교전: 볼셰비키, 적위대 / 러시아 공화국
.지휘관: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옵세옌코 /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표트르 크라스노프
.병력: 수병 10,000명, 적위대 20,000–30,000명 / 의용병 500–1,000명, 여성대대 1,000명
.피해 규모: 미미 / 전원 투옥 또는 추방
10월 혁명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분열하여 형성된 극좌 세력인 볼세비키가 일으켰다. 일련의 러시아 혁명 속에서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탄생시킨 2월 혁명에 이은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10월 혁명에서는 2월 혁명으로 출범한 입헌민주당 (카데트) 주도의 임시정부가 쓰러지고 임시정부와 병존하고 있던 볼세비키 중심의 소비에트 (노동자, 농민, 인민위원회)로 권력이 집중되었다. 이것에 이어 러시아 내전 (1917 – 1922)이 일어나, 결국 1922년에 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다.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채택하고 있었으며, 현재의 태양력에 비해 13일이 늦었다. 따라서 양력으로 계산하면 11월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고유명사로 고착되어 계속 10월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