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비잔티움 연대기 세트 [전3권]
원제 : BYZANTIUM
존 줄리어스 노리치 / 바다출판사 / 2007.4.9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에 위치한 지중해의 보석 이스탄불.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이 도시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역사를 감추고 있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옮긴 330년 5월 11일 역사에 등장한 비잔티움 제국. 이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는 1453년 5월 29일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존재한 제국이 된다.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며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주는 방파제가 되었던 비잔티움 제국. 이 책에서 비잔티움 역사의 세계적 권위자 존 노리치 경은 주류 역사가들의 왜곡과 침묵의 음모에 갇힌 비잔티움 제국 천년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한국어판에는 170여 장의 도판 자료와 30여 장의 지도 자료를 수록하여 비잔티움의 뛰어난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 ‘연대표’, ‘왕조 가계도’ 등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서를 더욱 친절하고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비잔티움이라는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목차
– 비잔티움 연대기 1
서문 | 문명은 비잔티움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1. 신이 보낸 자, 콘스탄티누스의 등장 323년까지
2. 교회는 하나가되어야 한다 323년 ~ 326년
3. 제국의 중심은 동방으로 326년 ~ 337년
4. 떠도는 권력 337년 ~ 363년
5. 위기에 처한 제국 363년 ~ 395년
6. 중병을 앓는 로마 395년 ~ 410년
7. 두 개의 암흑, 이단과 훈족 410년 ~ 453년
8. 서방 제국의 몰락 455년 ~ 493년
9. 거듭나는 제국 493년 ~ 532년
10. 제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532년 ~ 540년
11. 고트족의 왕 토틸라의 도전 540년 ~ 549년
12. 만년의 유스티니아누스 549년 ~ 565년
13. 내리막길을 걷는 제국 565년 ~ 610년
14. 최초의 십자군 610년 ~ 641년
15. 고조되는 이슬람권의 위협 641년 ~ 685년
16. 코를 잘린 황제 685년 ~ 711년
17. 제1차 성상 파괴 711년 ~ 775년
18. 비정한 어머니 이레네 775년 ~ 805년
주석
옮긴이의 글
왕조 기계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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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잔티움 연대기 2
서문 | 절정의 시대와 뒤이은 몰락의 대서사시
1. 변방의 도전 800년 ~ 814년
2. 부활한 성상 파괴 814년 ~ 829년
3. 테오필루스의 번영기 829년 ~ 842년
4. 복권된 성상 842년 ~ 856년
5. 경쟁하는 두 교회 857년 ~ 866년
6. 두 차례의 암살로 빼앗은 제위 866년 ~ 867년
7. 번영을 이끈 마케도니아 황제 867년 ~ 886년
8. 제국의 기틀을 다진 현제 레오 886년 ~ 912년
9. 촌뜨기 황제의 등장 912년 ~ 920년
10. 제위 찬탈자의 멍에 920년 ~ 945년
11. 학자 황제 945년 ~ 963년
12. 사라젠의 저승사자 963년 ~ 969년
13.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 969년 ~ 976년
14. 권력을 향한 험난한 도정 976년 ~ 989년
15. 불가르족의 학살자 989년 ~ 1025년
16. 쇠퇴하기 시작하는 제국 1025년 ~ 1041년
17. 파플라고니아 왕조의 최후 1041년 ~ 1042년
18. 결정적인 교회 분열 1042년 ~ 1055년
19. 파멸의 서곡 1055년 ~ 1059년
20. 제국의 운명을 가른 만지케르트 전투 1059년 ~ 1081년
주석
옮긴이의 글
왕조 가계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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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잔티움 연대기 3
서문 | 제국으 ㅣ몰락, 전설이 되어 버린 역사
1. 위기에 등장한 유능한 황제 1081년
2. 제국을 위협하는 노르만족 1081년 ~ 1091년
3. 십자군의 시대 1091년 ~ 1108년
4. 대제의 자격을 갖춘 황제 1108년 ~ 1118년
5. 제국의 위기에 등장한 현군 1118년 ~ 1143년
6. 제2차 십자군 1143년 ~ 1148년
7. 시칠리아를 둘러싼 국제정세 1149년 ~ 1158년
8. 만년의 마누엘 콤네누스 1158년 ~ 1180년
9. 잔혹한 황제 안드로니쿠스 1180년 ~ 1185년
10. 예루살렘에서 전해진 비보 1185년 ~ 1198년
11. 비잔티움을 정복한 십자군 1198년 ~ 1205년
12. 라킨 제국과 망명 제국 1205년 ~ 1253년
13. 부활한 제국 1253년 ~ 1261년
14. 생존을 위한 외교 1261년 ~ 1270년
15. 최후의 교회 통일 1270년 ~ 1282년
16. 해적을 고용한 제국 1282년 ~ 1311년
17. 할아버지와 손자의 권력 다툼 1307년 ~ 1341년
18. 불필요한 내전 1341년 ~ 1347년
19. 수렁으로 빠져드는 제국 1347년 ~ 1354년
20. 술탄의 가신이 되다 1354년 ~ 1391년
21. 서유럽에 호소하다 1391년 ~ 1402년
22. 티무르의 유산 1402년 ~ 1425년
23. 하늘은 기뻐하고 1425년 ~ 1448년
24. 제국의 최후 1448년 ~ 1453년
후기
주석
옮긴이의 글
왕조 가계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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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존 줄리어스 노리치 (John Julius Norwich)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외교관으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나와 문화 연구와 역사 저술 활동에 뛰어들어 비잔티움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호쾌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정평이 나게 된 역사가이다. 그는 1929년에 태어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1952년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베오그라드와 베이루트의 대사관에서 일했다. 제네바 군축회담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1964년에 외교관으로서의 탄탄대로를 박차고 나와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 뒤 왕립 빅토리아회, 왕립 예술협회, 왕립 문학회, 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를 돌며 예술, 역사, 건축,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 『아토스 산』, 『베네치아의 역사』 등 그가 저술한 책은 외교관 출신다운 노련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서술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 연구자들도 그의 학구열과 학문적 업적에 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 역자 : 남경태 / 남상일 (필명)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국내 대중 교양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39권의 저서와 106권의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고, 2014년 별세했다.
‘종횡무진 인문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 ‘종합 지식인’이라는 그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가 전하는 지식의 세계는 넓고 풍요롭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한 그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경계 간의 울타리를 허물고 인문학이라는 숲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며 혼자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누려온 그이기에, 지금 ‘혼자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책은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지은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역사》, 《개념어 사전》,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철학 입문 18》, 《종횡무진 한국사 1, 2》, 《종횡무진 서양사 1, 2》, 《종횡무진 동양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30년 전쟁》, 《페다고지》, 《비잔티움 연대기 1~6》 등이 있다.
○ 관련 자료
– 비잔티움 제국에 관한 10가지 질문과 대답
누구나 들어본 적 있지만, 그 이름을 제외하면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비잔티움 제국. 비잔티움은 언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멸망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다음의 10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알아보자.
1. 비잔티움 제국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293년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쓰러져 가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고, 그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 아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다. 이것이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이다. 이후 서방의 로마 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족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의 손에 멸망하고, 동방의 로마 제국, 비잔티움만이 남게 된다.
2. 콘스탄티누스는 왜 로마 제국의 수도를 동방의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는가?
당시 로마는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점점 화석화되었고, 헬레니즘 세계의 새롭고 진보적인 사고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학교와 도서관도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크, 페르가몬에 비해 뒤처졌다.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바람에 인구도 점점 감소했다. 제국 전체가 재정 문제로 인해 여러 차례 붕괴할 상황에까지 몰렸던 판에 ‘동방의 부’라고 알려진 동방의 훨씬 더 큰 경제적 자원은 어떤 정권이라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비잔티움 제국은 과연 역사상 가장 오래 존재한 제국이었나?
로마 제국은 공화정이 시작된 기원전 510년부터 서기 476년까지 986년간 존재했고, 신라는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기원전 57년부터 56대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한 935년까지 992년간 존속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공식적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330년 5월 11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갓 스물을 넘긴 이슬람 술탄 메메드 2세에게 멸망하는 1453년 5월 29일에 끝난다. 1123년 18일. 인류 역사상 단일 제국으로서 가장 오래 존속한 제국이다.
4. 비잔티움이 천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장자 상속제가 명확하지 않은 비잔티움 제국은 쿠데타를 통한 황제의 교체로 정치적 모순을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제위를 이을 사람이 없을 때는 군대가 신속하게 황제를 선출해 권력의 공백을 메웠다. 즉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한 시스템이 가동되었던 것이다. 또한 동방의 이슬람 세력과 북쪽의 슬라브족, 서쪽의 게르만족 사이에서 각각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 다양성의 모범”으로 세력의 균형을 맞추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 유연한 외교술과 포용력으로 제국의 생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만약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명의 힘과 경제력이 강했던 오리엔트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슬람 제국은 서유럽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 세계는 이슬람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소수 종교에 머물렀을 것이고, 유럽에는 금발의 파란 눈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6. 비잔티움 제국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을 받은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었다. 살아남은 학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피신했고, 그곳에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과 사상을 전파하여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7.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잔티움인이라고 불렀을까?
당시에는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름은 18세기의 서구 역사가들이 동로마와 서로마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시민들은 단지 로마인으로 태어나 로마인으로 죽었고, 항상 스스로 로마인, 로마 제국이라고 불렀다.
8. 비잔티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인가?
비잔티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로는 단연 비잔티움의 시작을 알린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들 수 있다. 또한 유스티니아누스는 동서 로마를 통일하려 노력했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휘하의 벨리사리우스라는 장군을 질투했는데,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최고의 장군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불가르족의 학살자’라고 불린 바실리우스 2세(재위 976~1025)는 100명의 포로 중 단 한 사람의 한쪽 눈만 남긴 채 99명을 모두 실명시킨 뒤 본국(불가리아)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9.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남자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나?
레오 4세의 아내 이레네(재위 792~802)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남편을 통해서, 남편이 죽은 뒤에는 그 자신이 직접 황위에 올라 제국을 다스렸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8세의 딸 조에(재위 1042)는 3번의 결혼을 하여 3명의 남편을 황제로 올리고 양자도 황제로 올렸으며, 나중에는 여동생인 테오도라(재위 1042, 1055~1056)와 함께 공동 여제가 되었다.
10. 비잔티움 제국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비잔티움 제국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갓 스물의 술탄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이다. 10만 명에 육박하는 오스만투르크 군사에 맞서 7천 명의 병력으로 45일간 항전하다 멸망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결정적으로 힘을 잃게 된 것은 제4차 십자군 전쟁(1202~1204) 때문이었다. 본래의 목적을 잊고 폭도 무리로 변해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한 십자군에게 받은 상처를 비잔티움은 끝내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 비잔티움 제국 천년의 명대사
“내 손으로 직접 심은 양배추를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도 권력을 추구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짓을 단념할 텐데.” – 20년 이상 황제로 재위했지만 스스로 황위에서 물러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자진 퇴임은 로마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305년 속세에서 물러나 달마치야 해변의 살로나에 은둔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복귀해 달라는 막시미아누스의 전갈에 한 대답.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믿음을 가질 권리를 부여하노라.” – 313년에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의 밀라노 칙령. 많은 사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공인을 계기로 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서양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저는 결코 제 손으로 이 황후의 의상을 벗지 않을 것이며, 자주색 옷은 가장 고귀한 수의라는 옛말에 따를 것이옵니다.” – 532년 니카의 반란 때 수도에서 대피하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꾸짖으며 테오도라가 한 말이다. 여장부다운 황후의 용기와 결단에 힘입어 유스티니아누스는 반란을 진압하고 전제권력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자주색은 황제의 의복을 상징하는 색이다.
“설사 새라고 해도 우리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809년 불가르족의 포위 공격을 받게 된 니케포루스 1세의 말. 니케포루스 1세는 가혹한 세금으로 민심을 잃고,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 굴욕적인 공납을 강요당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불가르족 정벌을 떠났으나 군대는 적의 함정에 빠져 섬멸당하고, 그 자신은 전사하였다. 그의 두개골은 크룸을 위해 술잔으로 만들어졌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설득한다 해도 우리는 따르지 않을 것이오.” – 815년, 스투디움의 대수도원장 테오도루스가 황제 레오 5세에게 한 말이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레오 5세는 황제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제국 내부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성상 파괴를 진행했다. 수도원장 테오도루스는 이 말을 끝으로 곧바로 해임되었고, 새로 임명된 총대주교의 식탁은 경박한 대화, 유쾌한 이야기, 음란한 농담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옥좌 앞에는 도금된 청동 나무가 솟아 있고, 그 가지에는 역시 도금된 금빛의 새들이 가득 앉아 있다. 옥좌는 땅바닥까지 내려왔다가 갑자기 허공에 높이 솟아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 949년 서방 사절단으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크레모나의 주교 리우트프란트가 여행기에 묘사한 비잔티움 제국 황실의 풍경이다. 당시 비잔티움에 비하면 서유럽은 촌이나 다름없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포르피로게니투스를 알현하는 이 장면에서 비잔티움의 눈부신 화려함에 압도당한 서유럽인의 놀라움을 엿볼 수 있다.
“도시의 성문을 닫고 그 안에서만 지배하라. 그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니.” –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바예지드가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구스에게 한 말. 1391년에 즉위한 마누엘 2세는 선왕과는 달리 의욕적인 황제였으나 그 역시 커져 가는 오스만투르크 세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술탄의 이 말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곳을 파괴했고 시간은 도시의 이름을 파괴했다. – 술탄의 가신이 된 마누엘 2세는 제국의 영토를 줄이러 떠나는 흑해 원정에 참가하는 모욕을 당한다. 황폐해진 도시를 거칠 때마다 들려오는 투르크 병사들의 자신만만한 대답이다.
“지금 우리 제국에게 필요한 인물은 위대한 바실레오스가 아니라 훌륭한 관리자다.” – 1425년 임종을 앞에 둔 마누엘 2세가 과도한 야망을 가진 아들 요한네스 8세를 걱정하며 옛 친구 게오르기우스 스프란체스에게 한 말이다. 요한네스는 투르크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하고 동서 교회의 통합에 서명했으나 이런 행동은 백성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결국 그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간이 목숨을 걸 만한 명분은 네 가지가 있다. 신앙, 조국, 가족, 주권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위해서는 누구나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대들은 위대하고 고결한 백성들이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후손이다.” –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구스가 오스만투르크와의 마지막 결전의 날을 앞두고 군대 지휘관들에게 한 연설.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 그날,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황제의 의복을 모두 벗어던지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 출판사 서평
– 문명과 예술, 탐욕과 열정의 제국 비잔티움 : 그 위대하고 화려한 천년의 역사가 펼쳐진다!
쇠망한 로마 제국의 뒤를 이어 역사에 등장한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며 1123년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제국으로 자리 잡는다. 동방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지켜 준 방파제였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예술을 천년 넘게 계승·발전시켜 온 제국. 하지만 서구의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 왜곡과 침묵의 봉인에 갇히고 만다.
이 책은 원고지 7000매가 넘는 방대한 지면에 330년부터 1453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비잔티움 제국 1123년의 역사를 담았다. 『로마인 이야기』의 종간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와 의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제국 비잔티움의 위대한 탄생 : 지중해의 보석, 비잔티움 제국. 문명 세계는 비잔티움에 빚을 지고 있다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옮긴 330년 5월 11일 역사에 등장해 1123년 18일 동안 제국을 유지하다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제국이다. 로마 제국의 기운이 쇠퇴하던 시기 역사에 등장해 천 년 넘게 유럽 세계를 지배했으며, 동로마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 지금의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 자리 잡아,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학문과 예술이 융합된 특유의 문명을 창조했다. 또한 페르시아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지켜 온 방파제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적 유산을 간직하고 발전시킨 중세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중세가 끝날 무렵까지 서유럽 세계는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 비하면 촌구석에 가까웠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이 전해지지도 않았고, 통일된 세력이 없어 군사적으로도 취약했다.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 세계는 호시탐탐 유럽으로의 진출을 노린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을 것이고, 중세 유럽의 학문과 예술 또한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 학문을 집대성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14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역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사의 중대한 계기들의 기폭제가 되었던 비잔티움 제국. 오늘날의 문명은 비잔티움 제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
– 왜곡과 침묵의 음모를 넘어 세계사의 지도를 완성한다
“성직자 환관, 여인들의 음모와 독살, 반역, 배신과 친족 살해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서구의 주류 역사가들은 악의적인 왜곡과 침묵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역사의 공백으로 만들어 버렸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했던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또한 W. E. H. 레키(『유럽 도덕의 역사』)는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성직자, 환관, 여인들의 음모와 독살, 반역, 배신과 친족 살해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문명 세계에서 가장 경멸스러운 역사”라는 혹평을 퍼부었다. 그들은 동방적 색채가 강했던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20세기의 독자들은 서유럽 세계만을 다룬 반쪽짜리 역사를 배우면서 그것을 서양사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였고,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모호하거나 왜곡된 인식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이르는 최근까지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로마 제국 쇠망사』에 필적할 만한 동로마사를 저술하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를 되찾는 것이며, 지금까지 배워 온 반쪽짜리 역사를 벗어나 비로소 세계사의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역사가인 존 노리치가 전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 88명의 황제와 영웅, 악당이 펼치는 장대하고 생생한 역사의 드라마
학술적인 무게를 벗어던지고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역사의 인디애나 존스’를 자처하는 저자 존 노리치는 천년제국 비잔티움을 다스린 88명의 황제뿐 아니라 수십 개의 이민족을 다스린 성군과 폭군,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를 특유의 호쾌한 필치로 펼쳐 나간다. 외교관 출신다운 노련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서술, 능수능란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보다 생생하고 나관중의 『삼국지』보다 흥미로운 인물 열전과 정사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인문서 저술과 번역에 힘써 온 『개념어 사전』의 저자 남경태의 명쾌하고 힘 있는 번역은 이 책에 제2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옮긴이는 생소한 용어와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는 풍부한 주석, 그 자체로 동서양의 역사를 한번에 꿰뚫는 명쾌한 후기를 통해 저자와 독자의 적극적인 대화를 이끌어 낸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편지
여기 그 전성기에 서쪽으로는 지브롤터부터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제국이 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가장 부유하고 문명화된 제국이었으며,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가장 화려한 제국이었습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제국의 역사가 제가 배우던 역사 수업 시간 내내 거의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 서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고대 그리스·로마 영웅에 대한 예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두 고대 문명의 계승자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 콘스탄티노플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며 그리스 세계에 로마 제국의 문화를 성공적으로 이식했습니다. 비잔티움은 위대한 로마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클라우디우스, 하드리아누스의 제국과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제국이고, 향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1123년의 시간 동안 이 제국 시민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로마 시민이라고 불렀습니다.
비잔티움이 그리스와 로마라는 두 위대한 문명을 융합하여 발전시켰다면 앞의 두 문명보다 비잔티움 제국을 더 많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서구 역사가들은 정반대의 관점을 택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을 고대 그리스 예술의 조화로운 아름다움과 철학적 깊이, 로마의 법령과 군대의 질서, 공학 기술의 우수성 등을 전혀 갖지 못한 무가치한 문명이라고 평가한 것이지요.
20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역사가들 사이에서 비잔티움 문명이 앞선 두 문명을 전혀 다르게 발전시켰으며 결코 그들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비잔티움 문명이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독자들에게 이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비잔티움 3부작을 3분의 1로 줄인 요약본이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제 손가락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편집했던 글들이 이제 온전한 모습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인다는 데서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비잔티움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를 즐겁게 항해하시기를 빌겠습니다. _ 2007. 02. 14 존 줄리어스 노리치
○ 옮긴이와의 대화
1. 2000년에 비잔티움 연대기 요약본도 직접 번역을 했는데, 이번에 3부작 전체를 다시 번역하시면서 감회가 어떠셨는지요.
지은이는 이 책을 마치면서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마쳤을 때의 느낌과 비교했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저도 그런 기분을 좀 이해할 것 같습니다. 7년 전에 요약본을 번역할 때도 느꼈지만, 지은이의 서술 감각과 문장력이 워낙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구성과 문장을 갖춘 책은 번역자로서 접하기 드문 행운이지요. 요약본도 지은이가 직접 3부작을 축약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번역자로서는 완역을 하고 싶은 게 꿈이게 마련인데, 마침 그 꿈이 실현되어 고맙고 다행스런 마음입니다.
2. 존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 3부작은 무려 원고지 7,000매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에 낯선 지명이나 인명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번역하시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지명과 인명에 관한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비잔티움의 황제나 로마 교황의 이름이 영어로는 John, Paul, George(마침 비틀스 멤버들이네요!)라고 되어 있어도 그것들을 요한네스, 파울루스, 게오르기우스 등으로 바꿔야 했죠. 문화 수입국으로서 부담해야 할 ‘페널티’라고 해야 할 겁니다.
3. 한국 독자들에게 비잔티움은 무척 생소할 텐데, 비잔티움의 역사가 한국에서 갖는 의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는 동유럽-중동의 고대사와 중세사에 해당하는데, 이 부분은 우리가 아는 동양사와 서양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중요한 대목을 역사적으로 되살리지 못하면 과거에 동양사와 서양사가 어떻게 교호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금관의 사슴 뿔 장식이 고대 스키타이 양식과 거의 똑같은 점은 고대 세계에 극동과 중동의 문화적 교류가 상당히 두터웠음을 말해 줍니다. 또 돌궐은 만주와 서양으로 각각 이동해 오늘날 터키(투르크=돌궐)까지 진출하게 되죠. 그 여파로 결국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게 되고요. 이렇게 세계사적 호흡은 무척 넓습니다.
4. 선생님께서는 비잔티움 연대기를 ‘황제 열전’이라고도 표현하고 계십니다. 88명의 황제를 포함해서 비잔티움 제국에서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꼽자면 누가 있을까요.
떠오르는 인물이 많지만 특히 인상적인 황제는 바실레우스 2세와 레오 6세입니다. 바실레우스는 ‘불가르족의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비잔티움 황제들 중 보기 드물게 뛰어난 무골이었고, 제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반석 위에 올려 놓은 훌륭한 황제였습니다. 또 학문에 밝았던 현군 레오는 콘스탄티노플을 세계적인 문화 중심지로 만들었죠. 게다가 네 번의 결혼에 얽힌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레오의 사람됨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말해줍니다. 황제는 아니지만 6세기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도 참 인상적인 인물이었는데요.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을 연상시키는 장군으로, 누구도 ‘악플’을 달지 않을 만한 충성스럽고 유능한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 이 책에 쏟아진 해외 언론의 찬사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 종교적인 욕망, 암살, 살육, 방탕한 황실, 그리고 궁정의 음모. 이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전쟁과 음모, 신학적 논쟁, 쿠테타, 희생과 복수, 불타는 야망과 군주들의 힘겨루기. 이 장대한 역사를 단숨에 훑으면서도 숨 가쁘지 않은 것은 노리치라는 노련한 안내자 덕분이다. 비잔티움의 신비로움은 오랜 세월 서구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책은 비잔티움이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할 뿐 아니라 여기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 인디펜던트
“매혹적이면서도 중요한 어느 한 제국에 관한 최고의 이야기 역사.” – 스펙테이터
“기괴하고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익살과 공포로 가득한 역사.” – 보스턴 글로브
“노리치는 매우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한 화자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역사의 자취들이 책장을 덮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 데일리 텔레그래프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방대한 기획에서 탄생한 책. 유려하고 명쾌한 서술로 독자들을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으로 안내한다.” – 선데이 텔레그래프
“노리치 자작은 언제나 작지만 매우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펜 끝에서 인물들의 개성, 표정, 그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별명 등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또한 그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일화나 별난 에피소드들에도 주의를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번득이는 문체로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짚어 낸다.” – 뉴욕 타임즈 북 리뷰
“생생하고 흥미롭다. 열정에 사로잡힌 외교관 출신의 특급 이야기꾼이 쏟아 내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보따리.” – 런던 선데이 타임즈
“그는 비잔티움의 어둡고, 복잡하며, 비극적인 이야기를 쉽고 유려하게 풀어 나간다. 노리치의 위대한 성과물인 『비잔티움 연대기』는 이 동방의 제국을 에드워드 기번과 다른 서구 주류 역사가들의 경멸로부터 구해 냈다.” –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일급 교양을 갖춘 외교관 출신의 저자는 비잔티움 시대의 궁정에 대한 매혹에서 출발하여,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판단력, 오늘날의 비잔티움 유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잔티움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 인디펜던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