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비잔티움 제국사 : 324~1453
원제 : Byzantinische Geschichte 324-1453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 까치 / 1999.12.30
동로마제국으로 불리는 비잔티움제국의 흥망성쇠를 알려주는 책이다.
로마 제국의 한 새로운 시대에 불과했던 비잔티움이 고대 로마의 행정, 그리스의 문화, 기독교 신앙을 발판으로 삼아서 어떻게 독자적인 비잔티움 국가체제로 발전해갔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서구 계몽주의시대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을 비롯한 로마가톨릭 중 심의 서로마제국 중심사관을 거부한 유고슬라비아 역사가 게오르크 오스트로 고르스키의 명저를 한정숙 서울대 교수와 김경연 서울대 강사가 번역했다.
이 책은 로마 제국의 한 새로운 시대에 불과했던 비잔티움이 고대 로마의 행정, 그리스의 문화, 기독교 신앙을 발판으로 삼아서 어떻게 독자적인 비잔티움 국가체제로 발전해갔는지를 조명했다.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저자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비잔틴 제국의 역사를 대내외적 정치사건을 위주로 정치, 경제사회적 토대와 연관지어 분석한다.
○ 목차
1. 초기 비잔티움 국가발전의 기본 특징(324-610)
기독교화한 로마 제국
민족 대이동과 그리스도론 논쟁의 시대
유스티니아누스의 복고작업과 그 와해
2. 비잔티움 국가의 생존투쟁과 쇄신(610-711)
페르시아 전쟁 및 아바르 전쟁과 헤라클레이오스의 개혁작업
아랍인들의 침략의 시대
콘스탄티노플의 구출과 신질서의 완성
헤라클레이오스 왕조의 몰락
3. 성상 파괴 위기의 시대(711-843)
제위의 혼란
성상 파괴와 아랍 전쟁:레온 3세
성상 파괴와 불가리아 전쟁:콘스탄티노스 5세
성상 파괴 운동의 후퇴와 성상 숭배의 재건
비잔티움과 샤를마뉴
니케포로스 1세의 개혁과 대외정치적 위험:비잔티움과 크룸
성상 파괴의 반동
4.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843-1025)
새로운 시대의 시작
법전 편찬의 시대:바실레이오스 1세와 레온 6세
비잔티움과 불가리아의 시메온
봉건세력에 대한 중앙권력의 투쟁과 비잔티움 황실의 문화적 전성기:로마노스 라카페노스와 콘스탄 티노스 포르피로게네토스
정복의 시대:니케포로스 포카스와 요안네스 치미스케스
비잔티움 세력의 절정:바실레이오스 2세
5. 수도 관료귀족의 지배(1025-1081)
중기 비잔티움 국가체제의 해체
대내정치 및 대외정치의 쇠퇴
6. 군인 귀족의 지배(1081-1204)
비잔티움 제국의 재건: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
새로운 권력의 전개와 최초의 반격들:요안네스 2세와 마누엘 1세
안드로니코스 콤네노스의 부흥 시도
붕괴
7. 라틴인들의 지배와 비잔티움 복구(1204-1282)
새로운 국가체제의 형성
에피로스의 흥망:니카이아의 승리
복구의 서곡
강국 비잔티움의 재건:미카일 8세
8. 비잔티움 제국의 쇠망(1282-1453)
소국으로서의 비잔티움
내전의 시대:발칸에서 세르비아의 우세
오스만인들의 발칸 반도 정복:투르크의 가신국가로서의 비잔티움
비잔티움의 멸망
○ 저자소개 :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Georg Ostrogorsky)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Georg Ostrogorsky)는 유고슬라비아의 역사가이다.
1902년 러시아의 뻬쩨르부르그에서 출생한 후 러시아 혁명기에 국외로 망명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수학했다.
특히 독일에서 활동하여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비잔티움학 강사를 지내면서 「비잔티움 성상 논쟁의 역사」(1929, 교수자격획득 논문)를 발표했다.
이후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서 프라하를 거쳐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로 이주하여 1976년 사망 때까지 베오그라드 대학 교수, 유고슬라비아 학사원 비잔티움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20세기 최고 권위자로서의 명성을 유지했다.
그의 주저인 『비잔티움 국가의 역사』 (1940)는 가장 표준적인 비잔티움 역사 개관서이자 이 분야의 획기적인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역자: 김경연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일 판타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주제로 박사 후 연구를 했다. 옮긴 책으로 《미움을 파는 고슴도치》, 《행복한 청소부》, 《책 먹는 여우》, 《빨간 나무》, 《이너 시티 이야기》, 《마녀 사냥》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우리들의 타화상》이 있다.
– 역자: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서울대 러시아연구소장 역임. 현재 한국러시아사학회 회장.
주요 저서로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저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저서), <독일통일과 여성> (공저) 등과 <우크라이나의 역사 1>, <유랑시인> (편역) 등의 역서, 편역서가 있다.
○ 출판사 서평
게오르크 알렉산드로비치 오스트로고르스키 (George Alexandrovič Ostrogorsky, 러: Георг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Острогорский, 1902년 1월 19일 ~ 1976년 10월 24일)는 독일 및 유고슬라비아에서 활동한 러시아 태생의 역사학자로,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20세기 최고 권위자로서의 명성을 유지했다.
그의 명저 ‘비잔티움 국가의 역사’ (Geschichte des byzantinischen Staates)는 1940년 제1판이 출판된 후에 비잔티움 역사의 개관으로서 가장 표준적인 저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동로마 제국의 역사¸ 즉 비잔티움사는 한마디로 ‘버림받은 역사’와 같이 취급되었다. 이는 서유럽인들에 의한 서유럽을 중심주의적 역사 서술이 유럽 역사에 주류를 형성하면서 역사 속에 사라져 버린 비잔티움사는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오스트로고르스키의 ‘비잔티움 제국사’는 비잔티움 제국의 생성과 발전¸ 나아가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약 천년의 역사 (324 ~ 1453)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잔티움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침서가 된다.
본서는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로마 제국의 한 새로운 시대에 불과했던 비잔티움이 고대 로마의 행정, 그리스의 문화, 기독교 신앙을 발판으로 삼아서 어떻게 독자적인 비잔티움 국가체제로 발전해갔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오스트로고르스키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천년 이상 지속된 이 대제국의 변화무쌍한 운명을 그것과 인과적 필연적 관련을 맺고 있는 대내외적 정치사건들 및 주변 세계의 도전, 국가제도 및 법제도, 경제사회적 토대 등과 당대인들의 생생한 삶의 온전한 집결체로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 독자의 평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는 유고슬라비아 역사가로 1902년 제정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서 출생했다. 그는 러시아 혁명기에 해외로 망명하여 하이델부르크와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활동하다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프라하를 거쳐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사망한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 「비잔티움 국가의 역사 (Geschichte des byzantinischen Staates)」는 1940년 제1판이 출판된 후에 비잔티움 역사의 개관으로서 가장 표준적인 저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동로마 제국의 역사¸ 즉 비잔티움사는 한마디로 ‘버림받은 역사’와 같이 취급되었다. 이는 서유럽인들에 의한 서유럽을 중심주의적 역사 서술이 유럽 역사에 주류를 형성하면서 역사 속에 사라져 버린 비잔티움사는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오스트로고르스키의 『비잔티움 제국사』는 비잔티움 제국의 생성과 발전¸ 나아가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약 천년의 역사 (324-1453)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잔티움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에의 중심적인 내용을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적 의미와 비잔티움 제국의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논할 가치가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비잔티움 제국에서의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가 기존의 황제교황주의 (교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 혹은 지배)적 시각을 벗어나 심포니아 사상(교회와 국가와의 조화 혹은 협력)의 시각에서 조망하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성상파괴주의의 몰락과 붕괴는 그리스의 종교적 문화적 특성의 승리이며 교회를 국가 권력 밑에 종속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라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황제는 총대주교의 임명권과 교회의 행정에 개입할 수는 있었지만 신앙 문제에 대한 결정은 종교회의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종교회의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 황제는 취소할 수도 바꿀 수도 없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 대한 국가의 지배가 아니라 교회와 국가와의 긴밀한 조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조화와 협력의 관점에서 보는가 혹은 복종과 지배의 관점에서 보는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 수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 가운데 한 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교회와 국가 간의 조화와 협력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조화와 협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총대주교 임명권이 황제에게 있는 상황 속에서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를 마치 동등한 입장에서의 조화처럼 묘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화와 협력의 모습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 모델이거나 혹은 극히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일부를 전체로 해석하여 일반화시키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과대 해석이다. 러시아 정 교회사가인 카르타세프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국가의 교회에 대한 지배는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실적 토대 하에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조화와 협력의 관계였는가 혹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욱 타당한 시각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발전하게 된 사회 경제적 제도를 말하고 있다. 주제는 군사지역뿐 아니라 행정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조직의 발달은 둔전병제의 발달과 더불어 강력한 토착 군대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국가의 주 납세자들인 독립적인 소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보호 정책은 국가 재정의 안정화를 가져오게 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바실레이오스 2세의 뒤를 이은 로마노스 아르기로스로부터 시작된 대토지 소유의 귀족층들에 대한 옹호 정책과 동시에 테마 제도와 소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보호 정책의 철회는 농민토지와 군인토지들의 급속한 해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잔티움 국가의 방어력과 조세 징수력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졌으며 비잔티움 제국 내부의 몰락을 위한 서곡이 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